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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18KQFLbh96U
날짜 2022-09-21
본문말씀 요한복음 3:1~21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거듭남,영생,율법의한계,믿읨능력,믿음과불신의차이

2022-09-21(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13) 주께서 들려주신 거듭남과 영생의 비밀(요3:1~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18KQFLbh96U  [혹은 https://tv.naver.com/v/29458957 ]

 

1. 들어가며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과연 자기가 거듭난 사람이 되었으며 영생을 소유했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기는 했는데 그가 아직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이거나 영생을 소유해지 못했다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그리고 영생을 소유했는지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거듭났는지 거듭나지 않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가 영생을 소유했는지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그가 거듭나지도 않았고 영생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거듭남이나 영생을 얻는 것이 과연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서도 가능한가? 오늘은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과 더불어 그 해답을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얻고자 한다. 

 

2. 니고데모는 누구며 왜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는가?

  니고데모는 그의 이름이 '니케(우세함,승리함)'와 '데모스(백성)'가 합쳐진 말로서, '백성 위에 우세함'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리고 그는 종교적으로 볼 때 유대교 중에서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이는 율법을 매우 중요시하는 유대 종교 분파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의 지도자(통치자)였다. 그는 유대의 최고 중앙의결기구이자 최고재판소인 산헤드린의 공회원이었다. 그는 한 마디로 율법에 있어서 최고 교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영적 갈증이 대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당시에 유대종교지도자들이 경계하고 있는 예수님을 밤중에 몰래 찾아올 리가 없다. 또한 그는 굳이 다른 유대종교지도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먼저 예수님을 높이는 말부터 시작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온 채 있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절대 행할 수 없는 표적들을 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그는 '랍비'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는 예수님을 율법의 정규과정을 다 밟은 자로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그의 생각에는 예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보다도 더 뛰어난 분이요 율법에 대해서 뭔가를 더 알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율법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물어보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그가 가진 유대교의 율법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거듭태어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거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문제는 율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오직 물과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3. 거듭남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수께서는 율법 안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온 니고데모에게 한 가지의 대답을 통해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것은 '거듭남'에 대한 대답이었다. 왜냐하면 이때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율법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이 거듭나고 또한 영생을 얻는 방법은 율법 안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것은 물과 성령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요 그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대답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거듭 태어난다'고 하신 말씀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헬라어로 '아노덴'으로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키는데, '아노덴'이라는 말은 '다시, 새롭게, 위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로부터'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가서 태어나겠느냐면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육체로부터 태어난 채 있는 것은 육체가 되는 것이요, 성령으로부터 태어나게 되어야 영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3:6). 그런데 여기에 보니, 거듭남의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물'도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물'은 무엇을 의미하며, '성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물'에 대해서는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가 잘 이야기해 주고 있으니, 그것은 '물'은 정화의 수단으로서, '세례'로 예표되는 것인데 그것은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회개'라는 방법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행2:38, 딛3:5). 이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그렇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 태어나려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생명을 가지고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훗날 자신이 죽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라고 하셨다. 또한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생명주는 영으로 오셨다고 말했다(고전15:45). 고로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그 사람 속에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이 거듭 태어나려면 먼저는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사람은 거듭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렇게 사람이 거듭 태어나게 되면 그 순간에 무슨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며, 그를 돕기 위해 그 사람만의 수호천사가 파송이 된다. 

