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18) 하나님은 왜 이삭에게 약속의 땅에 머무르라고 했을까?(창26:1~11)_2021-06-112(금)
https://youtu.be/wI31Vae5B3U
1. B.C.1990년 이삭의 때에 브엘라헤로이에 살고 있던 땅에 다시 흉년이 들자 이삭은 어떻게 했는가?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는데, 그의 아들 이삭의 때에도 흉년이 들었다. 그러자 이삭은 물이 있는 곡창 지대를 찾아 이동한다. 그리고 그때 그가 가려고 하는 최종 목적지는 아마도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흉년을 피해 갔던 그 땅,곧 애굽 땅 소안 뜰이었지 않나 싶다. 그러므로 이삭은 그때 우선적으로 가나안 땅과 애굽 땅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블레셋의 그랄 땅으로 들어간다.
2. 블레셋의 그랄 땅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무엇을 주문했는가?
이삭이 기근을 피해 블레셋의 그랄 땅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갑자기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 [안]에 거주하라(창26:2)." 이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애굽 땅으로는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3. 아브라함과 이삭의 생애를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 중에서 둘의 공통분모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생애와 이삭의 생애는 차이점도 많지만 동시에 닮은 점도 더러 있다. 먼저 이 둘의 차이점을 살펴본다면, 만약 아브라함을 시작의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이삭은 과정의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열매의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아브라함은 그때 무엇을 시작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고 믿은 것 때문에 그는 '믿음'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횃불 언약).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게 된다(할례 언약). 곧 '믿음과 회개'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신앙의 요소가 된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신앙의 요소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순종'이라는 것이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아브라함 역시 절대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왜 이삭을 축복하시고 있는지 그 이유로 제시된 것은 놀랍게도 그의 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의 순종 때문이었다고 나온다(창26:5).
그렇다면 이삭의 생애의 신앙의 요소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드림(헌신)'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삭은 모리아의 한 산 곧 골고다에서 자신을 기꺼이 번제로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신앙의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그도 아브라함처럼 '순종'이라는 키워드를 더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삭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늘 순종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알려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으로 애굽 땅으로 가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는 땅에 머무르라고 하였을 때에, 이삭이 그 명령에 순종하여 그 땅에 그냥 머물렀기 때문이다(창26:2,6).
4.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별 은총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대부분 특별 은총을 선물로 주신다. 그것은 혹 순종하는 자가 실수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부분을 메꾸어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무런 조건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애굽 땅에 내려감으로 곤란한 일을 당할 때에도, 당시의 아브라함을 책망하거나 그에게 징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굽 왕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를 두둔해주셨다(창12:10~20). 또한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내려갔을 때에도 동일하게 실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잘못을 거기에서도 묻지 않으셨다. 이는 먼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삭도 역시 자기의 아버지처럼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햇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닥쳐올지라도 약속의 땅에 꼭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이삭은 한 치의 망설임없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역시 이삭이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도 눈감아 주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은 혹시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범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에 개입하여 그 죄를 묻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저질러놓은 실수도 메꾸어 주신다.
5. 하나님께서는 왜 이삭에게 반드시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가?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쩌다 실수할 때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평소 때에 늘 하나님의 뜻에 정말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순간 그 죄값을 묻지 아니하시고 넘어가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수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실수를 넘어가주시고 축복을 받게 하신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가? 그것은 2가지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궁극적인 복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고로 우리도 이러한 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궁긍적인 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는 바로 그 땅으로 가는 것이었다(창12:2).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그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일평생에 꼭 찾아서 발견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하늘의 복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복을 우리가 찾아내었고 발견했다면 그것을 꼭 붙들 때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많이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언약 안에 꼭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창26:2). 그것은 이삭의 경우 아무리 기근이 몰려온다고 해도 약속의 땅에 머무르는 일이다. 어렵게 약속의 땅을 비로소 들어왔는데, 조금 어려움이 생겼다고 해서 쉽게 그 언약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리는 결코 언약의 계승자가 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실수를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뒤를 봐 주시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다시 확대해서 정리하면 이렇다. 왜 오늘날 우리도 이삭처럼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실 궁극적인 복에 대한 약속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약속이 희미해지다가 결국에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롯의 경우를 보라.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롯은 약속의 땅을 벗어나 문화와 번영의 상징인 소돔과 고모라를 찾았다. 그러자 결국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잃어버린 채 순식간에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에 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둘째로, 한 번 하나님의 궁극적인 복에 대한 약속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다시 스스로(자기 힘으로) 원래대로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래대로 원위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다가 포로로 잡혀갔지만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 롯은 아브라함의 주변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여전히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원했기에 그리로 들어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불의 심판 때에 그는 결국 자신의 두 딸만을 건질 수 있었을 뿐 가족과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다. 셋째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의 땅에 대한 언약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서 결국 죄짓다가 영원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채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하나님의 궁극적인 복에 관한 말씀을 발견했다고 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안에 반드시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그런 자가 결국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하늘의 상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06월 11일(금)
정병진목사
1. B.C.1990년 이삭의 때에 브엘라헤로이에 살고 있던 땅에 다시 흉년이 들자 이삭은 어떻게 했나?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는데, 이삭의 때에도 흉년이 들었다. 그러자 이삭은 물이 있는 곡창 지대를 찾아 이동하게 되었다. 그가 가려는 최종 목적지는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볼 때,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흉년을 피해 갔던, 애굽 땅 소안 뜰이었지 않나 추정된다. 그래서 그는 우선 가나안 땅과 중간 지대에 위치한 블레셋 땅 그랄로 들어갔다.
