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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주소 https://youtu.be/lrd7ut9bNfI

혼자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과 어떤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거기에는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지키고 돌보아줄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1,000명이 넘는 부족의 족장이 되었지만 자기의 아내를 지키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쓰라린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때이후 아브라함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중과부적의 대적들마저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 그의 용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또 무엇으로부터나온 것일까?

 

1. 들어가며

  75세였던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들어왔을 때, 이내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잠시 기근을 피하리라 했던 아브라함의 계획은 빗나가고 말았으니, 자신의 아내를 바로(파라오)에게 빼앗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식솔들이 적어도 1,000여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아브라함은 당시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면서도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거의 최정예 부대의 최고 사령관처럼 보인다. 당시에 고대근동에서 최고의 전투수행능력을 갖추었던 4개국의 북방연합군을 단숨에 무찔렀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종들 318명을 데리고 가서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아브라함의 그러한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당시 전쟁에 데리고 간 318명은 대체 누구였는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브라함은 그 어마무시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과 모든 빼앗긴 물건까지 되찾아올 수 있었는가?

 

2. 4개국의 북방연합군은 왜 5개국의 남방연합군의 땅에 쳐들어왔으며, 그들의 전쟁수행능력은 어느 정도였는가?

  오늘 말씀의 배경은 B.C.2082년경에 일어난 두 연합군(동맹군)과의 전쟁이다. 당시에 오늘날의 사해바다 곧 싯딤골짜기에 거주하고 있던 5개국의 남방 왕들(소돔왕 베라, 고모라왕 비르사, 아드마왕 시납, 스보임왕 세메벨, 벨라 곧 소알왕)이 북방의 4왕들(시날왕 아므라벨, 엘라살왕 아리옥, 엘람왕 그돌라오멜, 고임왕 디달)을 섬기고 있었는데, 아마도 조공을 바치고 있었던 모양 같다. 하지만 13년이 되었을 때에 배반을 한다. 기근이 들었던지 하는 어떤 피치 못할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자 북방의 4왕들이 연합하여 쳐들어 오게 된다. 내려오면서 유브라데 강에서 사해 바다까지의 오른편에 위치한 나라의 왕들도 단숨에 해치우며 내려온다. 그런데 그때 해치우고 내려왔던 르바족속과 주스족속과 엠족속은 사실 기골이 장대했던 아낙자손의 후손들이었다(신3:11, 2:20, 10). 그리고 세일산 근처에 살고 있는 호리족속과 가데스에 이르어 아말렉족속과 요단강동편에 위치한 아모리 족속까지 해치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남방의 5개 왕들은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그러자 남방의 5개 왕들은 서로 연합하여 싯딤골짜기에 진을 치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많은 역청 구덩이가 있어서 지형지물을 이용하면 전쟁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가 불리해지자 남방의 왕들이 오히려 역청구덩이에 빠지게 되고 혼비백산 도망을 치고만다. 북방의 5개 연합국의 전쟁수행능력이야말로 당시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전쟁에서 이긴 북방의 4개국의 왕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서 모든 재물과 식량을 약탈하고, 특히 소돔 성에 거주하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까지도 빼앗아서 북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 겁장이였던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용감한 전재지휘관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런데 소돔성에 거주하다가 포로로 붙들려갔던지 아니면 전쟁하다가 포로로 잡혀갔던지 하는 어떤 사람이 그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아브라함에게 온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되어진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아뿔사! 포로의 무리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들어있었던 것이다.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갔다가, 힘이 없어서 자신의 아내마저 빼앗겨야 했던 비참한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던 아브라함은 더이상 비굴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애굽에서 가나안땅으로 올라오면서 와신상담 준비한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일어날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식솔들과 무리들을 지켜낼 사람들을 훈련시켜 두었기 때문이다. 일명 "아브라함과 그의 318 용사들"이 그들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집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던 종들 가운데 318명의 남자들에게 고도의 훈련을 시켰었다. 사실 야살의 책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니므롯의 군대장관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브라함도 무예가 상당한 수준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손자 에서에서도 무예능력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이스마엘과 에서는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서 광야의 사냥꾼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말(혹은 낙타)을 타고가면서 활을 쏘아 적을 쓰러뜨리는 자가 싸움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자신의 318명의 종들을 고도의 훈련된 전쟁용사로 훈련시켜 놓았던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은 당시 자신이 거주하던 땅의 아모리 족속의 세 형제와도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그들을 전쟁에 부지휘관들로서 참여시킨다. 그들은 바로 "마므레와 에스골과 아넬"이다(창14:13, 24). 

