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단계 행복한 삶
제2과 하나님을 만나는 길
[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 히브리서 10:11~14
“제사장(祭司長)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祭祀)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罪)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사람은 모든 다른 생명체(生命體)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본 따서 지으신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만을 소유하고 있는 동물과는 달리 육체(肉體)와 영혼(靈魂)을 동시에 갖고 있는 아주 독특하고도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로도 반응할 수 있고, 영(靈)으로도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만이 사후세계와 영혼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뭔가 일이 막히거나 꼬이게 되면 영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는,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거나 점쟁이를 통해 그리고 종교생활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증거들 중의 한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리 육체적인 것으로 채워진다 해도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직장이나 넉넉한 재산(財産)을 소유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영혼에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는 항상 외로움을 느끼며 허무함과 우울함 속에서 고독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복하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에 하나님을 채워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 사람의 영혼에 들어올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어서 지상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서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1. 죄(罪)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창3:16-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커다란 징계(懲戒)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최초의 계명을 어기고 뱀 곧 사탄의 말에 순종함으로 죄를 짓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여자인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하는 고통이 크게 더해지는 벌을 받게 되었고, 그 후로는 항상 남편의 다스림 밑에 있으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인 아담은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땀을 흘려야만이 땅의 소산(所産)을 먹을 수 있는 노동의 수고를 얻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범죄로 인해 땅도 저주를 받아 예전처럼 풍성한 소산물(所産物)을 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암담한 것은 영생하도록 지어진 인간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창2:17, 3:19).
인간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이러한 형벌(刑罰) 가운데 처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함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범죄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함으로 하나님의 임재(臨齋)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영원한 보호자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 땀흘려야 하는 수고로움이 더해졌으며,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한 마디로 행복이 사라진 것입니다.
2. 에덴동산을 떠나게 된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창4:1-4a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난 것과 같고, 꽃이 아름다워도 가지가 꺾어진 꽃과 같아서, 만일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인간은 틀림없이 저주(詛呪) 가운데 죽음을 맞이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죽기 전에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품으로 되돌아가야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며, 하나님 품 안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우선 여기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 곁에서부터 추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기로 작정(作定)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에덴동산 밖에서라도 우리 인간을 만나주시려고 결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을 떠나게 된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죄지은 우리 인간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만나주시려고 하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꼬옥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의 죽음과 더불어 영원한 죽음으로 빠져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제사(祭祀)란 무엇이며,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레4:27-31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28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예물로 삼아 29 그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요 30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고 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 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제사(祭祀) 정확히 표현하자면 희생제사(犧牲祭祀)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제사는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로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아주 특별한 제도입니다. 제사는 에덴동산 밖에서도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아주 특별한 방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사란 사람이 하나님을 붙들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장치(裝置)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는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우리가 제사를 드리는 데에는 3가지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죄인(罪人)임을 시인하는 죄인(罪人)과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祭司長) 그리고 그 죄지은 사람을 대신하여 죽어 줄 흠없는 속죄제물(贖罪祭物)로서 소나 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B.C.1500년 제사제도가 인간에게 명확하게 정립되기 전까지, 제사는 가장(家長) 내지는 각 가정의 맏아들이 맡아 집례를 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집안의 가장이나 맏아들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죄를 지은 사람은 흠없는 속제제물(贖罪祭物)을 끌고 와서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按手)하여 자신의 죄를 넘깁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잡아서 피는 제단(祭壇) 밑에 쏟고 고기는 제단 위에 올려놓아 불사름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용서를 위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 대신 피흘려 죽은 속죄제물(贖罪祭物)을 보고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 사람이 다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신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인간은 제사를 통해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다시 하나님 품 안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祭 |
