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교 교주 김해경씨의 회심 이야기
이름 :김해경
1950년 전남 목포 출생
1979년 단군교 창교(2월 23일)
1993년 단군교 해산(7월 19일)
1996년 2월 장로회 신학교 졸업
4월 목사 안수
전 예수교장로회 하예성 교회 담임목사
1. 내용소개 :
고백록의 주인공은 김해경 이라는 분입니다.
전 단군교 교주, 학봉대선사, 살아있는 신이라 불리면서, 국가 고위급 인사들의 점을 쳐주며, 각종 국가의 막중 대사를 예언하던 사람. 기독교를 없애야 한다며 공공연히 주장하던 사람이 어느 날 찾아오신 성령 하나님에 의해 귀신이 내 쫓기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이야기를 국민일보에 연재한 것입니다.
2. 국민일보에 소개된 김해경씨의 고백록.
[국민일보] 1993-07-20 (문화) 기획.연재 21면 1509자
단군교 교주 김해경씨의 참회수기:1
◎ 비몽사몽간 노인 나타나 「망우리」로 이끌어
20여년간 기독교축출운동을 벌이던 단군교 교주 김해경씨(44)가 기독인이 돼
단군교 해체를 선언했다(본보 19일자,일부 20일자 보도).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기독신앙을 받아들이게 됐는지 수기를 통해 알아본다.김씨는 독자들에게
영적인 세계에 대해 인정을 하고 이글을 읽어줄 것을 당부했다.
나는 지금 생애 처음 참다운 평안을 맛보고 있다.
올해 4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후에 얻게된 귀한 선물이다.
「학봉대선사」「단군교 교주」
이것이 지난날 본명과 함께 따라 다닌 나의 별칭이었다.그러나 지금 나는
「그리스도의 종」「하나님의 아들」이란 새이름을 얻었다.
학문의 최고봉이란 「학봉대선사」나 신적 존재로 인정되는 교주에 비하면 「종」이니
「아들」이니 하는 명칭은 세상적으로 보잘것 없어 보이나 나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하나님께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십계명의 제1,2계명을 지키지 못한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드리우셨으니 감격의 마음을 억누를수가 없다. 우상숭배뿐 아니라 기독인을 말살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내가 아닌가.외래 종교인 기독교로 인해 우리 민족이 멸망한다고 외치던 내가 아닌가. 오늘날 변한 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놀랍다.
우리 집은 원래 부유했으나 내가 태어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에선 『저놈 때문에 집이 망했다』고들 수군거렸다. 어릴 때 그런 말들이 가슴에 준 상처가 너무 커 나는 『이다음에 자라서 반드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19세 때 상경한 나는 남산에 올라가 『무엇을 해야 돈을 잘 벌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남이 안하는 일을 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남자 미용사였다. 대한민국 최초로 남자가 미용사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각 매스컴은 나를 기사거리로 보도했고 그 덕분에 일약 유명인이 됐다.
돈이 좀 모이자 나는 23세때인 73년 종로에서 「윤희미용실」이란 이름으로 개업을 했다.
호기심 때문인지 손님들이 많이 몰렸다. 당시 나는 이문동에 집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그집에서 내 인생행로가 완전히 바뀔줄은 미처 모른채. ... ... ...
어느날 밤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해경아 일어나라』
비몽사몽간에 눈을 뜨고 밖을 보니 웬 험상궂게 생긴 노인이 서 있는 게 아닌가.
『... ... 나를 따라와라』
나는 무엇에 홀린듯 의식이 몽롱한 상태로 짐을 꾸려 노인을 따라갔다. 그는 동네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길을 한참 걸어 갔다. 아마 수십 리는 간것 같았다. 주위에 인가가 사라지고
숲길이 시작됐다. 마침내 어느 장소에서 그가 멈춰섰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무덤이 둘러싸고 있었다.『망우리 공동묘지구나』
[국민일보] 1993-07-22 (문화) 기획.연재 21면 1343자
단군교 교주 김해경씨의 참회수기:2
◎“공동묘지서 50일간 「도」 닦고 점쟁이로”/
괴인이 「미래」 알려주고 “기독교 말살” 지시/
무당들 끌어들여 단군교 창시계획 구체화
『50일간 약수만 마시고 도를 닦으며 지내라』
그 말을 남기고 노인은 사라졌다. 무엇에 홀린 듯 노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묘지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3일째 되는 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산을 내려갈 결심을 했다. 몇 발자국 떼는데 갑자기
큰 구렁이가 나타나 내발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온 힘을 다해 빠져나가려 했으나 구렁이는 점차 몸을 더 세게 감아왔다. 기절 직전에 목을 휘감은 구렁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를 무당의 왕이 되게 하겠다』 『살려만 주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짐 꾸러미 속의 성경을 찢어 불태워라. 그건 너의 적이다』
그대로 따랐다. 나는 결국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약수터 근처에 자리를 잡고 도를 닦는 일에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내 귀에 이상한 주문이 들려 그것을 그대로 외웠다. 어느 날엔 영계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 곳엔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던 것 같다.