 

4. 사람은 어떻게 거듭 태어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거듭 태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먼저는 회개해야 하며 또한 믿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먼저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그것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뉘우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이 자신의 죄를 없애는 것이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 속에 영접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신다. 이 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방법은 '회개'와 '믿음'이라는 수단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은 결코 율법을 지켜서 거듭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람의 거듭남은 오직 예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믿고 믿는 자들에게 보내주시는 성령을 영접할 때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이 믿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니고데모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한 편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것은 곧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놋뱀 사건이다(요3:14).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있었을 때였다. 그들이 홍해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의 마음이 많이 상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였다. 모세더러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인도해 냈느냐면서,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곳에 왜 데려왔느냐고 하면서 불평했다. 그리고 하찮은 만나같은 음식은 더이상 자기들에게 싫증난다고 외쳤다. 그러자 화가난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그들을 물어 죽게 하셨다. 이에 독이 퍼져 고통받고 있을 때에 그들은 모세를 찾아가 말했다. "우리가 여호와와 모세에게 원망하여 범죄를 했으니, 이 뱀들을 떠나가게 해 달라"고 청원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 가지 방법을 지시하셨다. 그것은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혹 뱀에 물린 자가 있으면 그것을 쳐다 보라고 하셨다. 그러면 살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아두었다. 그러자 백성 중에 뱀에 물린 자들 중에는 놋뱀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뱀을 쳐다본 자는 모두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독뱀에 물렸으면 빨리 독있는 피를 흘려버고 해독제를 먹어야 살아날 것인데, 놋뱀을 쳐다보았는데 그만 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듭남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신 예수께서 놋뱀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곧 믿음인 것이다. 

 

5. 거듭남에 있어서 율법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가?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왕국은 오직 율법을 지킴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율법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고 또한 구원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율법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정확히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오직 '회개'와 '믿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율법으로는 사람이 중생할 수 없는가? 그것은 사람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을 다 지켜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이것이 율법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온갖 말씀을 준행하지 않는자는 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했기 때문이다(신27:26). 사실 이러한 율법과 거듭남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문제는 니고데모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훗날 사도 바울도 이 문제에 부딪혀서 약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당시 바울도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을 목도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때 바울은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21:23에 말씀에 따르면, 누구든지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께서는 분명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저주받아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기고 정결법이나 음식법을 어기고 성전을 모독하는 말을 하여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죽고 없어진 그분이 어느날 생시에 그것도 대낮에 자기의 눈앞에 나타나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분이 살아서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 바울은 깜짝 놀랐다. 죽은 자는 절대 다시 살아서 이 땅에 돌아올 수 없는데 그분이 자기의 눈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저주받아 죽은 예수님과 그때 자기 눈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관계를 어떻게든 정리해야 했다.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율법은 의롭고 거룩한 것이지기는 하지만,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고 죽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율법 조항을 다 지키며 살아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임을  깨닫게 된다. 율법의 온갖 저주를 그분이 대신 담당하시려고 속죄양이자 아사셀양이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율법의 저주 아래 갇혀있는 모든 자로 하여금 더이상 저주를 받지 않아도 되는 길을 새롭게 그분이 여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예수께서 대신 받으신 저주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라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예수님의 피가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유일한 아들이셨지만,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이 생명을 받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 율법으로서는 도무지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저주를 받는 것이지만,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모든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어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의 법칙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자. 

 

6. 영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는가?

