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2(목) 수요기도회
제목: [히브리서강해(19)]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적 제사란 무엇이며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구인가?(히13:1~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FG3AbtXv6h4
1. 들어가며
히브리서는 '강을 건넌 자들'(창14:13, 수24:2~3)이라는 뜻을 지닌 어떤 '히브리인'이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그런데 이 편지는 다른 서신서들처럼 편지 형식을 띠고 있지 않다. 즉 발신자와 수신자를 표기하기 않고 있으며,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것도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 편지의 서두에 예수님이 누군지를 소개하는 것(히1:1~3)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렇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 책의 말미에 이 편지를 기록한 자기자신이 누군지를 정확히 소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편지가 누구에 의해서 쓰여졌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히브리서 13장 전체를 살펴보면서, 성도들이 진정 드려야할 영적 제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최종적으로 이 책의 저자가 누군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히브리서 13장은 어떤 내용의 말씀이 들어있는가?
히브리서 13장은 히브리서의 후반부의 결말 부분에 해당한다. 히브리서는 우선 내용상 서론부(1:1~3)와 본론부(1:4~13:19) 그리고 결론부(히13:20~25)으로 나눌 수 있다. 다시 본론부는 전반부(1:3~10:18)과 후반부(10:19~13:19)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때 전반부가 구약과 신약을 연결 완성시킨 예수의 각종 구약적 요소들에 대한 우월성을 제시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인내하는 믿음과 그에 합당한 생활에 대한 권면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후반부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히10:19~12:13)에서는 인내하는 믿음 자체를 다루고 있다면, 뒷부분(12:14~13:25)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관련한 권면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중에서 히브리서 13:1~25의 말씀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앞부분(13:1~19)에서는 형제사랑 및 음행과 탐욕을 경계하고 있고(히13;1~6), 더불어 신앙사수와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실천 및 순종을 권면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뒷부분(13:20~25)에서는 중보기도 요청, 송영, 문안인사로 구성된 끝맺는 말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3. 히브리서 기자가 전하는 마지막 권면의 말씀은 무엇인가?
성도들이 일상생활 가운
데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그것은 첫째로, 형제사랑하기를 지속하는 것이고, 음행과 탐욕을 경계하라는 것이다(히13:12~6). 그리고 둘째로, 신앙을 사수하고 고난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께 4가지 영적인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히13:7~16). 그리고 이 편지를 받을 대상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을 권면한다(히13:17).
4. 그리스도에 의해 영원한 제사가 드려진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드려야 할 진정한 영적인 제사는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단번으로 완성된 제사를 드린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려
야 할 4가지 영적인 제사란 어떤 것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4가지를 언급한다(히13:15~16).첫째, 찬송의 제사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올려주는 우리의 찬양을 가리킨다.
둘째, 그분의 이름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분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셋째, 선을 행하는 것이다. 사탄의 길을 따라가는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
넷째, 교통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성도들의 필요를 나눠주는 것이다. 즉 구제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적인 제물이 되는 것이다.
5. 히브리서 기자는 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을 인도하는 자들에 대하여 여러 번 강조하며 언급하였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여러차례 언급한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했는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그들의 결말을 주의하여 지켜보고 그들이 가졋던 믿음을 본받으라고 말한다(히13:7). 둘째는 그들에게 순종하게 복종하라고 말한다(히13:17).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자신이 결산할 자인 것처럼 자신에게 맡겨준 영혼들을 위해 깨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근심함으로 사역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째는 그들에게 항상 인사하라고 한다(히13:24).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고 그분의 지도자를 잘 받으라는 말이다.
둘째, 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위와같이 신신당부를 했을까? 그것은 많은 영적인 은혜가 그들을 인도하는 말씀사역자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의심하고 이들을 시험하고 미워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6. 이 편지의 끝인사와 송영 그리고 문안인사 속에 나타나 있는 이 편지의 저자는 대체 누구인가?