50일 째 되는 날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전두환 대통령 등에 대한 예언을 받았다. 망우리에서 내려온 나는 그때부터 미용사가 아닌 용한 점쟁이가 됐다. 희한한 것은 매일 밤 1∼2시경 어떤 괴인이 나타나 다음날 찾아올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다음날 정말 그 사람이 찾아왔고 그대로 이야기해주면 무릎을 치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밤마다 내일 일을 알려주는 괴인은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였다.
차츰 나를 「쪽집게」라는 별명으로 사람들이 불렀다. 79년 어느 날 야당 정치인 C씨가 찾아와 자신의 장래문제를 질문했다. 『당신 곧 입각할 준비를 하시오』
『그럴 리가…난 골수야당이자 핍박을 받는 처진데…』
C씨는 나를 엉터리점쟁이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자리를 떴다.
그러나 얼마 후 C씨는 내말대로 5공 정권의 장관이 돼 다시 나를 찾았다.
『정말 귀신같이 알아 맞추네요』
이후 나는 C씨 덕분으로 정·관·재계 유력인사들과 친분을 갖게 됐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듣고 앞날을 물으러 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괴인이 일러준 대로 말을 하면 신기하게도 들어맞았다. 그 괴인은 항상 내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네게 돈과 명예를 줄테니 기독교를 말살하는 일에 앞장서라. 기독교인은 우리의 적이다』나는 충실히 그 말에 복종했다. 간혹 점치러 오는 사람들 중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괴롭히며 쾌감을 느꼈다. 『교회 다니니까 일이 안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위협을 해 그들을 꼬였다.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과 동시에 점치러 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단군교를 창시할 계획을 세웠다. 무당들을 합류시켰다. 그들이 섬기는 대상이
단군신이기 때문이었다.
[국민일보] 1993-07-23 (문화) 기획.연재 22면 1419
“명예·탐욕 눈멀었다”(단군교 교주 김해경씨의 참회수기:3)
◎「족집게 점」 장안화제/
친분이용 무당대학 설립·무속행사 벌여/
「비난책자」제작 배포 반기독운동에 “혈안”
단군교를 창시한 나는 더욱 극렬히 기독교를 공격했다. ... ...
나에게 점을 치러 오는 사람을 설득해 단군교인으로 입교시켜 반기독교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매일밤 찾아오는 괴인의 예언으로 인해 나는 점차 명성을 쌓아갔다.
고급공무원들이나 재계인사들이 찾아와 진급과 사업문제를 물으면 괴인이 일러준 대로
대답했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다. 그러던 중 나는 무당대학을 설립했다. 더 효과적인 반기독운동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그와함께 「신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란 기독신앙 비난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
... ... (그 책의)일부만 보아도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종교를 이용해서 내 개인의 명예욕과 재물욕을 충족하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젊은 나이였기에 어떤 교주보다도 활동력과 추진력이 있었다. 교세는 계속 확장됐다. 전국의 무당들이 단군교에 속속 가입했다. 무당 일천여명을 포함해 4천명의 교인을 확보하게 됐다. 정계의 P씨, 재계의 J씨, 관계의 L씨 등 유력인사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민족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미명하에 무속신앙의 확대를 꾀했다.
호텔에서 민속학자들을 초청해 무속인 행사를 개최했는가 하면 대형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88 서울 올림픽때 민속행사 분야의 연출과 TV 무속 프로그램의 기획에 직접 관여했고 각종 이벤트행사중 굿에 관련된 부분은 무당들을 모아 제작했다.
각 잡지에서는 내게 운세에 대한 글을 부탁했다. 매년 정월에는 정보기관과 고위층이 한해 국운을 알아보기 위해 나를 찾았다. 재벌그룹 회장들도 새사업을 시작할 때나 직원채용, 임원 개편 때면 내말을 먼저 들은 후 결정을 했다.