옆의 한자를 보십시오. 이 글자는 “제사지내다. 사람과 신(神)이 서로 사귀다. 혹은 접촉하다”라는 뜻을 지닌 제사지낼 ‘제(祭)’자입니다. 그런데 이 글자의 고대 그림 글자를 보면, 두 사람이 손으로 하나님(示)을 받드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자신의 손에다가 제물(祭物)을 들고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흠없는(의로운) 제물(祭物)은 어떤 것이 사용되었을까요? 그것은 살아있는 소(牛)나 양(羊)이었습니다. “흠없는, 의로운”이란 단어는 옳을 ‘의(義)’자를 사용하는데, 이 글자를 보면,
義 |
사람이 양(羊)을 칼(戈)을 가지고 손(手)으로 잡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희생제물(犧牲祭物)’이란 글자를 보면, 제사에 희생된 제물은 살아있는 소(牛)와 양(羊)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犧 |
祭 |
옆의 한자를 보십시오. 이 글자는 “제사지내다. 사람과 신(神)이 서로 사귀다. 혹은 접촉하다”라는 뜻을 지닌 제사지낼 ‘제(祭)’자입니다. 그런데 이 글자의 고대 그림 글자를 보면, 두 사람이 손으로 하나님(示)을 받드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자신의 손에다가 제물(祭物)을 들고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흠없는(의로운) 제물(祭物)은 어떤 것이 사용되었을까요? 그것은 살아있는 소(牛)나 양(羊)이었습니다. “흠없는, 의로운”이란 단어는 옳을 ‘의(義)’자를 사용하는데, 이 글자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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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양(羊)을 칼(戈)을 가지고 손(手)으로 잡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희생제물(犧牲祭物)’이란 글자를 보면, 제사에 희생된 제물은 살아있는 소(牛)와 양(羊)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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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 |
옆의 한자를 보십시오. 이 글자는 “제사지내다. 사람과 신(神)이 서로 사귀다. 혹은 접촉하다”라는 뜻을 지닌 제사지낼 ‘제(祭)’자입니다. 그런데 이 글자의 고대 그림 글자를 보면, 두 사람이 손으로 하나님(示)을 받드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자신의 손에다가 제물(祭物)을 들고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흠없는(의로운) 제물(祭物)은 어떤 것이 사용되었을까요? 그것은 살아있는 소(牛)나 양(羊)이었습니다. “흠없는, 의로운”이란 단어는 옳을 ‘의(義)’자를 사용하는데, 이 글자를 보면,
義 |
사람이 양(羊)을 칼(戈)을 가지고 손(手)으로 잡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희생제물(犧牲祭物)’이란 글자를 보면, 제사에 희생된 제물은 살아있는 소(牛)와 양(羊)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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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은 왜 제사(祭祀)를 드리지 않고 예배(禮拜)를 드리는 것일까요?
히9: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帳幕)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聖所)에 들어가셨느니라
히10:1,4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10:11-12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罪)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르쳐주신 제사제도는 한시적인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흠없는 동물이 우리 인간의 죄를 영원히 대속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창9:5~6). 제사는 우리가 영원한 속죄(贖罪)를 받을 것이라는 영원한 속죄의 예표였습니다. 진짜 속죄제물(贖罪祭物)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허락하신 죄용서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4천년이 지난 어느날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속죄제물(贖罪祭物)로 보내셨습니다. 다시 말해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동물의 희생제사(犧牲祭祀)를 끝내시고, 흠없는 사람이자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속제제물(贖罪祭物)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죄제물로서 오셨고, 흠없는 분이셨지만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대신 흘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인류의 마지막 희생제물이 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시어 영원한 속죄제사(贖罪祭祀)를 드리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 번에 영원히 드린 예수님의 속죄제사 이후 사람은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에 감사하며 그분이 하신 일을 드높여 찬양드리는 예배(禮拜)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의)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정리하겠습니다.
인간의 범죄이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사제도(祭祀制度)를 통해서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제사를 통해 자신의 지은 죄를 용서받고 일시적이지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용서를 바라는 인간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꼭 동물의 희생제물(犧牲祭物)을 중간(中間)에 두고 하나님을 만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 희생제물의 피를 보고 우리의 죄를 간과(看過)(그냥 지나침)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희생제사(犧牲祭祀)는 무려 4천년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동물의 반복적인 희생제사를 끝내시고 영원한 속죄(贖罪)를 이루시고자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으니, 예수님은 사람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영원한 속죄제물(贖罪祭物)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영원한 속제제물이신 예수님을 통한 길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한 주간 주님과 함께 보내기>
첫째, 성경을 읽으십시오. 요한일서 1~5장.
둘째, 성경을 암송해 오십시오. 읽은 성경구절 중에서 한 구절 이상.
셋째, 이 훈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매일 10분 이상씩.
넷째, 다음 과를 미리 읽어보시고 빈 칸에 답을 달아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