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마스의 <목자>
<차례>
1. 목자의 내용
2. 저자
3. 저술 장소와 시기
4. 문학 유형
5. <목자>의 수용사와 경전 문제
6. <목자>와 초대 그리스도교 문헌과의 관계
1. 목자의 내용
<첫째 환시 >
나(헤르마스)는 로데라는 여인의 노예가 되어 로마로 팔려갔다. 몇 년 뒤 그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얼마 뒤 영에 사로잡혀 황무지를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평지로 갔다. 그곳에서 주님께 죄를 고백하였는데 그곳에서 그 부인을 보았다. 그 부인은 그에게 악한 욕망이 그의 마음에 일어났고 그것은 큰 죄라고 하면서 그를 꾸짖었고 하늘이 닫혔다. 이 말에 슬퍼진 헤르마스는 눈같이 흰 양털로 짠 커다란 흰 의자가 놓여있고 매우 빛나는 옷을 입고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노파를 보았다. 그 노파는 헤르마스가 슬퍼하자 하나님의 종은 악한 욕망이 마음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가 자녀들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분노하신다고 알려주고 자녀들이 마음으로 회개하도록 가르치라고 하면서 읽고 있던 것을 헤르마스에게 읽어주었다. 그 노파가 다 읽고 일어나자 네 젊은이(천사)가 의자를 들고 동쪽으로 갔고, 노파는 헤르마스에게 용기를 주고 떠났다.
<둘째 환시>
1년이 지나 다시 쿠메로 가다가 다시 영이 그를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헤르마스는 자신의 죄를 일깨워주신 주님께 찬미 드렸다. 그리고 작년의 그 노파를 다시 보았는데 그녀는 작은 책을 읽고 있었고 그에게 그 책을 베끼라고 주었다. 십오일동안 단식을 하자 그 책의 의미가 계시되었는데 그의 자녀들과 아내가 악하여 죄를 지었으므로 그들이 회개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는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용서는 일회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환난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계시 중에 젊은이가 책을 준 노파는 바로 교회라고 말해주고 늙은 노파인 것은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뒤에 다른 환시에서 노파는 작은 책을 베껴서 클레멘스와 그랍테에게 전하고 그 내용을 교회의 장로들과 함께 읽으라고 말한다.
<셋째 환시>
환시 중에 노파와 여섯 젊은이가 그에게 나타나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의로움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한다. 그 노파는 젊은이들에게 탑을 세우라고 보내고 오른쪽에 앉고 싶어 하는 그에게 왼쪽에 앉게 한다. 오른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난 받은 사람들의 자리였다. 그리고 여섯 젊은이가 깊은 곳에서 빼낸 돌들로 물위에 탑을 세우는 것을 보았다. 헤르마스는 탑이 세워지는 뜻을 노파에게 듣는다. 탑은 교회이며, 물위에 세워지는 것은 물로 구원받았고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탑은 전능하시고 영광스러운 이름의 말씀으로 기초가 다져졌고 주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굳건해진다고 말한다. 탑을 세우고 돌을 나르는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이며, 탑을 세우는 돌들 중에 흰 빛나며 모서리가 맞는 돌은 사도, 목사, 교사, 봉사자들이며, 깊은 곳에서 빼낸 돌은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 받은 이들이고, 마른 땅에서 옮겨진 돌은 주님의 계명을 지킨 사람이며, 젊은이들이 내던진 돌은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면 탑이 세워질 때 쓰일 사람이며, 잘게 부서져 탑에서 멀리 던져진 돌은 불법한 이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탑 주위에 있는 일곱 여인은 믿음, 절제, 진실, 이해, 결백, 거룩함, 사랑이다. 그리고 탑이 다 세워질 때 종말이 오며 이 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
그리고 젊은이가 와서 노파에 대해 설명한다. 첫째 환시에서 나타난 의자에 앉은 노파가 힘없이 늙은 것은 사람들의 영이 늙고 쇠잔하여 힘이 없어서 슬프기 때문이고, 둘째 환시에서 늙고 머리는 희었지만 더 젊고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사람들이 약함을 없애고 믿음 안에서 강해졌기 때문이다. 셋째 환시에서 젊고 아름다우며, 생기 있었던 것은 회개한 이들이 온 마음으로 굳건해졌기 때문이다.