히브리서는 편지의 글이지만 특별하게도 이 편지의 서두에서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첫째, 이 편지의 수신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이 편지의 내용을 통하여 금방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히13:24). 당시 이 수신자들은 유대인으로서 살아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가는 큰 핍박과 환난을 당할 형편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히10:32~34).
히10:32~34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렇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당하는 환난과 핍박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가해지는 박해가 한 가지이고 또한 더불어 로마 정부로부터 가해지는 박해가 또 한 가지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유대인들은 과격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선동과 위협을 당해야했기 때문이며, 또한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로마로부터 커다란 어려움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교가 당시 로마정부로부터 집회와 활동이 허가된 종교였던 것에 비해, 기독교는 당시 사회에서 불법종교로 인식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네로 황제가 저지른 A.D.64년경의 로마 대화제의 방화범으로써 오인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네로 황제(A.D.54~68재위)가 로마 대화제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덮어씌워 기독교 대박해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 편지의 발신자 곧 송신자는 누구인가? 이 편지의 수신자는 서두에는 나오지 않지만 끝맺는 말과 송영과 문안인사를 살펴보면 대강 그가 누군지를 알아낼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도 바울이 확실시 된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을 1인칭 단수 '나'라고 표현하면서 곧 자신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19). 이것은 이 편지의 발신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과 과거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이 편지의 발신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는 직분에 있었음을 계속해서 암시하기 때문이다(히13:7,17,24). 둘째로, 이 편지의 수신자에게 전에 편지를 보냈던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히13:22을 헬라어원문으로 직역하면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면한다. 너희는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왜냐하면 나도 역시 짧은 시간을 통하여 너희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히13:22 헬라어직역).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3차 전도여행 때(A.D.53~58, 행18:23~21:16)에 고린도에서 A.D.54~55년경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서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디모데를 형제라고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모데가 풀려난 상황이라는 것을 이 편지의 수신자들보다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며, 디모데가 히브리서 기자에게 오면 함께 이 편지의 수신자들인 로마의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갈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히13:23). 넷째로, 이탈리아(로마)로부터 온 자들이 당시 이 편지의 발신자와 함께 있다고 전하면서 그들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24). 다섯째로, 이 편지의 발신자도 유대인이요 이 편지의 수신자도 유대인이기 때문이다(히1:1, 2:1~4). 이 편지의 발신자나 수신자는 유대교인들로서 모세와 여호수아, 아론과 제사제도를 잘 알고 있으며, 믿음의 선진들(장로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 편지는 바울이 1차 감옥수감(A.D.61~63) 이후 잠시 풀려난 상태에서(A.D.65~66) 서바나(스페인)으로 전도하러 갔다가 돌아가기 전에 먼저 이 편지를 로마에 있는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2차로 로마에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A.D.67~68) 순교를 맞이하게 된다. 고로 이 편지는 바울이 썼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7. 나오며
우리는 히브리서를 보면서 기존이 사도 바울이 썼던 다른 편지들과는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쓴 다른 편지들은 한 번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히브리서만큼 강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무려 5번이나 강조하면서 강조한다. 이는 이전에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노년에 여러 가지 많은 계시의 영을 받아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참된 구원론에 매우 많이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그의 구원론도 성숙해져 있었고 또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실 이 편지를 쓴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여러 학자들이 언급해 왔듯이, 바나바나 아볼로 혹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편지의 마지막 끝맺는 말에 와서 언급하는 여러 단서들은 이 편지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거해 준다. 특히 이 저자가 구원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그리스도가 누군지에 대해 이렇게까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동시에 예수님을 구약의 천사와 모세, 그리고 여호수아와 아론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이 저자가 사도 바울이 아니라면 이러한 내용을 쓸 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년이 되어 계시의 완성에 다다른 바울이 쓴, 또다른 작품으로서 보내어진 이 편지를 통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구약의 모든 계시와 제사 제도보다 더 뛰어난 분인지를 더 확실히 공부할 수가 있을 것이다.
