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
이 설교는 시편 110편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자 제사장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 다윗의 영성을 탐구하며,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이기는 자의 자격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진정한 왕의 모델로 다윗을 제시하며, 왕직은 사탄의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권세로, 제사장직은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긍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특히 구원은 믿음으로 시작되나 그 결실은 행함과 열매를 통한 심판으로 완성됨을 강조하며, 성도들이 스스로를 깨끗하게 비워 주님의 쓰임에 합당한 하늘의 군대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이 시온산과 예루살렘을 사모했듯, 신자들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장차 다가올 영광의 나라에서 왕 노릇 하는 상속자가 될 것을 독려하는 목회적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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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 슬라이드 261. 들어가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질문은 기독론의 중심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신약성경만 읽어서는 충분히 다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미리 보여 주셨다. 아브라함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실 것을 보이셨고, 이삭을 통해서는 그 아들이 모리아산의 희생 제물처럼 죽으실 것을 보이셨으며, 야곱을 통해서는 이기는 자가 상속자가 되는 길을 보이셨다. 그리고 유다와 요셉,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왕직과 통치와 구원의 부분적인 그림자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구약에서 참된 왕의 예표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람은 다윗이다. 사울은 왕의 자리에 앉았지만 왕직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했고, 자기 왕권을 지키기 위해 권세를 남용했으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요구를 더 크게 여겼다. 반대로 다윗은 실수도 있었고 죄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책망 앞에서 무릎을 꿇을 줄 알았고,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을 배우며, 장차 오실 메시아의 왕직을 예언한 사람이었다.
다윗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셨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자신을 계시하셨다(계 22:16). 이는 다윗의 생애와 시편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임을 보여 준다.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그중에서도 시편 110편은 다윗이 본 하늘의 비밀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이다. 이 시편은 메시아를 두 가지 직분으로 계시한다. 첫째, 그는 원수들을 발등상 되게 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왕이시다(시 110:1). 둘째,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시 110:4). 왕은 원수를 다스리고, 제사장은 죄인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이 두 직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시편 110편을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고대 왕의 즉위시를 읽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경륜 가운데 아들로 오셔서 왕이자 제사장으로 사역하시는 비밀을 보아야 한다. 또한 그 예수님 안에서 성도들이 장차 왕 같은 제사장으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지도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시편 110편에 나타난 예수님의 왕직과 제사장직이 무엇이며, 성도는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다윗을 통해 참 왕을 배워야 하는가?
구약에는 많은 인물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며, 야곱은 이기는 자의 예표다. 요셉은 고난 후에 높임받은 통치자의 그림자이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지도자이며,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으로 백성을 인도한 장군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왕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왕”이라는 직분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통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신 인물은 다윗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첫 왕은 사울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왕직의 실패를 보여 준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는 겸손해 보였지만, 왕권을 붙들고 나서는 하나님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도 백성의 요구를 의식하여 좋은 양과 소를 남기고 아각을 살려 두었다(삼상 15:24). 이것은 왕이 누구 앞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잃어버린 모습이다.
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그때 이후 다윗은 사울을 보며 배웠다. 왕은 백성의 눈치를 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세우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자다. 왕은 사람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서는 안 된다. 사울은 사람 앞에서 왕의 체면을 지키려다가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았다. 다윗은 이 실패를 보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왕직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또한 다윗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사울과 달랐다. 그는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스스로 왕좌를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자기 손으로 치지 않았다. 다윗은 왕직이 쟁취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맡기시는 자리임을 알았다.
왕직은 사람의 야망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세우시며,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갈 때 맡겨지는 것이다. 다윗은 사명으로 보냄받은 자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으며,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강하게 임한 자였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은 후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되었다(삼상 16:13). 여기서 “크게 감동되었다”는 히브리어는 ‘찰라흐’의 의미를 품고 있으며, 강하게 임하고 돌진하듯 역사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다윗은 단순히 정치적 재능을 가진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왕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무엘상하의 사건 속에서만 이해될 수 없고, 시편 속에서 더 깊이 이해되어야 한다. 사무엘상하는 다윗의 사건을 보여 주고, 시편은 다윗의 영을 보여 준다. 시편 안에는 다윗이 본 하늘 보좌, 시온산, 영광의 왕,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 왕직과 제사장직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다윗을 통하여 참 왕을 배워야 한다. 다윗을 모르면 왕직을 모른다. 왕직을 모르면 예수님의 왕 되심도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예수님의 왕 되심을 모르면, 성도가 장차 왕 노릇할 자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3. 왕직은 왜 사탄을 대적하는 권세인가?
