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사랑한다. 아니 참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어느 성경이 성경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곤란해진다. 많은 신자의 경우 성경이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성경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대개 번역된 성경에 불과하다. 가령 한국 크리스천의 경우라면, 오늘 흔히 교회 강단에서 읽고, 널리 보급되어 있는 개역 한글판(대한성서공회 1961년판)을 성경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의 크리스천들은 또 그들이 흔히 읽고 사용하는 번역 성경을 성경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통계에 의하면 성경은 2,000여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그 번역들은 조금씩은 내용이 다르고 의미도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그렇게 다른 것은 성경을 번역한 언어가 다르고, 번역자들이 다르고, 번역된 시대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일 큰 원인은 번역 대본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영어 성경을 대본으로 삼는 경우라든가, 독일어나, 불어나, 라틴어 성경을 대본으로 하고 번역하는 등의 중역(重譯)의 경우에도 많은 차이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가령 원어 성경을 대본으로 하고 번역하는 경우일지라도, 원어 성경의 종류가 하도 많아서 그 많은 상이한 원문 성경을 대본으로 한 번역 성경들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존귀한 것으로 믿기에, 힘이 닿는 데까지 그것의 원본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것을 대본으로 해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 학자들의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나타난 구약 원문 성경이 바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iblia Hebraica Stuttgartencia 제4판 1990)이며, 신약 원문 성경이 네슬레-알란트(Nestle-Aland)의 신약성경 그리스어(NOVUM TESTAMENTUM GRAECE 27판, 1993. 이하 NTG로)와 독일성서공회(Deutsche Bibelgesellschaft)와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ies. 이하 UBS로)가 출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The Greek New Testament 제4판, 1993. 이하 GNT로)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는 이러한 최첨단의 비평판(批評版) 성경을 대본으로 해서 성경을 번역했고 또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위에서 말한 가장 정확한 원문 성경을 대본으로 해서 번역한 것이 표준새번역(1993)이다.
이제 범위를 신약 성경으로 제한하여 생각해 보자. 위에서 언급한 네슬레-알란트(Nestle-Aland)의 NTG나 UBS의 GNT라는 결정적 비평판 성경이 나오기까지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활자인쇄술이 발명(A.D. 1450)되기 이전의 필사본 시대와 그 이후의 인쇄본 시대로 구분된다(인쇄본 시대에도 손으로 쓴 사본들이 몇 개 있다. 예컨대 소문자 사본 1884, 2318). 신약 성경 원본은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으며(구약의 경우도 같다), 사본만 해도 5,500여 개가 있는데, 그것이 하나도 같지를 않다.
인쇄술이 발명된 이래 몇몇 사람이 후기의 몇 개의 사본을 비교하면서 자기 나름의 신약 원어 성경을 인쇄 출판한 것들이 수십 종류 남아 있다. 그 후에 헌신적인 학자들이 여러 곳에서 사본들을 발굴 혹은 발견하여 비교 연구하면서, 또 많은 비평판 신약 성경을 내놓은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과 역사 속에, 17세기 초의 인쇄업자였던 엘제비어(Elzevir) 형제가 신약 원어 성경을 출판하면서 초판을 1624년에 내었고, 이어 제2판을 1633년에 내었다. 그 때 그 제2판을 선전하면서 자기들이 낸 신약 성경은 "모두가 수락하는 책"(textum …… ab omnibus receptum)이라고 광고를 내었고, 그 때부터 그 신약 성경을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 앞에 나온 것이나 그 후에 나온 여러 인쇄본 성경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1982년에 [새흠정역성서](The New King James Version)와 The Greek New Testament according to the Majority Text가 트리니티 성서공회(Trinitarian Bible Society)에 의해서 출판됨으로써 스크라이브너(F. H. A. Scrivener)의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 according to the text followed in the Authorized Version(Cambridge, 1881)이 새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게 됐고, 이렇게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가 재판(再版)되면서, 미국을 위시하여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그것들을 대본으로 하여 새로운 번역(1990년에 [새 성경]이 출판됨)을 시도하였고, 소위 '말씀보존학회'라는 단체가 주동이 되어 대대적으로 기존 성경 번역본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번역 대본인 [새흠정역성서]와 그것의 신약 성경 대본인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와 그것이 속해 있는 비잔틴 전통의 본문(그들은 그것을 '다수본문Majority Text'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이 유일한 영감된 번역이요 또 본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외의 것은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하는 사례가 생겼다. 그래서 필자는 '텍스투스 레셉투스'의 정체를 밝혀서 그것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게 할 뿐 아니라, 신약 원문 성경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얻어보려는 것이다.
