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는 이스라엘민족의 애굽탈출기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민족은 애굽땅에서 왜 탈출해야만 했던 것일까? 거기에서 계속 살면 안 되는 이유라는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 그런데 야곱을 따라 70명의 가족들이 들어간 애굽땅은 땅 중에서 가장 좋은 땅이었다. 비옥한 곡창지대와 초장이 있어서 우양을 키우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거기에서 이스라엘민족은 점점 더 번성해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숫자가 채워졌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는 축복이 성취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임시로 들어간 애굽 땅에서 아예 영영이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다. 애굽땅은 이 세상을 상징하고, 바로왕은 이 세상임금인 사탄마귀를 상징하는데, 어찌 거기에서 살려고 하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왕바로로 하여금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도록 허락하셨다. 그렇다. 우리에게 불어닥친 고난과 핍박은 결코 우연은 없다. 자, 오늘부터 시작되는 출애굽기의 놀라운 영적 보고(寶庫) 안으로 들어가보자.
1. 들어가며
오늘은 출애굽기 강해 첫번째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은 출애굽기는 어떤 책인지에 관하여 서론적인 부분을 좀 다룰 것이다. 이 책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누가 썼는지, 그리고 이 책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 책의 중심주제이자 오늘의 중심주제인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민족을 굳이 애굽에서 탈출시키려고 하셨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이 계속해서 애굽에서 살도록 내버려두실 것이지, 왜 굳이 200만명이나 되는 거대한 민족을 광야로 끌고나오려고 한 것일까? 광야는 먹을 것도 없는 척박한 땅이자 물도 구하기 어려운 장소인데 어쩌자고 그 풍요로운 애굽땅에서 그들을 굳이 이끌어내려고 하신 것일까?
2. 출애굽기는 어떤 책인가?
출애굽기는 무슨 책인가? 출애굽기는 출애굽에 관한 기록의 책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에 대한 기록을 줄여서 "출애굽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애굽은 한자어로는 애급(埃及)이라고 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할 때 "애굽"이라고 번역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모목인 "출애굽기"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그것은 70인역(LXX)(B.C.280년경)(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에서 연유했다. 70인역에서는 출애굽기를 엑소더스(EXODUS)라고 하는 제목을 붙였는데, 엑소더스가 바로 헬라어로 "탈출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출애굽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원래 책 제목은 히브리어사본(맛소라텍스트)에서는 출애굽기 1장 1절의 첫문장을 따라서 "웨엘레 쉐모트(그리고 이것들은 이름들이다)"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러면 누가 쓴 책인가? 출애굽기는 모세오경의 저자이자, 출애굽을 이끈 두 장본인(모세와 아론) 중 한 사람인 모세가 쓴 것이다. 모세(B.C.1526~1406)는 출애굽후 40년이 지난 어느날, 모압평지에서 출애굽2세대들에게 다시 한 번 자기가 받았던 말씀과 출애굽과 광야의 노정을 들려주는데, 이때 아마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모세는 모세오경이라는 창,출,레,민,신이란느 5권의 율법서(토라)를 기록한 뒤에 느보산에서 죽는다.
그러하면, 출애굽기는 과연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까? 출애굽기는 야곱이 자신의 가족 70명을 데리고 애굽에 들어갔다가 탈출해서 나온 기록으로서, 이스라엘민족의 탈출기와 더불어 시내산 아래의 시내광야에 성막을 건축하기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B.C.1446년 1월 15일에 고센땅 라암셋성을 출발하여(출12:37), 딱 3달후에 시내산 아래에 있는 시내광야에 도착한다. 그때는 B.C.1446년 3월 15일이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시내산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유명한 십계명을 비롯하여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받았으며, 이어서 성막제도에 관한 말씀을 받았는데(출25~31장), 이 말씀에 따라 B.C.1445년 1월 1일에 성막을 건축한 것으로 끝이 난다(35장~40장).
3. 야곱은 왜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애굽땅으로 들어가야 했을까?
야곱은 왜 그의 가족 70명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해야만 했을까? 야곱이 밧단아람으로부터 4명의 부인들과 12명의 아들들 그리고 1명의 딸을 데리고 다시 가나안땅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얼마 있다가 가나안땅에 흉년이 찾아온다. 흉년이 든 후 2년째되던 해에 애굽에는 식량이 풍성하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그의 자식들을 보내 애굽에 가서 식량을 구해오게 한다. 그런데, 이때 이미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있었고 곡식을 팔고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요셉은 곡식을 구하러 온 형제들에게 자기가 애굽에 팔렸던 요셉인 것을 알리고, 앞으로 5년이상 흉년이 있을 것을 알리면서, 자기의 아버지의 형제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청한다. 그러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 야곱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창46:3~4),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땅으로 들어간다(출1:1~5). 결국 야곱의 70명의 권속들이 애굽땅으로 들어가게 된 일차적인 이유는 기근 때문이요, 요셉의 초청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심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창46:3~4). 우리도 무엇인가를 행하려 할 때에는 하나님께 여쭤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어야 한다.
