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의 최고의결기구인 산헤드린공회 앞에 붙들려간 베드로와 요한,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는 당장이라도 목이 댕강 날아갈 듯한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에서 이들 두 사도는 과연 어떻게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며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손은 떨리지 않았을까? 아니 입은 잘 벌릴 수 있었을까?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사도들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한 산 역사 이야기다. 특히 행1:8에 따라, 복음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된다. 이것들 중에서 사도행전 2-7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의 복음전파를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사도행전 4장 1절-22절의 말씀은 솔로몬 행각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두번째 설교에 따른 두 사도의 결박과 투옥,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과정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왜 제사장 그룹인 사두개인들은 두 사도의 복음전파를 싫어했을까? 첫째는 자신의 관할 내에서 허락도 없이 설교하여 군중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내주지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도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성전미문의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자 두 사도를 따라 성전에 들어온 그 앉은뱅이를 보고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그들에게 왜 이런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다보니 그만 수많은 군중이 모이게 된 것뿐이었다. 둘째는 사두개인들은 믿지 않은 죽은 자의 부활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은 영적인 것들을 믿지 않았다. 몸의 부활과 영과 천사와 귀신의 존재를 부인했다(행23:8).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40살 이상 된 그 선천성 앉은뱅이가 어떻게 걷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 기적은 베드로와 요한의 개인의 권능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되어진 것임도 설명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못박아 죽인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그 예수의 이름이 역사하여 기적이 일어났음을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부활을 언급했을 뿐이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운데 사두개인들(성전경비대원)은 베드로와 요한의 집회를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그들을 정죄하여 심판하고자 산헤드린공회를 소집한 것이었다. 이 일 때문에 갑자기 바리새인들과 백성의 장로들까지 합류하여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심문해보아도 공회는 두 사도의 잘못을 찾아낼 수 없었다. 기적은 사실이었고, 그 기적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도 사실이었고 그것이 그 앉은뱅이의 기적을 증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산헤드린 공회는 비겁하고 불공정하게 행동했다. 심문해 보았으나 아무런 죄를 찾아내지 못했을 때에 무죄를 선언해야 했다. 하지만 공회는 자신의 할 일을 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두 사도를 아무 이유없이 위협한 채 놓아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몇가지 놀라운 영적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복음전파는 항상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에 의해 방해받는다는 것이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로서 제물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벌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이상주의자로서 거짓된 가르침으로 당시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예수님과 그리고 이어 나타난 예수추종자들에 의해 자기들의 자리가 위협받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채 사도들을 핍박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복음전파는 항상 칭찬과 명예와 물질적인 보상이 뒤따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옥에 갇히기도 하고 핍박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기도하고 성령충만을 받은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자신을 변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공회에 붙들려갈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 시에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시리라고 하셨다. 셋째,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가져오게 한 요인이 중요하다. 기적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기적을 일으키게 한 것은 예수의 이름이다. 예수께서 살아계시기에 그의 이름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기적을 전파할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일으키게 했던 부활의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넷째, 복음전파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서워 살려달라고 빌거나 권력에 아부할 것이 아니다. 말씀전파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책임져주시는 것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항상 기도하고 성령충만을 받고 있으면,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 그 시에 말씀하시고 보호해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도가 일으킨 기적도 기도에서 시작되었고, 그들의 설교도 성령충만으로 되어진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려는 성도들이여, 항상 기도하고 성령충만을 받으라. 그래야 순간순간마다 역사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