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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mNHtNldt3ic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5)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1:12~14)_2022-06-10(금)

https://youtu.be/mNHtNldt3ic  [혹은 https://tv.naver.com/v/27276963 ]

 

1. A.D.30년 5월 18일경 120명의 성도들은 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는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약 40일이 되던 날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리고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로 알려진 다락방으로 모였다. 그럼, 그들은 왜 모였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을 받기 위해 모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너희가 들었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왜냐하면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행1:4~5)"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제 성령받기 위해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곳은 감람산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곳으로서 안식일에 걸어가기에 알맞은 거리였다. 

 

2. 그곳에는 누구누구가 모여 있었는가?

  그렇다면 그날 마가의 다락방에는 누구누구가 모였는가? 그들은 '열한 사도들'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나다나엘),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다대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3-14)" 

  그렇다. 이때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의 사람들이었다(행1:11). 그중의 핵심은 열 한 사도들이다. 그런데 이 사도들의 이름들 가운데 베드로의 이름이 첫번째로 기록된 것은 당시 베드로가 사도들의 대표자였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눅8:3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부터 예수님을 도운 여인들이 나온다. 그러므로 일곱 귀신 들려 나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수사의 아내였던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베대의 아내였던 살로메(요한과 야고보의 모친)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막15:40).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름은 분명하게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들도 있었다고 했다.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동생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시몬, 유다 등이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는 여동생들도 있었으므로, 아무도 여자들 중에 예수님의 여동생들도 들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마13:55). 누가는 그때 모인 무리들의 숫자를 기록해 놓았으니, 그들은 약 120명 정도되었다고 했다(행1:15).
 

3. 이들이 모여서 성령받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던 120명의 성도들이 과연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성령받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합심기도였고 그들은 그것에 몰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행1;14). 왜냐하면 성경에 보니, "마음을 같이 하여(한 마음으로, 일심으로)" 그리고 "기도에 오로지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행1:14).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니, 그때 상황이 보다 더 정확히 나온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이들 모두는... 마음을 같이하여(한 마음으로) 기도에 물두하고 있으면서 있어 왔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있어왔다"는 말은 직설법 미완료구문으로서 그들이 모여서 10일 동안 계속해서 기도해왔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특히 '오로지 힘썼다'라고 번역되고 있는 동사는 '프로스카테레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어떠한 상태로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 굳게 충성하다. 끈질기게 성실하게 임하다. 몰두하다. 전념하다.'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120명의 성도들이, 그때에 오직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합심하여 집중적으로 기도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도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기도에 몰두하여 성령을 간구하면 모두다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4. 사도행전에는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보도하고 있는가?

  사도행전에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건이 총 다섯 번에 걸쳐 나온다. 네 번은 단체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요, 한 번은 개인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다. 그것도 한 번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고넬료가정에서, 마지막으로 에베소에서 일어났다. 이것들 중에서 단체적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으로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부어진 것으로 시작된다. 120명의 성도들이 에루살렘의 마가다락방에서 모여 한 마음으로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에 성령이 부어졌다(행2:1~4). 이것이 예루살렘 성령세례 사건이다. 그리고 사마리아에서는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에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안수함으로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부어졌다고 언급되어 있다(행8:14~17). 그리고 고넬료 가정은 개종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와 그 가정에 베드로가 가서 직접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부어진 사건이었다(행10:44~46). 그리고 마지막은 에베소 성령강림 사건인데, 이때는 사도 바울이 내려가서 안수할 때에 일어난 것이다(행19:1~6). 그런데 여기까지는 다 단체적으로 성령이 부어진 사건들이다. 이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성령이 부어진 사건도 나오는데, 이는 다메섹에서 금식하고 있던 사울(나중에 바울)에게 아나니아가 안수함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이다(행9:17~19).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 사건은 총 다섯 번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자의 사건마다 성령세례를 받았던 조건은 동일했을까? 아니다. 성령세례가 임한 조건이 다 똑같지는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가 다 예수님께서 누군지를 알고 믿었던 자들에게 부어졌다는 것이며, 성령세례가 부어지게 되면 밖으로 나타난 성령의 선물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섯 번의 경우는 대체 성령세례의 조건이 어떠했던 것일까?

  첫째는 예루살렘 성령강림사건처럼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에 일어났다(행1:14). 둘째는 사도들이 안수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사마리아의 경우가 있고(행8:14~17) 에베소의 경우가 있다(행19:1~6). 그리고 사울에게는 다메섹의 경건한 기독교 자도자로 추정되는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할 때 일어났다(행9:17~19). 그리고 셋째로, 고넬료 가정의 경우는 베드로가 가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에 성령세례가 부어진 경우이다(행10:44~46). 고로 종합해보면, 성령강림이나 성령세례 사건들은 성도들이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에,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권위있는 사도들이 가서 안수할 때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무리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표현에는 무슨 뜻이 들어있는가?

  오늘 우리는 성령세례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으로서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모인 무리 120명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이때 성령세례는 오로지 모인 무리가 예외없이 성령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도에 전념할 때에 일어났다. 그럼, 우리도 성령을 달라고 기도에 전념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물론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정확히 이 사건을 살펴보면, 성령세례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기도', 특히 '합심기도'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겠다. 그것은 오로지 성령받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에 성령세례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세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열심히 기도만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를 정확히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와 우상숭배에 찌들어 살아온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토박이 유대인들이 받는 성령세례와 오늘날 대학민국 사람같은 이방인들이 받는 성령세례는 그 상황과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편일률적으로 기도만 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잠시 내려놓고 그때 당시로 돌아가봐야 한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기록을 통해 사람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회개"라는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눅24:47~49, 행2:38, 8:17~24). 이 부분을 간과하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악한 영들에게 속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관계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6월 10일(금)

정병진목사

  • ?
    동탄명성교회 2022.06.11 09:26

    1. A.D.30년 5월 18일경 120명의 성도들은 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는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약 40일이 되던 날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리고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로 알려진 다락방으로 모였다. 그럼, 그들은 왜 모였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을 받기 위해 모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너희가 들었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왜냐하면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행1:4~5)"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제 성령받기 위해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곳은 감람산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곳으로서 안식일에 걸어가기에 알맞은 거리였다. 