왕직은 왜 필요한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피조물만 있다면 철장 권세가 필요하지 않다. 모든 존재가 하나님께 자원하여 순종한다면 심판과 다스림의 권세가 나타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늘에서 반역이 일어났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했고, 그를 따르는 악한 영들이 생겼다. 그러므로 왕직은 본질적으로 반역한 악한 영의 질서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세우기 위한 직분이다.
시편 110편 1절은 이 왕직의 핵심을 보여 준다.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원수는 단지 인간적 원수만을 뜻하지 않는다. 다윗의 생애에서는 사울과 주변 이방 나라들이 원수처럼 나타났지만, 신약의 빛 안에서 보면 참된 원수는 혈과 육이 아니라 사탄과 악한 영들이다(시 110:1).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여기에 연결된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동시에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셨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증언한다(요일 3:8).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왕직은 사람을 짓누르는 권세가 아니다. 왕직은 사람을 배후에서 묶고 속이고 죄짓게 만드는 사탄의 질서를 깨뜨리는 권세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지만, 동시에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한다. 사람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러나 사람을 죄와 사망으로 끌고 가는 악한 영은 대적해야 할 대상이다.
다윗의 삶은 이것을 예표한다. 그는 골리앗을 무너뜨렸다. 골리앗은 단순한 거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두려움으로 묶어 놓은 악한 권세의 그림자다.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장차 예수께서 사탄을 깨뜨리시고, 그 아래 있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실 것을 미리 보여 준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먼저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다.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후,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나타내셨다. 이것이 왕직의 실제다. 왕은 자기 백성을 억압하는 자가 아니라, 백성을 억압하는 악한 영의 권세를 깨뜨리는 자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와 사역자는 왕권을 잘못 사용해서는 안 된다. 목회적 권위, 영적 권세, 직분, 은사가 사람을 겁주고 복종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울식 왕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며, 사람을 괴롭히는 악한 영을 대적하기 위한 것이다.
왕직은 사탄을 대적하는 권세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권세는 군림이 되고, 직분은 자기 과시가 되며,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누르는 곳이 된다. 다윗이 보여 준 왕직, 그리고 예수께서 완성하신 왕직은 그와 다르다. 참 왕은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생명을 주고 자유를 주는 왕이다.
4. 제사장직은 왜 죄인을 살리는 직분인가?
왕직이 사탄의 반역 때문에 필요하다면, 제사장직은 인간의 죄 때문에 필요하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속죄 제사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뱀의 말을 듣고 죄를 지었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필요했다. 그 길이 제사장직이다.
제사장은 히브리어로 ‘코헨’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섬기며, 제물을 드리고,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백성이 하나님께 용서받고 가까이 나아가도록 돕는 직분이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은 매일 제사를 드렸고, 해마다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이는 죄인이 그냥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피가 필요하고, 중보가 필요하며, 정결케 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편 110편은 놀라운 말을 한다. 메시아가 왕일 뿐 아니라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한다(시 110:4).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직분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원수를 깨뜨리신다.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죄인을 살리신다. 왕직만 있고 제사장직이 없다면 죄인은 심판 앞에서 설 수 없다. 제사장직만 있고 왕직이 없다면 사탄의 권세가 계속 사람을 묶어 둘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이 둘이 하나가 된다. 그분은 원수를 멸하는 왕이시며, 자기 피로 죄인을 속죄하는 제사장이시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한다(히 5:7-9). 이것은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실제 순종의 길을 걸으셨음을 보여 준다. 그분은 고난 없는 왕이 아니셨고, 피 없는 제사장이 아니셨다.
히 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께서 제사장이시라는 것은 성도에게 큰 위로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5-16).
히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제사장직은 죄인을 살리는 직분이다. 예수님의 피는 심판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멸망시키는 근거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붙들어야 한다. 왕이신 예수님은 악한 영을 깨뜨리시고,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인을 속죄하신다. 이 두 직분이 함께 있을 때 구원이 온전해진다.
5. 멜기세덱은 왜 왕이자 제사장인가?
시편 110편의 제사장직을 이해하려면 멜기세덱을 알아야 한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갑자기 등장한다. 그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성경은 그를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부른다(창 14:18-20).
창 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멜렉’과 ‘체데크’의 의미를 품고 있다. ‘멜렉’은 왕이고, ‘체데크’는 의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을 “의의 왕”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그는 살렘 왕이다. 살렘은 평강과 연결되므로, 그는 “평강의 왕”으로도 설명된다(히 7:1-2).
히 7:1-2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멜기세덱이 왕이자 제사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은 왕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왕과 제사장은 보통 분리되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왕이면서 제사장이었다. 이 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 율법대로라면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제사장이 되실 수 있는가. 그 답이 시편 110편 4절이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시다. 아론의 제사장직은 혈통을 따라 이어졌고 죽음 때문에 계속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죽지 아니하는 생명의 능력에 따라 세워졌고 영원하다.
