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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그리스도인의 율법관(04)] 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가?(갈5:1~6)_2024-02-15(목)

https://youtu.be/U6fG4BFuYZw [또는 https://tv.naver.com/v/48262167]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은 매우 중요한 영역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을 통해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으며,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율법을 가리켜 '도덕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예수께서 누군지를 알려 주는 율법을 가리켜 우리는 '의식법'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지난 3번의 시간을 통해 도덕법인 십계명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두 번째로 의식법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제정된 의식법으로서 '할례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왜 할례법은 생겨났으며, 할례법은 구원과는 어떤 상관성이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할례법이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법인 율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도덕법'이요, 나머지는 '의식법'과 그리고 '재판법'이다.

  제일 먼저, '도덕법'은 우리가 하나님께 지켜야 할 윤리와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를 말씀하는 십계명을 가리킨다(출20장, 신5장). 그리고 '의식법'이란 정해진 방식에 따라 절차를 지키면 성취하는 법들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의식법에는 '할례법'에서부터 시작하여, '절기법(안식일법)'이 있고, '성막법'과 '제사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결법'과 '음식법(금기법)' 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판법'이란 백성 사이에 소송이나 문제가 발생할 때 재판하는 법으로서 민법과 상법 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것들 중에서 '할례법'이란 율법 중에서 의식법의 범주에 속하는 법이다. 할례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남자로 태어나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는 법이다(창17:10~12). 이는 남자의 생식기의 끝부분에 있는 가죽을 베는 것을 가리킨다(오늘날에는 그것을 '포경수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의식법으로서 할례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할례법은 의식법들 중에서 최초로 제정된 법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의식법들이 제정된 순서를 보면, 할례법이 가장 먼저 제정되었고(창17장) 이어서 절기법으로서 유월절과 무교절이 제정되었으며(출12장), 그리고 이어서 안식일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출16장).  

  둘째, 할례법은 모세보다 약 600년 전에 먼저 살았던 아브라함에게 주신 법이었다는 사실이다. 할례법은 사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B.C.1446년보다 약 621년 앞선 B.C.2067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제정하셨던 법이었다(창17:10~12).  

  셋째, 할례법은 모든 다른 의식법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은 사실 가짓수로 치자면 613가지나 된다. 랍비들이 그렇게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613가지 율법 조항들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의식법이 바로 '할례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과 할례의 날과 서로 겹쳤을 때에는 비록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규정보다 할례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한다(요7:22~23). 그러니까 안식일법보다 할례법이 더 우선하는 것이다.

  넷째, 할례법이 모든 의식법들 중에 최우선이기는 하지만 믿음의 법보다는 후순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그가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즉 아브라함은 자신이 자식을 낳을 수도 없었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2가지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것은 자손 번성과 가나안 땅 기업 차지에 관한 약속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시게 된다(창15:6). 그런데 그가 잠시 잘못 행하는 바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떠나신 후 13년 만에 찾아오셔서 꾸중하시면서 할례를 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그가 할례를 받아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할례 율법보다 믿음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롬4:11). 그러므로 어떤 율법도 믿음보다 우선할 수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할례자의 조상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무할례자의 조상도 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3. 할례는 왜 제정되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할례는 제정되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믿음과 회개의 표시'로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는 지역 곧 우상숭배하고 있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는 우상 제조업을 하고 있었다(수24:2).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다(창12:1). 그러자 아브라함이 두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2가지를 선물로 약속해 주신다. 하나는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다(창13:14~15). 그리고 둘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의 그의 후손에게 영원히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했다(창13:16~17).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자식이 없자, 아브라함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으려고 하였다(창15:2).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가 그의 씨로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창15:4). 그래도 자식이 생기지 않자, 아브라함은 자손 약속을 받은 후, 사래의 말을 듣고 10년 만에 사래의 몸종인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게 된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장자인 '이스마엘'이다(창16:15~16).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 출생 이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신다. 무려 13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는데, 그때 말씀하시기를 "나는 엘샤다이(전능한 하나님)다.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창17:1)."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두 번 다시 자기의 육체를 따라 행하지 아니할 것을 몸에 새기라고 하셨다. 그것이 바로 할례언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언약이란 일종의 회개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따르겠으며 앞으로는 절대 다른 방법을 추구하여 자신의 욕심을 이루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하여 첩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을 회개하는 표시가 바로 할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후 시간이 흐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만 받으면 아브라함의 언약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하다가 나라가 망하려고 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을 꾸짖었는데, 그때 하셨던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은 이방 민족은 육체에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렘9:26). 그리고 그들이 진정 행해야 할 할례는 자신의 마음 가죽을 베고 여호와께 속하는 것이라고 하셨다(렘4:4). 이스라엘은 비록 육체에 할례를 받아서 스스로 언약백성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으니 그들은 언약백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렘9: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4.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던 참된 할례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런데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 살았던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중의 유대인이자 베냐민 지파의 히브리인이었다. 그런데 그도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지만 그도 역시 마음에는 할례를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형식만을 추구하고 내용이 빠진 자신은 그리스도의 원수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진정한 할례를 받은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할례와 같은 율법의 행위로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하였다(롬3:20). 즉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그분이 행하신 일을 진정 마음으로 믿을 때에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할례라는 의식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얻어야 한다면, 이방인들은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았던 유대인들이나,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이나 다 똑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말하였다(롬3:30). 그러므로 육신에 할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언약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은 겉만 유대인일 뿐 속은 아니라고 했다. 할례는 마음에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고로 사람이 육체에 할례를 행한 것 때문에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요,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며 언약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롬2:28~2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진정으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믿고 자신의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회개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참된 할례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 것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라고 했다(롬10:9~10).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있는 자가 바로 진정한 할례자인 것이다.  

