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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이단 사상 '양자론'과 '양태론'에 대하여

 

 

교회사에서 중요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논쟁되어온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모두 다 삼위일체론에서의 이단설입니다.

첫째는, 삼위일체론에서 그리스도와 관련한 '양자론' 이고
둘째는,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일체의 부정으로 등장한 단일신론의 하나인 '양태론'(양태론적 단일신론)입니다.

 

 

1. 삼위일체론(三位一體, Trinity)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신관은 유일신(唯一神)이시며,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하나님이십니다.1) 이러한 신관은 삼위일체론이란 용어로 설명하는데 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계시진리로 다루어지면서도 가장 난해한 신학으로 기독교 신학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많이 논쟁되어왔습니다. 그만큼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삼위일체론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서방신학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감독 터툴리안(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 196-212)입니다. 그는 '플락세아스에 반대하여' 에서 성부 고난설을 주장하는 이단의 지도자들과 그것을 추종하는 자들에 반대하면서 삼위일체의 본질의 단일성과 위격들의 구별성을 설명하면서 ‘한 실체-세 위격(Una sub-stantia-tres personae)’ 이라는 핵심 용어를 처음으로 라틴어로 표현하였습니다. 터툴리안을 비롯하여서 삼위일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크게 공헌한 교회 지도자들이 있는데 알렉산드리아 부감독 아타나시우스, 지금의 터키 동부에 해당하는 동방 카바도기아 지방의 세 신학자 가이사랴의 감독 바질과 그의 동생이자 닛사의 감독이었던 그레고리, 그리고 어거스틴입니다. 이 중에서 로마령 아프리카에 있던 도시 히포의 주교인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은 381년 공의회 이후에 활동한 서방교회의 사람으로서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최종적으로 정립하였습니다.

혹자는 삼위일체론을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사변적(思辨的)이라면서 사변신학(思辨神學)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은 이 용어가 직접적으로 성경에 사용되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증적으로 언급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되는 것과 관련해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더니”(마4:16)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말씀하실 때 하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와, 바울의 기원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가 그것입니다. 이 모두에서는 삼위일체란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의 세 인격이 함께 말씀되고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자체가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란 용어가 삼위일체론으로 교리화 된 것은 그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단과의 싸움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였습니다. 이단은 유대교적인 사상도 있는가 하면 헬라적인 사상을 통해서도 나타났습니다. 이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어리석은 말로 생각하는 유대적인 사고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말로 듣는 헬라적인 사고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반대하여 대적하는 사상으로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단(異端)이란 대적하는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을 인하여 각각 다른 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유1:4, 10-11)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끊임없이 이단과의 싸움에 있었으며, 이는 기독론(또는 기독론적 구원관)을 중심으로 한 삼위일체론이었습니다. 삼위일체 논쟁에는 항상 그리스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의 존재성과 인성, 신성에 대한 논쟁을 비롯하여서 야기된 기독론의 신학적 정립의 결과였습니다.

 

삼위일체론을 신조에 담아 선언한 니케야 회의(A.D. 325)는 A.D. 318년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인 아리우스가 그리스도를 "비존재로부터 피조 되었으며,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고 말하며 성자이신 그리스도는 성부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성부와 유사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감독 알렉산더와(이후 알렉산더가 죽음으로 아타나시우스로 이어짐) 대립함으로써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과연 창조된 피조물인가, 그리고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유사본질인가 아니면 동일본질인가 라는 기독론의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니케야회의는 이를 “성자는 피조된 것이 아니며, 성부와 동질이다"라고 규정하고 이를 니케야신조로 선언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공교회가 갖는 신학적 입장을 표명하게 된 것이며, 이로써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세우는 삼위일체론의 기초가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삼위일체론의 논쟁이 야기되었으며, 그때마다 교회회의를 통해 교회의 입장을 신조로 작성하여 선언하여왔습니다. 양태론자 사벨리우스와의 논쟁에서는 콘스탄틴노플회의(A.D. 381)에서, 양성론자인 네스토리우스와 단성론자인 유티케스와 가진 논쟁에서는 에베소회의(A.D. 431)를 거쳐 칼케톤회의(A.D. 451)에서 교회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교회회의들을 통해서는 양태론, 양성론, 단성론이 비성경적인 논리임을 확정지었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삼위일체론적으로 더욱 확고히 하면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인성과 신성)을 “혼잡없이, 변화없이, 분할없이, 분리없이” 한 위격 안에 연합하여 갖고 있다는 그리스도의 일위성(一位性)을 확정함으로써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논쟁을 매듭지었습니다.