히브리서는 이 점을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않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제사장이 되셨다(히 7:16-17).
히 7:16-17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두 직분을 동시에 보여 주는 인물이다. 그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며,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셨다. 그분은 의로 다스리는 왕이시고, 평강을 주시는 왕이시며, 자기 피로 우리를 하나님께 이끄는 제사장이시다.
제사장직은 죄인을 살리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 제사장직의 궁극적 목적은 죄인이 속죄받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제사가 필요하지만, 천국에서는 더 이상 죄를 위한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 죄가 완전히 처리된 나라에서 남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섬김과 통치다. 그러므로 제사장직은 왕직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길을 연다. 멜기세덱은 바로 이 질서를 미리 보여 준다. 왕과 제사장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 안에서 결합될 때, 참된 구원과 통치가 나타난다. 그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다.
6. 철장 권세는 누구에게 사용해야 하는가?
시편 2편은 메시아 왕의 통치를 철장 권세로 묘사한다.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며 질그릇같이 부수리라”는 말씀이다(시 2:8-9).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권세와 연결된다.
시 2:8-9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예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시면서 이기는 자와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다(계 2:26-27).
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여기서 “다스리다”와 관련된 헬라어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의 표현은 단순한 폭력적 지배가 아니라 ‘포이마이노’의 목양적 의미와 연결된다. 포이마이노는 양을 치다, 목양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짓누르는 권세가 아니다. 성도를 향해서는 목양의 권세로 나타나야 하고, 사탄과 악한 영을 향해서는 깨뜨리는 권세로 나타나야 한다.
이 구분이 매우 중요하다. 왕권을 받은 사람이 이 구분을 잃어버리면 성도를 향해 철장을 휘두른다. 직분을 가지고 사람을 저주하고, 영적 권위를 이용해 성도를 겁주고, 자기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위협한다. 이것은 왕직의 남용이다. 철장 권세는 성도를 때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철장 권세는 악한 영을 깨뜨리라고 주신 것이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 주님은 죄인들과 세리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사람을 향해서는 긍휼과 회개를 베푸셨지만, 귀신을 향해서는 단호히 명령하셨다. 이것이 왕직의 바른 사용이다.
성도는 사람을 원수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부모가 상처를 주었어도, 가족이 나를 버렸어도,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다. 다윗도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고백했다(시 27:10). 사람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어도, 하나님께 영접받으면 그것이 새 정체성이 된다.
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악한 영은 대적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사람을 죄와 사망으로 몰아가는 귀신의 역사는 끊어야 한다. 왕직은 사람을 죽이는 권세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탄의 역사를 깨뜨리는 권세다.
그래서 철장 권세는 분별이 필요하다. 성도에게는 지팡이를 들어 목양해야 하고, 악한 영에게는 철장을 들어 대적해야 한다. 목자가 양을 때리는 데 막대기를 쓰고, 사자와 곰 앞에서는 침묵한다면 그것은 목자의 직무를 거꾸로 쓰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이 원리를 회복해야 한다. 권세는 성도를 억압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괴롭히는 악한 영을 깨뜨리는 데 써야 한다.
7. 왜 믿음은 열매와 행위로 드러나야 하는가?
성경은 믿음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삶의 열매 없이 끝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믿음은 시작이지만, 그 믿음이 참되다면 길과 열매와 행위로 드러난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의 길을 비교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또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시 1:1-2).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기서 시편 1편은 추상적인 믿음만 말하지 않는다. 따르지 않고, 서지 않고, 앉지 않는 실제 삶을 말한다. 그리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지속적인 태도를 말한다. 그 결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시 1:3).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을 말하면서 삶의 방향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신칭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귀한 진리다. 그러나 그것을 회개와 순종과 열매를 무시하는 방종의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시작한 자는 반드시 그 믿음에 합당한 길을 걸어야 한다. 야고보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약 2:17).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번 설교의 흐름에서 이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문제와 연결된다. 왕직은 아무에게나 맡겨지는 장난이 아니다. 사울처럼 능력과 정결함이 준비되지 않은 채 권세를 붙들면, 그 권세가 교만과 타락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 사람을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처럼 다양한 용도로 쓰시되, 반드시 깨끗하게 된 그릇을 귀히 쓰신다(딤후 2:20-21).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기서 핵심은 그릇의 종류보다 깨끗함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분량으로 쓰임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금그릇처럼, 어떤 사람은 은그릇처럼, 어떤 사람은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처럼 쓰임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그릇이든 더럽다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지 않다. 반대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된다.
성도는 직분을 탐내기 전에 깨끗함을 구해야 한다. 왕직을 탐내기 전에 왕직에 합당한 마음과 삶을 배워야 한다. 제사장직을 말하기 전에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김받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제사장적 마음을 품어야 한다. 믿음은 입술의 고백에서 시작되지만, 회개와 순종과 열매 속에서 검증된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성도는 날마다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나는 악인의 꾀를 따르고 있는가. 나는 죄인의 길에 서 있는가. 나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가. 나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살피는 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될 수 있다.