2.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의 의미 '텍스투스 레셉투스'라는 말은 라틴(Latin)어 술어이다. '텍스투스'(textus)는 원래 망(網 web)을 의미하고, 따라서 직물(織物), 구조물(構造物)을 기리킨다. 거기서부터 파생되어 생각이 얽히고 짜여 있는 글을 가리키게 됐다. '레셉투스'(receptus)는 레시삐오(recipio)라는 동사의 수동분사로서 '받아진' '수락된' '용납된'(accepted, received)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그 두 단어를 합하면 '공인된 글'(Received Text)이라는 말이 될 것이고 좀더 풀어서 '공인된 본문'이란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술어의 유래 '텍스투스 레셉투스'라는 말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한 보통명사지만 그것이 지금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특정 문헌을 지칭하는 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미 1번 항목에서 언급한 대로 신약 원문 성경 인쇄본들이 1514년 이래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160여 종류 발행되는 과정에 있어서, 라이덴(Leiden)의 기업적 두뇌를 가진 인쇄업자 보나벤투라 엘제비어(Bonaventure Elzevir)와 아브라함 엘제비어(Abraham Elzevir)라는 두 형제가 베자(Beza)의 인쇄본(1565)을 거의 닮은 인쇄본을 1624년에 출판했고, 1633에 둘째 판을 내면서 그 서문에다가 그 책을 자랑하는 글을 아래와 같이 넣었다.
"Textum ergo habes, nunc ab omnibus receptum: in quo nihl immutatum aut corruptum damus."(Therefore you [dear reader] now have the text received by all, in which we give nothing changed or corrupted = 그러므로 귀하 [친애하는 독자]는 이제 모두에 의해서 수락된 성경을 가지게 ?습니다. 우리는 본문에다 변경되거나 잘못된 것을 결코 넣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엘제비어(Elzevir) 형제가 자기들의 책을 많이 팔기 위하여 상술적(商術的)으로 사용한 말 Textum. . .Receptum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그 텍스트 계통의 인쇄본이 100여 종류가 출판되는 동안, 그 인쇄본들을 "유일한 참 본문"(the only true text) 또는 "표준 성경"(Standard text)이라는 의미로 수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물론 원본 신약 성경이 아니고, 많은 신약 성경 인쇄본 중의 하나를 가리킨 것이며, 1881년 전까지의 구라파의 많은 번역 성경의 대본으로 사용된 텍스트 계통을 통털어 '텍스투스 레셉투스'라 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과연 실질적으로 얼마나 원본에 충실하며, 과연 "유일한 참 본문"이라는 이름을 가질 만한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인쇄업자라면 누구나 자기가 출판하는 책이 많이 팔리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온갖 그럴 듯한 선전을 하기 마련이다. 1633년에 엘제비어 형제가 제2판 신약 원문 성경을 출판하면서 그것이 많이 팔리기 위해서 거창하게 쓴 선전문의 일부를 마치 하나님이 주신 명사(名詞)인 양 받아들여 온 많은 사람들의 처사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선전에 현혹되고 있기에 '텍스투스 레셉투스'의 정체를 밝혀 그들의 꼬임에서 풀려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텍스투스 레셉투스'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많은 성경들 중, 유독 [영어흠정역]만을 유일 무이의 영감된 번역이라고 고집하고, 그 전과 후에 번역들은 하나 같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까지 하나님의 많은 충성된 종들이 이룩한 공로와 노고를 무효화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기에, 어째서 [영어흠정역]만이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인과 미국인 중, 일부 광신자들의 제국주의적 우월감과, 그들을 맹종하는 사대주의(事大主義)적 신자들의 어리석음이 [영어흠정역]과 텍스투스 레셉투스를 우상화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대다수 신자들의 정상적 사고와 판단을 정죄하고 있기에, 정견(定見)을 밝히고, 극단주의자들의 편견과 오해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4.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성경이 생겨나기까지의 역사 4.1. 신약 성경 원본 기록과 그 보존 과정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은 여러 사람의 글이 모인 것으로, 그 여러 글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 저자들은 각기 교양과 신앙 경력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영감을 통하여 각기 성경을 쓸 때, 특정 장소와 시간에, 자기들이 얻을 수 있는 종이(파피루스 papyrus)와 붓과 잉크를 가지고 썼다. 그들이 글을 쓸 때, 그 글이 성경의 일부분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며, 또 그들이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며, 종이나 붓이나 잉크는 값이 비싸고 귀한 것이어서, 특별한 각오와 결심이 없이는 글을 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즉 더 비싼 가죽 종이(皮紙 parchment, vellum)를 용지로 사용할 만큼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영구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만큼 귀중한 글을 쓴다는 의식도 없었기에, 그 당시 보통 얻을 수 있는 용지인 파피루스(papyrus =paper)를 사용했던 것이다.
파피루스라는 종이는 애굽 나일 강 가나 습지(濕地)에서 많이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植物)의 내피를, 펴서, 가로 한 겹 세로 한 겹 놓고, 눌러서 말린 것으로, 그 지대의 사람들이 고대로부터 흔히 사용하던 필기 용지였다. 긴 글을 쓸 때에는 보통 일 척(一 尺) 평방 가량의 것을 몇 개라도 이어서 긴 두루마리를 만들어, 거기에 쓰고, 그것을 두루마리로 말아서 수신인(受信人)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코이네(koine=?????) 헬라어라는 평범하고도 통속적인 사람의 말로 기록된 동시에, 그 시대의 가장 평범한 필기 용지인 파피루스라는 종이에 기록됐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파피루스는 이른바 초지(草紙)여서, 그리고 한국이 자랑하는 한지(韓紙)와 같이 견고하고 지구성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쉽게 끊어지고 꺽어지고 부스러지기가 쉬웠다.