  이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사도 요한은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지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그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3:16~21까지의 말씀이다. 이 부분을 어떤 주석가들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라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본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예수께서 자신을 가키려 "나를 믿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를 믿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믿음과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제삼자의 입장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은 아무래도 사도 요한이 영생을 얻는 방법에 관하여 해설을 붙여놓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영생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셨는데 이는 그를 믿고 있는 모든 자가 다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여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요3:16).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 안으로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오히려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그분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려고 하는 영생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참고로 이것을 안다는 것을 요한복음의 저술목적을 아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요20:31).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이 앞의 3개의 공관복음서 외에 요한복음을 또 기록했던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게 하려 함이며, 그의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영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버지만 가지고 있는 생명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먼저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주셨다(요5:26).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 안에만 있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생명'은 어느 시기에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내세'다. '다음 시대'인 것이다. 사람이 죽고 나서 자신의 영이 가서 사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생명을 이 땅에서 얻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는 사망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가 멸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땅에 살아있을 때에 이 생명을 얻지 못한 채 죽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사망'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있고 또 나를 보내셨던 분을 믿고 있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 그리고 심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사망에서부터 생명 안으로 옮겨진 채 있는 것이다(요5:24)" 그렇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는 자는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생명을 얻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가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컴컴한 곳으로 가서 살아야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이 인류를 대신하여 죄값으로 십자가에 달려죽은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영생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고로 영생이란 단지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믿음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으로서, 이 생명을 가진 자는 죽은 후에 다음 시기에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가서 거기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7. 사람은 왜 영생을 얻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왜 사람 중에는 영생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빛으로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함으로 인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요3:19). 그래서 악을 행하고 있는 자는 모두 다 빛을 미워하게 되는데, 이런 자는 빛을 향하여 나아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더럽고 추한 자신의 죄된 행위들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요3:20). 그렇지만 오직 진리만을 따르는 자는 빛으로 나아온다. 그들은 자신에게 죄가 있으면 자기의 죄를 예수님께 고백함으로 용서를 구한다. 또한 이런 자들은 빛되신 예수님 안에서 행한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빛된 자녀라는 것을 드러내며 산다(요3:21). 그렇다. 사람이 영생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빛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며, 그분이 우리의 죄를 없이하기 위해 행하신 일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자기자신이 심판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그분을 믿고 있는 자는 자신이 죽을 때에 심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3:17~18).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래서 이 복음을 나만 알고 있지 말로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8. 나오며

  사람은 어떻게 거듭나며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 그리고 '거듭남'이란 대체 무엇이며 '영생'이란 또 무엇인가? 우리는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거듭남과 영생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람의 거듭남은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으로서 이는 '회개'와 '믿음'의 방법으로 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이유에서다. 그것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다음 시대에 가져야할 생명으로서, 아버지의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킨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망'이란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한 자가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오직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곧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켜서 거듭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어렵다. 또한 율법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도 없다.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지하고 사려깊은 니고데모라 할지라도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 율법보다 430년전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법칙이 지금도 율법보다 선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법은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으니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거듭 태어나기도 하고 영생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알고 보면 이처럼 쉽고도 간단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영생의 법을 모르고 있거나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먼저 믿어 거듭난 우리가 그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의 도리인 것이다. 

 

 

2022년 09월 2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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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2.10.04 15:03

    1. 들어가며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과연 자기가 거듭난 사람이 되었으며 영생을 소유했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기는 했는데 그가 아직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이거나 영생을 소유지 못했다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그리고 영생을 소유했는지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거듭났는지 거듭나지 않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가 영생을 소유했는지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그가 거듭나지도 않았고 영생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거듭남이나 영생을 얻는 것이 과연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서도 가능한가? 오늘은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과 더불어 그 해답을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얻고자 한다. 

     

    2. 니고데모는 누구며 왜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는가?