     

    2. 그곳에는 누구누구가 모여 있었는가?

      그렇다면 그날 마가의 다락방에는 누구누구가 모였는가? 그들은 '열한 사도들'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나다나엘),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다대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3~14)" 

      그렇다. 이때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의 사람들이었다(행1:11). 그중의 핵심은 열한 사도들이다. 그런데 이 사도들의 이름들 가운데 베드로의 이름이 첫 번째로 기록된 것은 당시 베드로가 사도들의 대표자였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눅8:3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부터 예수님을 도운 여인들이 나온다. 그러므로 일곱 귀신 들려 나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수사의 아내였던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베대의 아내였던 살로메(요한과 야고보의 모친)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막15:40).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이름은 분명하게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들도 있었다고 했다.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동생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시몬, 유다 등이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는 여동생들도 있었으므로, 아무도 여자들 중에 예수님의 여동생들도 들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마13:55). 누가는 그때 모인 무리들의 숫자를 기록해 놓았으니, 그들은 약 120명 정도 되었다고 했다(행1:15).
     

    3. 이들이 모여서 성령받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던 120명의 성도들이 과연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성령받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합심 기도였고 그들은 그것에 몰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행1:14). 왜냐하면 성경에 보니, "마음을 같이 하여(한 마음으로, 일심으로)" 그리고 "기도에 오로지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행1:14).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니, 그때 상황이 보다 더 정확히 나온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이들 모두는... 마음을 같이하여(한 마음으로) 기도에 물두하고 있으면서 있어 왔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있어 왔다'는 말은 직설법 미완료 구문으로서 그들이 모여서 10일 동안 계속해서 기도해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특히 '오로지 힘썼다'라고 번역되고 있는 동사는 '프로스카테레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어떠한 상태로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 굳게 충성하다. 끈질기게 성실하게 임하다. 몰두하다. 전념하다.'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120명의 성도들이, 그때에 오직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합심하여 집중적으로 기도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도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기도에 몰두하여 성령을 간구하면 모두 다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4. 사도행전에는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보도하고 있는가?

      사도행전에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건이 총 다섯 번에 걸쳐 나온다. 네 번은 단체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요, 한 번은 개인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다. 그것도 한 번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고넬료 가정에서, 마지막으로 에베소에서 일어났다. 이것들 중에서 단체적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으로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부어진 것으로 시작된다. 120명의 성도들이 에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모여 한 마음으로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에 성령이 부어졌다(행2:1~4). 이것이 예루살렘 성령세례 사건이다. 그리고 사마리아에서는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에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안수함으로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부어졌다고 언급되어 있다(행8:14~17). 그리고 고넬료 가정은 개종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가 가서 직접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부어진 사건이었다(행10:44~46). 그리고 마지막은 에베소 성령강림 사건인데, 이때는 사도 바울이 내려가서 안수할 때에 일어난 것이다(행19:1~6). 그런데 여기까지는 다 단체적으로 성령이 부어진 사건들이다. 이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성령이 부어진 사건도 나오는데, 이는 다메섹에서 금식하고 있던 사울(나중에 바울)에게 아나니아가 안수함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이다(행9:17~19).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 사건은 총 다섯 번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자의 사건마다 성령세례를 받았던 조건은 동일했을까? 아니다. 성령세례가 임한 조건이 다 똑같지는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가 다 예수님께서 누군지를 알고 믿었던 자들에게 부어졌다는 것이며, 성령세례가 부어지게 되면 밖으로 나타난 성령의 선물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섯 번의 경우는 대체 성령세례의 조건이 어떠했던 것일까?

      첫째는 예루살렘 성령강림 사건처럼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에 일어났다(행1:14). 둘째는 사도들이 안수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사마리아의 경우가 있고(행8:14~17) 에베소의 경우가 있다(행19:1~6). 그리고 사울에게는 다메섹의 경건한 기독교 자도자로 추정되는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할 때 일어났다(행9:17~19). 그리고 셋째로, 고넬료 가정의 경우는 베드로가 가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에 성령세례가 부어진 경우이다(행10:44~46). 고로 종합해 보면, 성령강림이나 성령세례 사건들은 성도들이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에,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권위 있는 사도들이 가서 안수할 때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무리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표현에는 무슨 뜻이 들어 있는가?

      오늘 우리는 성령세례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으로서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모인 무리 120명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이때 성령세례는 오로지 모인 무리가 예외없이 성령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도에 전념할 때에 일어났다. 그럼, 우리도 성령을 달라고 기도에 전념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물론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정확히 이 사건을 살펴보면, 성령세례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기도', 특히 '합심 기도'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겠다. 그것은 오로지 성령받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성령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에 성령세례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세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열심히 기도만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를 정확히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와 우상숭배에 찌들어 살아온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토박이 유대인들이 받는 성령세례와 오늘날 대민국 사람 같은 이방인들이 받는 성령세례는 그 상황과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편일률적으로 기도만 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잠시 내려놓고 그때 당시로 돌아가 봐야 한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기록을 통해 사람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회개"라는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눅24:47~49, 행2:38, 8:17~24). 이 부분을 간과하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악한 영들에게 속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 관계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6월 1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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