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 하나님이 거할 장막을 치는 것이었다(히9:9~12)_2020-03-10(화)
1. 성경을 해석할 때 왜 모형론적(예표론적)으로 해석해야 하나요?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초기교부 오리겐(A.D.185~254)이 말한 것처럼 3가지가 있습니다. "몸적인 의미"(문자적 의미), "혼적인 의미"(도덕덕 윤리적 교훈적 의미), "영적인 의미"(알레고리적 의미, 예표론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 가운데 기본은 "몸적인 의미"를 먼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혼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신천지나 하나님교회(안상홍증인회) 같은 경우에서는 처음부터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데 그것도 알레고리적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 원래 성경의 저자가 말하려고 했던 의도를 벗어나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작자의 사상를 주입시키거나 교주를 메시야로 믿게 하는 데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반드시 1차적(문자적) 의미와 2차적(교훈적) 의미를 살펴보고 그리고 나서 3차적(영적)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히 3차적인 의미는 성경에 나오는 비유들을 해석할 때에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이때는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모형론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가장 안전하며, 올바르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해석하실 때에 사용한 방법(요5:39)이었으며, 사도바울도 사용했고(롬5:14, 고전5:7,10:4,15:45), 사도요한도 사용했으며(요2:19~21), 사도베드로도 마찬가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벧후1:14).
2. 성경에서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을 최고로 많이 사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성경에서 모형론적인 성경해석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사용한 사람은 역시 "히브리서 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그 기초를 세우셨고 사도들이 그것을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만큼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을 많이 그리고 확실하게 적용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탁월한 성경책은 역시 히브리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히브리서의 핵심은 구약의 율법이 모형과 그림자(히8:5)에 불과한 것이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의 율법 중에서 언약들, 그리고 성막이나 대제사장이나 제물도 다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실체는 누구일까요?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실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몸[통]이요 실체이며 원형인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시대에 실재했던 사건들과 사람들과 물건들과 제도들을 가져와서 실체를 설명했던 것입니다.
3.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장막"과 "성전"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구약시대 특히 출애굽이후 시내산 아래에 세워졌던 성막은 사실 그때 처음으로 존재하게 된 시설(물건)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하늘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준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이 땅에 그대로 짓게 했던 것입니다(출25:8~9,40).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25:9)". 그러자 모세는 자기가 본 그대로 브살렐과 오홀리압으로 하여금 이 땅에 성막을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약500년 뒤에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시온산성을 빼앗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거기에 성전을 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그의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럼 그때 솔로몬은 어떻게 성전을 지었습니까? 그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설계도대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설계도도 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성전을 그대로 그려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대상28:19). 그러니까 이 땅에 모세가 지은 성막이나 그것을 건물의 형태로 지었던 솔로몬의 성전이나 다 이 땅에 처음으로 존재했던 기물들이 아니라 하늘에 먼저 있었고 그것을 이 땅에 하늘의 식양대로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의 성막과 성전은 다 모형이며 그림자인 것이며, 성막과 성전이 실체(원형)가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4. 성막과 성전의 진짜 실체는 무엇이었나요?
그런데 어느날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논쟁하다가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그러자 유대인들이 물었습니다. "이 성전은 46년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2:20)" 그런데 만약 예수께서 하신 이 대답을 문자적인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허풍쟁이요 몰지각한 사람이요 미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46년동안 지어서 완공했던 스룹바벨성전을, 과연 3일만에 다시 지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즉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비로소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영적인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곧 "성전된 자기의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입니다(요2:21). 그러므로 그때 헐라고 했던 성전은 물질적인 성전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을 가리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5. "성전을 헐라"는 명령은 예수님의 몸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나요?
"성전을 헐라(요2:19)"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예수님의 성육신을 소개하는 사도요한이 그렇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신 사건 곧 예수님의 잉태와 성탄의 사건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막을 지은 것이라고 해설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요1:14에 나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요1:14)" 그런데 이 본문을 헬라어 원문으로 지역해보면, "그리고 그 말씀이 육체가 되었으며, 그리고 우리들 안에 장막을 치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입니다. 그러니까 "거하시매"라는 말을 헬라어로는, "스케노오"라는 단어로서, "장막을 치다"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명사 "장막"은 "스케네"라고 부르며, 동사 "장막을 치다"는 "스케노오"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 성막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부터 존재했던 성막이나 성전은 예수님의 몸에 대한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막을 치시려고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출25:8에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 어딘가에 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한 처소로서 이 땅위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몸 안에 아버지가 거하셨으니(요10:38), 예수께서는 "나를 보고 있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요(요12:45),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14:9). 또한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0)"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고로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의 성막(장막,성전)이며, 그분 안에는 하나님(아버지)께서 거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막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자신이셨던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에 우리는 성막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게 되며, 그분을 믿음으로 하늘로 가는 열린 길을 따라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히10:19~20). 이것은 내일 계속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03월 10일(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