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40)]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의미와 참된 제자의 길은 무엇인가?(01)(마16:13~28)_2025-08-06(수)

by 갈렙 posted Aug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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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txJT44n0BRI
날짜 2025-08-06
본문말씀 마태복음 16:13~28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8-06(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40)]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의미와 참된 제자의 길은 무엇인가?(01)(마16:13~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txJT44n0BRI

 

1. 들어가며: 구원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고백
  기독교 신앙의 근간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그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다. 이 고백은 단순히 지적인 동의를 넘어, 한 개인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이다. 마태복음 16장은 바로 이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 생각하는지 물으심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더 깊은 차원의 진리로 인도하신다.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행해진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과 그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주는 고백이 무엇이며, 그 고백 위에 선 자들이 걸어가야 할 '참된 제자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의 이방 지역까지 가셨는가?
  예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가셨던 '가이사랴 빌립보'는 어떤 지역인가? 이곳은 당시 헤롯 빌립이 로마 황제(가이사)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계획도시였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헬몬 산(해발 2,914m) 기슭에 위치하여 풍부한 물이 솟아나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온갖 우상 숭배가 만연한 중심지였다. 특히 그리스의 목축의 신 '판(Pan)'을 섬기는 거대한 동굴 신전이 있었고, 그때 사람들은 이곳을 '지옥의 문'으로 통하는 곳이라 여기기도 했다. 예수께서 굳이 이곳으로 제자들을 데려가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계속해서 예루살렘에서 보낸 종교 지도자들과 불필요한 충돌과 마찰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활동을 시기 질투하며 못마땅해하는 산헤드린 종교 지도자들이 자꾸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시험하고 책잡고 제자들을 힘들게 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이방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기신 것이다.
  둘째,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역이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과연 어떠한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며,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설명해 주기 위한 아주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헛된 신들과 권세 앞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생명의 주인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여, 이 고백을 하는 자들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 신들이 지배하는 '지옥의 문' 앞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을 '천국의 반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고자 함이었다. 

 

3.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과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위와 같은 배경 속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신다. 첫째는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것이었고, 둘째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것이었다.
  첫째,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제자들은 어떻게 대답했는가? 그때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대답을 예수님께 전한다. "한 편으로는 세례 요한, 다른 이들은 엘리야, 딴 이들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16:14) 이 대답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인물로는 인정하지만, 그의 신성(神性)과 구원자 되심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한, 불완전한 이해를 보여준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그들의 신앙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하신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 시몬 베드로가 앞으로 나선다.
  둘째,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는 어떤 대답을 하였는가? 이때 베드로는 주저 없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 고백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핵심적인 선언이 될 줄을 베드로도 잘 몰랐을 것이다. 이 고백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로, 예수님은 "그 그리스도(The Christ)"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으로, 예수께서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아, 즉 구원자임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예수가 바로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 구원자이심을 고백했던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the living God)"이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단순히 어떤 위대한 인간이나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뜻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4.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주 하나님이신가?
  실로 베드로의 고백은 위대했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교회의 고백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의 고백이다. 그는 예수님의 못자국 난 손과 창자국 난 옆구리를 보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라고 고백했던 사람이다.
이는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아는 것을 뛰어넘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이는 예수님을 바로 자신의 '주(Lord)'이시며 자신의 '하나님(God)'이라고 인격적으로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주 여호와(하나님)'는 창조주 하나님을 지칭하는 유일한 이름이었다. 도마는 이때 예수님이야말로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서, 온 우주의 창조주이자 자신의 삶의 주이심을 온전히 고백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마가 예수님을 가리켜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 '주 하나님'이란 호칭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사용하는 호칭이었기 때문이다(단9:4). 그런데 이 표현을 도마가 예수님에게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도 '주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사실 구약 시대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 것이었다(행3:22, 신18:15, 눅1:32).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주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1:8)" 요한계시록에서 주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13을 보면,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사41:4, 44:6, 48:12), 이 표현을 우리 주 예수께서 동일하게 자신에게 사용하신다(계1:17, 2:8, 21:6, 22:13). 이는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증언해준다. 더욱이 주 하나님께서는 계1:8에서 자신을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고 선언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장차 올 자'(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는 구약성경에 따르면 여호와를 가리키지만(슥14:4~5),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우리 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이다(계22:12,20). 더욱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나는 ~이다" 내지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는 표현을 자기 자신에게 사용하시는 것을 본다(요8:24, 28, 58). 이것은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자기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이 바로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던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럼,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왜 그리 중요한가? 그것은 첫째, 예수께서 단지 하나님이 보낸 자인 것을 뛰어넘어서 한 분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전능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어 올라가신 것이다. 둘째, 하늘로 올라가신 그분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고자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의 영 가운데로 들어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 속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이 아무리 우리 성도들을 해치려 한다고 할지라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니 우리를 건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요일5:18).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치러야 할 모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해주는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요일4:4). 

 

5.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는가?
  예수께서는 이러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바요나(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고 말씀하셨다. 이 위대한 진리는 베드로의 아버지인 요나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즉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하늘들의 왕국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계시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러한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2가지 축복을 약속하신다.
  첫째, 이러한 신앙고백 위에 음부가 이기지 못할 교회를 건축할 것이라고 하셨다(마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문들)가 이기지(제압하지) 못하리라"(마16:18). 여기서 '반석(페트라)'이라는 말은 베드로(페트로스)라는 한 개인을 지칭한다기보다는, 베드로가 고백한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위대한 신앙고백'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교회는 바로 이 진리의 고백 위에 세워지는 믿음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 즉 죽음과 사탄의 모든 권세가 결코 능가하지 못하는 영원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둘째,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매고 풀 수 있는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하셨다(마16:19). 이 열쇠는 복음을 선포하여 구원의 문을 열고 닫는 권세를 가리킨다. 즉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자들은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인데, 이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를 통해 천국의 문이 온 세상에 활짝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6.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대체 어떤 길이어야 하는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직후, 베드로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예수께서 자신이 고난받고 죽임당한 후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처음으로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16:22)라고 항변한다. 인간적인 연민과 생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막아선 것이다. 이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베드로를 꾸짖으신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방금 전 '복이 있다'고 칭찬받았던 베드로가 순식간에 '사탄'이라는 책망을 듣게 된 이유는, 그가 '사람의 일' 즉, 고난 없는 영광, 십자가 없는 부활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과해야만 부활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수님은 참된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첫째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생각, 계획, 욕망, 자아를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십자가가 실패와 저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이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기꺼이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와 사명의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짊어지고 묵묵히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셋째는 끝까지 계속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은 편안하고 영광스러운 길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길의 끝에는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음을 예수께서 약속해주셨다. 

 

7. 나오며: 고백을 삶으로 증명하는 제자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모든 신앙의 출발점이자 핵심이 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신앙고백 위에 반석과 같은 교회가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제자는 이러한 신앙고백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주'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한 약속된 메시아이요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나 그분의 실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주 하나님이시다(요20:28). 이는 한층 더 진일보한 도마의 신앙고백이다. 이것은 부활하신 우리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 베드로가 고백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신 것이다. 구약에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다면, 신약에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예수'라고 계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은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일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며,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생명을 내어놓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참된 제자의 길이다. 결국 이 길을 걷는 자만이 마지막 날, 저 주님과 함께, 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한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2025년 08월 06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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