2024년 08월 21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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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히브리서는 '강을 건넌 자들'(창14:13, 수24:2~3)이라는 뜻을 지닌 어떤 '히브리인'이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그런데 이 편지는 다른 서신서들처럼 편지 형식을 띠고 있지 않다. 즉 발신자와 수신자를 표기하지 않고 있으며,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것도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 편지의 서두에 예수님이 누군지를 소개하는 것(히1:1~3)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렇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 책의 말미에 이 편지를 기록한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정확히 소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편지가 누구에 의해서 쓰여졌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히브리서 13장 전체를 살펴보면서, 성도들이 진정 드려야 할 영적 제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최종적으로 이 책의 저자가 누군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히브리서 13장은 어떤 내용의 말씀이 들어 있는가?
히브리서 13장은 히브리서의 후반부의 결말 부분에 해당한다. 히브리서는 우선 내용상 서론부(1:1~3)와 본론부(1:4~13:19) 그리고 결론부(히13:20~25)로 나눌 수 있다. 다시 본론부는 전반부(1:3~10:18)와 후반부(10:19~13:19)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때 전반부가 구약과 신약을 연결 완성시킨 예수의 각종 구약적 요소들에 대한 우월성을 제시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인내하는 믿음과 그에 합당한 생활에 대한 권면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후반부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히10:19~12:13)에서는 인내하는 믿음 자체를 다루고 있다면, 뒷부분(12:14~13:25)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관련한 권면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중에서 히브리서 13:1~25의 말씀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앞부분(13:1~19)에서는 형제 사랑 및 음행과 탐욕을 경계하고 있고(히13:1~6), 더불어 신앙 사수와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실천 및 순종을 권면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뒷부분(13:20~25)에서는 중보기도 요청, 송영, 문안 인사로 구성된 끝맺는 말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3. 히브리서 기자가 전하는 마지막 권면의 말씀은 무엇인가?
성도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그것은 첫째로, 형제 사랑하기를 지속하는 것이고, 음행과 탐욕을 경계하라는 것이다(히13:12~6). 그리고 둘째로, 신앙을 사수하고 고난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께 4가지 영적인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히13:7~16). 그리고 이 편지를 받을 대상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을 권면한다(히13:17).
4. 그리스도에 의해 영원한 제사가 드려진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진정한 영적인 제사는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단번으로 완성된 제사를 드린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4가지 영적인 제사란 어떤 것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4가지를 언급한다(히13:15~16).
첫째, 찬송의 제사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올려지는 우리의 찬양을 가리킨다.
둘째, 그분의 이름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분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셋째, 선을 행하는 것이다. 사탄의 길을 따라가는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
넷째, 교통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성도들의 필요를 나눠주는 것이다. 즉 구제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적인 제물이 되는 것이다.
5. 히브리서 기자는 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을 인도하는 자들에 대하여 여러 번 강조하며 언급하였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언급한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했는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그들의 결말을 주의하여 지켜보고 그들이 가졌던 믿음을 본받으라고 말한다(히13:7). 둘째는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한다(히13:17).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자신이 결산할 자인 것처럼 자신에게 맡겨 준 영혼들을 위해 깨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근심함으로 사역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째는 그들에게 항상 인사하라고 한다(히13:24).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고 그분의 지도를 잘 받으라는 말이다.
둘와 같째, 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위와 같이 신신당부를 했을까? 그것은 많은 영적인 은혜가 그들을 인도하는 말씀 사역자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의심하고 이들을 시험하고 미워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6. 이 편지의 끝인사와 송영 그리고 문안 인사 속에 나타나 있는 이 편지의 저자는 대체 누구인가?