<넷째 환시>
의심하지 말라는 음성을 들으면서 어떻게 확신을 주는 계시를 보고 의심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할 때 하늘까지 먼지를 일으키며 오는 동물들을 보았다. 그것은 거대한 짐승인데 그 입에서는 불타는 메뚜기들이 나오고 몸은 거대하고 큰 머리를 지녔다. 헤르마스가 의심을 버리고 용기를 떠올리며 짐승에게 가자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짐승을 지나자 신방에서 막 나온 듯한 흰색 차림의 한 처녀(교회)를 만났다. 그녀는 헤르마스에게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큰 환난의 상징인 거대한 짐승을 보고 의심하지 않았기에 큰 곤경에서 벗어났다고 칭찬하였다. 헤르마스는 그녀에게 짐승의 머리에 있는 네 가지 색을 물어보았다. 검은색은 이 세상이며, 붉은 색은 피와 불로 멸망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금색은 세상을 멀리한 너희이며, 흰색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들이 살아갈 다가올 시대를 말한다고 설명한다.
<다섯째 환시>
기도 중에 외모가 뛰어난 목자차림의 한 남자가 들어와서 자신은 헤르마스와 함께 살려고 거룩한 천사에게서 파견되어 온 목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계명들과 비유들을 보여주고 기록하게 하여 그것에 따라 깨끗한 마음으로 산다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1.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한분이심을 믿어라. 하나님은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분을 믿고 경외하면서 절제하면 모든 죄를 끊어버릴 것이고 모든 의로운 덕을 지닐 것이다. 네가 이 계명을 지킨다면 너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계명
2. 진실하고 결백하여라. 아무도 비방하지 말고 악을 멀리하면 언제나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낼 것이다. 거룩한 마음을 지니고 선을 행하라. 기꺼이 봉사하는 이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 둘째 계명
3. 진리를 사랑하여라. 하나님께서 이 육체 안에 살게 하신 영이 진실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밝혀지도록 진리를 말하라. 그러면 네 안에 사시는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거짓말 하는 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주님께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것을 빼앗고 주님께 강도짓을 한 것이다. 이 계명을 듣고 가장 나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는 누구나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 셋째 계명
4. 순결을 지켜라. 거룩함이 머무르는 곳, 의로운 사람의 마음에 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회개는 “깊은 깨달음”이다. 죄지은 사람이 주님 앞에서 악을 저질렀음을 깨닫고 자신의 행위가 마음에 떠오르면 그는 회개하고 더 이상 악을 저지르지 않으며 열의를 다해 선을 행하여야 한다. 그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낮추고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너는 회개가 깊은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대하고 거룩한 부름을 받은 뒤에 마귀의 유혹으로 죄를 짓는다면, 그에게는 회개의 가능성이 한 번 있다. 순결하고 거룩하게 살아라. 그러면 너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 넷째 계명
5. 인내하고 깨달아라. 주님께서는 인내 안에 사시고 마귀는 성냄 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성마름 곧 가장 나쁜 영을 멀리하여라. 인내하여 성냄과 화냄에 맞서라. 그러면 너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거룩함과 함께 있을 것이다. - 다섯째 계명
6. 믿음과 경외와 절제는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않은 것에 관련된다. 사람 안에는 의로운 천사와 악한 천사가 있다. 의로운 천사는 다정다감하고 겸손하며 온유하며 평온하다. 그는 의로움, 순결, 거룩함, 자족, 모든 의로운 행위와 모든 뛰어난 덕에 관해 말한다. 악한 천사의 행위는 성내고 화를 내고 어리석으며, 악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다. 이 두 천사의 활동을 이해하고 의로운 천사를 믿어라. 믿음이 깊은 사람이 있는데 악한 천사의 생각이 그의 마음에 들어가면 그 남자와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다. - 여섯째 계명