4. 애굽은 영적으로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야곱의 들어간 애굽땅은 영적으로 볼 때 어떤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애굽의 땅들이 어떤 곳인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야곱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받고 애굽의 좋은 땅 고센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을 때, 애굽은 정말로 풍요로운 땅이었다. 나일강의 거대한 물줄기 때문에 애굽 땅은 항상 풍성했던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민족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 즉 나일강삼각주에 위치한 땅은 농사를 하기에 너무나 적합했고, 우양을 먹이기에 충분한 목초지가 있는 아주 좋은 땅이었다(창46:28,47:6,11).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다. 약 350년의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 그러자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12명의 자식들이 죽었으며, 요셉의 형제들과 그 세대의 사람들도 다 죽게 되었다(출1:6). 하지만 풍요로운 애굽땅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하였으니, 그 당시의 상황을 모세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1:7)".
그렇다면 영적으로 볼 때에 애굽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먼저, 애굽땅은 세상을 상징한다. 거기는 약속의 땅이 아니다. 그 땅은 잠시 거쳐가야할 땅이다. 그러므로 애굽은 영적으로 볼 때,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 세상을 상징한다. 그중에서도 애굽땅은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애굽은 풍요로움의 땅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벨론이 위치한 갈대아 우르는 종교와 우상으로 가득차 있는 이 세상을 상징하고 있고,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과 동성애가 가득한 쾌락의 세상을 상징하고 있다면, 애굽땅은 어떤 세상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오늘 본문에 따르면, 크게 2가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애굽이 풍요로운 이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사람이 번성하는 장소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애굽땅은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물이 풍부한 애굽땅은 농사와 목축을 하기에 충분한 땅이었다. 특히 나일강의 삼각주(델타지역)은 나일강의 하류로서 물을 대기에도 쉬운 너무나 좋은 땅이었다. 그래서 농사와 목축을 통해 곡식과 가축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을 내다팔아 금은과 같은 패물을 얻기에 좋은 땅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기근이 들면 사람들이 찾아간 곳이 바로 애굽이었다. 갈대아우르에서 부름을 받았던 아브라함도 기근이 들었 때 애굽땅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는 우양과 노비와 나귀와 낙타를 얻어가지고 나온 적이 있었다(창12:16).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일찌기 약속하시기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 땅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나올 때에는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창15:14). 아니나 다를까 훗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해 나올 때에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나왔는가? 그들은 그들의 이웃에 있는 애굽 사람들과 자기집에 거류하는 다른 여인들로부터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출3:21~22). 아마도 10가지 재앙으로 승리를 거둔 전리품조로 가지고 나온 듯 하다. 어찌되었든 애굽땅은 곡식과 가축이 풍부하고, 은금패물이 가득한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땅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둘째로, 애굽땅은 번성의 장소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이 자기의 자손들을 이끌고 남자들만 70명이 가나안땅에 들어갔다. 종들과 여자들까지 합치면 200명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을 알지못하는 왕이 일어났을 때에(애굽의 제18왕조의 시작) 이미 이스라엘민족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여 매우 강하여졌고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출1:7). 다시 말해, 애굽 땅이란 번성의 축복을 이루는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민족이 이렇게 번성하게 된 것은 그들의 생산력이 왕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처럼, 그들의 후손을 하늘의 별들과 같이 그리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창12:2, 13:16, 15:5, 26:4, 28:14, 46:3~4). 결국 애굽에 들어간지 430년만에 이스라엘민족은 애굽인들이 두려워할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애굽에서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셨으며, 번성하게 하셨을까? 그것은 애굽의 풍요로움 속에 푹 빠져 지내라고 그렇게 한 일까? 아니다. 이것은 목적이 있다. 다음과 같은 2가지 목적을 위해서다. 첫번째는 세상의 풍요로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이들을 이 세상의 풍요로움 안에 두시는 이유는 우리가 여기서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여인들에게 애굽의 여인들로부터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하게 한 것은 장차 하나님이 거하실 장소이자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는 성막을 건축할 재료로 쓰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출35:20~29, 36:3~7)). 성막은 영적으로 볼 때,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생활을 상징하기도 한다(이것은 나중에 배우게 될 것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이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풍요로움을 누리도록 하신 이유는 세상의 있는 것을 누리며 살라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막으로 지칭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쓰라고 주신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사는 자는 평생 자신의 육체만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다가 천국에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빈털털이가 될 수도 있다.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이들더러 이 세상에서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으라고 붙여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사들과 인간들은 둘 다 영적인 존재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천사는 동시에 한꺼번에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창조하셨으나, 인간은 오직 한 사람만 만드셨다(말2:15). 그는 바로 아담이다. 모든 인류는 이 첫째아담의 허리로부터 가지쳐서 나왔다. 사람 오직 한 개의 영만 만드셨으나 그 다음부터는 그 영으로부터 분리 유전되어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아담이 범죄할 때에 그의 허리에 있었기에 같이 범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가 곧 인류의 범죄가 된 것이다(롬5:12). 그래서 사람은 처음부터 아예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죄사함과 영생을 공급함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게 하신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거듭 태어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있는 풍요로움을 통하여 하늘에서 받을 영광을 준비하기 위함이며, 이 땅에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탄생할 수 있기에 많은 영혼을 여기서 구원하라는 것이다.
