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가장 사악한 왕, 아합과 므낫세
이스라엘의 왕조사의 초점은 다윗 집안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기에 솔로몬이 죽고 나서 다윗 집안이 통치하던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졌을지라도 성경의 초점은 남유다에 맞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합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사악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긴 오므리의 아들이다. 성경은 오므리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지만(왕상 16:21-28), 성경 이외의 기록에 따르면 사실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경제를 안정시킨 매우 성공적인 왕이었다. 그가 경제적인 번성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서북쪽의 페니키아, 곧 성경의 지명으로 말하면 두로와 시돈과 평화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오므리는 자기 아들 아합을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시켰다(왕상 16:31).
오므리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아합은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녀가 섬기던 바알을 숭배하고 바알 신전을 건축하며 아세라 상을 만들어 섬겼다. 아합이 얼마나 악했는지 열왕기서 저자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0-33).
여호와 하나님은 아합의 우상 숭배와 악에 진노하셔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셔서 북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기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아합에게 선포하게 하셨다. 3년이 지났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시 아합에게 보내셨다. 엘리야를 만난 아합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왕상 18:17). 아합은 우상을 숭배해서 하나님의 진노로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기근을 선포한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비난했다. 그때 엘리야는 아합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왕상 18:18). 아합 왕 때 북이스라엘에 3년 동안 기근이 일어난 것은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아합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불러 놓고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아합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중에서 누가 참신인지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판별 방법은 ‘어느 신이 비를 내려 기근을 해소시키느냐’였다. 이로써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아합과 백성이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알 선지자 450명과 비를 내리게 하는 내기를 벌였다. 먼저 아합이 섬기는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비를 내려 달라고 바알에게 울부짖었다. 물론 결과는 실패였다. 바알은 참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조롱하던 엘리야는 그들의 부르짖음이 실패로 돌아가자 제단을 수축하고 제물을 놓고 물을 길어다가 붓고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37). 그때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서 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과 도랑의 물을 완전히 태워 버렸다. 이 놀랍고 두려운 광경을 목격한 백성은 이렇게 고백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 엘리야는 백성에게 명해서 바알 선지자 450명을 잡게 하고 모두 죽였다. 다시 엘리야가 기도하자 3년 동안 내리지 않았던 비가 내렸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완전히 태우는 이적과 3년 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내리는 사건을 목격했지만 아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왕궁으로 돌아간 아합은 벌어진 상황을 아내 이세벨에게 말하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왕상 19:1-2).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아합은 자신의 왕궁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자신에게 팔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나봇은 자기 조상의 유산을 팔 수 없다고 거절했다. 왜냐하면 율법에 따르면 토지는 그 가문의 기업이어서 타인에게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레 25:10, 23-28).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 속상한 아합이 이세벨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이세벨은 불량자를 사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하여 돌에 맞아 죽게 만들고,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해 버렸다(왕상 21장). 하나님은 다시 엘리야를 보내서 개들이 나봇이 흘린 피를 마셨던 것처럼 아합의 피를 마시게 할 뿐만 아니라 개들이 이세벨을 먹게 할 것이라고 심판을 선포하셨다. 이는 아람과의 전투에서 화살에 맞은 아합의 죽음(왕상 22:29-40)과 창밖으로 내던져진 이세벨의 죽음으로 그대로 성취되었다(왕하 9:30-37).
한편 북이스라엘의 아합에 필적할 만한 악한 왕이 남유다에도 있었다. 그는 므낫세다. 흥미롭게도 남유다의 가장 사악한 왕 므낫세는 남유다의 선한 왕 중 하나인 히스기야의 아들이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일으켰던 종교 개혁을 완전히 뒤엎었다. 열왕기서의 저자는 므낫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왕하 21:2-7). 므낫세는 선한 왕이며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아버지 히스기야를 뒤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랐다. 그런데 므낫세는 단순히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을 따르는 데서 머물지 않았다. 그는 아합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는 물론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기고 그것을 섬기는 제단을 여호와의 성전에 세웠으며,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했다(대하 33:2-7). 이 므낫세가 행한 가증한 일과 악은 심지어 이방인인 아모리 족속의 행위보다 더 심했다(왕하 21:11). 한마디로 므낫세는 이방인만도 못할 정도로 사악한 왕이었다.
보다 못한 하나님은 결국 예루살렘, 곧 남유다를 원수의 손에 넘기셔서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다.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왕하 21:13-15). 여기서 “잰 줄”과 “다림 보던 추”는 비뚤어지지 않았는지를 재는 건축 도구인데, 성경에서는 이 표현을 통해서 심판을 나타낸다. 즉 자와 추를 통해서 길이와 각도를 재듯이 개인과 나라를 재서 저지른 잘못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사악한 짓을 일삼았던 아합의 집을 줄과 추로 재서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다. 남유다에서는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다를 바 없었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사악했던 므낫세의 사악함을 보시고 재서 가늠함으로 이방 민족에게 남유다를 넘겨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