가령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전서를 써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냈을 때의 일을 상상해 보자. 그 편지는 매 주일마다, 아니 매일 그 교회 회원들에게 읽혀졌을 것이고, 따라서 오래지 않아 그 편지는 때가 묻거나, 부러지거나, 끊어지거나 해서, 그것을 새 용지에 옮겨 써야 할 처지가 됐을 것이다. 그것을 옮겨 쓰는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정성을 다해서, 원본과 차이가 없는 것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헬라어 문자가 대문자들만 있었고, 띄어쓰기라는 제도가 없었다. 그리고 활자판이 아니고 손으로 쓰는 것이어서 같은 글자라도 모양이 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옮겨 쓰는 사람이 원본을 100% 그대로 옮겨 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말씀이 연약한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아무 손상도 받지 않고 그 원본이 고스란히 오늘까지 보존되도록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원본을 그대로 보존하시지 않으신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데살로니가 교회에 사도 바울의 편지가 왔다는 소문을 들은 빌립보 교회는 데살로니가에 온 바울의 편지를 읽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그 편지를 베껴오도록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간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단계에서만 보더라도 원본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필사본이 다르고, 빌립보 교회가 만든 필사본이 또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신약 성경 27권의글이 우선은 파피루스에 기록되었고, 오래지 않아 그것들의 필사본이 만들어져야만 했고, 원본들은 얼마 안 가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원본의 대를 잇는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점점 많아져서, 각 교회에서 원본 대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신약 성경의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신약 성경의 일부분 또는 몇 책이 함께 필사(筆寫)되어(어떤 것은 복음서만, 어떤 것은 바울서신만, 어떤 것은 사도행전만, 어떤 것은 계시록만, 어떤 것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같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역시 그 용지의 나약성과 보존 기술의 취약성 때문에, 아깝게도 거의 대부분이 자취를 감추었다. 필사본 중 가장 낡은 것이 2세기 상반기(A.D. 125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위 P52가 있고, 오늘까지 발견된 98개의 파피루스 사본들 중에는, 제2세기의 것이 한두 개(P90 ,P98) 더 있고, 나머지는 제3세기로부터 제8세기 어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많은 교회가 이렇게 파피루스 사본을 성경으로 읽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파피루스는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계속 필사본이 만들어지면서 낡은 것은 자연히 사라져간 것이다.
현존하는 90여 개의 신약 성경 파피루스 사본들이 내용에 있어서 꼭 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며, 다소간의 차이와 불일치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곧 필사자인 인간들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인간의 실수와 때로는 고의적 변개(變改)로 인해서 성경은 초창기부터 원본과는 조금 다른 모양으로(비록 사소한 것이지만)전달되어 온 것이다.
4.2. 대문자 사본(Uncials)과 소문자 사본(Minuscules) 성경의 귀중성을 깨닫는 교회들은 파피루스 사본들의 나약함과 지구성이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지구성이 있고 견고한 가죽 종이로 파피루스를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제4세기부터는 가죽으로 된 용지를 사용하여 성경을 필사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파피루스 사본을 사용하는 것보다 몇 배의 지구성과 편리함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대문자 사본의 수가 300개나 되니, 그 수효로 보아서도 98개에 불과하는 파피루스 신약 사본보다 훨씬 지구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문자 사본은 용지의 값이 비싸기 때문에 좀체로 그것을 만들기가 어려웠을 것이며, 대문자를 가지고 썼기 때문에 단위 지면에 기재되는 내용이 비교적 적으므로 비경제적이었다. 이것이 지금 남아 있는 대문자 사본의 수가 적은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떤 교회에서는 계속 파피루스 사본을 사용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에서는(아마도 부유한 교회) 대문자 가죽 사본을 사용하였다. 결국 두 가지 종류의 사본이 공존하는 시대가 제 7세기 내지 제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교회의 수가 점점 늘고, 성경을 필요로 하는 교회나 수도원이나 개인들이 급격히 많아졌기 때문에, 소문자와 필기체가 고안되었고, 가죽 종이를 사용하되, 많은 내용을 빠른 시간에 필사하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1450년에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즉 제9세기 이래 15세기 중엽까지, 많은 소문자 사본이 만들어졌고, 특이 교회가 많은 지방에서는 많은 소문자 사본들이 필사되어 사용되었으며, 따라서 그 지방이 가지고 있던 사본들이 대거 필사(筆寫)되어, 비슷한 종류의 사본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2,800여 개의 소문자 사본들은 제9세기 이후의 것들로서, 원본으로부터 따진다면 몇 십대 후손인 사본들을 필사한 것들이며, 서로 상당한 차이를 나타낼 뿐 아니라, 고대 사본들과 비교한다면 많은 변개(變改)가 있음을 볼 수 있다.