5. 이스라엘백성이 애굽땅에서 430년을 살면서 잊어버린 것은 무엇이었나?
그런데 장정 70명에서 장정 200만명(장정만 60만명)으로 불어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 두신 이유를 망각해가고 있었다. 첫째로 애굽의 풍요로움을 누리다보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 땅에서 그냥 계속해서 살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땅에 들여보낸 목적에서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그들은 애굽에서 천국에 들어갈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를 양산해야 했으나 육적인 자녀만을 양산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땅에 들여보낸 목적에서 완전히 빗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족보에 기록된 사람은 구원받은 몇몇 사람만 기록된 것이다. 여러분은 혹시 아는가? 마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조상들의 족보를 보면, 430년동안 애굽땅에 살던 사람들이 적어도 12~15대정도는 되어야 하는데도, 딱 4대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육적으로는 자식을 많이 낳아 200명에서 200만명으로 불어나기는 했지만, 애굽의 풍요로움 속에서 살다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애굽의 우상들을 섬기고 살아왔기에 그들 중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숫자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6.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어떻게 해서 애굽땅에서 나올 수 밖에 없도록 하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약속의 땅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깨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생각해내신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고난과 핍박"이라는 방법이었다.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셈족계열이었던 애굽의 제13~17의 힉소스왕조가 망한 뒤에 제18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들은 함족으로서 원래 이집트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피부색이 검었던 제18왕조 때부터 애굽의 바로왕들은 피부색이 하얀 히브리인들의 번성이 두려워한 나머지 히브리들의 번성을 억제하는 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것은 그들 위에 감독관들 세워 무거운 짐을 지게 하여 괴롭게 할 뿐만 아니라 바로왕을 위하여 국가의 곡물과 전쟁물자보관을 위한 저장창고 도시(국고성)인 비돔성과 라암셋성을 건축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늘어만갔다. 그러자 이제 두번째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이전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에게 흙이기기와 벽돌굽기와 농사일 같은 매우 힘들 일을 시켜 종존번성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럼에 불구하고 소용없었다. 그러자 이제는 세번째 정책을 펼치는데, 그것은 남아살애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왕은 히브리인들의 조산을 도와주는 산파를 불러다가, 남자아기가 태어나면 죽이게 하고 여자아기가 태어나면 살게 하라고 시켰다. 하지만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가 불러다가 그들을 꾸중했을 때에, 그녀들은 히브리여인들이 얼마나 건장한지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에 출산해버린다고 둘러대며 말했다. 아마 실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바로왕의 말을 듣기를 거절했던 산파들을 하나님께서 복주셨다는 것이다. 그들의 집안이 흥왕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 고난받고 핍박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와주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는 것이다. 그러자 이제는 마지막으로 네번째 남아살해정책을 실시하는데, 그것은 남자아기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2장의 모세의 출생의 이야기의 배경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알아야 할 2가지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는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죽이려했던 바로왕은 무엇을 싱장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마귀를 상징한다고 하겠다(요12:31, 14:40, 16:11). 애굽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이 세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애굽왕 바로는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마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풍요로움을 누리고 사는 이유와 목적을 상실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애굽왕 바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핍박고 고난받게 허락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을 하여금 깨어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7. 나오며
처음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기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애굽은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굽에 들어간 야곱의 후손들은 애굽에서 한 가지 큰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그것은 자손이 번성하는 놀라운 축복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풍요로움을 즐기며 살라고 그곳에 들여보낸 것이 결코 아니었다. 잠시 기근을 피하여 갔다가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은 거기에 정착하려고 했다. 애굽의 풍요로움 가운데 먹고 입고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빠져나오게 해달라고 부르짖지 아니하면 안 되는게금 바로왕을 들어쓰셨다. 애굽은 이 세상을 상징하고 애굽왕 바로는 이 세상임금으로서 사탄마귀를 상징한다. 그렇다. 우리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여기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함이다. 물질과 은사와 달란트를 어디에 써야 하는가? 천국을 위해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많이 천국자녀로 산출하여 천국에 데려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살게 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와 목적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