  그러나 이 전쟁은 중과부적이었을 것이다. 야살의 책에 의하면 북방 4개의 연합군의 숫자가 무려 80만명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정도는 아니었을지라도 남방 5개 왕들을 응징하기 위해 온 자들이니 겁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 숫자는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니 3명의 부지휘관과 318명의 정예요원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다고 할지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순간에 흔들리지 않았다. 자기의 안일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에 쓰라린 아픔도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속한 사람은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전투를 시작하게 되는데, 낮시간에는 숫자에 불리하니 야간을 틈타 그들을 처치하게 되는데, 그것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아마도 적들이 긴장이 풀린 틈을 타서 야간기습공격을 감행한 것 같다. 그러자 적들은 도망가기에 바빴으며 아브라함의 용사들은 다메섹의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백성까지 찾아오게 된다. 생각하기에 아마도 이 전쟁에 플러스 알파의 은혜가 있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318명에다가  4사람이 더해진 322명의 사람이, 80만 대군을 무찌를 수는 있었겠는가?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그동안 318명의 사람들에게 고도의 훈련을 시켜왔다는 데에 있다. 쌈 싸울 일을 미리 대비해두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수모와 수치를 잊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개선행군을 보라. 그 길에 소돔왕이 마중나와 있었고, 살렘왕도 마중 나와 음식(떡과 포도주)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용사를 대접하여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아브라함은 남방의 아모리인들과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한 남방 5개국의 사람들로부터 크게 명성을 얻게 된다. 당신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고, 당신 때문에 우리 백성들의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게 되었다고 말이다. 

 

4. 아브라함과 북방연합군과의 싸움이 들려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이상의 아브라함과 북방연합군과의 싸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가 있다면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라도 자신에게 불어닥칠 수 있는 영적 전쟁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탄마귀와 귀신들은 오늘도 성도들을 노략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틈이 나면 쳐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돌아온 후부터 계속해서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둘째,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할 때에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도움만 요청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적들을 이길 수 있는 훈련도 같이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도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당장 일확천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은 결코 도깨미 방망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그룹이나 민족과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 될 때에는 거기에 합당한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을지라도 대적들은 우리의 신앙을 보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형편만을 보고 덤벼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영성을 갖출 것이 아니라, 적들을 이길 수 있는 실제적인 무기와 방법들까지 갖추어야 한다. 

  셋째, 어떤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의 지도자들이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한 번 붙여준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서 안 되며, 저래서 도울 수 없다고,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내팽개치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런 자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다윗을 보라. 다윗은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만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쟁에도 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방 모든 민족을 평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솔로몬은 문에는 능했으나 무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정략결혼의 방법을 동원하여 주변민족과 평화를 얻으려 하다보니 이방민족이 섬기던 온갖 종류의 우상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결국 그의 아들의 때에는 나라가 두동강이나는 지경에 이르렀지 않았던가!

  넷째, 영적 전쟁에 승리하는 자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긍지와 희망을 안겨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나안 백성들은 그때부터 아브라함을 크게 보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그때부터 가나안에게서 크게 된 것이다. 

  다섯째, 물질에 마음을 두지 말고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어마어마한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것을 자기의 공덕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은 재물을 착복하지도 않았다. 자기를 축복하러 나온 샬렘왕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자기와 동맹하여 전쟁에 참여했던 자 마므레와 에스골과 아넬에게 돌아갈 분깃을 제외하고는, 모든 전리품을 고스란히 다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눈 앞에 보이는 재물에 연연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자신의 능력과 재물로 여겼던 것이다. 

 

5. 나오며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첫번째 실수와 수모는 그에게는 절말 뼈저린 공부였던 것임에 틀림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그 일을 계기로 한 족속의 지도자로서 자기에게 속한 것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를 또 다지고 또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자신의 중대한 결정에 따른 첫번째 시험대가 바로 북방 4개 연합군의 전투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 전쟁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위대한 전쟁이 아니었겠나 싶다. 어떻게 322명이 80만명의 정예군사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으며, 모든 빼앗겼던 것을 다시 되찾아오는 쾌거를 이룰 수가 있었단 말인가? 거기에는 분명 아브라함을 손대는 자들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플러스 알파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전쟁은 정말 대단한 전쟁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일로 인해 그가 애굽 땅에서 겪었던 수치와 수모를 다 잊을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 주민에게서도 장차 그가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아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숫자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신앙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에서도 작전능력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의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귀신들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가 되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2021년 04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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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1.10.11 19:17

    혼자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과 어떤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거기에는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지키고 돌보아 줄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1,000명이 넘는 부족의 족장이 되었지만 자기의 아내를 지키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쓰라린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후 아브라함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중과부적의 대적들 마저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 그의 용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또 무엇으로부터 나온 것일까?