4.3. 성경일표(聖經日課表 Lectionaries) 기독교가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예배의식도 발전하였고, 성경을 균형 있게 봉독하기 위하여, 성경의 여러 부분을 매일 또는 매 주일로 나누어 읽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하루하루 읽어야 할 성경 부분들을 일별(日別)로, 또는 주일별(主日別)로 나누어 기록한 것을 "성경일과표"(聖經日課表 Lectionary)라고 한다. 예컨대 대강절(待降節 Advent) 첫 주일에 사2:1-5; 시122; 롬13:11-14; 마24:36-44를 읽기로 하고 그것들을 한 종이에 모아서 필사본을 만든다. 이런 일과표가 역시 사본의 일종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과표도 약 2,000개가 남아 있어서 원문 비평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것들도 역시 그 각자가 필사되던 시대와 장소에 있던 사본들을 전사(轉寫)한 것으로서, 그것들의 대본(臺本)의 경향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으며, 필사 과정에 또 다른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4.4. 교부들의 인용구많은 교부(church fathers 敎父)들이 글을 쓰면서 자기들이 볼 수 있었거나,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사본의 내용을 인용한 것들이 있다. 비록 짤막한 인용일지라도 그들의 인용은 역시 그가 사용한 사본의 필사본으로서, 본문 비평가들이 원본을 찾아가는 과정에 일조(一助)가 될 수 있다. 교부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장소와 시대를 반영하며, 그 지대에 유포됐던 사본들의 성격을 보여주거나 암시해 줄 수 있다. 교부들은 자기가 가진 사본을 자기의 글에 인용하면서 실수로 잘못 전사할 수도 있고, 고의로 수정하는 일도 있었다.
4.5. 고대 역본들(Ancient Versions) 성경이 처음에는 원어로 유포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신자들의 모국어 또는 상용어(常用語)로 번역되는 일이 생겼다. 구약 성경이 기원전 3세기부터 애굽의 알렉잔드리아의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코이네 헬라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기원전 6세기부터 구약 성경이 아람어로 옮겨져 타르굼(Targum)이 생긴 것도 그 예이다.
기독교가 로마 사회 전역에 퍼져 나가면서, 자연히 성경이 각 지방의 언어로 번역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선은 선교사들이 각 지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즉 그들에게 복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코이네 헬라어보다도, 더 친숙하고, 더 알아듣기 쉬운 지방말로 성경을 옮겼던 것이다.
우선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시리아(Syria)에서 시리아어 번역이 시도되었고, 다음은 라틴어, 그리고 이집트의 콥틱어로 번역되었다. 그 뒤를 이어 고트(Gothic)역, 아르메니아역(Armenian), 죠지아역(Georgian), 에티오피아역(Ethiopic), 고대 슬라브역(The Old Slavonic), 아라비아역(Arabic) 등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런 고대 역본들은 역시 그 번역이 이루어진 시대와 장소에서 얻을 수 있었던 사본들을 대본으로 해서 번역된 것이므로, 그 역본들을 검토하면 그 배후에 있는 사본들의 성격과 경향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고대 역본들은 원본을 찾아가는 노력에 많은 도움을 준다.
4.6. 신약 성경 사본들의 지방적 경향 기독교가 지중해 연안 각 지방으로 번져 나갈 때, 자연히 신약 성경도 사본이 되어 각 지방에서 읽혀졌다. 교회가 왕성하여 기독교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성경의 수요(需要)도 늘었을 것이고, 따라서 사본을 만드는 일도 활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발전사(發展史)를 개관할 때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북 아프리카(칼테지), 로마, 마게도니아(콘스탄티노플), 소아시아(에베소)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대별(大別)할 수 있으며, 교회 활동이 그런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고 뚜렷한 특색을 가지고 발전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 지방에서 만들어져 사용되던 사본들도 자연히 그 지방에 어울리는 성격을 지니게 됐다고 보인다.
초창기부터 원본 성경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지방마다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공통되는 것은 필사자들이 다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필사자의 실수나 고의적 변개에 의해서, 사본들이 예외없이 원본과는 차이가 있는 것들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5,500여 개의 신약 사본들이 어느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소위 다수 본문(Majority Text)이라고 해서 절대 다수의 신약 사본이 '텍스투스 레셉투스'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그 다수를 점하고 있는 비잔틴 계통의 사본들도 서로 어느 하나도 꼭 같지를 않은 것이 사실이어서, 어느 하나는 원본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필사한 사본은 그 어떤 것을 막론하고, 조금씩은 다 원본에서부터 이탈되고 달라졌다고 말해야 양심적이다.
다만 그 많은 사본들이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지며, 경향에 있어서 서로 유사한 것들을 분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본문 비평가들의 결론이다.
최근의 결론을 소개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신약 사본의 본문형태(text-type)가 네 가지로 크게 나누인다는 것이다.
(1)애굽 형(알렉잔드리아 형),
(2)서방 형(Western)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3)(전부터 일컬어) 가이사랴 형이라고 하는 것,
(4)비잔틴 형(Byzantine) 등이다.
엘돈 제이 엡(Eldon Jay Epp)은 다른 기호를 가지고 그것들을 나타낸다. 즉
(1)A-텍스트("수락된" "accepted"= Byzantine),
(2)B-텍스트(Codex B =P75 -B, 혹은 이집트 형),
(3)C-텍스트(B와 D 중간 =P45 -Codex W(종전의 가이사랴 형),
(4)D-텍스트(Codex D, 혹은 서방 형"western")로 분류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A-텍스트(Byzantine)는 제4세기부터 나타난 것으로, 그것을 지지하는 고대 파피루스 사본이나 대문자 사본이 하나도 없다.
즉 제4세기 이전에 필사된 파피루스나 대문자 사본 중 A-텍스트를 뒷받침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다른 세 타입의 텍스트들(B, C, D 텍스트)은 A.D. 200년 경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이며 적어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파피루스 사본들이 그것들을 지지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1) 거의 초기부터 신약 성경 사본이 지방에 따라서 특이한 경향성을 가지게 되었고, 대별하면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2) 그리고 B, C, D 형의 본문이 A형의 본문보다 먼저 생겨난 것이라는 것, 즉 A 형의 본문은 연대적으로 가장 뒤에 형성된 것임을 말해 준다.
