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모든 사람은 꿈을 꾼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꾼 꿈이 과연 하나님이 주신 꿈인지 아니면 별로 의미없는 꿈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꿈'하면 떠오르는 인물들 중에 우리는 요셉을 손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별명이 '꿈꾸는 자(꿈쟁이)'였기 때문이다(창37:19). 그런데 꿈 중에는 하나님께서 꾸게하시는 의미있는 꿈들이 있다. 그러한 꿈에는 개인의 장래와 미래를 알려주는 꿈도 있으며,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알려주는 꿈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이 하나님이 꿈인지 혹은 사탄이 주는 꿈인지를 구별할 수도 있어야, 하나님의 뜻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요셉이 왜 계시적인 꿈을 꾸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오늘 우리도 의미있는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며, 그 꿈을 통해 자신의 가문과 교회와 그리고 이 시대까지 섬길 수 있을 것이다.
2. 꿈이란 대체 무엇인가?
'꿈'이란 무엇인가? 꿈은 그것이 의미가 있는 꿈일 경우 그가 불신자이든지 신자이든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는 통로의 하나가 된다. 왜냐하면 의미있는 꿈 곧 계시적인 꿈을 꾼 자들이 다 계시를 보았기 때문이다. 즉 성경의 신앙적인 인물로서 요셉이나 다니엘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같이 활동했던 애굽왕 바로나 바벨론왕 느부갓네살도 다 의미있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꿈 중에는 의미없는 꿈들도 많이 있다. 그러한 꿈은 대체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앞 뒤가 잘 맞지 않을 뿐더러 그 내용이 잘 연결되지도 않는다. 터무니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서운 영화를 보고 꿈을 꾸게 되면 악몽을 꾸듯이 또한 우리가 걱정 근심이 많은 상태에서 잠을 자면 복잡하고 잡다한 꿈을 꾸듯이, 우리도 의미없는 꿈을 꿀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꾸는 꿈들 중에는 의미가 있는, 즉 계시적인 꿈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3. 성경이 말하는 꿈의 종류 2가지는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꿈을 꾸었다는 사람이 종종 등장한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꿈들은 그것이 다 의미있는 것이었기에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꾸었던 꿈들을 각 유형별로 살펴보면, 성경에 등장하는 꿈들은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첫 번째,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서 뭔가를 가르쳐주고 지시하는 꿈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직접 어떤 것을 보여주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꿈의 내용을 보면 어떤 상징들이 없다. 그러니 상징이 의미하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창28장에서 야곱이 벧엘에서 꾼 꿈이 바로 그러한 종류의 꿈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꿈 속에서 영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야곱에게 그대로 보여주셨다. 이때 야곱은 지상에서 하늘로 연결된 사닥다리를 보았으며, 그 사닥다리 위 아래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다리 꼭대기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다. 그때 그분의 음성은 이러했다.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게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28:13)" 그렇다. 야곱이 꿈에서 본 것은 실제 있는 영계의 모습이었으며, 실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이때 야곱은 실재하지 않는 어떤 현상을 본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영안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서 눈을 뜨고 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꿈 속에서 그것을 본 것이다. 그랬다. 야곱은 그날 꿈 속에서 영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직접 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아직 영안이 활짝 열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 그가 다시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을 때에는 꿈 속에서가 아니라 직접 눈을 뜬 상태에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창35:9~13). 그런데 이러한 꿈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 예수님의 족보상의 부친이었던 요셉도 그러한 꿈을 꾸었으며, 꿈 속에서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그때 천사는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0~21)"고 했다. 그렇다. 이것은 실제 천사가 하는 말이었다. 단지 요셉은 그것을 꿈 속에서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꿈이 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그것을 '환상'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것은 현실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차 미래에 되어질 일을 상징적인 어떤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래서 '환상'이란 꿈의 일종이나 그것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환상은 장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미리 상징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상을 보는 자가 우리들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장래를 잘 대비할 수가 있다. 오늘 창세기 37장에 등장하는 요셉의 꿈 같은 것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환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이 본 것은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곡식단은 절할 수 없으며, 해와 달과 별들도 절할 수 없다. 고로 이것은 환상적인 꿈이었다. 그것은 장래에 형들이 요셉을 찾아와서 절하게 될 것 그리고 요셉의 부모와 형제들이 자신의 다스림 안에 들어올 것을 미리 보여준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꿈은 우리는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셉이 꾸었던 2개의 꿈들이나(창37:7,9) 애굽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꾸었던 꿈(창40:9~20) 그리고 바로 왕이 꾸었던 꿈들(창41:1~7)은 다 환상의 꿈이었다. 그리고 요셉 후 약 450년이 지난 후에 다니엘이 꾸었던 꿈들과 느부갓네살이 꾸었던 꿈들도 다 환상의 꿈들이었다.