그러나 교회회의들을 통해서 기독론적인 삼위일체론이 확립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논쟁이 더 이상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후로도 계속해서 지금까지도 논쟁은 야기되고 있고, 이는 성령론과도 관련해서 그 논쟁이 확대되어 온 상태입니다.


2. 양자론(養子論, Adoptianismus)에 대하여

삼위일체론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문제 삼은 초기의 이단은 가현론(假現論, Docetism)을 주장한 그노시스파(Gnosticism, 영지주의)와 양자론(養子論, Adoptianismus)을 주장한 에비온파(Ebionites)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노시스파의 가현론(가현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신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비온파의 양자론(양자설)은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인 인간인데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양자(養子)로 삼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현론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단지 인간의 몸의 형상을 취하여 나타난 것에 불과할 뿐인 것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수육(受肉)의 실제도 함께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자론은 가현론과는 반대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일 뿐이며, 하나님은 인간인 그리스도 예수님을 양자로 삼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해주셨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가현론과 양자론 이 둘은 모두다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이단설입니다.

이 중에서 양자론(Adoptianismus, 그리스도 양자설)에 대해 좀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양자론을 말한 사람은 비잔티움의 데오도투스(Theodotus)입니다. 그는 190년경 비잔티움으로부터 로마에 와서 양자론을 로마에 유포시켰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성령의 비호를 받아 처녀의 몸에 나신 인간 예수라는 것이며, 그 예수는 인간 중에서 가장 의로우시며 신앙심이 깊은 분이셨지만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성부의 능력으로 성령이 그 위에 내리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그에게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시는데 필요한 능력을 입혀주셨으며, 그에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님은 성부께로부터 받은 능력으로 기적들을 행하며 그리스도의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로마감독 빅토르(189-198)는 데오도투스를 출교시켰습니다.

데오도투스에 이어서 안디옥의 동북 유브라데스강변에 위치한 사모사타(Samosata)의 바울(paul, 200-275)이 같은 견해의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는 안디옥의 감독을 지냈는데 260-270년경에 데오도투스의 주장과 견해를 같이하면서, 로고스(λοgος)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와 같으며, 따로 제2의 인격을 갖춘 것이 아니라면서, 신적인 지혜에 감동된 보통 사람으로 완전하게 도덕적으로 생활한 분인데 세례를 통해 양자의 영을 받았으며 지속적인 이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268년 안디옥회의에서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데오도투스에 이어서 사모사타의 바울이 주장하는 양자론은 사모사타의 바울의 제자인 안디옥의 루키안으로 잇게 되며, 또한 그의 제자인 아리우스(Arius, 256-336)로 잇게 되어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던 성자를 창조하셨으며, 예수님은 그 성자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도구로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난 피조물로서 성령에 충만한 초자연적 인물이나 성부와 동일본질이 아니며,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존재했던 분으로 성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의 창조 사역에 참여하였으며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보다는 열등하신 분이라는 사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아리우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감독 알렉산더는 320년에 이집트지역 감독들이 모인 회의에서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의 장로직을 파직한 후 출교시켰습니다.

그러나 아리우스의 사상은 양자론을 가장 잘 발전시킨 것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서 오랫동안 그의 사상을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아리안’(Arian)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사상을 가리켜서 ‘아리안주의’(Arianism)라고 합니다. 이는 당시 로마교회 내에서 중요하고도 큰 신학 논쟁으로 계속되었기 때문에 325년 니케야회의를 비롯해서 381년 콘스탄틴노플회의, 431년 에베소회의, 451년 칼케톤회의에 이르기까지 오랜 교회회의를 통해서 계속해서 교회가 가진 신학적 입장을 정립하고 신앙을 표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명에서 양자론은 그리스도의 일위성(一位性)을 부정하는 것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칼케돈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교회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신조로 작성하여 공포함으로써 공식화하였는데, “그리스도는 혼잡없이, 변화없이, 분할없이, 분리없이 이성(二性)을 가지신 것으로 인정되며, 그 성(性)들의 구분이 연합에 의해 제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 성(性)의 특징이 보존되고 한 위(인격)와 한 실체로 결합(일치)하여 이위(二位)로 나누이거나 구분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양자론은 8세기에 이르러서도 톨레도의 대주교 엘리판두스의 주장에 의해서 여전히 나타납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성과 신성의 두 본성을 구분하면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인 신적인 그리스도와 구별해서 '양자'(養子)라고 불렀습니다. 즉, ‘말씀’에 의해서 마리아에게 수태되어 태어난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인 신적인 그리스도가 아니고, 다만 하나님께서 아들 삼으신 양자에 불과하다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위(一位)에 이성(二性)이 연합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고로 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신비입니다. 이 때문에 교회사에서 종종 인간의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서 부정되어 왔습니다. 이런 그들에 대해 교회는 그 신비를 규명하여서 설명하려고 시도하지를 않고 다만, 이단적인 견해들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분명히 진술함으로써 그리스도께 가진 신앙을 수호하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3. 양태론(樣態論, modelism)에 대하여