그 네 가지 형의 본문들 중 어느 하나, 즉 A형은, 일부 무비판적인 맹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원본으로부터 조금도 변개된 것이 없이 순정(純正)하게 남아 있다고 하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모두가 다 원본에서 이탈했고, 그 변개의 도수가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가장 변개가 심한가, 그리고 변개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원본에 가까운 본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요한 일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성경의 원본을 보존하실 능력도 가지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원본들을 남겨두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없는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일부 맹신자들이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당신의 말씀을 무흠하게 보존하셨을 것이고, 비잔틴 텍스트(Byzantine Text, Majority Text)가 바로 그것이라고 억지를 쓴다. 아무런 근거나 증거도 없는 거짓말을 가지고 많은 순진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성경 사본은 필사자들의 각별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원본으로부터 다소간의 변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5,500여 개의 신약 사본들이 하나도 예외가 없이 다 서로 다르며, 따라서 원본과는 차이가 있는데, 그런 대로 가장 원본에 가까운 것이 어느 것이냐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사본 형성 과정 하나님의 말씀의 귀중성을 느끼는 필사자들이기에, 일부러 어떤 부분을 빼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실수로 빠뜨리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의 경우는 필사자가 설명을 붙이거나, 의견을 붙이거나 해서 점점 길어지고 늘어나는 것이 상례(常例)였다. 그래서 원문 비평의 가장 초보적 원칙은 "짧은 읽기(reading)가 긴 읽기보다 우수하다"이다. 그리고 난해한 부분은 필사자나 독자가 알기 쉽게 풀이하여 바꾸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읽기가 쉬운 읽기보다 우수하다"는 원칙을 적용하게 된다. 그리고 사본은 그 대 수(代 數)가 늘수록 점점 더 원본으로부터 멀어지고 변개가 늘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사본의 연대를 무시할 수 없다.
즉 오래된 사본일수록 가치가 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비평 원칙들을 적용하며 검토한 결과 알렉산드리아 형, 즉 애굽 형(Neutral text, ?, B, Sahidic, Boharic 등)의 본문이 가장 권위가 있다는 것이 정평이다. Western text와 Caesarean text도 나름대로 특색을 가지면서 상당한 변개와 첨가를 가지고 있지만, 제4세기 이후에 생겨난 비잔틴 텍스트(Byzantine text)는 가장 많은 변개와 첨가를 가지고 있어서, 최악의 사본군(寫本群)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4.7. 인쇄본(印刷本) 시대 문예부흥(renaissance)으로 인해서 눈을 뜨게 된 구라파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원어로 읽으려는 열심이 생겼다.
1450년 독일인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활자 인쇄술을 발명함으로써, 성경의 사본 시대는 거의 막이 내리고, 인쇄된 성경을 만들려는 경쟁이 생겼으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인쇄된 성경을 손쉽게 구하여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중세기 기독교가 라틴역 불가타(Vulgata)를 공인된 성경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헬라어 신약 사본은 특수한 사람들만의 관심거리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문예부흥의 바람이 불고, 인쇄술이 발명됨으로 인해서, 원어 성경 인쇄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스페인의 주교 히메네스(Francisco Ximenes de Cisneros, 1437-1517)의 창안으로 이루어진 소위 [여러번역대조성서](Complutensian Polyglot)라는 방대한 대조(對照) 성경의 제5권에 신약 성경 헬라어 원문이 실렸다. 그것이 1514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레오(Leo) 10세 교황의 재가를 얻은 것은 1520년 이후이며,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1522년까지는 그것이 세상에 공개되지를 않았었다.
'대조성서'(Polyglot) 속에 실린 신약 헬라어 성경이 어떤 사본들을 배경으로 가진 것인지를 확실히 알 도리가 없다. 히메네스(Ximenes)가 레오(Leo) 10세 교황에게 그 성경을 봉헌하면서,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사본들을 얻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밝히고,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로 헬라어 사본들로 말하자면 각하의 덕택이 큽니다. 각하께서 사도 도서관(Apostolic Library)에 있는 구약과 신약의 매우 오래된 사본(Codex)들을 보내주셨으니 말입니다. 이 작업에 있어서 그 사본들이 우리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히메네스(Ximenes)는 로마에 있던 사본들을 이용했다는 말이 되는데, 그 사본들이 어떤 것인지, 몇 개나 되는지, 어떤 성격의 것인지 등을 알 수 없다.
[여러번역대조](Complutensian) 헬라어 본문이 인쇄본으로서는 제일 먼저 된 것이지만, 1522년까지는 그것이 세상에 발표되지 못했었고, 그 틈을 타서 에라스무스(Erasmus) 헬라어 성경이 먼저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됐다.
스위스 바젤의 유명한 출판업자였던 요한 프로벤(Johann Froben)이 스페인에서 진행 중인 Polyglot Bible 소식을 듣자, 그것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자기가 선수(先手)를 쳐서 신약 성경 헬라어 인쇄본을 출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1514년 8월에 그 곳을 방문 중이던 화란의 유명한 학자요 휴머니스트였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를 설복시켰다.