4. 하나님이 주신 꿈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6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사람이 꾸는 꿈들 중에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다. 그런데 사탄이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가듯, 귀신들이 주는 꿈들도 있고 별 의미없는 꿈들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꾼 꿈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꾼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지금부터 제시되는 6가지를 따라서 비교해보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주신 꿈인지 아닌지를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만약 그 꿈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다. 즉 꾼 꿈을 해석할 때에 거기에 어떤 일정한 스토리나 메시지가 담겨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꿈에는 보통 숫자들과 상징들이 나오는데 해석해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것들이다. 오늘 요셉의 꿈 또한 그러한 꿈의 하나다. 두 개의 꿈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요셉에게 절한다는 꿈이기 때문이다. 이는 요셉의 다스림 안에 다 들어간다는 꿈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꿈은 계시적인 환상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창41장에 보면 바로가 꾼 꿈이 나오는데 그때 바로는 먼저 일곱 암소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거기에는 먼저 풀을 뜯고 있던 일곱 암소가 나오고, 나중에 파리한 암소가 나오는데 뒤에 나온 암소가 앞에 나오는 암소를 잡아먹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어서 꿈을 또 꾸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충실한 일곱 이삭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파리한 일곱 이삭이 나온다. 그런데 나중 나온 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도 환상의 꿈이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소가 소를 잡아먹지는 않기 때문이요, 이삭이 이삭을 삼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꿈은 환상의 꿈이다. 그러나 일정한 패턴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 꿈들에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등장하고, 뒤의 것이 흉한 것이며, 뒤의 것이 앞의 것을 삼킨다는 내용이 공통이다. 그래서 요셉은 일곱이라는 숫자를 7년으로 해석하였고, 앞의 것은 풍년, 뒤의 것은 흉년이라고 해석을 했다. 왜냐하면 흉년과 풍년을 가르는 기준은 목축(일곱 암소)이나 농업(일곱 이삭)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둘째, 꿈을 꾸고 나더라도 곧장 깨어나서 그 꿈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야 그 꿈을 기억하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꿈을 잘 해석했을 때에 곧 그것은 곧 예언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꾼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그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셋째, 꿈을 꾸되 겹쳐서 꾸거나 반복적으로 꾼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꿈이 된다. 요셉도 꿈을 겹쳐 꾸었다. 그는 자신의 형들과 아버지가 자신에게 절하게 될 것과 자신의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을 겹쳐 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가 꾼 꿈도 마찬가지로 겹쳐 꾼 꿈이다.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 꿈은 같은 패턴의 꿈을 겹쳐서 꾼 것이다. 그러자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할 때에도 이렇게 말했다. "바로의 꿈은 하나라. 바로께서 꿈을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창41:25,32)" 그렇다. 겹쳐 꾸었다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이며, 그 꿈대로 되는 하나님의 계획이 준비되어 있으니 유의하라는 뜻이다.