8. 성도는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가?
예수님은 왕이자 제사장이시다. 그런데 성경은 그 예수님 안에서 성도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성도를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부른다(벧전 2:9).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왕의 제사장체계)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계시록도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우리를 나라(왕국)와 제사장들로 삼으셨다고 말한다(계 1:5-6). 이것은 성도의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보여 준다.
계 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왕국)와 제사장[들]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러나 이 신분은 방종의 면허가 아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왕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가?
첫째, 회개와 순종과 충성으로 그 신분에 합당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들 중에서 이기는 자의 반열을 따라 보좌에 함께 앉게 하는 이가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그러므로 성도는 단지 믿었다는 사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길은 첫째, 회개다. 제사장직은 피와 정결과 연결된다. 회개 없이 제사장적 삶을 말할 수 없다. 죄를 품고 악한 영에게 통로를 열어 두면서 왕권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회개는 죄의 근거를 제거하고, 악한 영의 역사를 끊고,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을 정결케 하는 길이다.
둘째, 영적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 왕직은 사탄과 귀신을 대적하는 권세다. 성도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하지만,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악한 영의 세력은 대적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의 권세 안에서 귀신의 역사를 끊고, 가족과 교회와 민족을 묶고 있는 악한 영의 진을 무너뜨려야 한다.
셋째, 목양할 줄 알아야 한다. 철장 권세를 성도에게 휘두르면 안 된다. 성도를 향해서는 포이마이노, 곧 목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양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고, 다친 양을 싸매며, 길 잃은 양을 찾아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이다.
넷째, 시온과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것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사랑했고, 시온을 하나님의 거처로 노래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고백했다(시 122:6).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서 있다고 말한다(계 14:1).
시 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성도는 이 땅이 전부인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 성 안에서 주님 가까이 서고, 영광의 왕과 함께하는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 주님은 하늘 군대와 함께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신다. 요한계시록 19장은 백마 타신 주님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보여 준다(계 19:11-16).
계 19:11-16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길은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낮아지는 길이다. 자기 권세를 내려놓고, 주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며, 성령의 은사와 권세를 받아 악한 영을 대적하고,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다윗은 버려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었고,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했으며,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를 찬양했다. 성도도 이 길을 배워야 한다.
시편 110편 3절도 이 준비를 보여 준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며,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주께 나온다고 말한다(시 110:3). 여기서 청년은 단순히 육체의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깨어 있고, 원수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는 자를 가리킨다. 왕 같은 제사장은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권능의 날에 자원하여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다.
시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또한 성도는 한 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경륜 가운데 일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시편 110편의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둘이라는 뜻이 아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한 분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아들로 오시고,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경륜의 비밀이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위대한 선지자나 왕으로만 보지 않고,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나타내신 분으로 알아야 한다.
이 지식은 머리의 지식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왕이심을 안다면 악한 영과 타협하지 않아야 하고, 예수님이 제사장이심을 안다면 날마다 그 피를 의지하여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심을 안다면, 성도도 일시적인 종교 활동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삶은 오늘의 말과 선택과 관계와 섬김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작은 자리와 일부터 충성해야 한다. 큰 왕권을 말하면서 작은 섬김을 멸시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양보다 중심을 보시고, 오늘의 충성과 회개와 순종을 통해 장차 맡기실 영광을 준비하신다.
9. 나오며
예수님께서 왜 왕이자 제사장으로 오셨으며, 성도는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시편 110편은 메시아의 두 직분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분은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시는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왕직은 사탄과 악한 영을 대적하는 권세이고, 제사장직은 죄인을 살려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직분이다.
성도는 이 두 직분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왕권을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철장 권세를 성도에게 휘두르는 방식으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 성도에게는 목양해야 하고, 귀신에게는 대적해야 한다. 사람은 구원의 대상이며, 악한 영은 끊어 내야 할 대상이다. 이것이 왕직의 바른 사용이다.
또한 성도는 제사장적 정결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날마다 회개해야 하며,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시작이며, 회개와 순종과 열매는 그 믿음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길이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신분을 자랑하기보다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
다윗은 시온을 사모했고, 예루살렘을 사랑했으며,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를 높였다. 그의 고백은 장차 어린양이 서실 하늘의 시온산과 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의 성공만을 자랑하지 말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 가까이 설 것을 사모해야 한다. 영광의 왕과 함께할 거룩한 군사로 준비되어야 하며, 회개와 충성과 영적 전투의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는 권세를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아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직분의 생명과 정신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목양하고,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따라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6일(화) ·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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