?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OXbu40rnlx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이름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무엇인가?(계3:12)

https://youtu.be/OXbu40rnlx4

 

1.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에서는 시대별로 구원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서 마28:19을 언급합니다. 여기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제자들더러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상홍증인회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지만, 성령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는데, 성령의 이름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이름을 "안상홍"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 주장은 옳은 것입니까?

 

2.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는 3가지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첫째,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셋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28:19에 쓰인 "이름"이라는 명사는 복수명사("이름들")가 아니라 단수("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각각 따로 있다고 했다면, 예수께서는 "이름들"이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들(복수)로 세례를 베풀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단수)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각각 따로 있다는 안상홍증인회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원문을 그대로 보지 못해서 착각한 오류입니다. 둘째,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가서 세례를 줄 때에 사도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이라는 말 그대로 세례를 주지 않았고, 전부다 "예수의 이름으로"로 세례를 주었던 것을 그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곧 "예수"라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와 고넬료가정에 가서 사도 베드로가 세례를 주었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를 세례주거나 주라고 했으며(행2:38, 10:4),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교회에 세례를 줄 때(행8:16)나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세례를 줄 때(행19:5)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하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이라고 사도행전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셋째, 성경에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영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을 "안상홍"이라고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고, 신약시대 아들의 이름은 "예수"라고 성경에 나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둘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3. "여호와"는 구약시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신약시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마1:21)",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욘2:9).", "여호와가 구원하러 오셨다(딤전1:15,롬10:13)"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이름과 예수라는 이름은 전혀 다른 이름이 아니라, 같은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이름보다는 예수라는 이름이 더 진전된 이름이요 더 확실한 이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 뜻은 원래는 "스스로 계신 자" 혹은 "나는 ~라고 하는 바로 그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자존자" 내지는 "전능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자존자이시며 전능자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더라도, 성령의 이름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만약 있을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적어도  "예수"라는 이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순절 이후 성도들이 다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는데, 모두가 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확실히 무엇인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령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는 것일까요?

 

4. 성령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은 성령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란 "거룩한 영"이는 말입니다. 사실 "거룩한 영"이라는 표현은 영이신 하나님(요4:24)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거룩한 영의 이름을 또다시 지어부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의 일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출3:14~15)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이란 아버지와 별개의 또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하나님의 바로 그 영)이기 때문에 또 다른 이름을 취하실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올 때에는 사람이며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셨기에 어떤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포함한 "예수"란 이름이 붙혀지게 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여호와(구약에 나타난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에서는 성령의 이름이 따로 있다고 하면서, 그 이름을 "안상홍"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서 계3:12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합니다. 과연 계3:12의 말씀은 안상홍이가 성령의 이름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까?

 

5. 아닙니다. 안상홍이가 성령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지어낸 거짓말입니다. 성경 어디에 "안상홍"이라는 대한민국 사람의 이름이 "성령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 안상홍이 성령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요14~15장에서 보혜사 성령은 모든 사람 속에 들어오신다고 했는데, 죽어서 부산에 묻혀있는 안상홍과 그의 시체가 어찌 무소부재한 상태가 되어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온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안상홍이라는 이름이 성령 하나님의 이름인 것은 예수님의 새 이름이 안상홍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계3:12). 하지만 계3:12의 말씀은 예수님에게 새 이름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을 뿐 그 이름이 성령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킨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예수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이름이 있을까요? 그것은 2가지가 다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구약에 계시된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였는데, 신약에 들어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라고 되어 있으니, 예수라는 이름을 하나님의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새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진짜로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에 당신의 새로운 이름을 공개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라는 이름이 "안상홍"이라는 이름은 아닙니다. 이 둘의 이름은 결코 단 한 부분에서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차 불려질] 예수님의 새 이름이 꼭 성령의 이름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냥 갖다 붙히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주는 데까지 알면 됩니다. 구약에 계시된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셨고, 신약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이 둘은 사실상 같은 이름이며, 나중에 불려진 "예수"라는 이름은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성경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여호와"라는 이름보다는 "예수"라는 이름(여호와라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이름)을 늘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원도 받고, 기도도 하고, 죄사함도 받으며, 권세도 얻고, 천국도 가기 때문입니다(참고로, 이단들 때문에 오히려 많이 알게 되고 배우는 것 같습니다.)