삼위일체가 언제나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두 가지에 있어서 입니다. 하나는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존재성과 일위성에 관하여 이단 사상이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삼위일체에서 삼위,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위격에 관한 문제입니다. 삼위일체에서 ‘일체’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어떻게 한 분이시냐는 논쟁을 갖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양태론(樣態論, modelism)의 이단 사상이 있어왔습니다. 보통은 양태론이라고 말하지만 ‘단일신론적 양태론’, 또는 ‘양태론적 단일신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일신론’(單一神論)은 monarchianism 입니다. 단일신론에서 ‘단일’(單一)은 단 하나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에서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라는 것이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단일신론적 양태론’에서 말하는 것이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단일신론은 그런 의미에서의 용어가 아니고 ‘군주론’(君主論)의 개념에서의 단일신론입니다. 그래서 단일신론을 말하는 단어인 monarchianism은 ‘군주’라는 뜻을 가진 ‘monarch’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일신론적 양태론’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데, 이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하나님의 상관관계는 성부 하나님께서 군주처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에 종속되어 있는 개념이 됩니다. 그래서 ‘단일신론적 양태론’은 ‘군주론적 양태론’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러한 주장의 양태론을 제일 처음 말한 사람은 프락세아스(Praxeas)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프락세아스는 로마도시에 나타나 당시에 유행하던 양자론에 반대하여 양태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창조 때에는 성부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으며, 구원을 이루실 때는 성자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고, 그리고 구원 사역을 성취해 가실 때에는 성령 하나님으로 나타나심으로써 한 분 하나님이 세 가지의 양태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 분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이 존재하시는 것인데 단지 세 가지의 양태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양태로 나타난 한 분 하나님을 말하였습니다.

프락세아스에 이어서 ‘노에투스’, ‘에피고누스’, ‘클레오메네스’ 라는 사람들이 그의 양태론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이들은 성부 하나님이 곧 성자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며 죽음을 당하신 고난은 곧 성부 하나님이 고통을 받으며 죽음을 당하시는 고난이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부 고난설’을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양태론이 가장 발전한 때는 로마감독 제피리누스와 칼리스투스 때에 활약했던 사벨리우스(Sabellius)라는 사람에 의해서입니다. 양태론을 ‘사벨리안주의’(Sabellianism)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은 하는 것은 그에 의해서 양태론이 가장 체계적으로 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벨리우스는 3세기 중반에 한 분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은 세 이름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서 삼위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 다른 이름을 가지고 다른 사역의 형태를 나타낼 뿐으로, 구약과 신약과 교회 시대의 세 시기를 통하여 각각 자신을 계시하신 이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구약의 창조주로서, 아들은 신약의 구속주로서, 성령은 오순절 이후 현시(現時)에 구원을 이루시는 분으로서 계시되어지는 일인격(一人格)에 의해서 취하여진 세 역할의 이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단일(單一, monad)로서 하나님의 존재 내에서는 구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창조와 구속의 세계와의 관계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각각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양식이 구별됩니다. 하나님이 세 가지 이름과 양식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가령 이는 태양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설명이 되었는데 태양이란 실체의 본체가 있는데 이것은 성부이고 태양에서 비취는 빛은 성자이고 태양에서 나오는 열은 성령으로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닌 각각 다른 양태로 나타난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또한 물로도 비유적으로 설명되는데 액체인 물이 얼면 고체인 얼음으로 모양을 나타내고 얼음은 또한 녹으며 기체인 수증기가 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이는 사람을 가지고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한 남자가 집에서는 한 아내의 남편이나 자녀들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되고(또는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 되고) 직장인 회사에서는 사원으로 각각 그 모양을 달리하나 사실은 같은 한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도 한 분이신데 그 사역에 따라서 양태를 달리하는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적 설명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과일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데 사과와 사과 조각과 사과즙으로도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전기를 가지고도 양태론적으로 설명하는데 전기가 형광등을 통해서 빛으로 나타나며 이 빛은 또한 뜨거운 열로도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들은 모두다 다 삼위일체를 인간의 이성으로 합리적인 생각에 의해서 설명하려다 보니 양태론으로 삼위일체를 말하는 이단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은 이단설로 정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까지 교회에 깊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이는 합리주의적 사고를 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신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기독교장로교회가 1972년에 내 놓은 신앙선언서 제 1장 1절에는 양태론에 의한 삼위일체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거룩하신 아버지로 나타나셨고 계시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아들로 나타나셨고, 또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에서 성령으로 나타나셨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세 품격에서 만나며 그 하나의 품격에서 다른 두 품격과 만난다.”