상당한 보수를 약속받은 에라스무스는 1515년 6월에 다시 바젤에 가서, 인쇄소의 조판을 위하여 신약 성경 사본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를 포함한 사본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몇 개의 부분적인 사본들을 참고하며, 나름대로의 수정을 가하여 인쇄소에 넘겼다.
메츠거(Bruce M. Metzger) 박사의 말에 의하면, 에라스무스가 이용한 사본은 바젤 대학 도서관에 있는, 별로 신빙성이 없는 두 개의 사본들이었는데, 하나는 복음서 사본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행전과 서신 사본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다 12세기의 것들이었다. 에라스무스는 그 밖의 두세 개의 사본들과 비교하면서 교정을 했다는 것이다.
계시록의 경우는, 그가 입수한 사본이 12세기 것 하나뿐이었고, 자기 친구에게서 빌린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 사본은 마지막 한 장이 떨어져 나가, 여섯 절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라틴 불가타 성경을 대본으로 해서, 그 부분을 역(逆)으로 헬라어로 번역하였다. 그가 번역한 부분은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헬라어 사본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잘못된 번역이 소위 '텍스투스 레셉투스'에는 오늘까지도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그 마지막 부분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부분도 역시 불가타를 대본으로 해서 수정을 가하였다. 그것이 인쇄에 붙여진 지 불과 일 년도 못 되어 1516년 3월 1일에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수 백 개의 오식(誤植)이 발견될 수밖에 없고,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에라스무스의 성경은 많이 팔렸고, 그 제2판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독일어 번역의 대본으로 사용되었다.
에라스무스는 초판(1516), 제2판 (1519), 제3판(1522)에 이어 제4판을 1927년에 냈는데, 그것은 히메네스의 성경이 공식으로 소개된 뒤의 일이었다.
에라스무스는 학자답게 자기 것과 히메네스의 것을 비교하여 다시 약 90여 곳을 수정하여 제4판을 낸 것이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제5판이 제4판과 대동소이하게 출판되었다. 그것이 1555년이었다.
결국 에라스무스 성경은 5-6개의 소문자 사본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메츠거의 평가에 의하면 비평적 가치에 있어서는 [여러번역대조](Complutensian) 신약 성경보다 열등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에라스무스 성경은 비공식적으로 베니스(Venice), 스트라스부르크(Strasbourg), 바젤(Basle), 파리(Paris) 등지(地)에서 30여 종류나 출판되었다.
에라스무스 헬라어 신약 성경이 출판된 후에 뒤를 이어서 많은 것들이 나왔지만, 결국 그것들은 다 에라스무스의 것을 몇 군데 고친 것뿐, 근본적으로는 이 저열(低劣)한 형태의 헬라어 성경을 재생한 것에 불과하다.
그 후에 그것이 어떻게 '텍스투스 레셉투스'(공인 성경)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자.
불란서 파리의 유명한 출판업자 스테파누스(Robert Estienne, 라틴식으로는 Stephanus)가 파리에서 세 번(1546, 1549, 1550), 제네바에서 한 번(1551) 헬라어 신약 성경을 출판하였다.
그의 초판과 둘째 판의 본문은 히메네스(Ximenes)의 것과 에라스무스의 것을 혼합한 것이고, 제 3판은 에라스무스의 제4판과 5판의 본문을 밀접하게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 제3판은 매 쪽 난 외에 14개의 다른 사본들과 히메네스 성경의 읽기(reading)를 소개하고 있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스테파누스의 제3판은 많은 사람에 의해서, 특히 영국에서, 헬라어 성경의 표준 본문으로 인정되었었다.
제네바에서 칼빈의 친구이며 그의 후계자였던 성경학자 테오도르 베자(Theodore de Beze, 1519-1605)가 1565년에서 1604년 사이에 적어도 아홉 판의 헬라어 신약 성경을 출판하였고,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제10판이 1611에 출판되었다. 그는 보다 양질인 베자 사본(Codex Beza)과 클라로몬타나 사본(Codex Claromontanus)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에 대하여 주(註)에다 언급했을 뿐, 본문을 수정하는 데는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가 출판한 헬라어 본문은 스테파누스의 제4판(1551)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가 손을 대지 않은 것은 그 때까지 공인된 것으로 받아온 전통적 본문과 그것들이 너무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중요한 공적은, 그가 출판한 헬라어 성경들이 보편화되어 마침내 텍스투스 레셉투스를 고착(固着)시키는 방향타(舵)의 역할을 했다는 일이다.