     

    1. 들어가며

      75세였던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을 때, 이내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잠시 기근을 피하리라 했던 아브라함의 계획은 빗나가고 말았으니, 자신의 아내를 바로(파라오)에게 빼앗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식솔들이 적어도 1,000여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아브라함은 당시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면서도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거의 최정예 부대의 최고 사령관처럼 보인다. 당시에 고대 근동에서 최고의 전투 수행 능력을 갖추었던 4개국의 북방 연합군을 단숨에 무찔렀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종들 318명을 데리고 가서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아브라함의 그러한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당시 전쟁에 데리고 간 318명은 대체 누구였는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브라함은 그 어마무시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과 모든 빼앗긴 물건까지 되찾아 올 수 있었는가?

     

    2. 4개국의 북방 연합군은 왜 5개국의 남방 연합군의 땅에 쳐들어왔으며, 그들의 전쟁 수행 능력은 어느 정도였는가?

      오늘 말씀의 배경은 B.C.2082년경에 일어난 두 연합군(동맹군)과의 전쟁이다. 당시에 오늘날의 사해 바다 곧 싯딤 골짜기에 거주하고 있던 5개국의 남방 왕들(소돔 왕 베라, 고모라 왕 비르사, 아드마 왕 시납, 스보임 왕 세메벨, 벨라 곧 소알 왕)이 북방의 4왕들(시날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리옥,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 왕 디달)을 섬기고 있었는데, 아마도 조공을 바치고 있었던 모양 같다. 하지만 13년이 되었을 때에 배반을 한다. 기근이 들었던지 하는 어떤 피치 못할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자 북방의 4왕들이 연합하여 쳐들어오게 된다. 내려오면서 유브라데 강에서 사해 바다까지의 오른편에 위치한 나라의 왕들도 단숨에 해치우며 내려온다. 그런데 그때 해치우고 내려왔던 르바 족속과 주스 족속과 엠 족속은 사실 기골이 장대했던 아낙 자손의 후손들이었다(신3:11, 2:20, 10). 그리고 세일산 근처에 살고 있는 호리 족속과 가데스에 이르어 아말렉 족속과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아모리 족속까지 해치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남방의 5개 왕들은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그러자 남방의 5개 왕들은 서로 연합하여 싯딤 골짜기에 진을 치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많은 역청 구덩이가 있어서 지형지물을 이용하면 전쟁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가 불리해지자 남방의 왕들이 오히려 역청 구덩이에 빠지게 되고 혼비백산 도망을 치고 만다. 북방의 5개 연합국의 전쟁 수행 능력이야말로 당시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전쟁에서 이긴 북방의 4개국의 왕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서 모든 재물과 식량을 약탈하고, 특히 소돔 성에 거주하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까지도 빼앗아서 북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 겁장이였던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용감한 전쟁 지휘관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런데 소돔 성에 거주하다가 포로로 붙들려 갔던지 아니면 전쟁하다가 포로로 잡혀갔던지 하는 어떤 사람이 그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아브라함에게 온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되어진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아뿔사! 포로의 무리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갔다가, 힘이 없어서 자신의 아내마저 빼앗겨야 했던 비참한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던 아브라함은 더이상 비굴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오면서 와신상담 준비한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일어날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식솔들과 무리들을 지켜낼 사람들을 훈련시켜 두었기 때문이다. 일명 '아브라함과 그의 318 용사들'이 그들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집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던 종들 가운데 318명의 남자들에게 고도의 훈련을 시켰었다. 사실 야살의 책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니므롯의 군대 장관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브라함도 무예가 상당한 수준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손자 에서도예 능력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이스마엘과 에서는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서 광야의 사냥꾼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말(혹은 낙타)을 타고 가면서 활을 쏘아 적을 쓰러 뜨리는 자가 싸움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자신의 318명의 종들을 고도의 훈련된 전쟁용사로 훈련시켜 놓았던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은 당시 자신이 거주하던 땅의 아모리 족속의 세 형제와도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그들을 전쟁에 부지휘관들로서 참여시킨다. 그들은 바로 '마므레와 에스골과 아넬'이다(창14:13, 24). 

