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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ZokUXqk5-H0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23) 복음전파의 권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행5:40~42)_2022-06-30(목)

https://youtu.be/ZokUXqk5-H0  [혹은 https://tv.naver.com/v/28024124 ]

 

1. 공회에 불려갔던 사도들이 석방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산헤드린 공회에 불려간 후 사도들은 취조와 심문을 받았지만 그들에게서 큰 죄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던 선고(행5:28)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채찍질을 받고 풀려나게 된다. 만약 사도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거나, 성전이 필요없다고 했으면 아마도 그들은 신성 모독죄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들은 안식일을 잘 지켰고(행1:12), 성전에 나가서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행3:1). 그들에게서 죄를 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빼놓지 않고 전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상의 일들을 통해 사도 베드로에게는 3번에 걸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때는 왜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나타났는지를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하였고, 그들이 못 박아 죽인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인데,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시편16편의 예언을 따라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거하였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주어질 것이라고 설교했다(행2:38). 둘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의 미문에 있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고친 이후, 솔로몬 행각에 몰려온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께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성하게 고쳐 주셨다고 하면서 회개하고 돌이켜 죄사함을 받으라고 설교하였다(행3:19). 그리고 세 번째는 사도들 전체가 공회에 붙들려 갔을 때, 그는 공회석상에서 설교하였다.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자기들의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오른손으로 높여 왕과 구주가 되게 하셨다고 했고, 자기들이 증인들이며,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도 마찬가지라고 말이다(행5:32~32). 그렇다.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에 반드시 빼놓지 않고 증거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회개였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부른다. 고로 사도 베드로는 '복음'과 그리고 '회개'를 외친 것이다. 

막1:15 이르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3. 복음 전파의 권리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4가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할 권한을 어떻게 획득했던 것일까? 처음 오순절 사건 때에는 복음을 전파한 장소가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그곳은 성전 경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제지할 뾰족한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건은 성전 경내에서 일어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성전 경비대가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들이 관리 감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두개인들의 일이었다. 그런데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성전 경내에서 전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성이 난 것이다. 그리하자 그들은 허락도 없이 성전 경내에서 복음을 전한다면서, 사도들을 잡아 가두기 시작했으니 먼저는 베드로와 요한부터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도들 전체를 가두었다. 왜냐하면 두 번 다 솔모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사도들은 어떻게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파할 권리를 얻게 되었는가? 그것은 총 4가지였다. 첫째, 기도의 댓가였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밤낮으로 기도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한다는 놀라운 표적을 얻었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역사인 따르는 표적으로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온 백성들의 지지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루살렘 백성들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조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베드로의 두 번의 설교를 통해 첫 번째는 3천 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고, 두 번째는 5천 명이 돌아왔다. 그리고 더 많은 남여의 무리가 주께로 돌아왔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도들의 복음 전파로 인하여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가 10만 명이었는데,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약 2만 명 이상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대세가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들이 사도들을 잘못 건드린다면 돌로 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행5:26). 이러한 백성들의 지지가 사도들로 하여금 힘을 더 내게 하였던 것이다. 넷째, 고난에 직면하여 지레 겁먹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댓가다. 붙잡아서 위협하면서 감옥에 가두고 엄포를 놓았으면 보통 사람들은 그만 둘 것이다. 하지만 사도들은 달랐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더 마땅하다고 그들은 믿고 행동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해야 했다. 우리말 성경에는 '채찍질을 당했다'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가죽을 벗겼다"는 원뜻을 가진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때 매를 상당히 많이 맞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지 않았나 싶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매질을 당했는데도 그들은 또다시 성전에서든지 집에서든지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이신 것을 증언하였고 그러한 사실을 가르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행5:42). 그러나 그때 이후로는 아무도 사도들을 잡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4.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기도다. 둘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다. 셋째는 백성들의 지지요, 넷째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음이다. 그렇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천국복음을 전파하려는 자들은 더욱 그렇다. 복음을 전하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회개를 전한다는 것도 더더욱 그렇다.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를 받았는데, 무슨 회개를 또 해야 하느냐면서, 회개하라는 말을 이상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일서 1:9의 말씀을 보라. 회개는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은 현재 가정법 문장이다. 우리는 지은 죄를 계속해서 자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은 죄는 자백함으로서 용서를 받고 깨끗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세족식 때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한 번 목욕한 자는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13:10). 예수님을 믿어 사탄의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온 자라도, 지은 죄들은 계속해서 씻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천국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되 특히 회개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 복음 전파자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천국복음'이라고 할지라도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항상 2가지 방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이 땅에서 천국가는 자녀가 탄생하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가만 놔두지 않으려는 악한 영들의 방해 공작이다. 그런데 이들 세력은 인간보다 힘이 더 세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개에 힘써야 한다. 죄가 있는 곳에서는 악한 영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안에 아직 덜 회개된 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안이 깨끗해야 영적인 전쟁의 기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권세를 얻기를 바란다면 먼저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에서 자기들이 누리는 혜택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순수한 복음 전파자의 활동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기득권 세력이 그들이다. 이들은 순수한 천국복음과 회개를 전파하는 자들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더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주님 앞에서 더 경건하게 살기를 바라는 자들은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핍박에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곳에 언제나 '가말리엘'과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고 계시기 때문이다(행5:34). 또한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마10:19~20).

