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j-5vclmQNt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상에 계신 주 예수님은 왜 자신을 어린양으로 나타내 보이셨는가?(계4:6~11)_2019-06-04(화)

https://youtu.be/j-5vclmQNtQ

 

1. 주일성수의 핵심은 무엇을 있을까요? 그것은 "예배"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4~5장에 나오는, 천상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보니 예배의 핵심은 "엎드려 절함"과 "찬양"과 "기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엎드려 절함"은 자세를 가리키고, "찬양과 기도"는 예배의 표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천상의 예배를 보니, 지금 우리가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가 차이가 나는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계4:10; 5:8,14)

 

2. 천상의 예배에서 특별한 점은 천상에 있는 구원받은 [신구약]백성들의 대표자인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엎드린다는 것은 절을 받을 대상이 있기 때문에 하는 행위입니다. 만약 엎드려 절을 할 대상이 없는데도, 거기에다가 절을 한하면 그는 아마 미친 사람이라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그럼, 천상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보겠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을 때에 24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자 곧 자신을 어린양으로 나타내 보이자, 24장로들이 그분께 엎드려 경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영원부터 영원까지 보좌에 앉아계시는, 홀로 한 분이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볼 수가 없습니다(딤전6:16).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분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나타나 보여지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그분께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신적 대상인 하나님에게 엎드려 경배하는 행위는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높여 찬양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자 사람들은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천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자신을 어린양으로 나타내 보이자, 24장로들이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천사들도 따라서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24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가 아니라 어린양에게 엎드려 경배했던 것일까요?

 

3. 요한계시록은 처음 읽을 때에는 참으로 뭐가 뭔지 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특별히 헷갈리는 것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분명히 자신을 나타내보이신 예수께서 4장 이후부터 21장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맨 끝에 있는 22장 후반부에 가서 비로소 자신을 다시 나타내 보이십니다(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천사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계22:16)" 참고로, 요한계시록 2~3장은 1장에 자신을 계시하신 "인자같은 이" 곧 예수님께서 일곱교회에서 보내라는 편지이니까 뛰어넘어간다고 친다면, 1장 이후 21장까지 예수님은 자신을 감추시고 나타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4장부터 21장까지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으로 자신을 계시하고 있습니다(4:10; 5:8,13). 여기서 "보좌에 앉으신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에 해당하며, "어린양"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4장에서 천상의 모습을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에 대한 천상의 모습만 있습니다. 그런데 5장으로 넘어가면, "보좌에 앉으신 이"와 더불어서, 찬양과 경배를 받고 계시는 "어린양(아르니온)"이 등장합니다. 영국의 대 신약학자 리차드 보캄(보컴,보쿰)은 찬양과 경배를 받고 있는 어린양을 일컬어,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누구이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유대인은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만 찬양과 경배 그리고 기도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사도요한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기 대문입니다. 하나님 한 분 이외에 또 다른 두번째 신에게 경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보캄).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혹은 곁에) 계신 어린양은 보이지 않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체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보이는 어린양에게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했고(계5;8,14), 그 뒤에는 천군천사들도 그분에게 엎드려 경배하게 됩니다(계7:1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때에 어린양으로 나타내 보이셨을까요?

 

4.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때, 어린양으로 모습으로 나타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서는 딱 2가지 존재에게만 경배행위가 나온다는 말씀을 통해서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양 외에 또 다른 어떤 짐승에게 경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짐승은 사탄마귀(용)을 대신하는 존재로서 첫째는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는 짐승"(계13:1~10)이요 둘째는 "땅에서 올라오고 있는 짐승"(계13:11~18)입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어린양"도 일종의 짐승과 같아 보이고, "바다짐승"이나 "땅짐승"도 일종의 짐승과 같아 보입니다. 그러니까 창세이후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바다짐승이나 땅짐승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탄마귀에게 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고 있는 신실한 성도들은 한 분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다른 존재에게도 절하지 않아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짐승"(대제국으로 표현됨)은 로마의 11대황제 "도미시안(도미티아누스)"가 분명합니다. 그가 자신을 백성들에게 "우리의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경배하라고 강요한 살아있는 황제가 바로 당시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찬양을 올릴 때에 똑같은 고백합니다. "우리의 주 하나님이여! ..."(계4:11) 그리고 계5장에 가면, 어린양에게 경배를 올립니다(계5:8,14).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 주 예수님만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신 하나님이지, 결코 이 땅에 있는 로마의 황제가 경배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묘사되어 있고, 이 세상의 황제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 특별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도 비유할 수 있을텐데 왜 "어린양"으로 묘사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그분의 겸손과 낮추심과 희생과 사랑을 표현해주기 위함입니다. 즉 전능자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완전히 낮추시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분을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세상이 통치자인 당시 도미시안황제는 사람들 위에 자신을 높이고, 군림하면서 강제로 자신을 숭배하라고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대조되는 모습입니까? 진짜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비워 피조물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셨건만, 이 세상의 왕이라는 자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을 모조히 죽이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 진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가를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천사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에 불과하겠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창조주이심과 동시에 구원자이십니다. 특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자신을 목숨까지 희생하는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가면, 즉시 그분께 엎드리지 아니할 수 없으며 경배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면 어린양으로 자신을 나타내보이시는 하나님께 그냥 엎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능한 하나님께서 못난 우리 죄인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낮아지셨으며, 그렇게까지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까지 맛보셨던 것을 잊을 수가 없고, 감사하고 노래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신 하나님께 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립시다.