7.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능력이 없는 마귀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나 마귀의 행위를 두려워하여라. 그것들은 악하기 때문이다. 네가 선을 행하려 한다면 주님을 경외하여라. 그러면 너는 선을 행할 것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강하고 위대하며 뛰어나다. 주님을 경외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 일곱째 계명
8. 자제는 이중적이다. 사람은 어떤 것을 자제해야 하지만 어떤 것은 자제해서는 안 된다. 악은 자제하고 행하지 마라. 그러나 선은 자제하지 말고 행하여라. 간통, 간음, 나쁜 술버릇, 추잡한 잔치판, 지나치게 많이 차린 음식, 부를 뽐내는 사치, 과시, 교만, 오만, 거짓, 비방, 위선, 악의를 품음, 그리고 모든 종류의 모욕을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자제하지 말고 행해야 하는 것은 믿음, 주님께 대한 경외, 사랑, 일치, 올바른 말, 진리, 인내이다. 모든 사람이 이 계명을 지키고 그것들에 따라 산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 - 여덟째 계명
9. 의심하지 마라. 온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서서 망설이지 말고 그분께 청하여라. 너는 이 세상의 모든 헛된 것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주님께 청하여라. 그러면 모든 것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망설이지 않고 주님께 청한다면 네 모든 청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네가 속으로 의심한다면 네가 청한 것은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은 두 마음을 가진 이들이며 그들이 청한 것은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약속하고 완성한다. 의심은 확신이 없으므로 의심하면서 행하는 모든 것은 실패한다. 의심은 세속적인 영이고 마귀에게서 오며 능력이 없다. 능력이 있는 믿음을 섬기면 하나님을 위하여 살 것이다. - 아홉째 계명
10. 결코 슬퍼하지 마라. 슬픔은 의심과 성냄의 자매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그분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즐거워하며 즐거움 안에서 기꺼워하여라. 거룩한 영과 슬픔이 뒤섞인 기도는 거룩한 영으로만 바치는 기도보다 효력이 없다. 그러므로 악한 슬픔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 열째 계명
11. 긴 의자에 앉은 신실한 사람(선지자)과 하나님 종들의 생각을 파멸하는 거짓선지자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여주었다. 신적인 영을 지닌 선지자는 위에서 오는 영을 지니고 온유하고 평온하며 겸손하다. 그는 모든 악과 이 세상의 헛된 욕망을 멀리하고 모든 사람보다 자신을 낮춘다. 신성한 영은 주님의 크나큰 능력으로 생긴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우둔하며 능력이 없고 어리석은 영은 자신을 높이고 첫째 자리에 앉기를 바라며 뻔뻔스럽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말이 많다. 추잡한 잔치판을 벌이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면서 예언에 대한 사례를 받는다.
그러나 우박이 매우 작은 알갱이지만 사람의 머리에 떨어지면 아픈 것처럼 위에서 땅위로 떨어지는 매우 작은 것이 큰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위에서 오는 신적인 영은 강하며 이 영을 믿고 다른 영을 멀리해야 한다. - 열한째 계명
12. 모든 악한 욕망을 없애고 거룩한 열망을 지녀라. 악한 욕망은 난폭하고 길들이기가 어려우며 무섭다. 그것은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킨다. 너희는 악한 욕망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선한 열망은 의로움과 덕, 진리와 주님께 대한 경외, 믿음과 온유함이며 이것들을 행한다면 주님의 마음에 드는 종이 될 것이며 그분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계명들을 지킬 수 있다고 결심한다면 그것들을 쉽게 지킬 것이지만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네 마음에 일어난다면 너는 그것들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다스린다면 이 계명들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마귀를 다스리는 회개의 천사인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귀는 두려움을 일으키기만 할 뿐 두려움에는 영향력이 없다. 그러므로 그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마귀가 너희를 피할 것이다. 마귀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그분의 종들을 억누를 수가 없다.