1611년의 [영어흠정역] 번역자들이 1588-9년과 1598년의 베자 성경을 대본으로 사용했으니, 베자의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1624년에 라이덴의 야심적 인쇄업자 형제 보나벤투라 엘제비어(Bonaventure Elzevir)와 아브라함 엘제비어(Abraham Elzevir)가 헬라어 신약 성경을 출판했는데, 그것의 본문은 주로 베자의 1565년 판을 취한 것이었다. 그후 1633년에 제2판을 찍으면서 그 서문에다가 자랑삼아 "이것은 이제 모든 사람에 의해서 수락된 본문" 즉 Textus Receptus라는 말을 적었다. 이렇게 해서 스테파누스, 베자, 엘제비어가 출판한 여러 판의 헬라어 본문이 신약 성경의 "유일한 참 본문"(the only true text)이라는 칭호를 가지게 되었고, 그 뒤에 나온 판들이 그것을 맹목적으로 답습하였다. 그리고 [영어흠정역]을 위시하여 구라파의 주요 개신교 번역들이 1881년까지 그것을 대본으로 삼은 것이다. 텍스투스 레셉투스에 대해서 너무도 미신적인 존경을 바치는 나머지, 그것을 비평하거나 수정하는 일이, 마치 신성모독이나 되는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5. 비평판 헬라어 신약 성경의 출현 불과 5, 6개의 변질된 후기 소문자 사본들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약 400년 동안 횡포를 부리고 있는 동안, 여러 곳에서 여러 학자들을 통하여 많은 귀중한 사본들이 발견되었고, 사본들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었다.
밀(John Mill, 1707),
벤틀리(Richard Bentley, 1720),
벵겔(J.A. Bengel, 1734),
웨스타인(J.J. Wettstein, 1751-1720),
그리스바하(J.J. Griesbach, 1775-1807) 등의 기초 공작을 거쳐서, 본격적으로 과학적인 본문 비평을 시작한 사람은 락흐만(Karl Lachmann, 1831)이었다. 티셴도르프(Constantin von Tischendorf)가 시내 산 사본을 발견한 이래 1841-72에 여덟 판의 헬라어 신약 성경을 출판하였고, 트레글러스(S. P Tregelles)가 1857-72에 역시 그의 헬라어 성경을 내었으며, 웨스트코트(B.F.Westcott)와 호르트(F.J.A.Hort)가 합작하여 1881-82에 The Greek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이라는 성경을 출판함으로써 확실히 텍스투스 레셉투스 시대의 종언을 가져왔다.
그 이후에 신약 성경 본문 비평학은 확고부동한 고지를 점령하였고 거의 완벽하다고 할 만한 비평판 원어 신약 성경이 출현하였다.
6. 본문 비평학적 견지에서 본 텍스투스 레셉투스 1) 텍스투스 레셉투스는, 그것을 맹종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절대 다수 사본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5,500여 개의 사본이 하나도 같지 않으며, 비슷한 것이 많은 것 뿐이어서, 유독 그것만이 영감됐다거나, 그것만이 배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2) 텍스투스 레셉투스는, 아주 후기에 만들어진 소문자 사본 5, 6개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비잔틴 형의 본문이다. 비잔틴 형의 본문은 4세기 이후부터 유행한 것이며, 2세기, 3세기의 파피루스나 대문자 사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즉 인위적인 많은 변개(變改)가 발견되는 소위 훼손된(corrupted) 본문이다.
3) 텍스투스 레셉투스는, 에라스무스가 라틴 불가타를 역(逆)으로 번역한 부분(계시록 마지막 6절)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임의로 불가타와 비교하면서 수정한 부분들이 많다.
4) 텍스투스 레셉투스는, 4세기 이래 필사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잡다한 설명구나 해석을 첨가하여 팽창하고 길어진 본문이다. 1551년 로버트 스테파누스라는 출판업자가, 자기 출판사에서 나온 성경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하여 절 구분을 하였는데, 확대되고 늘어난 본문을 절로 나누어, 절 수를 매겼기 때문에, 원래는 없던 본문에도 절 수가 붙게 되었다.
비평판 성경은 원본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실이기 때문에, 자연히 내용이 짧고 따라서 스테파누스의 절 구분과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5) 권위 있는 고대 사본들이나 현대의 비평판 성경들이 텍스투스 레셉투스의 본문에서 어떤 부분을 삭제하거나 변개한 것이 아니고, 반대로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원래는 짧던 본문에다가 사람들의 말을 첨가함으로써, 성경을 흐리게 하였다. 물론 보다 명백히 하려고 선의로 첨가했겠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흠을 낸 셈이다.
6) [영어흠정역]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권위와 무오성을 주장하는 나머지, 그것의 대본이었던 텍스투스 레셉투스도 권위가 있고 유일한 가치가 있다고 강변한다.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기도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누가 번역했든지 그 나름의 가치가 있고 귀한 것이다. 번역자의 실력에 따라 번역의 질적 차이가 없을 수 없지만, 아무리 잘된 번역도 100% 정확할 수는 없는 법이어서, 어느 하나만이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어째서 하필 영어로 번역된 흠정역만이 완전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런 생각은 영국인이나 미국인 일부와 사대주의적 사고를 가진 일부 사람들의 제국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흠정역의 대본인 텍스투스 레셉투스만이 정확무오하다는 연역적 판단은 매우 졸렬하고, 사실과는 천리 만리 동떨어진 것이다.