 

2019년 6월 4일(화)

정병진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동영상URL
584 사도행전 강해(04) 복음전파를 위한 성령세례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행1:4~5)_2022-06-09(목) 1 file 갈렙 2022.06.09 169 https://youtu.be/GlZY0S3eg0g
583 사도행전 강해(05)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1:12~14)_2022-06-10(금) 1 file 갈렙 2022.06.10 173 https://youtu.be/mNHtNldt3ic
582 사도행전 강해(08) 오순절 성령세례로 인해 나타난 표적은 무엇이었나?(행2:1~4)_2022-06-13(월) file 갈렙 2022.06.13 125 https://youtu.be/KvZ2cJVxnkU
581 사도행전 강해(09)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단순한 지방말인가 영의 언어인가?(행2:1~13)_2022-06-14(화) file 갈렙 2022.06.14 153 https://youtu.be/Ob2Za44fgAg
580 사도행전 강해(10)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 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행2:1~13)_2022-06-15(수) file 갈렙 2022.06.15 209 https://youtu.be/1Ifr3WLQtHE
579 [온라인수요기도회] 이사야강해(03) 메시야의 처녀탄생 예언에 숨겨진 놀라운 이야기(사7-1~17)_2022-06-15(수) 1 file 갈렙 2022.06.15 110 https://youtu.be/8fzxfhuKg_A
578 사도행전 강해(1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1)(행2;5~13)_2022-06-16(목) file 갈렙 2022.06.16 125 https://youtu.be/Dj0meeD1FXM
577 사도행전 강해(12)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2)(행2:5~13)_2022-06-17(금) file 갈렙 2022.06.17 141 https://youtu.be/Fj2qfKVFPHs
576 사도행전 강해(14) 최초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비결(행2:42~47)_2022-06-20(월) file 갈렙 2022.06.20 179 https://youtu.be/HWAv6VM12bI
575 사도행전 강해(15)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장애인은 어떻게 고침받았는가?(행3:1~10)_2022-06-21(화) file 갈렙 2022.06.21 1614 https://youtu.be/uwUOGYxf3Xo
574 사도행전 강해(16) 병자치유 후에 행한 베드로의 두번째 설교의 특징은?(행3:11~26)_2022-06-22(수) file 갈렙 2022.06.22 279 https://youtu.be/z35UKqOxteU
573 사도행전 강해(17)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01)(행4:1~22)_2022-06-23(목) file 갈렙 2022.06.23 149 https://youtu.be/tLMAFltWAfg
572 사도행전 강해(18)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02)(행4:1~22)_2022-06-24(금) file 갈렙 2022.06.24 146 https://youtu.be/IYxGw6t_Ol8
571 사도행전 강해(20)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극적인 최후 무엇 때문이었는가?(행4:32~5:11)_2022-06-27(월) file 갈렙 2022.06.27 171 https://youtu.be/RgEZUk9qAak
570 사도행전 강해(21) 복음전파자의 진짜 자격기준은 무엇인가?(행5:12~24)_2022-06-28(화) file 갈렙 2022.06.28 127 https://youtu.be/zUgq1NsaP40
569 사도행전 강해(22) 복음전파자는무엇이 자신에게 영광이 되어야 하는가?(행5:25~42)_2022-06-29(수) 1 file 갈렙 2022.06.29 130 https://youtu.be/1gV_cylerK0
568 사도행전 강해(23) 복음전파의 권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행5:40~42)_2022-06-30(목) 1 file 갈렙 2022.07.01 147 https://youtu.be/ZokUXqk5-H0
567 [온라인새벽기도회] 이사야강해(04) 메시야 그는 이새의 싹인가 아니면 이새의 뿌리인가?(1)(사11:1~9,9:6~7)_2022-07-01(금) 1 file 갈렙 2022.07.01 224 https://youtu.be/1MfP5jGewYs
566 이사야강해(12) 이사야에 나타난 메시야의 공생애(1)(사61-1~3)_2022-07-11(월) 1 file 갈렙 2022.07.10 127 https://youtu.be/79_-E2Pt1rE
565 창세기강해(01) 모든 것을 시작하신 하나님(창1:1)_2022-07-12(화) file 갈렙 2022.07.13 116 https://youtu.be/rE8sTqYFiVU
Board Pagination Prev 1 ...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 95 Next
/ 95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