2. 블레셋의 그랄 땅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무엇을 주문했나?
이삭이 기근을 피해 블레셋의 그랄 땅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창26:2)."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애굽 땅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3. 아브라함과 이삭의 생애를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 중에서 둘의 공통분모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생애와 이삭의 생애는 차이점도 있지만 동시에 닮은 점도 있다. 먼저 이 둘의 차이점을 본다면, 만약 아브라함이 시작의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이삭은 과정의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삭의 아들 야곱은 열매의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아브라함은 대체 무엇을 시작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고 믿었기에 '믿음'을 시작한 것이며(횃불 언약),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다는 것이다(할례 언약). 곧 '믿음과 회개'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키워드가 된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는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그는 '순종'이라는 것이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아브라함이 절대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는 이유로 제시한 것은 놀랍게도 그의 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의 순종 때문이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창26:5).
그렇다면 이삭의 생애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드림(헌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삭은 모리아의 한 산 곧 골고다에서 자신을 번제로 기꺼이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그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이라는 키워드가 하나 더 있는 것이다. 그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늘 순종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말해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으로 애굽 땅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는 땅에 머무르라고 하자 그가 그대로 그 땅에 머물렀기 때문이다(창26:2,6).
4.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별 은총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특별 은총을 선물로 주신다. 그것은 혹 실수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부분을 메꾸어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무런 조건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애굽 땅에 내려감으로 곤란한 일을 당하고 있을 때에도, 당시의 아브라함을 책망하거나 그에게 징계를 내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애굽 왕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를 안전하게 애굽 땅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셨다(창12:10~20). 또한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내려갔을 때에도 동일하게 실수했지만 그것을 메꾸어 주셨다. 이는 먼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요, 마찬가지로 이삭도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혹시 가나안 땅에 기근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약속의 땅에 머물러야 한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그러자 이삭은 한 치의 망설임없이 그대로 순종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인 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으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중간의 일을 다 처리해 주심으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살게 해 주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은 혹시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실수를 메꾸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5. 하나님께서는 왜 이삭에게 반드시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가?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평소때에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에 정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냥 넘어가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수를 해도 넘어가고 축복을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2가지가 필요한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궁극적인 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곧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꼭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는 것이었다(창12:2).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일평생에 꼭 찾아서 발견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하늘의 복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복을 우리가 찾아내었고 발견했다면 그것을 꼭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언약 안에 꼭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창26:2). 그것은 이삭의 경우 아무리 기근이 몰려온다고 해도 약속의 땅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어렵게 약속의 땅을 비로소 발견했는데 조금 어려움이 생겼다고 그만 쉽게 언약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결코 언약의 계승자가 될 수가 없을 뿐더러, 실수를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도 봐 주시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정리하고 확대해서 보겠다. 왜 오늘날 우리도 이삭처럼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실 궁극적인 복에 대한 약속에서 벗어나면, 그 약속이 희미해지다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롯의 경우를 보라.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롯은 약속의 땅을 벗어나 문화와 번영의 상징인 소돔과 고모라를 찾았다. 그러자 결국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잃어버린 채 순식간에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에 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둘째로, 한 번 하나님의 궁극적인 복에 대한 약속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다시 스스로(자기 힘으로) 원래대로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원래대로 원위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다가 포로로 잡혀갔지만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 롯은 아브라함의 주변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여전히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원했기에 그리로 들어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불의 심판 때에 그는 결국 자신의 두 딸만을 건질 수 있었을 뿐 가족과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다. 셋째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의 땅에 대한 언약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서 결국 죄짓다가 영원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하나님의 궁극적인 복에 관한 말씀을 발견했다고 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안에 반드시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그런 자가 결국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하늘의 상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06월 11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