네 마음이 주님 앞에서 깨끗해진다면 너는 계명들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헛된 욕망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는 사람은 모두 계명을 지킬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 열두째 계명
* 첫째 비유 – 두 도시에 대한 비유
하나님의 종들의 도시는 이 도시에서 멀리 있다. 따라서 이 도시에서 쓸데없는 것을 마련하려는 이들은 자신의 도시로 돌아갈 수 없다. 이 도시의 주인은 자신의 법을 따라 살지 않으면 자신의 나라를 떠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땅과 그 밖의 소유물 때문에 따라야 할 법을 부정하고 이 도시의 법을 따라서는 안 되며, 자신의 도시로 가서 즐겁게 살 때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 둘째 비유 - 느릅나무와 포도나무의 공생
느릅나무와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표상이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지만 느릅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포도나무가 느릅나무를 타고 올라가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따라서 포도나무는 느릅나무의 도움으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종들, 가난하고 부유한 이들에 대한 것이다. 부유한 이들은 가난한 이에게 의지하여 생활에 필요한 것을 대주고 가난한 이를 위해 일하면 하나님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가난한 이의 청원기도와 찬양기도는 풍요롭고, 그의 청원기도는 하나님께 큰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이는 가난한 이를 위해 돕고 가난한 이의 청원기도로 자신의 임무를 행하는 것이다.
* 셋째 비유 - 나무
잎이 없고 시든 듯한 많은 나무를 보았는데 그것은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이다. 이 세상에서는 의인들도 죄인들도 구별되지 않고 서로 비슷하다. 이 세상은 의인들에게는 겨울이고 그들은 죄인들과 함께 살기 때문에 구별되지 않는다.
* 넷째 비유 - 나무
더러는 싹이 나고 더러는 시들어 있는 많은 나무를 보았다. 싹이 있는 나무들은 다가올 세상에서 살아갈 의인이며, 시든 나무들은 이교인들과 죄인들이다. 다가올 세상은 의인들에게는 여름이지만 죄인들에게는 겨울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자비가 비추면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은 드러나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알아 볼 것이다.
* 다섯째 비유 - 단식에 대한 가르침 (포도밭)
단식을 하기 위해 산에 앉아 있었다. 목자는 주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올바른 단식을 말한다. 삶에서 결코 악을 행하지 말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어떤 악한 욕망도 마음에 일어나지 않고 그분의 규정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것들을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한 행위를 자제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받아들일 수 있는 올바른 단식을 행하는 것이다.
단식에 대한 비유로 포도밭에 대한 것을 말한다. 주인이 종에게 포도밭에 울타리를 치라고 하고 떠났는데, 그 종은 울타리를 모두 치고 포도밭도 갈고, 잘 손질하여 옥토로 만들었다. 주인은 와서 종이 한 일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고 그를 아들과 함께 공동상속자로 삼았다. 이처럼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분의 마음에 들것이며, 그 계명들 외에 다른 선도 행한다면 더 큰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식을 하면서 다른 선한 것들을 실천할 때 그 단식은 더 완전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살고 있는 육체를 깨끗하고 흠 없이 지키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 여섯째 비유 - 양떼를 치는 목자
계명에 대해 의심해서는 안 되며 주님을 믿고 계명에 따라 살아야 한다. 회개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악을 내버려야 하고 의로운 덕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목자는 헤르마스에게 노란색 옷을 입은 젊은 목자를 보여 주었는데 그는 방종과 기만의 천사였다. 그는 하나님의 우둔한 종을 악한 욕망으로 속이고 진리에서 등지게 하고 더러는 죽음으로 더러는 멸망으로 내몰고 있었다. 또 다른 목자는 험악한 외모에 흰 염소 가죽을 두른 몸집이 큰 목자인데, 그는 매우 단단한 지팡이와 긴 채찍을 들고 있었다. 그 목자는 젊은 목자에게서 양들을 빼앗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많은 가파른 곳으로 몰고 갔다. 그래서 양들은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며 전혀 쉬지 못했다. 그 목자는 바로 벌의 목자였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이 세상의 욕망에 따라 사는 이들을 넘겨받아 각자에게 알맞은 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방종과 기만의 기간은 한 시간이지만, 고통의 시간은 서른 날에 해당된다. 즉 방종과 기만의 기간은 매우 짧지만 그에 대한 벌과 고통의 시간은 길다는 알 수 있다.
