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4(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9)]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을까?(마4:1~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NFqNC_wYDm4
1. 들어가며: 구속사의 전환점, 광야의 결투
인류 구원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치열했던 영적 전쟁의 현장은 어디였을까? 그곳은 바로 광야였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직전, 40일을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시험 받으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책으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별히 마태복음 1장과 2장이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을 통해 그분이 '약속된 왕'이심을 보여주고 있다면, 3장의 세례와 4장의 시험은 그분이 이제 왕으로서 사탄의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등극하시는 대관식과도 같은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성도들은 이 본문을 읽으면서, 단순히 "예수께서도 배고픔과 명예욕의 시험을 참으셨으니, 우리도 인내하자"라는 도덕적 교훈 수준에서 멈추곤 한다. 물론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신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가 있는 광야로 가셔야만 했던 진짜 이유는 훨씬 더 심오하다. 이것은 단순한 유혹을 견디는 문제가 아니라, 아담이 잃어버린 세상 통치권을 되찾고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기 위한(창 3:15) 필연적인 '거룩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예수께서 사탄을 이기신 이 사건이 갖는 거대한 구속사적 의미와, 승리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죄 없으신 예수님은 왜 그리고 어떻게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는가?
우리는 여기서 먼저 신학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냐하면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사탄에게 시허믈 받으셨기 때문이다.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1장 14절에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즉, 인간이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메커니즘은 외부의 유혹(미끼)이 내부의 욕심(반응)과 결합할 때 작동하는 것이다. 내 안에 탐욕, 정욕, 교만이 있기 때문에 마귀의 속삭임이 먹혀들어 그만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떠하신가?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고후 5:21)"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고도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내면에 반응할 죄의 본성이나 욕심이 전혀 없으신 분이셨다. 그렇다면 그러한 분이 어떻게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수 있는가? 욕심이 없는데 유혹이 과연 성립되는가?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첫 사람 아담을 떠올려야 한다. 아담도 타락 전에는 죄가 없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듣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외부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죄를 짓게 되었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셨지만 예수께서는 얼마든지 죄의 유혹을 받으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하나님이 사람되신 분이다. 사람이 지은 죄들을 청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 있는 인간을 끝내시고자 예수께서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신 것이다. 그분은 죄가 없으시지만, 아담이 실패했던 그 자리, 즉 마귀와의 대면 상황으로 들어가셔서 다시 겨뤄야 했던 것이다. 고로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담(첫째 아담)이 넘겨준 세상 임금의 권세를 되찾기 위해 사탄과 정면 승부를 벌이셔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연단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자로서 치르는 대표전(War of Representation)이었다.
3.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가 펼친 치밀한 언어 전술은 무엇이었는가?
마귀는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매우 교묘한 언어적 전략을 구사했다. 한글 성경에는 모두 '만일'로 번역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을 분석해 보면 마귀가 사용한 가정법이 상황에 따라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사탄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흔드는 공격형 가정법을 사용했다. 즉 사탄마귀는 '에이(Ei)'(만일 ~라면)가정법을 사용한 것이다. 첫 번째(돌을 떡으로) 시험과 두 번째(성전에서 뛰어내림) 시험에서 마귀는 '에이(Ei)'라는 가정법을 사용했다. "네가 만일(Ei)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A형 가정법은 현실을 전제하되 그것을 의심하거나 증명을 요구할 때 쓰이는 가정법이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혹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들렸던 음성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이렇게 도발한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래, 맞다고 치자. 그런데 꼴이 이게 뭐냐? 40일이나 굶어 죽게 생겼지 않느냐? 네가 진짜 능력 있는 아들이라면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능력을 증명해 봐라." 이것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시험이었다. 능력으로 한 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여기서 능력을 쓰셨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증명되겠지만 동시에 '마귀의 말에 순종한 자'가 되어 마귀의 종이 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귀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둘째, 거래를 제안하는 유혹형 가정법을 사용했다. 즉 사탄무기는 '에안(Ean)'(만약 ~한다면)가정법을 사용한 것이다. 두 번의 시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막히자, 이제 사탄마귀는 세 번째(천하 만국을 보여줌) 시험에서 '에안(Ean)'가정법으로 전략을 바꾼다. "만약(Ean)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것은 에안 즉 '제안(Proposal) 가정법'이다. 미래의 가능성을 두고 협상하는 것이다. 마귀는 더 이상 정체성을 묻지 않는다. 대신 거래를 시도한다. "네가 이 땅에 온 목적이 세상을 얻으려는 것 아니냐? 십자가 같은 고난의 길을 가지 마라. 나에게 절 한 번만 하면, 내가 아담에게서 뺏은 이 모든 영광과 권세를 너에게 넘겨주겠다." 이는 고난 없는 영광, 십자가 없는 구원을 미끼로 예수님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삼으려는 작전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때도 역시 "사탄아 물러가라!"고 그 정체를 폭로하며 그를 쫓아내셨다.
4. 예수님은 왜 40일 금식을 자청하셨는가?
마태복음 4장 1절은 예수께서 어떻게 해서 세상 임금인 마귀를 불러들었고 그와 결투하여 이기게 되었는지 매우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 그렇다. 예수께서는 어쩌다 보니 광야로 가셨고 거기에서 마귀를 만난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마귀의 소굴인 광야로 이끄신 것이다. 즉, 이 싸움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40일을 금식하신 것인가?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금식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마귀를 이길 능력이 있으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하게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자기를 낮추셨다. 마치 새를 잡기 위해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듯이, 예수께서는 자신의 육체를 극한의 기아 상태로 몰아넣으셨다. 40일 밤낮을 굶주려 피골이 상접한 상태가 되었다. 인간으로서 가장 연약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그 상태로 자신을 두신 것이셨다. 이것은 마귀를 경계를 늦추게 하여 그를 유인하여 잡으려는 '영적 덫'이었다. 마귀가 볼 때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도 육체를 가진 이상 이 극한의 배고픔 앞에서는 무너질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신성의 능력을 감추시고, 가장 처절한 인간의 자리로 낮아지셨다. 그럼으로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말씀으로만으로도 마귀를 꺾을 수 있음을 손수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마귀로부터 3대0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다.
