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97) 아브라함은 왜 그랄왕에게 사라를 또 누이동생이라고 말했나(창20:1~18)_2021-05-14(금)
https://youtu.be/byvnX9jinf4
1.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한 때는 언제였는가?
아브라함이 그랄 왕 곧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한 때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고 난 후 24년이 지난 어느 날이다. 그러니까 나이로 치자면, 아브라함이 99세 때의 일이다.
2.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한 것은 벌써 몇 번째인가?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한 것은 벌써 이번이 두 번째이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았던 그 시절에도 그러니까 그의 나이 75세 때에도 한 번 그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도 역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했다(창12:11~13). 그때에는 기근 때문에 애굽 땅으로 내려갔을 때이다.
3. 아브라함이 두 번째로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한 것과 첫 번째의 것은 어떻게 다른가?
아브라함이 첫 번째로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한 것은 정말 자기 아내 때문에 혹시 자신이 죽임당할까봐 두려워서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좀 다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힘이 없어서 비굴하게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간에 나눈 대화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 대화를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 부족과 화친을 해보려는 의도에서 사라를 데려갔다고 말하고 있다(창20:4~5). 다시 말해 자신이 사라를 데려간 것은 선의로 데려간 것인데, 왜 아브라함이 나쁜 의도로 자신에게 그렇게 했는지 서운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창20:9~10). 또한 이후 몇 년이 지나서 아비멜렉이 자신의 군대 장관인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와서는 자신이 그동안 아브라함을 선대해 주었으니 아브라함도 자기와 자기 아들과 자기의 후손들에게 후대해 줄 것을 요청했던 사실을 통해서도 그것을 알 수가 있다(창21:23). 생각해 보라. 아브라함은 당시의 최고의 군사력을 지녔던 북방 4개의 연합군(동맹군)을 자신의 종들 318명을 데리고 가서 쳐부수고 돌아온 사람이 아니었는가? 뭐가 무섭고 부족해서 또 비굴하게 또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겠는가?
4.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한 것이 아브라함의 비굴함이 아니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방금 위에서도 조금은 살펴보았지만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과의 어떤 뜻과 의도에서 한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 아브라함이 힘이 없거나 군사력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브라함이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책망이 없으며, 아브라함도 회개했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꿈에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선지자라고 알려 주기까지 했다(창20:7). 셋째, 그 일로 인하여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자신은 선한 의도로 사라를 데려갔는데(정략 결혼을 하려고 한 듯이 보임), 아브라함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왜 그렇게 자신에게 허락했는지 섭섭하다고 했기 때문이다(창20:9~10). 넷째, 그랄 왕 아비멜렉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속죄 예물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랬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찾아와 양떼와 소떼 그리고 남종들과 여종들 그리고 은 천 개를 아브라함에게 속죄 예물로 바쳤다. 왜냐하면 그가 사라를 데려온 이후, 자기와 자기의 아내 왕비와 자신의 여종들에게 어떤 질병에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의 집과 종들 전체가 다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놓여버렸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제 아브라함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불신앙의 사람이 아니라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게 되었고 회개도 하였으며 심지어 한 분 하나님을 직접 얼굴로 대면하여 만나보기도 하였고 그분에게 중보 기도까지 해서 응답을 받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만일 할례 언약을 받은 후 한참이 지났다거나, 혹은 롯을 위한 하나님과의 대면기도가 있은 후 수년이 흐른 뒤였다면 혹시 아브라함이 비굴한 행위를 또 했다고 할 수 있을른지 몰라도, 그러한 사건이 있은지 채 2달이 안 되는 상황이므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벌써 떨어져서 비굴하게 그러한 말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사라도 늙었고 노쇠하여(시들어서) 별 볼 일이 없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창18:11~12)
5.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동생이라고 말하도록 허락했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하게 허락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믿음 없는 사라 때문이다. 사라가 약속의 씨를 잉태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믿음이 없는 사람을 쓰시지 않으며, 회개 안 한 사람을 쓰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혹 한 번쯤은 그렇게 쓰실 수 있겠지만 그러한 사람을 계속해서 쓰시지는 않으신다. 즉 하나님은 준비되지 아니한 사람을 쓰시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때는 약속의 씨에 관한 첫 시작이 필요한 싯점이기에, 사라가 아직 믿음이 없고 부족한데도 억지로 그녀로 하여금 임신하게 하지는 않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시 여러 번 그녀에게 그녀가 임신할 것을 들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믿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녀를 깨우치시고자 그녀로 하여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하고, 회개시키고자 이러한 일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 사라에게 믿음을 갖게 하고 사라가 회개토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이 필요했다. 즉 어떤 샘플 사건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도구가 바로 그랄 왕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인 왕비와 여종들의 불임 소식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까지는 자식을 갖는 데에 아무 문제 없었던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 왕비와 여종들이 사라가 후궁이 되기 위해 왕궁에 들어갈 때부터 그 왕궁에 임신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왕과 왕비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궁중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떤 질병에 걸려버리게 된 것이다(창20:17). 그러므로 아비멜렉왕이 속죄 예물을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에게 드려야 했다. 그리고는 자기와 자기 아내인 왕비와 여종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비로소 아브라함이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자, 궁궐 안에 질병이 사라지게 되었고 다시 임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을 사라가 고스란히 지켜 보았던 것이다. 그러자 이 일이 있은 후에 사라는 진정으로 회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아기를 잉태하고 잉태하지 못하는 것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다시 사라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러자 사라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창21:1~2).
2021년 05월 14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