[국민일보] 1993-07-24 (문화) 기획.연재 10면 1103자
단군교 교주 김해경씨의 참회 수기:4
◎나도 모르게 “하나님… 하나님…”/
지난 3월 신당들어가자 돌연 공포감 엄습/
입이 얼어붙은듯 “신령님”소리 나오지 않아
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설득해 기독신앙을 버리게 하고 단군교에 입교시키려 온갖 힘을 다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때 내말에 넘어온 사람이 꽤 있음을 밝힌다. 아마 그들은 확실한 기독신앙인이 아니었던 것같다. 이 지면을 빌려 그들에게 진정으로 사과 드리며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신기하게도 단군교인을 한명 더 입교시킨 다음날엔 반드시 물질이 생겼다. 재력가나 권력가가 찾아와 점을 쳐주면 두둑한 사례비를 놓고 가는 것이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전이 한창 일 때의 일이다. 역시 밤마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갔더니
『○○은 절대 당선시켜선 안된다. △△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리가 만들려는 세상을
방해할 인물이다. ××를 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 잡지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점을 쳐달라는 내용의 글을 청탁하면
○○과 △△는 은근히 깎아내리고 ××를 슬그머니 치켜세우는 식으로 써줬다.
철저히 악한 세력의 지시에 순종한 것이다.
내가 아주 싸늘한 기운을 느낄 때가 있는데 밤에 나를 찾아오는 괴인 앞에 나갈 때다.
진저리가 쳐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난다.
나는 내 소유의 서울 잠실 5층 빌딩에 단군교본부를 차려놓고 매일 새벽 단군신상 앞에서
기원을 해왔다. 그런데 올해 3월 어느날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평소에 그렇게 잘 나오던 기원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보통 기원내용은
『신령님, 제 소원을 이뤄주세요』하는 식이었으나 그날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러나. 부정을 탔나…』
기원을 포기하고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날 밤 다시 신당에 들어가 기원을 하려는데 갑자기 소름이 끼치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극도의 공포심 때문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뛰쳐나왔다.
다음날 아침 다시 기원을 하려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나왔다.
『하나님』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내가 미쳤나』
다시 기원을 해도 역시 『신령님』대신 『하나님』소리가 나왔다.
『부정을 탔나보다』
나는 창호지에 불을 붙여 부정을 몰아내는 주술의식을 했다.
그날 밤엔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국민일보] 1993-07-26 (문화) 기획.연재 22면 1492자
단군교 교주 김해경씨의 참회 수기:5·끝
◎“하나님 저를 용서하소서”회개/
신당 안 제단위에 구렁이 나타나 기겁/
찬송·기도 입에서 술술… “그리스도 영접”
『하나님 나를 용서하소서』
그날 밤 내입에서 저절로 나온 소리다. 나는 「서양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하고 귀신 쫓아내는 의식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3일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신당에 들어갔다가 기겁을 했다. 제단위에 큰 구렁이 한마리가 보이는데 바로 망우리 묘지에서 나를 못 내려가게
물고 늘어졌던 그것이었다. 그때 다시 쇠막대를 든 세 사람이 나타나 그 구렁이를 끌고나가 불에 태웠다. 구렁이가 빠져나오려 하자 그들은 쇠막대로 불속에 밀어 넣었다.
『모두 버리고 내게 오라』
생생한 소리가 들렸다.
『와장창』
몸부림을 쳤는지 무슨 물건이 넘어져 나를 덮치는 순간 기절했다.
약 20분이 지났을까, 다시 정신을 차린 후 『푸닥거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떡을 하려고 시루 뚜껑을 여는 순간 『으악』하며 기겁을 했다.
그 속에 구렁이가 꿈틀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루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뜨려버렸다.
도저히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아침 다시 신당을 들어갔을 때였다. 갑지가 환한 빛이 비치며 다가왔다.
『나는 네가 미워하던 하나님이다. 모든 걸 버리고 나를 따르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세상에 생명을 주기를 원한다.』 지금 까지 나는 누구로부터
사랑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빨간색 부분은 김해경 씨의 다른 고백을 근거로 첨가한 것입니다.)
너무나 생생한 음성이었다.
『버리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온기가 몸을 감싸며 지극히 평안함을 느꼈다.
그날 밤 자는 도중 누가 일으켜 세웠다. 그와 동시에 어릴 적 교회 다닐 때 부르던
「내 영혼이 은총 입어…」와 「하나님의 진리등대」란 찬송이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새벽 2시까지 계속 부르다가 잠이 들려하자 다시 누군가 나를 깨워 하나님께 기도를 하도록 시켰다.
그 이후 밤에 나를 부르던 괴인도 며칠간 계속 나타나 나오라고 소리쳤으나 무서운 느낌이 들어 그대로 방에 앉아있었다. 일주일간 신당에선 구렁이와 쇠막대기를 든 세 사람이 나타나 똑같은 행동을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경찰청의 기독인 P씨에게 전화를 해 그 일을 이야기했다.
『할렐루야. 교회 나갑시다』
P씨는 반가워하며 교회에 가자고 했으나 나는 며칠을 벼르다 친분이 있던 영화인 K씨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K씨는 한동안 나의 점 단골이었으나 기독인이 돼있었다.