5. 사탄마귀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는 어떤 큰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마귀가 주었던 세 가지 시험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겨셨는가? 그것은 모두 "기록되었으되"라는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물리치신 것이다. 이는 첫째로, 떡(물질)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을 붙든 것이고, 둘째로, 말씀을 왜곡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유혹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말씀을 붙든 것이다. 그리소 셋째로, 세상 영광을 다 주겠다는 제안 앞에 오직 하나님만 경배해야 한다는 말씀을 붙드심으로 승리하셨다.
그런데 마귀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는 놀라운 영적 진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예수님의 개인 차원의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 신기원을 이루는 놀라운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을 뚫고 들어온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마태복음 12장 28~29절에서 예수께서는 이 사건의 의미가 어떤 일이었는지를 잘 설명해주섰다. 즉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이 세상 통치자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왕을 알려주신 것이다. 참고로 예수께서 마 12:28~29에서 언급하고 있는 '강한 자'는 사탄을 가리킨다.
그럼 예수께서는 언제 사탄마귀를 결박하셨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공생애 초기에 광야 시험을 통해 결박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신 것이다. 사실 조폭 세계에서도 상대방의 대장을 꺾으면 상대방의 조직 전체가 무릎을 꿇듯이, 영적 세계의 왕인 사탄도 예수님에게 패배했기에, 귀신들도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가는 곳마다 귀신들을 제압할 수 있었고, 그들을 추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다. 광야에서 사탄과의 승리가 있었기에, 예수께서는 사탄마귀에게 눌려 고통받는 자들 곧 병든 자를 치료하고 포로 된 자를 해방시켜주실 수가 있었다. 그래서 사탄마귀가 이 세상의 주인인 곳에서 참된 자유를 선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하늘에서부터 뚫고 들어오고 있음을 알려주셨다.
6.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이긴 자'의 권세란 어떤 것인가?
그날 예수님의 승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곧 예수님의 승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성도들의 승리의 근거도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19절을 보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날 마귀는 예수님께 졌다. 따라서 마귀는 예수님의 종이 되었고, 예수님은 마귀의 머리를 밟으시면서 '이긴 자'가 되셨다. 그런데 이기신 우리 주님께서는 그 승리의 권세를 당신만 갖고 있지 아니하시고, 먼저는 12제자들에게 주셨다(마 10:1). 그리고 70명의 제자들에게 주셨으며(눅 10:1), 승천하실 때에는 그 권세를 모든 믿는 자들로 확대하셔셔 적용하셨다(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 16:17).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위임된 권세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 대장 되신 예수께서 이미 마귀를 박살 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믿는 자들에게 위임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예수께서 획득하신 그 '마패(권세)'를 가지고 귀신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너희 주인인 사탄이 우리 주 예수님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 권세를 위임해주셨다. 우리에게는 왕의 권세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이렇게 명령할 수 있다. "사탄마귀의 잔당인 이 귀신들아, 이제 내게 예수계서 위임한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하노니, 이 사람에게서 떠나가라." 이렇게 호령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들어와서 수많은 성도들은 이러한 영적 원리를 모른 채, 마귀에게 그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굶주리셨고, 우리를 위해 사탄귀와 싸우셨으며, 우리를 위해 사탄귀를 이기셨고, 이제는 승리의 권세를 우리 믿는 이들에게 위임해주셨다는 것을 말이다.
7. 나오며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광야는 어떤 곳인가? 그곳은 우리가 영적 전쟁을 치열하게 진행할 우리의 영적 전쟁터와 같다. 지금도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시험을 한다. "네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냐? 그러면 어디 한 번 돈으로 증명해 봐라. 어디 한 번 성공으로 증명해 봐라."는 식으로 유혹한다. 그리고 우리가 완강하게 나오면 "나와 타협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해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한다. 이것도 통하지 않으면 때로는 말씀을 교묘하게 비틀어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거나 시험하게 만들어서 넘어뜨리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 주님께서 사탄마귀가 주는 모든 시험을 다 겪으신 후 결국에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기신 권세를 이에 우리 믿는 이들에게 위임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때 주님은 사탄마귀와 어떤 타협도 하지 않으셨다. 배고픔에서도 결코 돌을 떡덩이로 만들지 아니하셨다. 그리고 명예를 준다고 해도, 권력을 준다고 해도 주님은 그것을 탐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때 만약 예수께서 사탄의 말을 들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었다면, 명예와 권력은 내게 있을지라도 예수께서는 여전히 사탄의 종이 되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탄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아니 된다. 당장 눈 앞에 펼쳐보이는 떡이 맛있어 보이고 크게 보여도 그것은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에게 좋은 제안을 해 온다면, 즉시 말씀의 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대적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미 내 안에 숨어있는 더러운 욕심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여 귀신들을 대적해야 한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그럴 때, 어둠은 떠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와 우리 모두의 가정과 삶 속에 강력하게 임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겨놓은 승리를 우리에게 마패처럼 선물로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이겨놓은 싸움의 승리를 내주지만 않으면 모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다.
2024년 12월04일(수)
정보배 목사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수요기도회 #마태복음강해 #마태복음4장 #예수님의시험 #광야시험 #영적전쟁 #구속사 #마지막아담 #사탄아물러가라 #말씀으로승리 #강한자결박 #믿는자의권세 #위임된권세 #예수이름의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