* 일곱째 비유 - 계시자와의 대화
목자는 헤르마스에게 와서 그가 그의 가족들의 죄로 인해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깨끗해지면 벌의 천사가 그에게서 떠날 것이라고 한다. 목자는 헤르마스에게 회개한 이는 자신의 영혼을 괴롭혀야 하고 모든 것에 매우 겸손해야 하며,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겪어야 하며, 그가 괴로움을 견디어 내면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서 분명히 자비를 베푸시어 그를 고쳐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괴로움을 겪는 것이 헤르마스와 그의 집안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 여덟째 비유 - 버드나무와 가지들
목자는 헤르마스에게 평지와 산을 그늘지게 한 버드나무를 보여 주었다. 주님의 천사가 버드나무 가지들을 잘라 백성에게 주었다. 버드나무는 많은 가지들을 잘리고도 그대로 있었다. 백성들은 천사에게 가지들을 돌려주는데 마르고 벌레 먹은 막대기, 말랐지만 벌레가 갈아먹지 않은 막대기, 반쯤 마르고 금이 간 막대기, 반은 마르고 반은 푸른 막대기, 삼분의 이는 푸르고 삼분의 일은 마른 막대기, 삼분의 이는 마르고 삼분의 일은 푸른 막대기, 대부분 푸르지만 윗부분이 금이 간 막대기, 일부만 푸르고 대부분 마른 막대기, 푸른 막대기, 푸르고 곁가지가 난 막대기, 열매가 맺힌 막대기였다. 그리고 열매가 맺힌 것과 곁가지가 난 것, 푸른 막대기를 돌려준 이들에게는 관을 씌우고 인장을 주고 흰옷을 입고 탑으로 가게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막대기들을 심어서 물을 주자 푸르게 된 것들도 있고 그대로 있는 것도 있었다. 푸르게 된 막대기의 주인들은 회개하여 탑으로 올라갔다.
목자는 나무와 가지들에게 대해 설명한다. 나무는 하나님의 법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고 백성들은 그분을 믿는 이들이다. 막대기는 믿는 이들의 법으로서 잘 지키는지 살펴보게 된다. 관을 쓴 이들은 마귀와 싸워 이긴 사람들이고, 성인과 의인들이다. 그리고 마르거나 벌레가 먹은 막대기를 지닌 사람들은 교회의 배교자, 배반자이며 자신들의 죄로 주님을 모독한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회개할 희망이 있으며, 회개하면 탑 안에 거주하게 된다. 목자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주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해 부름 받은 이들이 구원받기를 참을성 있게 원하신다고 말한다.
* 아홉째 비유 - 탑
목자는 헤르마스에게 넓은 평지를 보여주는데 평지 주위에 검댕이산, 민둥산, 가시덤불과 엉겅퀴 산, 반쯤 마른 식물이 있는 산, 돌이 많고 푸른 식물이 있는 산, 크고 작은 틈이 많은 산, 식물들이 울창하고 온갖 동물, 새가 있는 산, 샘들로 가득찬 산, 치명적인 짐승과 뱀이 있는 매우 황량한 산, 매우 큰 나무 아래 양들이 누워있는 산, 열매가 가득한 나무로 우거진 산, 희고 산세가 수려한 산 등 열두 개의 산이 있었다.