며칠 후 K씨의 권유로 처음 「주님의 교회」에 갔다. 이재철목사님의 『모든 사람이 죄인』
이라는 소리에 거부감이 생겨 그냥 나왔으나 다음주일 예배시간에 어떤 힘에 이끌려
참석했다. 이후 나는 모든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리고 하늘나라 백성이 됐다. 간혹 갈등이 생기면 어김없이 눈병이 났다.
이달 19일 단군교 공식해체 선언 후 내 마음은 큰 평안을 찾았다. 단군 신당도 철거하고
신상이 있던 자리엔 성구를 붙였다. 이젠 괴이한 물체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인도에만 따를 생각이다.
<정리=김웅광기자>
[출처] 단군교 교주 김해경씨의 회심 이야기|작성자 농심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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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 교주의 참회의 눈물
”주여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
기독교 축출 김해경씨 기독교로 개종
교단 해체 공식 선언
--3월부터 하나님 찾는 등 영적 고통
교회 출석 예배 드리면서 평안 찾아
74년 창시자---4천여교도에 큰 영향---
< 단군교부 사무실에서 성경을 펴는 김해경씨>
*주여 우상을 숭배했던 이 죄인의 괴수를 용서하소서*
2천여명의 무속인을 포함 약 4천여명의 교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단군교 (본부 서울 송파 구잠실동 340의 23홍익빌딩) 교주 김해경씨(44)가 최근 기독교로 개종, 단군교 해체 선언을 함으로 기독교와 단군계 종파에 큰 충격을 줬다.
김해경씨는 19일 본부에서 단군교 핵심간부들을 모아 놓고 교단 해체를 공식 선언 했다.
이 날 김씨는 간부들에게 <나는 신이신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으며 나머지 교인들로 나의 뒤를 따라 줄 것을 기대한다>고 권한 후 <그러나 이것은 강요는 아니며 향후 나의 길이 옳았다는게 입증 될 때 예수님을 믿어도 좋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선언에 이어 20일에는 현재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서울 논현동에 있는 <주님의 교회>담임 이재철목사와 교인들을 초청, 그동안 숭배하던 단군신당과 제기 등 각종 기구들을 철거, 소각하는 행사를 가진 후 기념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기독교계는 김ㅆl의 이번 선언으로 이종파소속 교도들과 무속인등상당수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등 여파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가 지난 74년 단군교를 창시한 장본인이며 교도들로부터 거의 신적 존재로 추앙 받았을 뿐 아니라 강력한 지도력과 활동력으로 단기간에 교세를 급속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이미 김씨를 추종하던 무당과 교도 등 3명은 굿에 사용하던 각종기구를 폐기 처분하고 교회에 함께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김씨는 19일 공식선언에 앞서 전국 20여개지부에 자신의 개종 사실을 통지, 지역별 해체식을 갖고 교도들에게 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교도들이 해체의사 철회를 요청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으며 일부는 <배신자> <변절자>란 말을 했다고 한다.
김씨가 개종을 결심한 것은 지난 4월이다.
3월부터 뚜렸한 이유 없는 영적 고통이 시작 됐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란 말이 튀어 나오는 등 이상한 일을 겪어 평소 알고 지내던 기독교인과 사의하다가 그의 권유로 교회에 나오게 됐다.
예배에 참석하면서 큰 평안을 맛본 그는 결국기도 끝에 개종을 결단했다.
25세 때 신비한 개인적 체험을 통해 ><예안의 능력>을 갖게 된 그는 그동안 유력잡지에 저명인사와 국가의 장래를 점치는 글을 쓰고 정.관.재계.문화계 인사들의 미래운을 봐주는 등의 일로 큰 부를 쌓아으며 이를 바탕으로 단군교를 창시, 단군성전건립 및 기독교 추출 운동을 벌여왔다.
이런 이유로 김씨의 개종 선언은 민족종교계에 큰 파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김씨는 순회 간증과 출판을 통해 무속신앙인을 전도하는 일을 할 계획이다.
한편 그의 수기집 <주여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 <홍성사> 가 이달 말 출시된다.
(단군교본부 건물 옥상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단군그림을 불태우며 회개의 기도를 하는 김해경씨)
출처 : 국민일보
그 당시 1974년 단군교를 창시하여 기독교를 말살시키려는 운동을 벌이면서 거대한 민속단군 신상을 세우려고 주도하다가 기독교인들의 반발로 아니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 아래 그의 뜻은 저지되고 결국은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기에 이르게 되는 놀라운 사실이 바로 <주여 !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라고 고백한 그의 수기를 만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 단군교교주 김해경씨의 참회수기-|작성자 이아트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