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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7-05-10
본문말씀 이사야 66:1~4( 구약 104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자유의지, 하나님의 형상, 구원론, 어거스틴의 전적 타락, 루터의 노예의지론,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책임, 자유의지의 사용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 독특한 특성을 우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어거스틴이나 종교개혁자들은 우리 인간이 구원얻는 데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무 쓸모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향하여 우리를 초청하시는가? 그리고 우리더러 회개하라고 요청하시는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인간의 자유의지와 구원의 상관 관계를 깊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원에 얼마만큼 유효할까? 어떤 이는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원에 전혀 쓸모 없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사야 66장 1~4절의 말씀을 대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구원에 있어서,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이며, 그것이 인간구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하여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하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인간의 자유의지란 외적인 강제ㆍ지배ㆍ구속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리킨다. 사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피조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능력이자 특권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우주 가운데에 어떤 존재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딱 2가지 존재 뿐이다. 하나는 천사들이며, 또 하나는 우리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천사와 우리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천사와 인간만이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천사와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아주 중요한 특성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동물들 중에는 아무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동물들은 전부 다 본능에 의해서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본능도 있지만,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다.

 

3. 자유의지는 인간 구원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오늘날 구원에 어느정도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펠라기우스는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자유의지로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으며, 이것을 사용하여 구원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이미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있어서, 그 힘을 전혀 발휘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고 주장하였다(롬3:10~18). 한편, 어거스틴의 뒤를 이은 종교개혁자 루터는 어떻게 말했는가? 그는 노예의지론을 주창했다. 노예의지란 무엇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아니라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의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전혀 선을 행할 수 없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루터의 주장은 옳은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이제부터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자유의지에 관하여 정확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구원에 자유의지가 얼마만큼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4.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자유의지는 어떠한가?

가. 인간의 타락은 어느정도인가?

  인간은 처음에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밑바닦에 깔려있어 그것이 발현되어 나타나지 않았을 뿐, 여전히 사람 속에 그것이 들어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에 있는 각종나무의 실과는 따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사람 안에 죄가 들어오게 되면, 밑바닦에 가라앉아있던 악이 올라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찍 타락하여 악의 본체가 된 사탄이 뱀으로 가장하여 인간에게 접근하였고, 결국 인간을 속임으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게 된다. 그순간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던 악이 올라오게 되었으니, 그때부터 인간은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선과 악이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악이 올라온 이후에 인간은 스스로 악을 이기지 못했다. 악이 워낙 강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롬7:18~20). 그렇다. 아담이후 모든 인류를 죄된 본성에 눌려 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해 마귀의 말에 순종함에 따라, 인간의 자유의지는 죄에 오염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는 데에 턱없이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나. 아담의 범죄와 나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어떤 이는 처음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범죄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과는 무슨 관련이 있느냐면서, 아담의 범죄는 아담의 범죄였을 뿐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라! 아담의 본죄로 인해 그후부터는 누구든지 악한 본성이 치밀어올라와서 사람을 지배하고 있지 아니한가?(창4:7) 그렇다. 아담이 범죄할 때 이미 인류는 아담과 함께 공범자였을 기억해야 한다(롬5:12). 아담의 허리에 이미 씨로서 우리도 동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죄된 본성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환경만 만나면 즉시 악한 본성이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 안에 내재된 죄된 본성을 이기고 살 수가 없다. 더욱이 선을 행하고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고 인간이 아주 선을 행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담의 타락이후 죄된 본성에 휩싸여 있어서, 구원에 이를만한 선을 행할 수는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담의 범죄이후 인간의 타락한 상태를 굳이 어떤 용어로 표현한다면, 인간은 "상한 갈대이자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야로 오셨음을 알리기 위해, 구약시대 이사야서의 말씀을 끌어온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메시야가 공생애를 살아갈 때에, 두 가지 만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사42:3). 그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마12:20).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상태를 딱 2가지 모습으로 비유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상한 갈대라는 것이며, 꺼져가는 등불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대로 그냥 놔둔다면 상한 갈대는 꺾어져 죽을 것이며, 껴져가는 등불은 꺼지고 말 것이다. 결국 모든 인간은 현재 이 땅에서 주의 긍휼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 인류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인류구원을 위한 메시야를 보내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4천년동안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메시야를 보내주셨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의 끝에 이르러서, 인류의 모든 죄값을 대신 담당하시려고, 직접 자신이 속죄제물이 되셔서 대신 피흘려 죽으신다. 그렇지만 부활생명이신 예수께서는 사망권세를 깨치시고 부활승천하셨으며, 그후에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당신의 영인 성령을 믿는 자들에게 보내주시고 게신다. 그때부터 이 세상에 오신 성령께서는 모든 죄인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을 '보혜사'라고 부른다. 이때 인간이 성령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수용하게 된다면, 그는 상한 갈대였으나 다시 튼튼한 갈대가 될 수 있으며, 꺼져가는 등불이었으나 활활 타오르는 등불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라.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인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렇다. 인간은 아무리 죄된 본성으로 가득차 있다고 하더라도, 성령께서 자신의 죄인됨을 책망하고 깨닫게하실 때에 반응한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하지만 반대로 계속해서 죄를 짓기를 좋아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곧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계속 거부할 때에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최소한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때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죄인이라고 용서받을 수 있으며,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된다.