      니고데모는 그의 이름이 '니케(우세함,승리함)'와 '데모스(백성)'가 합쳐진 말로서, '백성 위에 우세함'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리고 그는 종교적으로 볼 때 유대교 중에서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이는 율법을 매우 중요시하는 유대 종교 분파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의 지도자(통치자)였다. 그는 유대의 최고 중앙 의결기구이자 최고 재판소인 산헤드린의 공회원이었다. 그는 한 마디로 율법에 있어서 최고 교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영적 갈증이 대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당시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경계하고 있는 예수님을 밤중에 몰래 찾아올 리가 없다. 또한 그는 굳이 다른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먼저 예수님을 높이는 말부터 시작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온 채 있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절대 행할 수 없는 표적들을 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그는 '랍비'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는 예수님을 율법의 정규 과정을 다 밟은 자로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그의 생각에는 예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보다도 더 뛰어난 분이요 율법에 대해서 뭔가를 더 알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율법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물어보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그가 가진 유대교의 율법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거듭 태어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거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문제는 율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오직 물과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3. 거듭남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수께서는 율법 안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온 니고데모에게 한 가지의 대답을 통해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것은 '거듭남'에 대한 대답이었다. 왜냐하면 이때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 율법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이 거듭나고 또한 영생을 얻는 방법은 율법 안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것은 물과 성령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요 그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대답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거듭 태어난다'고 하신 말씀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헬라어로 '아노덴'으로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키는데, '아노덴'이라는 말은 '다시, 새롭게, 위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로부터'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가서 태어나겠느냐면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육체로부터 태어난 채 있는 것은 육체가 되는 것이요, 성령으로부터 태어나게 되어야 영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3:6). 그런데 여기에 보니, 거듭남의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물'도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물'은 무엇을 의미하며, '성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물'에 대해서는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가 잘 이야기해 주고 있으니, 그것은 '물'은 정화의 수단으로서, '세례'로 예표되는 것인데 그것은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회개'라는 방법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행2:38, 딛3:5). 이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그렇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 태어나려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생명을 가지고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훗날 자신이 죽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라고 하셨다. 또한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생명주는 영으로 오셨다고 말했다(고전15:45). 고로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그 사람 속에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생명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이 거듭 태어나려면 먼저는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사람은 거듭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렇게 사람이 거듭 태어나게 되면 그 순간에 무슨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며, 그를 돕기 위해 그 사람만의 수호천사가 파송이 된다. 

     

    4. 사람은 어떻게 거듭 태어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거듭 태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죄는 회개해야 하며 또한 믿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먼저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그것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뉘우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이 자신의 죄를 없애는 것이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고 나서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 속에 영접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신다. 이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방법은 '회개'와 '믿음'이라는 수단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은 결코 율법을 지켜서 거듭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람의 거듭남은 오직 예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믿고 믿는 자들에게 보내 주시는 성령을 영접할 때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이 믿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니고데모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한 편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것은 곧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놋뱀 사건이다(요3:14).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있었을 때였다. 그들이 홍해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의 마음이 많이 상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였다. 모세더러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인도해 냈느냐면서,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곳에 왜 데려왔느냐고 하면서 불평했다. 그리고 하찮은 만나 같은 음식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싫증난다고 외쳤다. 그러자 화가 난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그들을 물어 죽게 하셨다. 이에 독이 퍼져 고통받고 있을 때에 그들은 모세를 찾아가 말했다. "우리가 여호와와 모세에게 원망하여 범죄를 했으니, 이 뱀들을 떠나가게 해 달라"고 청원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 가지 방법을 지시하셨다. 그것은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혹 뱀에 물린 자가 있으면 그것을 쳐다 보라고 하셨다. 그러면 살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아 두었다. 그러자 백성 중에 뱀에 물린 자들 중에는 놋뱀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뱀을 쳐다본 자는 모두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독뱀에 물렸으면 빨리 독있는 피를 흘려버고 해독제를 먹어야 살아날 것인데, 놋뱀을 쳐다보았는데 그만 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듭남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신 예수께서 놋뱀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곧 믿음인 것이다. 

     

    5. 거듭남에 있어서 율법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가?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왕국은 오직 율법을 지킴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율법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고 또한 구원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율법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정확히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오직 '회개'와 '믿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율법으로는 사람이 중생할 수 없는가? 그것은 사람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을 다 지켜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이것이 율법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온갖 말씀을 준행하지 않는자는 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했기 때문이다(신27:26). 사실 이러한 율법과 거듭남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문제는 니고데모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훗날 사도 바울도 이 문제에 부딪혀서 약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당시 바울도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을 목도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때 바울은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21:23에 말씀에 따르면, 누구든지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께서는 분명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저주받아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기고 정결법이나 음식법을 어기고 성전을 모독하는 말을 하여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죽고 없어진 그분이 어느 날 생시에 그것도 대낮에 자기의 눈앞에 나타나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분이 살아서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 바울은 깜짝 놀랐다. 죽은 자는 절대 다시 살아서 이 땅에 돌아올 수 없는데 그분이 자기의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저주받아 죽은 예수님과 그때 자기 눈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관계를 어떻게든 정리해야 했다.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율법은 의롭고 거룩한 것이기는 하지만,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고 죽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율법 조항을 다 지키며 살아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임을  깨닫게 된다. 율법의 온갖 저주를 그분이 대신 담당하시려고 속죄양이자 아사셀양이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율법의 저주 아래 갇혀 있는 모든 자로 하여금 더 이상 저주를 받지 않아도 되는 길을 새롭게 그분이 여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예수께서 대신 받으신 저주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라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예수님의 피가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유일한 아들이셨지만,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이 생명을 받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 율법으로서는 도무지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저주를 받는 것이지만,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모든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어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의 법칙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자. 