그러나 사실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신자들에게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에서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흔히 범하고 있는 일입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사람을 비유로 해서 양태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필자도 글을 통해서 보기도 하였고 설교를 통해서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4. 성경에서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말하는가?

삼위일체론은 이단설과의 논쟁을 거치면서 확립되며 신학(神學, Theology)의 한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이는 또한 기독교에서 신론의 주요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성경을 근거로 해서 작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신학에서의 삼위일체론과 성경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성경에 근거한 논점으로 하나님을 삼위일체론을 규명하여서 그 개념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여 왔습니다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성경은 어떻게 말해왔는지를 말하는지는 못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 아들과 성령, 곧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이분은 ‘하나’이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예수님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아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요17:1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요 16:28).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안에’ 계시는 관계성이며,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요14:10-11)

성령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주실 것이 약속되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하나님을 삼위일체론적으로 설명하여 그 존재를 규명하려다 보니 자신들의 주장을 납득시키려 하는 이런 저런 무리한 설명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사에서 교회가 가져온 신론(神論)에서의 삼위일체론을 잘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어떤 신학 사상에서 하나님을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하여왔는지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에는 그에 대한 규명을 성경적 관점에서 해나간 것에 바른 이해를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그 섭리에 따른 존재론적으로, 계시론적으로, 구속론적으로 가져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삼위일체론으로 설명하여서 입증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증거 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우리의 이성적 사고에 의한 이해에 의해서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이시고, 하나님이 예수님이시며,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 믿음은 계시적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알게 해 주신 것만큼 아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알게 해 주시지 않은 것은 우리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거기에 우리의 믿음이 있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단지 그 존재의 본질(동등본질이신 일체)과 관계성(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보내심을 받고 성령은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삼위가 갖는 관계성)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의한 언약적 구속으로만 계시해 주시고 있지, 그 존재의 본질이 어떻고 관계성이 어떻다고 하는 일체의 해석과 그에 따른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에 대한 어떤 설명이 없이 다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씀하여 주시고 있는 것을 우리가 이런 저런 설명을 나름대로 자기 이해로 견해를 말해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설(說)이 되고 맙니다.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설(說)이 아닌 하나님의 자기 계시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교회가 삼위일체론으로 규명하여서 설명해 오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며, 그래서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생긴 양자론과 양태론의 이단설에 주의를 갖고 경계를 해야 할 것이나, 우리의 믿음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각주>

1) 유일신(唯一神) 사상은 히브리인들의 신관이요 다신론 사상에 있는 이방종교와 차별을 갖습니다. 쉐마를 살펴보면 유일신은 때로는 복수형인 ‘야훼 엘로힘’이 사용되고 있는가 하면, 단수형인 ‘야훼 에하드’도 사용되고 있어서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전능자 삼위 하나님의 개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Good)은 복수형이 되며, ‘여호와’는 유일하신 하나님, 곧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말할 때 복수형의 ‘엘로힘’이 사용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에하드’라는 히브리어 복합단수가 사용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의 하나님 자기 계시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취하여 하와를 창조하실 때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찌라”(창2:24) 라고 선언하셨는데, 여기서의 ‘한 몸’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엘가토’로서 ‘에하드’와 동의어입니다. ‘엘로힘’은 복수형이며, ‘에하드’는 복합단수이므로, 이러한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히브리인의 신관인 유일신 사상에는 기독교의 신학 사상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게 되는 하나이면서 셋, 또한 셋이면서 하나인 단복수의 특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면서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다 알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신비에 속한 것이기에 그것은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의 알게해 주심에 의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 갖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이 글은 개혁주의신앙에서 옮겨와 일부분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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