히브리서는 편지의 글이지만 특별하게도 이 편지의 서두에서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첫째, 이 편지의 수신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이 편지의 내용을 통하여 금방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히13:24). 당시 이 수신자들은 유대인으로서 살아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가는 큰 핍박과 환난을 당할 형편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히10:32~34).
히10:32~34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렇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당하는 환난과 핍박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가해지는 박해가 한 가지이고 또한 더불어 로마 정부로부터 가해지는 박해가 또 한 가지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유대인들은 과격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선동과 위협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며, 또한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로마로부터 커다란 어려움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교가 당시 로마 정부로부터 집회와 활동이 허가된 종교였던 것에 비해, 기독교는 당시 사회에서 불법 종교로 인식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네로 황제가 저지른 A.D.64년경의 로마 대화재의 방화범으로써 오인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네로 황제(A.D.54~68재위)가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덮어씌워 기독교 대박해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 편지의 발신자 곧 송신자는 누구인가? 이 편지의 수신자는 서두에는 나오지 않지만 끝맺는 말과 송영과 문안 인사를 살펴보면 대강 그가 누군지를 알아낼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도 바울이 확실시 된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을 1인칭 단수 '나'라고 표현하면서 곧 자신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19). 이것은 이 편지의 발신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과 과거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이 편지의 발신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는 직분에 있었음을 계속해서 암시하기 때문이다(히13:7,17,24). 둘째로, 이 편지의 수신자에게 전에 편지를 보냈던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히13:22을 헬라어 원문으로 직역하면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면한다. 너희는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왜냐하면 나도 역시 짧은 시간을 통하여 너희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히13:22 헬라어 직역).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3차 전도여행 때(A.D.53~58, 행18:23~21:16) 고린도에서 A.D.54~55년경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서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디모데를 형제라고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모데가 풀려난 상황이라는 것을 이 편지의 수신자들보다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며, 디모데가 히브리서 기자에게 오면 함께 이 편지의 수신자들인 로마의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갈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히13:23). 넷째로, 이탈리아(로마)로부터 온 자들이 당시 이 편지의 발신자와 함께 있다고 전하면서 그들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24). 다섯째로, 이 편지의 발신자도 유대인이요 이 편지의 수신자도 유대인이기 때문이다(히1:1, 2:1~4). 이 편지의 발신자나 수신자는 유대교인들로서 모세와 여호수아, 아론과 제사제도를 잘 알고 있으며, 믿음의 선진들(장로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 편지는 바울이 1차 감옥 수감(A.D.61~63) 이후 잠시 풀려난 상태에서(A.D.65~66) 서바나(스페인)로 전도하러 갔다가 돌아가기 전에 먼저 이 편지를 로마에 있는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바울은 2차로 로마에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A.D.67~68) 순교를 맞이하게 된다. 고로 이 편지는 바울이 썼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7. 나오며
우리는 히브리서를 보면서 기존에 사도 바울이 썼던 다른 편지들과는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쓴 다른 편지들은 한 번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히브리서만큼 강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무려 5번이나 강조한다. 이는 이전에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노년에 여러 가지 많은 계시의 영을 받아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참된 구원론에 매우 많이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그의 구원론도 성숙해져 있었고 또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실 이 편지를 쓴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여러 학자들이 언급해 왔듯이, 바나바나 아볼로 혹은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편지의 마지막 끝맺는 말에 와서 언급하는 여러 단서들은 이 편지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거해 준다. 특히 이 저자가 구원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그리스도가 누군지에 대해 이렇게까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동시에 예수님을 구약의 천사와 모세, 그리고 여호수아와 아론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이 저자가 사도 바울이 아니라면 이러한 내용을 쓸 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년이 되어 계시의 완성에 다다른 바울이 쓴, 또 다른 작품으로서 보내어진 이 편지를 통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구약의 모든 계시와 제사 제도보다 더 뛰어난 분인지를 더 확실히 공부할 수가 있을 것이다.
2024년 08월 21일(수)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