     

    6. 영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는가?

      이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사도 요한은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지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그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3:16~21까지의 말씀이다. 이 부분을 어떤 주석가들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라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본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예수께서 자신을 가키려 "나를 믿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를 믿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믿음과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제 삼자의 입장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은 아무래도 사도 요한이 영생을 얻는 방법에 관하여 해설을 붙여 놓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영생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 주셨는데 이는 그를 믿고 있는 모든 자가 다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요3:16).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 안으로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오히려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그분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려고 하는 영생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참고로 이것을 안다는 것을 요한복음의 저술 목적을 아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요20:31).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이 앞의 3개의 공관복음서 외에 요한복음을 또 기록했던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게 하려 함이며, 그의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영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버지만 가지고 있는 생명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먼저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주셨다(요5:26).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 안에만 있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생명'은 어느 시기에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내세'다. '다음 시대'인 것이다. 사람이 죽고 나서 자신의 영이 가서 사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생명을 이 땅에서 얻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는 사망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가 멸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땅에 살아 있을 때에 이 생명을 얻지 못한 채 죽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사망'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있고 또 나를 보내셨던 분을 믿고 있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 그리고 심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사망에서부터 생명 안으로 옮겨진 채 있는 것이다(요5:24)" 그렇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는 자는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생명을 얻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가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컴컴한 곳으로 가서 살아야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이 인류를 대신하여 죄값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영생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고로 영생이란 단지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믿음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으로서, 이 생명을 가진 자는 죽은 후에 다음 시기에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가서 거기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7. 사람은 왜 영생을 얻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왜 사람 중에는 영생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빛으로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함으로 인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요3:19). 그래서 악을 행하고 있는 자는 모두 다 빛을 미워하게 되는데, 이런 자는 빛을 향하여 나아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더럽고 추한 자신의 죄된 행위들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요3:20). 그렇지만 오직 진리만을 따르는 자는 빛으로 나아온다. 그들은 자신에게 죄가 있으면 자기의 죄를 예수님께 고백함으로 용서를 구한다. 또한 이런 자들은 빛되신 예수님 안에서 행한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빛된 자녀라는 것을 드러내며 산다(요3:21). 그렇다. 사람이 영생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빛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며, 그분이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 행하신 일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자기 자신이 심판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그분을 믿고 있는 자는 자신이 죽을 때에 심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3:17~18).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래서 이 복음을 나만 알고 있지 말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8. 나오며

      사람은 어떻게 거듭나며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 그리고 '거듭남'이란 대체 무엇이며 '영생'이란 또 무엇인가? 우리는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거듭남과 영생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람의 거듭남은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으로서 이는 '회개'와 '믿음'의 방법으로 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것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다음 시대에 가져야 할 생명으로서, 아버지의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킨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망'이란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한 자가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오직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곧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켜서 거듭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어렵다. 또한 율법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도 없다.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지하고 사려 깊은 니고데모라 할지라도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 율법보다 430년 전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법칙이 지금도 율법보다 선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법은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으니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거듭 태어나기도 하고 영생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알고 보면 이처럼 쉽고도 간단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영생의 법을 모르고 있거나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먼저 믿어 거듭난 우리가 그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의 도리인 것이다. 

     

     

    2022년 09월 2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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