마10:17~20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022년 06월 30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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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2.07.02 08:43

    1. 공회에 불려갔던 사도들이 석방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산헤드린 공회에 불려간 후 사도들은 취조와 심문을 받았지만 그들에게서 큰 죄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던 선고(행5:28)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채찍질을 받고 풀려나게 된다. 만약 사도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거나, 성전이 필요없다고 했으면 아마도 그들은 신성 모독죄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들은 안식일을 잘 지켰고(행1:12), 성전에 나가서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행3:1). 그들에게서 죄를 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빼놓지 않고 전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상의 일들을 통해 사도 베드로에게는 3번에 걸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때는 왜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나타났는지를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하였고, 그들이 못 박아 죽인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인데,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시편16편의 예언을 따라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거하였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주어질 것이라고 설교했다(행2:38). 둘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의 미문에 있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고친 이후, 솔로몬 행각에 몰려온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께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성하게 고쳐 주셨다고 하면서 회개하고 돌이켜 죄사함을 받으라고 설교하였다(행3:19). 그리고 세 번째는 사도들 전체가 공회에 붙들려 갔을 때, 그는 공회석상에서 설교하였다.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자기들의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오른손으로 높여 왕과 구주가 되게 하셨다고 했고, 자기들이 증인들이며,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도 마찬가지라고 말이다(행5:32~32). 그렇다.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에 반드시 빼놓지 않고 증거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회개였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부른다. 고로 사도 베드로는 '복음'과 그리고 '회개'를 외친 것이다. 

    막1:15 이르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3. 복음 전파의 권리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4가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할 권한을 어떻게 획득했던 것일까? 처음 오순절 사건 때에는 복음을 전파한 장소가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그곳은 성전 경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제지할 뾰족한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건은 성전 경내에서 일어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성전 경비대가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들이 관리 감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두개인들의 일이었다. 그런데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성전 경내에서 전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성이 난 것이다. 그리하자 그들은 허락도 없이 성전 경내에서 복음을 전한다면서, 사도들을 잡아 가두기 시작했으니 먼저는 베드로와 요한부터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도들 전체를 가두었다. 왜냐하면 두 번 다 솔모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사도들은 어떻게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파할 권리를 얻게 되었는가? 그것은 총 4가지였다. 첫째, 기도의 댓가였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밤낮으로 기도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한다는 놀라운 표적을 얻었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역사인 따르는 표적으로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 증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온 백성들의 지지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루살렘 백성들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조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베드로의 두 번의 설교를 통해 첫 번째는 3천 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고, 두 번째는 5천 명이 돌아왔다. 그리고 더 많은 남여의 무리가 주께로 돌아왔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도들의 복음 전파로 인하여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가 10만 명이었는데, 여자와 아이들 포함하여 약 2만 명 이상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대세가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들이 사도들을 잘못 건드린다면 돌로 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행5:26). 이러한 백성들의 지지가 사도들로 하여금 힘을 더 내게 하였던 것이다. 넷째, 고난에 직면하여 레 겁먹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댓가다. 붙잡아서 위협하면서 감옥에 가두고 엄포를 놓았으면 보통 사람들은 그만 둘 것이다. 하지만 사도들은 달랐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더 마땅하다고 그들은 믿고 행동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해야 했다. 우리말 성경에는 '채찍질을 당했다'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가죽을 벗겼다"는 원뜻을 가진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때 매를 상당히 많이 맞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지 않았나 싶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매질을 당했는데도 그들은 또다시 성전에서든지 집에서든지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이신 것을 증언하였고 그러한 사실을 가르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행5:42). 그러나 그때 이후로는 아무도 사도들을 잡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4.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기도다. 둘째는 하나님 함께 하시는 역사다. 셋째는 백성들의 지지요, 넷째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음이다. 그렇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천국복음을 전파하려는 자들은 더욱 그렇다. 복음을 전하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회개를 전한다는 것도 더더욱 그렇다.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를 받았는데, 무슨 회개를 또 해야 하느냐면서, 회개하라는 말을 이상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일서 1:9의 말씀을 보라. 회개는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은 현재 가정법 문장이다. 우리는 지은 죄를 계속해서 자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은 죄는 자백함으로서 용서를 받고 깨끗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세족식 때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한 번 목욕한 자는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13:10). 예수님을 믿어 사탄의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온 자라도, 지은 죄들은 계속해서 씻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천국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되 특히 회개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 복음 전파자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천국복음'이라고 할지라도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항상 2가지 방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이 땅에서 천국가는 자녀가 탄생하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가만 놔두지 않으려는 악한 영들의 방해 공이다. 그런데 이들 세력은 인간보다 힘이 더 세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개에 힘써야 한다. 죄가 있는 곳에서는 악한 영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안에 아직 덜 회개된 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안이 깨끗해야 영적인 전쟁의 기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권세를 얻기를 바란다면 먼저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에서 자기들이 누리 혜택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순수한 복음 전파자의 활동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기득권 세력이 그들이다. 이들은 순수한 천국복음과 회개를 전파하는 자들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더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주님 앞에서 더 경건하게 살기를 바라는 자들은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핍박에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곳에 언제나 '가말리엘'과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고 계시기 때문이다(행5:34). 또한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마10:19~20).

    마10:17~20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022년 06월 30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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