  그렇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으신 천국잔치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 자신의 자유의지로 반응하여 기꺼이 그 잔치에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내미시는 구원의 손길을 계속해서 뿌리친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엄청난 재난과 역경을 견디어내면서 그들은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후손에게 전해주고 전해주었으며, 마침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메시아를 이 세상에 나타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막상 메시야께서 오시자 그를 거부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메시야 없이도 살만했기 때문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통해 백성들 위에서 선생노릇을 하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사두개인들은 제물을 팔고 환전하는 방법을 써서 물질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리새인들은 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명예를 챙기고 있었고, 사두개인들은 제물판매와 환전을 사용해 재물을 거머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메시야가 그들에게 왔지만 그들은 메시야를 결코 환영하지 않았던 것이다(요1:11). 그리고 결국에 그들은 자기들의 삶에 예수께서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분을 제거하는 일에 착수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만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바로 눅14장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눅14:~24, 마22:1~14)와 눅20장의 포도원농부의 비유에 고스란히 나온다(눅20:9~19, 마21:33~46). 한 예로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를 잠깐 들여다보자. 어떤 한 사람(마태복음에서는 '임금')이 자기자식을 위해 혼인잔치를 베푼다. 그리고 혼인 약속된 날이 되자, 주인은 오기로 약속했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 잔치에 오라고 기별한다.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 이유와 핑계를 대고는 오지를 않는 것이다. 어떤 이 밭을 샀다고 하고 , 어떤 이는 소를 샀다고 하고, 어떤 장가들었으니 갈 수 없다는 반응뿐이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바로 이미 청함을 받은 유대인들이다. 그러자, 이내 주인은 자기 아들의 잔치를 위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 곧 맹인이나 다리저는 자들이라도 데려오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잔치자리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죄인취급받고 소외받았던 계층 곧 세리와 죄인들이다. 그래도 잔치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본 주인은, 종들을 시켜 이제는 산울타리 가에까지 가서 만나는대로 강권하여 사람을 채우라고 명한다. 그러자 거기에 들어온 자들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바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그렇다.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 선민의 특권은 사라졌다. 그들이 선민의 특권을 남용하여 자기들의 안위만을 위해 그것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천국잔치의 복된 소식을 듣고 그 잔치에 참여하도록 지금까지 초청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 소식을 듣고 잔치에 응하기만 하면 잔치의 손님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는가? 구원은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면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초청 소식을 들었을 때에, 기꺼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것에 응답하여 잔치에 참여하게 되면 그때에 구원이 성사되는 것이다.

 

마. 구원에 대한 인간의 책임은 어느정도인가?

  하지만 어거스틴을 이은 종교개혁자들 특히 칼빈은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구원의 알파와 오메가를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는 다 해주신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죄인인 인간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천국잔치의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과연 천국잔치소식을 듣고 거기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하도록 우리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는 결코 천국잔치에 참여하기에 합당치 못한 죄인인 것을 시인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눅5:8).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야 한다(요일1:9). 이러한 책임은 바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믿음도 하나님이 주셔야 가질 수 있으며, 회개도 하나님도 주셔야 회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인간이 비록 타락하기는 타락했지만 회개케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일 수 없을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듣고 그것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타락이다. 하지만 끝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듣고도 잔치에 참여하기를 계속 거절한다면 우리는 결국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는 어느 정도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으로 불러주셨을 때, 그것에 반응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날 하나님의 구원소식을 듣거나 그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즉각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반응하여 자신의 죄인임을 시인하고, 잘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인간인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지 하나님이 대신해주는 영역이 아니다.

  당신의 지금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줄 알고 마냥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성령의 회개케 하시는 역사에 반응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있는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실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 늦어버릴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회개케 하실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도 너무 늦어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시고 계시며(딤전2:4),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이 성령의 회개케하시는 역사로 인하여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벧후3:9).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시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에 반응할 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 만약 우리가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다. 그것은 곧 지옥행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회개케하시는 역사를 거절하지 말라. 그리고 날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 인간구원을 위해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듣는 것을 사모하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롬10:17).

 

5. 이사야에 나타난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심판

  오늘 읽었던 이사야 66장 1~4절의 말씀은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외면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도 결국 그를 내버려두실 것이고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절대초월자이신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전안에 계시어어 자신들이 드리는 제물과 예물을 받으시고, 분향단의 향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은 밖에 나가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고, 악을 저질렀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갇혀계시는 하나님이신가?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자신앞에 제물과 예물을 가져오지 말 것과, 향을 사르지 말 것을 경고하셨다.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경건한 척 행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은 다 자유의지로서 자기의 길을 가고 있었고, 자기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그들의 자유의지대로 행하는 것을 이제는 그냥 놔 둘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잘못 선택했는지를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임하는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버리고 악행을 저지르는데 사용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 그것이 망하는 길이요 저주의 길이요 지옥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를 마귀를 거절하고 죄를 멀리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해도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성전 안에서만 지키는 경건한 모습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씁하셨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만 계시고 교회 안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배만을 기뻐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초월자이시며 전지전능자이시다. 하늘은 그분의 보좌요, 땅은 그분의 발등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하나님을 만홀히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분앞에 두려워 떨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실 전능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죄를 짓는 사용하지 말라. 자기자신을 쳐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데에 사용하라.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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