7) 텍스투스 레셉투스를 다수본문(Majority Text)이라고 하며, 절대 다수 사본의 지지를 받으니 권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가 양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많은 사본을 필요로 하는 지방에서, 자유분방한 교회 지도자들이 많은 사견(私見)을 사본에 넣으며 필사했을 경우, 그 지방에는 원본과는 크게 상거가 있는 확대된 본문이 대거 유포될 수 있다. 이런 경로를 거쳐서 확대된 본문을 가진 사본들이 오늘날 많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사본의 진위를, 수(數)를 가지고 측정하는 것은 이미 진부한 방법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수를 따진다면, 예수님을 죽이자고 한 악한 무리의 수가 진리 자체이신 한 분 예수의 몇 백 배가 아니었던가! 진리는 수가 적어도 진리이다. 아니 수가 하나뿐이라도 진리는 진리이다.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다수본문(Majority text)의 지지를 받으니 권위가 있다고 자랑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8) 비잔틴본문(Byzantine text, Majority text) 지지파의 거장으로 Dean Burgon, Z. C. Hodges 그리고 Farstad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도 다수본문(Majority Text)과 텍스투스 레셉투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특히 Burgon은 다수본문(Majority Text)의 신판(新版)을 내려는 희망을 가졌던 사람인데, 그의 조사에 의하면 마태복음에서만도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다수본문(Majority Text)과 150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비례로 나간다면 신약 성경 전체에서는 그 둘의 차이가 엄청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다수본문(Majority Text)과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정확하고 믿을 만하고 그것들만이 하나님이 특별히 보존하신 본문이라고 주장하는가 말이다.
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제1장, 제8조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과 헬라어로 된 신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감동하신 것이며, 그의 각별한 돌보심과 섭리에 의하여 순수하게 보전된 것이며 따라서 믿을 만하다. 그래서 모든 종교 논쟁에 있어서 교회는 궁극적으로 그것에다 호소하는 것이다.(필자의 사역)
이 교리를 만들 때(17세기 중반)에는 물론 텍스투스 레셉투스밖에 없었다. 그 후에 많은 사본들이 발견되고, 본문 비평학이 발달하여, 원본에 보다 가까운 본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그런데 오늘의 텍스투스 레셉투스 지지자들이 그 교리를 앞세워 가며 텍스투스 레셉투스만이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時代錯誤)가 아닌가.
사람이 만든 교리가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세 교회의 과오를 답습하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감된 귀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무흠하게 보존되었으면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 사항이다. 그러나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바로 그 무흠한 성경이라고 말하는 것은 누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성경 어디에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유일무오한 성경이라고 했는가 말이다.
10) [하나님은 오직 한 성서를 쓰셨다(God Wrote Only One Bible)]라는 책을 쓴 레이(Jasper James Ray)는 162개의 시험 구절을 선발하여, 현대 비평판 헬라어 성경들과 현대 영어 성경 번역들을 비판하였다. 즉 그가 택한 162구절에 있어서 현대 성경들이 텍스투스 레셉투스나 영어흠정역과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다. 즉 그가 택한 구절들이 현대 성경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것들이 나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택한 162구절 중 31개에 있어서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다수본문(Majority text)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 말은 결국, 어느 하나가 배타적으로 권위가 있거나 믿을 만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닌가.
11)카슨(D. A. Carson) 교수의 말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비잔틴 형 본문이 텍스투스 레셉투스와 꼭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중요한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잊어버린다. 텍스투스 레셉투스는 겨우 몇 개의, 비교적 늦은 시대의 사본들을 기초로 한 것이다. 즉 비잔틴 전승을 나타내는 사본들이 수천 개에 달하는데 비하면, (너무 소수의 사본을 근거로 했다는 말이다).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비잔틴 전승의 사본들을 근거로 했다는 것과, 그 자체를 포함하는 보다 광범한 전승과 퍽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물론 사실이지만, 그 광범한 증거들이 텍스투스 레셉투스 자체의 전승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한 본문 전승 안에 있는 가장 친근한 사본들끼리도 한 장(章 chapter)에 평균 여섯 개 내지 열 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만큼 사본들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서로 다르고, 따라서 어느 하나만을 지적하여 그것만은 무흠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변개가 많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유독 텍스투스 레셉투스만 홀로 권위가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12) 텍스투스 레셉투스와 영어흠정역의 권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될 수 없다"는 명제의 말씀들(고후2:17; 마13:25; 계22:19; 신4:2; 잠30:6; 요10:35; 눅16:17 등등)을 근거로 해서 그들이 지지하는 성경은 무흠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5,500여 개의 사본이 하나도 같지 않고 다 다른데, 그리고 텍스투스 레셉투스도 역시 그 중의 하나인데, 어떻게 그들의 논리가 성립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불변한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역부족과 연약함 때문에 성경의 원본을 보관하지 못했고 또 사본을 완전하게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어서,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들이 하나 같이 불완전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귀중성을 느끼기에 일점 일획이라도 잘못되기를 원치 않는다. 사실 성경 사본들은 세속적 고(古) 문헌들에 비교하면 월등하게 정확도가 높다. 아무리 변개가 심한 사본일지라도 교리를 바꾸게 할만큼 심하게 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본문 비평학자들의 정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하나님의 생각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것이 드디어 글자로 표현되었는데, 사람의 언어는 모두 그 구조가 다를 뿐 아니라 불완전하여, 여러 방언으로 기록되고 번역되는 과정에서, 결코 서로 완전히 일치하거나 완전히 정확할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통하여 당신의 사상=말씀이 여러 사본과 번역들 속에 기본적으로 변함없이 보존되도록 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고, 보다 더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 계속 원본을 찾아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텍스투스 레셉투스는 기독교회의 매우 중요한 유산 중의 하나이다. 영어흠정역도 훌륭한 번역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원본이나, 절대 무흠한 번역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원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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