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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E7SUe2EbMss

하나님께서 물 없는 르비딤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은 우연이었을까? 왜냐하면 이미 이스라엘 민족은 마라에서 식수 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이 없는 르비딤으로 인도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를 점검하고, 장차 있을 아말렉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간 길을 통해 장차 믿는 이들이 걸어가야 할 신앙의 노정을 생각하게 된다. 특히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에, 쪼개진 반석으로부터 물을 흡족히 마신 사건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성령을 충만히 받은 것을 지칭한다. 이처럼 일차적으로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령충만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에 물 없는 르비딤으로 인도하여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 것이다. 한편 르비딤 바로 직전에, 신 광야에서부터 하나님은 만나를 공급해 주셨다. 이는 말씀이 앞으로 다가올 영적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르비딤에서 만났던 아말렉 족속은 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들을 무찌를 수 있는 무기와 방어책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출애굽기 17장은 바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온라인새벽기도회] 2021-10-18(월) 새벽기도회

제목: 출애굽기강해(14) 르비딤 반석의 생수기적과 아말렉과의 전투(출17:1~16)_2021-10-18(월)

 

 

1. 들어가며

  성경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인 사건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기 에 보면, 만고불변의 영적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과거에 일어난 이러한 일들은 우리에게 본보기(모형)이 되어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말했다(고전10:11).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여정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여정과도 같다고 했다(고전10:1~4). 그러므로 우리는 '유월절-구름기둥 불기둥 인도-홍해도강-신 광야의 만나 기적-반석에서의 생수-아말렉과의 전투'와 같은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믿음 통한 구원-성령의 인도함 받음-물 세례-말씀 섭취-성령 세례(혹은 성령충만)-영적 전투'로 빗대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신약의 교회생활을 예표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가운데, 성령충만과 영적 전투에 관한 계시적인 사건을 다뤄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므리바물 사건(출17:1~7)과 아말렉과의 전투(출17:8~16)가 그것이다. 특히 므리바물 사건은 쪼개진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이야기이며, 아말렉과의 전투는 기도가 가져온 승리의 이야기다.

 

2. 이스라엘 민족이 제11번째 정착지 르비딤으로 이동하다

  민수기 33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라암셋을 출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나오는데, 특히 그들이 진을 친 장소가 하나씩 하나씩 기록되어 있다(민33:3~49). 어떤 장소는 우리의 귀에 익숙한 것도 있지만 어떤 장소는 익숙하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민수기 33장의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의 여정에 진을 친 장소는 총42개였다. 이러한 장소들 중에서 라암셋에서 르비딤까지의 여정을 살펴보면 이렇다(민33:5~14). 1)라암셋 2)숙곳 3)광야 끝 에담 4)바알스본 앞 비하히롯. 그리고 믹돌에서 바다(홍해)를 건넌다. 5)마라 6)엘림 7)홍해가 7)신 광야 9)돕가 10)알루스 11)르비딤. 그렇다. 이스라엘 민족이 11번째 진을 친 장소는 르비딤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돕가나 알루스와 같이 물이 풍성한 곳에 계속해서 진을 치고 있지, 왜 굳이 물 한 방울 없는 르비딤으로 옮겨 가야 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입)을 따라' 갔기 때문이다(출17: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명령했을까? 그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이동을 통해서였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동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진을 거둬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민9:17~18).

 

3.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용수를 충당할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번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끄는 대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그곳은 물 한 방울 구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그러나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반응을 보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금새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물 없는 곳으로 오게 했다고 하면서 모세를 돌로 치려고 할 기세였다. 모세는 즉시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로 지시하신 반석을 치게 되니, 그곳에서 물이 콸콸 솟아 올라와 온 백성이 마시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죄들 중에 어떤 죄들을 제일 싫어하실까?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의 여정을 보니,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범죄들이다. 우상숭배, 간음, 시험함, 원망 불평함(고전10:7~10). 그런데 르비딤에서는 이것들 중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불충함과 원망 불평하는 죄를 지었다. 사람이 하나님이 자기들 중에 계신지 아니 계신지 시험하는 것처럼 사실 하나님께서 불쾌하게 생각하는 죄는 없다. 더욱이 원망과 불평하는 죄는 자신의 신분이 여전히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해 주는 악한 성품의 죄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죄들은 결국 비록 몸은 출애굽했으나 마음은 여전히 죄악투성이요, 하나님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10번의 원망과 불평을 들으시고는 그들을 광야에 아주 멸하시기로 결정하신다(민26:64~65, 32:13).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음생활 가운데 어떠한 상황에 부딪힌다고 할지라도 원망 불평하지 말자. 그때가 찾아오면 오히려 하나님께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다(렘33:3).