 

2018년 12월 11일(화)

정병진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동영상URL
1440 사도행전강해(77) 바울의 선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부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행18:1~3)_2022-12-07(수) file 갈렙 2022.12.07 802 https://youtu.be/2Q_5AMJRtDk
1439 사도행전강해(76)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죽은 이방인들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행17:22~31)_2022-12-06(화) file 갈렙 2022.12.06 562 https://youtu.be/OrLpBBKwlP8
1438 창세기강해(84)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횃불언약이 말해주는 영적 교훈(창15:9~21)_2022-12-05(월) file 갈렙 2022.12.03 91 https://youtu.be/jwUInd8kW5U
1437 창세기강해(83) 아브라함이 얻은 칭의 과연 그의 믿음이 온전해서였을까?(창15:1~7)_2022-12-02(금) file 갈렙 2022.12.01 309 https://youtu.be/7-6QaQbIFk4
1436 창세기강해(82) 회개와 저주의 관점에서 볼 때 아브라함의 롯 구출이 보여주는 영적 교훈(창14:11~16)_2022-12-01(목) file 갈렙 2022.11.30 121 https://youtu.be/p33_Q1mb4MA
1435 창세기강해(79) 아브라함의 용기,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창14:1~16)_2022-11-30(수) file 갈렙 2022.11.29 83 https://youtu.be/lTXDbCn_79k
1434 창세기강해(81) 멜기세덱의 출현과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창14:17~24)_2022-11-30(수) file 갈렙 2022.11.29 126 https://youtu.be/9PVy1VdOAIs
1433 창세기강해(80)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의 달라진 위상(창14:17~24)_2021-11-29(화) file 갈렙 2022.11.28 201 https://youtu.be/-VOhXUuLvDY
1432 창세기강해(78)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아브라함(창13:1~13)_2022-11-28(월) file 갈렙 2022.11.27 107 https://youtu.be/-oCicqkRegw
1431 사도행전강해(75) 아덴 사람들은 트인 자들이었지만 왜 소수만 믿었을까?(행17:16~34)_2022-11-25(금) file 갈렙 2022.11.25 221 https://youtu.be/OSrpjgk2s9I
1430 사도행전강해(74) 복음전도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행17:10~15)_2022-11-24(목) 1 file 갈렙 2022.11.24 239 https://youtu.be/UFYJ3vm6Eig
1429 사도행전강해(73) 데살로니가 교회는 대체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행17:1~9)_2022-11-23(수) file 갈렙 2022.11.23 190 https://youtu.be/YzIlWrpqihM
1428 사도행전강해(72) 복음전파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장애요소가 되는가?(행17:1~9)_2022-11-22(화) 1 file 갈렙 2022.11.22 309 https://youtu.be/BkvFUdCz5AI
1427 창세기강해(77) 아브라함의 첫번째 실수가 빚은 뼈아픈 교훈들(창12:10~20 )_2022-11-21(월) file 갈렙 2022.11.20 169 https://youtu.be/KSwUz9Nbl_0
1426 사도행전강해(71) 왜 바울은 석방된 뒤에 비로소 로마시민권을 사용했는가?(행16:35~40)_2022-11-18(금) file 갈렙 2022.11.18 221 https://youtu.be/mNUnvWHy51E
1425 사도행전강해(70) 억울하게 매맞고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선택한 것은?(행16:19~34)_2022-11-17(목) file 갈렙 2022.11.17 474 https://youtu.be/v6lUHjAt2G8
1424 사도행전강해(69) 왜 사도 바울은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는가?(행16:16~19)_2022-11-16(수) file 갈렙 2022.11.16 477 https://youtu.be/kAEuxx7xkMs
1423 사도행전강해(68) 복음 안에서 바울과 루디아의 아름다운 만남(행16:11~15)_2022-11-15(화) 1 file 갈렙 2022.11.15 480 https://youtu.be/AswkIrtnhxo
1422 창세기강해(76)순례자인 아브라함이 붙들었던 신앙의 2가지 중심 축(창12:5~9)_2022-11-14(월) file 갈렙 2022.11.13 77 https://youtu.be/3Zk2jVKbCjc
1421 사도행전강해(66) 바울과 바나바, 누가 양보했어야 했을까?(행15:36~41)_2022-11-10(목) file 갈렙 2022.11.11 569 https://youtu.be/DmB5y8J_4K0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95 Next
/ 95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