평지 가운데 솟은 흰 바위는 산보다 높았는데 밝게 빛나는 문이 있었다. 문 주위에 열두 처녀가 있었고 여섯 남자들과 많은 남자들을 불러 탑을 세우게 하였다. 모든 돌이 처녀들(믿음, 절제, 권능, 인내...)에 의해 옮겨졌고 탑 건물 속에는 문을 통해 지나가는 것만 들어간다. 탑은 계속 세워지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탑 주인이 탑을 살피러 와서 건물의 돌들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부적절한 돌들을 빼내었다. 빼내어진 돌들 중에 다시 깨끗해진 것들을 탑에 끼우고 무익한 돌들은 검은 옷의 여인들(불신, 무절제, 불복종, 기만...)에 의해 옮겨졌다. 그리고 목자는 헤르마스에게 처녀들(덕)과 함께 있으라고 한다. 목자는 다시 나타나서 설명해주는데 바위와 문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람은 아드님의 이름(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탑은 교회이며, 탑에 쓰여진 돌들은 주님을 믿은 이들이며 하나의 영과 하나의 몸, 하나의 옷을 지니게 되었다. 내버려진 돌은 검은 옷의 여인들에게 유혹을 당한 이들이지만 그들이 회개한다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것이다. 이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면서 탑이 세워지는 것이 중단된 것이다.
열두 개의 산은 온 세상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정신을 가진 열두 지파, 열두 민족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교회는 깨끗해져야 하며 하나의 몸, 하나의 생각, 하나의 정신, 하나의 믿음, 하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탑이 아직 세워지고 있는 동안 자신을 고쳐야 한다.
* 열째 비유 - 대화
이 책을 다 쓴 후에 목자와 그를 맡긴 천사가 왔다. 천사는 헤르마스에게 선한 행위와 말로써 의로운 덕을 쌓고 일러준 계명에 따라 살면 주님 앞에서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용기를 준다. 그리고 목자와 깨끗하고 정숙하며 열심한 처녀들(덕들)에게 그를 맡긴다.
2. 저자 (헤르마스에 대해)
<목자>에 헤르마스라는 이름은 11번 나오는데 2세기 말에 쓰여진 <무라토리 단편>에 헤르마스(허메)가 이 작품을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헤르마스의 형제인 피우스 주교가 로마 교회의 주교였을 때, 헤르마스는 최근에 로마에서 <목자>를 저술했다.” 이 글에 따르면 <목자>의 저자는 헤르마스이다.
헤르마스에 대한 다른 자료는 오리게네스의 <로마서 주석>과 에우세비우스(유세비우스)의 <교회사>이다. 이들은 조심스럽게 <목자>의 저자 헤르마스(허메)와 로마서16:14에서 바울이 언급한 헤르마스(허메)를 같은 인물로 보았다. 이런 증언에 바탕해서 6세기에 쓰여진 <교황서>와 그 밖의 교황목록 등에도 <목자>의 저자를 로마서 16:14의 헤르마스(허메)로 보았다.
또한 <목자>에 나타나는 자전적인 보고를 볼 때 헤르마스는 노예의 신분으로 로마에 팔려갔다가 나중에 해방되었다. 그가 <목자>를 저술할 때는 이미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헤르마스는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였고 성장한 자식들의 훈육문제로 고민했다. 그의 직업은 본문(포도재배)을 볼 때 중소 실업인이나 사업가로 드러나지만 탑 건축에 대한 묘사에서와 같이 건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 때문에 건축업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본문의 환시에서 헤르마스가 하늘의 편지를 “장로들과 함께” 로마에서 읽는 것과 전통적 권위와 교회의 권위를 지닌 능숙한 설교자가 새로운 내용을 전한다는 점에서 헤르마스를 교회의 지도자들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보고 당시 개혁을 외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헤르마스가 로마 공동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로마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로마의 여러 공동체 가운데 한 공동체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실제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는 이 공동체의 유다적, 그리스도교적, 묵시적 전통을 받아들이면서 <목자>를 저술했다고 볼 수 있다.
3. 저술 장소와 시기
<무라토리 단편>, 오리게네스의 <로마서 주석>, 후대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목자>가 로마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관해 오늘날 거의 모든 학자도 의견을 같이한다.
<목자>에는 저술연대를 직접 산정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다른 문헌이나 <목자>의 개별 내용을 고려할 때 간접적으로 그 시기를 알 수 있다. <무라토리 단편>에 따르면 <목자>는 140-155년경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피우스 주교시대에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목자>에 나타나는 내용을 분석할 때 이미 여러 번 일어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와 첫 그리스도교 세대가 이미 사망했다는 것, 유다 민족과 율법에 대한 무시 등을 고려할 때 1세기경으로 올라갈 수 없고, <목자>안에 나타나는 교회 개념과 로마교회에 단일한 주교가 없었다는 사실을 볼 때 2세기 중반보다 더 후대로 정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목자>의 저술시기에 대한 논의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대부분 학자는 신학적, 내용적 특징에 따라 작품의 저술시기를 130-140년경으로 잡는다.