 

4. 하나님께서는 왜 쪼개진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을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반석을 쪼개서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게 했을까? 신명기 9:21을 보니,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시내처럼 마셨다고 나와 있다. 또한 시편 78:16에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바위에서 시내를 내서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쪼개진 반석으로부터 마셨던 물은 충분한 물이었고 흡족히 마실 수 있는 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했다. 그리고 생수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했다(고전10:3~4a). 그리고 그 반석은 정확히 '그리스도'라고 해석했다(고전10:4b).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기서 르비딤에 오기 직전 신 광야에서 먹기 시작한 만나는 하늘에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신 것을 배웠다(요6:49~51). 그런데 사람이 먹고 마셔야 할 것은 단지 음식만이 아니었다. 흡족한 생명의 물도 마셔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쪼개진 반석으로 솟아 나와 온 백성들로 하여금 흡족히 마시게 한 생수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것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수가성 여인과의 우물가의 대화에서 그녀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그랬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의 물을 주고 싶어 하신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주님은 오늘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고 있는가? 그것이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다(요7:37~39). 고로, 이스라엘 백성이 쪼개진 반석으로부터 마셨던 물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생명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사55:1), 예수님이다(요7:37~39) 지금의 시대(계22:17)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값없이 생수를 주시고자 초대하고 계신다. 누구든지 와서 마시라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하신다. 그것은 주님께서 유월절 양이 되시어 모든 사람들의 죄를 구속하신 후, 생명의 물로 예표되는 성령을 풍성히 마실 수 있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어 일차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곧이어 홍해도강으로 예표되는 물 세례를 받아야 하며 이어서 광야의 교회생활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만나와 같은 말씀을 공급 받아야 하고, 이어 쪼개진 반석으로부터 물인 성령을 충분히 공급 받아야 한다. 이름하여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엡5:18).

 

5. 르비딤에서 물을 충분히 공급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아 교회생활을 하는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왜 성령충만 받기를 그토록 원하시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곧이어 성도들이 사탄 마귀와 귀신들과의 영적 전투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그들은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내부의 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이들의 공격이 있었고, 더불어 호시탐탐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방에서 노략질하려는 외부의 세력들이 있었다. 이러한 외부의 적의 대표가 바로 아말렉 족속이었던 것이다. 내부의 적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자신의 육체라고 하였다(갈5:16~17). 그리고 외부의 적은 응당 귀신들을 상징한다.

  아말렉 족속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족속들이다(창36:10~12). 이들은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낙타를 타고 다니면서 광야에 들어온 사람들로부터 노략질하는 게릴라족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쳐서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해 갔다(신25:17~19). 그러자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다가 사람들을 선택하여 아말렉 족속과 싸워 무찌르라고 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로 올라가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러자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에는 여호수아의 부대가 우세했지만 모세가 지쳐 손이 내려올 때에는 아말렉 족속이 우세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광경을 지켜본 아론과 훌(미리암의 남편으로 추정됨)이 모세를 바위 위에 앉히고는 그의 좌우의 손을 높이 추겨세웠다. 그러자 모세가 힘있게 기도하니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말렉 족속을 쳐서 이기게 되었다.

 

6. 아말렉과의 전투와 모세의 중보 기도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렇다면, 아말렉과의 전투와 모세의 중보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기도하는 모세는 부활 후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어 중보 기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을 예표한다. 이때 모세는 여호수아의 군대를 보내 적 아말렉 족속을 무찌르게 했다. 여기서,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외부에서 공격하는 사탄 마귀와 귀신의 세력을 상징한다.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절대 그냥 보고만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어찌하든지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여 넘어뜨리려 하는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죽었다가 깨어난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시 천국에는 못 들어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들보다 힘도 약하고 능력도 약하고 지혜도 부족한 인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그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락한 천사들은 자기의 범죄 때문에 그들을 하늘에서 쫓아낸 하나님께 무엇인가 흠집을 내려고 하는데, 가장 만만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구원의 노정 안으로 이제 갓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때였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2가지를 하라고 하셨다. 하나는 여호수아가 아말렉 족속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중보 기도였음을 책에 꼭 기록해 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여호수의 귀에 들려주어 아예 이 사건을 마음에 새겨 두게 하라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당신을 배반하고 하늘에서 쫓겨났던 타락한 귀신들을 결코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재천명하려는 것이다. 모세더러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을 위해 지옥을 만든 것이 결코 아니다. 지옥은 타락한 천사들을 가두기 위한 감옥으로 설계했던 것이다. 다만 타락한 천사들에 의해 포로가 되어 버린 인간들이 그곳에 들어갈 뿐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옥보내기 위해 지옥을 만드신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예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현재 2가지 일을 하고 계신다. 하나는 원래의 보혜사로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요(요일2:1~2), 또 하나는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시는 것이다(히7:25~27). 먼저, 예수께서는 원래의 보혜사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어 우리의 기도들을 들으시고 우리의 간청을 들어주시는 일을 하신다(롬8:34).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들을 고백할 때 우리의 죄들을 사해주는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시는 것이다(요일1:7,9).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절대 놀라지 말라. 즉시 잘못했으면 회개하기를 바라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요청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당하지 아니한다. 그래야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재림때까지 예수께서는 그 일을 계속 수행하실 것이다.

 

7. 나오며

  오늘날 성도들에게 왜 말씀 충만과 성령 충만이 필요한가? 그것은 모든 성도들이 영적 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무기가 필수적으로 필요하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영적 전투에 담대히 나가 싸워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귀신들과 전쟁을 치를 때에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가? 아니다. 이미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중보자로서, 보혜사로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기도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영적 전투에서 예수님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 우리의 능력과 힘과 지혜만으로는 타락한 천사를 대항할 수 없지만, 성령의 지혜와 능력이면 어떠한 적의 공격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할 수만 있으면 말씀 훈련을 더 철저히 받으라. 그리고 기도하라. 부르짖어 기도하고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적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실 것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꼭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2021년 10월 18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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