 

5. 예수께서는 왜 할례를 받으신 것일까?

  그렇다면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으신 것일까? 그렇다. 예수께서는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고 누가복음의 저자가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눅2:21).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할례를 받으셔야 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할례자들도 구원해야 하고 무할례자도 구원해야 하는데, 할례자들을 구원하려면 먼저 자신도 율법을 지키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진정 실천하신 모범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외적으로만 할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할례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결코 육을 따라 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육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살지 않았다. 40일 금식기도를 한 후를 보라. 그는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성전에서 뛰어내려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사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사탄에게 절하여 세상 만국의 영광을 얻으라는 사탄의 제안도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육체를 대속제물로 내어 놓으셨다. 그리고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이 결국 죄를 짓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아셨기에, 사람들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추방했던 것이다. 그분만이 이땅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에 진정한 할례자의 삶을 살다가신 것이다. 

 

6. 우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이방인으로 태어나서 예수님을 믿게 된 자는 더 이상 할례를 받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마음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할례는 의식법으로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 주는 모형이자 그림자에 불과하고 실제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진정 믿고 회개하고 있는 자는 이미 할례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그림자의 모형의 시대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유대인들이면서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은 한사코 이방인들도 자기들처럼 예수님을 믿었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행15:1,5). 그래야 의롭다하심도 얻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갈5:4).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미 예수님을 믿어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는 다시 거꾸로 육체에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대로 만약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갈5:2). 그리고 육체의 할례를 통해 의롭다함을 추구하려 하는 자는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것이라고 했고 은혜에서 떨어질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갈5: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육체에 할례를 받은 것이나 육체에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나 다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둘 다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갈5:6, 6:15). 고로 할례를 받으려 하는 것은 육체에 모양만을 내려하는 것이며,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갈6:12~13).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자랑해야 할 것은 십자가 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갈6:14). 왜냐하면 십자가는 육체를 죽음에 넘기우는 수단으로서 진정한 할례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할례를 비롯한 모든 의식법들은 사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예수께서 누군지를 알려 주는 모형이자 그림자이다(히10:1).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실체이신 예수님을 붙들게 되었다면 다시 그림자인 의식법들을 붙들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인 것이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할례는 마음에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롬2:29).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또다시 표면적인 할례자처럼 되어가고 있다.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만을 가지고 자기는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라고 자랑하고 자신은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은 구원받은 언약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이 행한 할례는 회개의 표시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회개도 하지 않으면서 한 번 믿은 것을 가지고 유대인들처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고 죽음에 넘겨야 마음에 할례를 받은 것인데,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이미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고 구원받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그렇게 되면 유대인이나 지금 그리스도인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게 주장하라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육체를 죽음에 넘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할례자로 살아가야지 형식만 남은 할례자로 살아가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2024년 02월 15일(목)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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