4. 문학 유형
헤르마스는 자신의 작품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문학적, 신학적, 교훈적, 금언적 소재들을 일관되게 서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목자>의 문학 유형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헤르마스는 어떤 일정한 유형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유형을 사용했다. 헤르마스는 환시, 계명, 비유 등을 뒤섞어 놓았기 때문에 작품에 독특한 특징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초대 그리스도교 문헌과 외경을 설명한 개론서에서는 <목자>를 초대 그리스도교의 묵시문학으로 분류하지만, <목자>에는 내세에 대한 계시나 종말론적 미래, 파국적인 종말 역사, 인간 운명에 드리워진 어두움, 우주적 재앙에 대한 묵시적인 표현이 없다. <목자>에 묵시적인 표현과 유사한 내용이 있지만 그렇다고 <목자>에 나타나는 묵시록의 문학 형태들은 작품의 본질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의도에 따른 표현으로 본다.
오히려 <목자>의 전반적인 내용을 알레고리로 표현하고 설명하였고 해석하였다. <목자>에서 사용되는 알레고리는 양적으로도 묵시적 형식보다 더 많으며, 따라서 <목자>의 유형은 ‘묵시록’이라는 범주보다 ‘알레고리' 라는 범주가 더 적절하다.
5. <목자>의 수용사와 경전 문제
<목자>는 고대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때때로 이목을 끌고 여러 주제에 자주 인용되었으며 신약성서에 버금가는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교부들도 자신의 작품에 <목자>를 직. 간접으로 인용했는데 <목자>의 알레고리적, 환시적 요소들은 중세와 그 이후의 그리스도교 문헌에 꾸준히 영향을 미쳤다.
2세기 말경 <무라토리 단편>은 <목자>의 경전적 가치는 부인했지만 개인적 독서를 위해서는 유익하다고 권장했고, 이레네우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그리스도교의 선교와 호교를 위해 <목자>를 인용했다. 3세기와 4세기 라틴계 그리스도교 문헌에서도 <목자>와 헤르마스가 인용되었다. 그리스어권에서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그의 작품에 <목자>를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이 인용했다.
교회사가인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유세비유스)는 <목자>가 많은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낭독되었고 일부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이 <목자>를 인용한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그는 <목자>를 외경으로 분류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목자>는 경전이 형성되던 시기에 씌어져 일부 공동체에서 전례 때 공개적으로 낭독되고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경전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6. <목자>와 초대 그리스도교 문헌과의 관계
헤르마스 당시의 저술가들은 작품을 쓸 때 일반적으로 다른 작품을 자주 인용하는데 <목자>에는 그리스도교나 유다교, 이교 문헌을 직접 인용한 흔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목자>의 내용에는 성서와 다른 문헌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은 적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는 <목자>가 다른 문헌의 구절을 직접 인용했는가 아닌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쓰여진 문헌이 <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목자>의 내용을 볼 때 <목자>와 야고보의 편지의 상관관계가 깊다. 헤르마스는 야고보의 편지를 자유로이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헤르마스는 야고보의 편지를 지니고 있었고 이를 의역하거나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야고보의 편지와 초대 그리스도교 문헌과 유다교의 문헌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개념과 소재를 단편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헤르마스는 원시 그리스도교계 문헌들을 잘 알고 있었고 잘 알려진 경전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인용한 이념과 주제, 소재의 폭은 상당히 넓고 다양하다.
따라서 <목자>에는 초대 그리스도교 문헌의 흔적이 엿보이는 구절이 있지만 헤르마스가 실제로 이 작품들을 직접 이용했다기 보다는 다시 널리 퍼진 공동적 소재나 전승된 여러 표현을 이용했다는 사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