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강림절(5)] 방언은 믿는 이의 '표적'인가 성령의 ‘은사’인가?(고전12:4~11)_2023-05-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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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언은 표적인가 은사인가?
성경에서는 방언을 '표적'이라고도 말씀하기도 하고(막16:17, 고전14:22), '은사'라고도 말씀하기도 한다(고전12:10, 14:2,13~14). 이는 방언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다 방언을 지칭하는 표현들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누가 방언을 '표적'(쎄메이온=sign)'이라고 언급했으며, 또한 '은사'라고 말했는가? 먼저, 방언에 대해 그것을 표적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이다(막16:17~18).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방언이란 믿는 자들에게 응당 뒤따라오는 표적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방언을 성령의 '은사'(카리스마=spiritual gift)라고 하였다(고전12:4~11). 성령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이라는 것이다. 한편, 사도 바울은 방언을 '은사'라고만 말하지 않고, '표적'이라고도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고전14:22). 고로 믿는 자의 표적으로 알려진 방언을 은사라고 명명한 것은 바울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예수께서 방언을 '표적'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주 예수께서는 방언에 대해 믿는 자에게 뒤따라오는 '표적'이라고 하셨다(막16:17~18). 왜냐하면 방언이 기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방언이란 믿는 자들에게 뒤따라오는 기적적인 현상으로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자기 속에 성령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표시인 것이다. 고로 누군가가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신 성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고로 표적으로서의 방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인지 안 믿는 자인지를 구별시켜 주는 잣대가 된다.
3. 방언이 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언'이 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방언이 일종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서 기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표적'이라는 말은 기적은 기적인데, 그것이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에 붙이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방언도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적인 것이다. 사실 요한복음에는 7가지 '표적'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들은 다 원래 기적들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기적은 전부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영적으로 알려 주기 때문에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고, '표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을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포도주야말로 '생명'(물)을 가지신 예수께서 장차 흘리실 '피'(포도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생명의 떡으로 오셨으며, 계속해서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분임을 오병이어의 기적이 고스란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방언을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방언이 어떤 기적적인 현상이기는 하나, 자기 안에 예수님을 가지고 있어서, 본인이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은 자임을 드러내 주는 표시(사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자신이 예수믿는 사람이 되었다면 누구든지 다 방언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방언은 왜 '은사'인가?
사도 바울은 방언을 성령께서 주시는 9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들 중의 하나로 보았다(고전12:8~10). 여기서 '은사'(카리스마)라고 하는 말은 영적인 선물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 바로 은사인 것이다(고전12:31). 이때 성령께서는 그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나눠주신다(고전12:7). 그러므로 은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방언'을 받은 자에게는 영적으로 매우 유용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고로 이 은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종류의 방언을 받게 되면, 그 사역자는 여러 가지 영적인 일들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로 모든 믿는 자가 표적으로서 방언을 말할 수 있지만, 모든 믿는 자가 다 은사로서 방언을 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5. '표적'과 '은사'로서 방언을 서로 비교한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표적으로서의 방언은 기적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는 어떤 사람이 믿는 자가 되었을 때에, 자기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표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서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이 불신자가 아니라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언은 자신이 믿는 자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서 방언은 '받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방언은 영이 말하는 것으로서 그냥 혀를 성령께 맡기고 말하면 곧바로 나오는 쉬운 것이다.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하나, 믿는 자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이러한 방언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사로의 방언은 이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왜냐하면 은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영적인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기는 하지만, 사모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다. 방언은 성령께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선물로서, 성도들끼리는 서로 조금 다른 종류의 방언을 받는 것이다. 고로 은사로서의 방언은 성도들 중에서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은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은사로의 방언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사로서 방언의 종류를 구분해 본다면, 대신방언, 대인방언, 대물방언, 대적방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화방언, 기도방언, 찬양방언, 축복방언, 예언방언의 종류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편 '대신방언'이라 함은 기도와 찬양으로 하는 방언을 가리키고, 대인방언이라 함은 자신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방언을 말했는데, 듣는 사람이 자기 나라의 말로 알아듣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날에 120명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방언을 말했던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물방언'이라 함은 방언하는 자가 동물이나 식물과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방언으로 새와 꽃과 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적방언'이라 함은 귀신들에게 하는 방언으로서, 이 방언을 하게 되면 귀신들이 매우 무서워하고 또한 잘 떠나간다.
2023년 05월 24일(수)
정보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