넷째, 꿈의 내용을 살펴볼 때에 그것이 장래에 일어날 일이자 예언적인 상징들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꿈일 확률이 높다. 요셉의 꿈은 장차 요셉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그리고 요셉의 형제들과 부모가 어떻게 요셉에게 와서 절할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환상으로서의 계시적인 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섯째, 꿈의 내용을 해석해 보았을 때에 지금 당장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 때나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이 꿈과 환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일 수 있다. 요셉은 한 번도 자신의 형들이 자신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어떻게 하늘과 같은 아버지가 자신의 다스림 안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해 보았겠는가? 하지만 꿈의 내용은 그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환상으로서 꿈은 장래에 있어질 일을 하나님께서 계시적으로 미리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들이 많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요셉은 꿈을 꾸었으면서도 처음에는 자기의 생애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3년이 지난 뒤에 그 꿈은 실제로 성취되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요셉은 형들의 시기질투에 따라 애굽에 종으로 팔려나갔다. 또한 애굽에 가서도 주인의 처의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쳐넣어지기도 했다. 감옥에 있을 때에는 자신의 꿈 해석의 도움을 받은 술 맡은 관원장도 요셉의 은덕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하지만 애굽생활 13년만에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다. 그리고 7년 풍년 뒤에 7년 흉년이 찾아왔고, 흉년 2년차가 되었을 때에 꿈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식량이 떨어지자 요셉의 형들 또한 식량을 사러 애굽에 와서 자신 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그리하여 꿈대로 형님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야곱의 모든 70명의 가족이 애굽에 와서 요셉의 다스림 안에서 살게 된다.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의미있는(계시적인)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의미있는 계시적인 꿈을 요셉이 꾸게 된 것일까? 당시 야곱에게서는 다른 11명의 형제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가 요셉이 계시적인 꿈을 왜 꾸게 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의미있고 계시적인 환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적인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요셉의 영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요셉의 마음과 영의 상태가 깨끗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다른 형들에 비해 도덕개념이 뛰어났다. 그는 거짓말을 한다든지, 도둑질을 한다든지 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간음을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창39:9~10). 왜냐하면 그는 29년간 할아버지 이삭과 함께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것을 기뻐하는지를 잘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 바치곤 했다. 그것이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요셉은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와 많이 단절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의 고조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이 그 윗대에서부터 행하던 우상숭배를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상숭배의 저주 곧 일찍 죽거나 불임의 저주가 이미 끝난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요셉은 그의 부친의 도움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부친 야곱이 20년 처가살이를 마치고 가나안 땅에 왔을 때에 여러 명의 부인들과 종들과 목자들이 가지고 온 이방신상들을 다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에게는 그 어떠한 우상숭배의 저주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의 영은 매우 깨끗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요셉의 마음에 상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환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환상은 가슴에 상처가 없이 평안함을 소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특별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은 17세가 되기까지 상처가 없었다. 아니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다. 아버지 밑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서 그러했다. 하지만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서 13년동안 살면서 그는 약간의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여기고 살았다(창45:5~8). 그래서 자신이 애굽에 팔린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님들의 식구들을 기근의 때에 먹여 살리려고, 하나님께서 미리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형들을 용서했다. 그렇다. 요셉처럼 어릴 적부터 마음에 상처가 없는 사람, 상처가 있었으나 용서를 통해 상처를 씻어낸 사람은 환상이 잘 보인다. 그러므로 혹시 자신의 생애에 계시적인 꿈이나 환상을 보기 원한다면 그는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꼭 치유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자를 용서해주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다. 그렇다. 자신에게 상처준 자들에게 앙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럴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해서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신 피흘려 죽으신 은혜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조건없는 사랑을 남들에게도 베풀어주어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이루실 아주 특별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안배'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쓰실 것인지를 하늘에서 이미 결정하시고 그의 영을 이 땅에 내려보내셨는데, 요셉은 그러한 안배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야곱의 온 식구를 기근의 재앙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정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이라고 댓구할 수는 없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되, 어떤 것은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있고, 어떤 것은 귀히 쓸 그릇으로 만들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온 가족을 구원할 목적으로 쓰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17세 되던 해에 이미 꿈을 안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야곱의 온 식구를 살리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족속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불어나게 하는 계획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6. 나오며
만약 우리 가운데 요셉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복받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안배가 있는 사람, 자신의 영이 깨끗하고 마음에 상처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시적인 꿈과 환상을 듬뿍 안겨주시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환상으로 보여주신다. 그래서 환난의 때를 준비케 하신다. 그러면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어려운 때를 모두가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요셉이 가는 곳에는 항상 복이 찾아왔다. 그가 애굽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자, 그의 집이 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보디발은 그를 가정총무로 삼았다. 그리고 그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 감옥에 이제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므로 간수도 그에게 모든 사무를 맡기게 된다. 그리고 애굽 왕 바로가 그를 만났을 때 바로 또한 그를 알아보았고 나라의 모든 살림살이를 그에게 맡긴다. 그가 나라의 장래를 잘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리가 된 요셉은 극심한 애굽의 7년 기근을 잘 대비하게 된다. 그리하여 기근 중에서도 애굽 만큼은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였고 그리고 더욱 더 강대국이 되게 하였다. 그때에 야곱의 식구도 애굽에 들어가게 되니, 애굽의 풍요로움 가운데서 야곱의 식구들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다. 그렇다. 요셉이 꾼 꿈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미있는 꿈이자 계시적인 꿈을 꾸는 자들이 있다. 아니 우리들도 그러한 꿈을 꾸는 자들이 되기를 사모해야 한다.
2021년 07월 04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