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30(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39)] 칠병이어의 기적 및 표적과 누룩의 교훈에 담긴 하나님의 뜻(마15:29~16: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1Q9Z4ju4lB8

1. 들어가며: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구원의 확장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민족이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온 인류를 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이러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특히 마태복음 15장과 16장에 기록된 칠병이어의 기적과 누룩의 교훈은, 구원의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는 과정과, 우리가 경계해야 할 신앙의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칠병이어의 기적 사건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표적 및 누룩 사건을 통해, 여기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의 자세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예수께서는 이방지역에 가셔서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한 믿음을 보셨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의 딸을 고쳐주셨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이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 세계로 확장되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준다. 이후 예수께서는 이방인들의 도시인 데카볼리(10고을)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기시고, 그곳에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다. 그러자 각종 질병과 장애로 고통받던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온전함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이 치유 사역은 무려 사흘 동안이나 이어졌고,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들이 가져온 양식은 모두 떨어졌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굶주린 이방인들의 무리를 보며 그들에게도 깊은 긍휼의 마음을 품으신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마15:32)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들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신다. 결국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이방인들의 육체적 필요까지 세심하게 살피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3.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기적은 같은 사건인가 아니면 다른 사건인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저근 같은 사건인가 다른 사건인가? 어떤 학자는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기록했다고 하거나, 기억력의 차이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기적은 전혀 다른 사건이다. 왜냐하면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사건은 2가지 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칠병이어의 기적은 이전에 베푸셨던 오병이어의 기적과 여러 면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이 기적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첫째로, 대상이 다르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칠병이어의 기적은 명백히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는 구원의 복음이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장벽을 넘어 모든 이에게 열려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둘째로, 떡과 물고기의 숫자가 다르다. 오병이어에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칠병이어에서는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기적을 베푸셨다. 셋째로, 남은 양이 다르다. 오병이어에서는 열두 개의 작은 바구니(코피노스)에 남은 조각이 가득 찼지만, 칠병이어에서는 일곱 개의 큰 광주리(스퓌리스)에 남은 것이 가득 찼다. 여기서 '열두 바구니'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며 유대인을 향한 구원을 의미하는 반면, '일곱 광주리'는 완전수 '7'을 통해 온 세상, 즉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를 향한 충만한 구원을 상징한다. 넷째로, 기적을 일으킨 장소와 시기가 다르다. 오병이어는 유월절 무렵 푸른 잔디밭에서 일어났지만, 칠병이어는 건기인 여름철의 황량한 흙바닥에서 일어났다. 이는 척박하고 소외된 이방 땅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동일하게 임함을 보여준다.
둘째, 이 두 사건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서는 주님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대인들에게 베푸신 사건이라면, 칠병이어의 기적은 이방인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베푸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칠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히 굶주린 어떤 무리를 먹이신 사건이 아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당신의 백성으로 품으시며, 그들의 영적, 육체적 필요를 모두 채우시는 분임을 명백히 하시려고 이 사건을 일으키겼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적을 통해 제자들은 물론 오늘날의 우리들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으며,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위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
4. 예수께서는 왜 표적을 구하는 자들의 청원을 들어주지 아니하셨는가?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예수께서는 다시 유대인 지역으로 돌아오신다. 그곳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책잡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표적을 구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악한 의도를 꿰뚫어 보시고,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는 그들의 영적 무지를 책망하신다. 그리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마 16:4)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며 그들을 떠나신다. 예수께서는 불순한 의도로 표적보여주기를 원하는 자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시지 않는다. 예수께서 일으키신 표적인 단순한 기적 사건이 아니라 예수께서 누구시며 이 땅에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를 알려주시는 소중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은 보여주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요나의 표적이 하나님께서 보새신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믿는 자들만을 위한 표적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표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런 표적을 통하여 분명히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가 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여 믿지 않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려 하는 세대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5.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뜻은 무엇인가?
이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마16:6)고 경고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걱정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룩'은 그들의 잘못된 '교훈'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셨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누룩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첫째, 바리새인의 누룩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그들의 '형식주의'와 '외식'을 가리킨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조문과 전통을 지키는 데 매우 열심이었지만, 그 본질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잃어버렸다. 그들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外飾)으로 가득했고, 스스로의 의를 드러내며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교만에 빠져 있었다. 이는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형식에만 얽매이는 형식주의적 신앙의 전형이다. 오늘날에도 신앙의 본질보다는 종교적 행위 자체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둘째, 사두개인의 누룩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세속주의'와 '합리주의'를 가리킨다. 사두개인들은 당시 제사장 계급을 중심으로 한 현실주의자이자 세속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부활이나 천사, 영과 같은 영적인 세계를 부인했으며, 로마의 권력과 타협하며 현실의 부와 쾌락을 추구했다. 종교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으며,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적인 합리성과 계산을 앞세웠다. 이는 신앙을 현실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세속주의적 태도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고 돈과 권력을 추구하며 신앙의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사두개인의 누룩에 오염된 것이라고 하겠다.
6. 나오며: 진실한 회개와 겸손의 길
예수께서는 칠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이방인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구원의 문을 활짝 여셨다. 동시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경계하라고 가르치심으로써, 우리가 빠지기 쉬운 신앙의 함정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신앙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형식주의와 외식, 세속주의와 합리주의의 누룩을 경계하고, 오직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드러난 '요나의 표적'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칠병이어의 기적이 보여준 풍성한 은혜와, 누룩의 교훈이 주는 날카로운 경고를 마음 깊이 새기며, 오직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걷는 신실한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2025년 07월 30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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