      그러나 이 전쟁은 중과부적이었을 것이다. 야살의 책에 의하면 북방 4개의 연합군의 숫자가 무려 80만 명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정도는 아니었을지라도 남방 5개 왕들을 응징하기 위해 온 자들이니 겁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 숫자는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니 3명의 부지휘관과 318명의 정예요원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다고 할지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순간에 흔들리지 않았다. 자기의 안일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에 쓰라린 아픔도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속한 사람은 끝까지 지켜 주겠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전투를 시작하게 되는데, 낮시간에는 숫자에 불리하니 야간을 틈타 그들을 처치하게 되는데, 그것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아마도 적들이 긴장이 풀린 틈을 타서 야간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 같다. 그러자 적들은 도망가기에 바빴으며 아브라함의 용사들은 다메섹의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백성까지 찾아오게 된다. 생각하기에 아마도 이 전쟁에 플러스 알파의 은혜가 있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318명에다가 4사람이 더해진 322명의 사람이, 80만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겠는가?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그동안 318명의 사람들에게 고도의 훈련을 시켜왔다는 데에 있다. 싸울 일을 미리 대비해 두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수모와 수치를 잊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개선 행군을 보라. 그 길에 소돔 왕이 마중나와 있었고, 살렘 왕도 마중나와 음식(떡과 포도주)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용사를 대접하여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아브라함은 남방의 아모리인들과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한 남방 5개국의 사람들로부터 크게 명성을 얻게 된다. 당신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고, 당신 때문에 우리 백성들의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게 되었다고 말이다. 

     

    4. 아브라함과 북방 연합군과의 싸움이 들려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이상의 아브라함과 북방 연합군과의 싸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가 있다면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라도 자신에게 불어닥칠 수 있는 영적 전쟁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탄 마귀와 귀신들은 오늘도 성도들을 노략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틈이 나면 쳐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돌아온 후부터 계속해서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둘째,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할 때에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도움만 요청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적들을 이길 수 있는 훈련도 같이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기도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당장 일확천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은 결코 도깨 방망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그룹이나 민족과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 될 때에는 거기에 합당한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을지라도 대적들은 우리의 신앙을 보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형편만을 보고 덤벼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영성 갖출 것이 아니라, 적들을 이길 수 있는 실제적인 무기와 방법들까지 갖추어야 한다. 

      셋째, 어떤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의 지도자들이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한 번 붙여준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 내겠다는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서 안 되며, 저래서 도울 수 없다고,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내팽개치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런 자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다윗을 보라. 다윗은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만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쟁에도 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방 모든 민족을 평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솔로몬은 문에는 능했으나 무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정략결혼의 방법을 동원하여 주변 민족과 평화를 얻으려 하다 보니 이방 민족이 섬기던 온갖 종류의 우상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결국 그의 아들의 때에는 나라가 두 동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지 않았던가!

      넷째, 영적 전쟁에 승리하는 자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긍지와 희망을 안겨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나안 백성들은 그때부터 아브라함을 크게 보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그때부터 가나안에게서 크게 된 것이다. 

      다섯째, 물질에 마음을 두지 말고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어마어마한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것을 자기의 공덕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은 재물을 착복하지도 않았다. 자기를 축복하러 나온 살렘 왕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자기와 동맹하여 전쟁에 참여했던 자 마므레와 에스골과 아넬에게 돌아갈 분깃을 제외하고는, 모든 전리품을 고스란히 다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눈앞에 보이는 재물에 연연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자신의 능력과 재물로 여겼던 것이다. 

     

    5. 나오며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첫 번째 실수와 수모는 그에게는 말 뼈저린 공부였던 것임에 틀림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그 일을 계기로 한 족속의 지도자로서 자기에게 속한 것을 지켜 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자신의 중대한 결정에 따른 첫 번째 시험대가 바로 북방 4개 연합군의 전투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 전쟁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위대한 전쟁이 아니었겠나 싶다. 어떻게 322명이 80만 명의 정예 군사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으며, 모든 빼앗겼던 것을 다시 되찾아오는 쾌거를 이룰 수가 있었단 말인가? 거기에는 분명 아브라함을 손대는 자들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플러스 알파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전쟁은 정말 대단한 전쟁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일로 인해 그가 애굽 땅에서 겪었던 수치와 수모를 다 잊을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 주민에게서도 장차 그가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아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숫자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신앙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에서도 작전 능력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의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귀신들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가 되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2021년 04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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