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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23NzJNFg4vk [혹은 https://tv.naver.com/v/26371385 ]
날짜 2022-04-20
본문말씀 야고보서 3:1~18(신약 37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야고보서,선생,말,혀,지혜,세상지혜,하나님으로부터온지혜,주하나님,예수의선재성,말씀이신그리스도,지혜이신그리스도

잠언기자는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고 말했다(잠18:21).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이 야고보서에도 등장한다. 그는 어느 누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는 자신의 말과 지혜를 통하여 자기가 올바른 믿음 안에 서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야고보는 많고 많은 주제들 가운데 왜 '말'과 '지혜'를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믿음의 예로 거론한 것인가? 그리고 그가 말하는 참된 '말'과 '지혜'는 대체 어떤 것인가?

 

1. 들어가며

  모든 믿음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비로소 참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첫 장에서 시련을 통해 입증되는 믿음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2장에 와서는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였다. 그리고 이제 오늘 제 3장을 통하여 야고보는 '말의 올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약3:1~12)'과 더불어 '지혜의 올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약3:13~18)'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왜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을 언급한 후에 다른 주제가 아니라, '말'과 '지혜'의 올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야고보는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말'을 해야 하며, 또한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혜'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권면하였는가? 오늘은 말과 지혜를 통해 입증되는 참된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2. 야고보서 3장은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가?

   야고보서 1:2~18에서 야고보는 참된 믿음이란 시험(시련)에 의하여 검증되는 믿음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1:19~2;26에서 야고보는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바른 믿음이란 반드시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오늘 3장의 말을 하였다. 그럼, 야고보는 3장에서 어떤 말씀을 하였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먼저 3:1~12에서는 '말의 올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을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야고보는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비록 신체 중 크기는 작지만 인생의 수레바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혀'의 바른 사용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13~18에서 야고보는 지혜의 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야고보는 이 부분에서 자신의 삶에 선한 열매가 맺혀야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삶에서 시기와 다툼(이기적인 야심)등의 악한 열매가 맺힐 때에는 그 지혜가 이 땅에 속한 것이며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지혜라로 언급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악한 지혜를 사용하지 말고 하늘로부터 오는 선한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3. 야고보는 '말'과 '지혜'를 왜 삶 속에서 입증되어야 할 믿음의 두 방면의 예로 선택했는가?

  야고보서를 읽을 때에 처음 느끼는 느낌은 무엇인가? 그것은 야고보서의 전체 말씀이 예수께서 들려주신 산상수훈의 말씀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고보서의 말씀 중에서 적어도 21개의 말씀이 산상수훈의 말씀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산상수훈의 말씀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야고보서의 말씀과 산상수훈설교의 인용 비교표는 다음과 같다. 

 

 

야고보서

산상설교(마태)

 

야고보서

산상설교(마태)

1

1:2

5:10~-11

12

3:6

5:2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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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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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5:33~37

11

2:14~16

7:21~23

 

 

 

 

  그렇다면, 이어지는 3장의 본문에서 야고보는 왜 삶 속에서 '말'과 '지혜'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일까? 이것은 야고보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로고스)'와 '지혜(소피아)'는 예수님의 선재성과 그분의 신성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스승 내지는 선지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적어도 베드로가 그분을 '당신은 그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베드로의 고백도 그 고백이 무색할만큼 금새 잊어버린 뒤에, 자신의 일신상의 위험이 찾아오자 금새 주님의 곁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이러한 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친동생들의 신앙과 삶을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죽었던 예수께서 3일만에 살아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난 사건 때문이다. 그것도 자기들이 있던 곳의 문이 닫혔는데 그분이 불쑥 나타나신 것이다. 그것은 그분은 죄없는 분이셨다는 사실과 그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만들었다. 그러자 성령을 받은 제자들과 동생들은 급격히 달라지게 된다. 그분의 실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스승이나 형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고백하기 시작한다. 그때에 그들이 맨 처음으로 고백한 그분에 대한 신성한 칭호는 "주님"이라고 고백이었다. 또한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 역시 야고보서의 편지를 통하여 적어도 9번 이상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칭했다(약1:1, 1:12, 2:1, 4:10, 4:15, 5:7, 5:8, 5:14, 5:15). 그런데 이러한 칭호는 구약시대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 붙히던 칭호였다. 그런데 이 칭호를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야고보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말씀'과 '지혜'로 선재하고 계셨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선재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성도들이라면 그들은 이 땅에서 말할 때에는 당연히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말해야 하며, 지혜를 사용할 때에는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한 것이다. 이것이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의 핵심이다. 

 
4. 야고보는 바른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서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라고 하였는가?
  야고보는 제3장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실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약3:1~2). 그러면서 선생이 되려고 많이 애쓰지 말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선생된 자는 장차 더 큰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1). 즉 선생된 자로서 약한 지체를 실족하게 하면 그가 받을 심판이 너무나 막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마디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라면 말할 때에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말하는 자는 말하는 것을 조심해서 말해야 하는가? 야고보는 2가지로 그 이유를 말한다. 첫째, 말하는 혀는 온 몸의 지체 중에서 작은 것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를 만큼 엄청난 영향력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야고보는 혀가 비록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3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 첫째로,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도 역시 작은 것이지만 쏜살같이 달리는 말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둘째로, 거친 바람들에 의해 밀려가는 큰 배들도 지극히 작은 '키'에 의하여 사공의 뜻대로 운행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큰 숲일지라도 작은 불이 나무에 붙어버리면 얼마나 큰 파괴력으로 숲을 불태워버리는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둘째,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은 다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진 채 있지만 오직 사람의 혀는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부터 쉬지 아니하는 악이 나오고있고 죽이는 독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절). 그러므로 혀는 불이며, 불의의 세상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6절). 또한 그 불은 마치 지옥불에서 올라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6절). 
  그렇다면, 혀를 어떻게 사용해야 바른게 사용하는 것이 되는가? 이것에 대해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이미 자기 안에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따라 올바른 말만을 선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9~12절). 왜냐하면 과거 예수믿기 전의 그리스도인들은 지옥에 있는 사탄마귀에 속하여 악과 독이 가득한 말을 해왔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이 된 자들은 자기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을 따라 선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는 하나님께 속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한 입으로 어찌 주님이자 아버지인 하나님(혹은 주님이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을 찬송하면서 동시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채 있는 다른 사람을 저주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었기에 새 사람은 그리스도에 속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마치 하나의 샘의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혹은 짠 물)이 같이 나올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11절). 세상에 있는 샘도 두 가지 다른 물을 낼 수 없는데,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악한 말을 하고 있느냐면서 책망한다. 그것은 마치 무화과나무에서 감람나무의 열매를 따는 것과 같고, 포도나무에서 무화과의 열매가 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5. 야고보는 교사가 지혜를 사용함에 있어서 어떤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는가?

  이어서 야고보는 지혜와 명철을 사용하여 남을 가르치는 자가 사용할 지혜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악한 지혜로서 사탄마귀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선한 지혜로서 예수님의 지혜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혜가 어떻게 '선한 지혜'도 있고, '악한 지혜'도 있느냐고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는 선한 지혜이기 때문이요, 사탄마귀로부터 나오는 지혜는 악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선한 지혜의 특성과 그것의 결과를 그리고 악한 지혜의 특성과 그것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첫째, 그는 선한 지혜의 특성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야고보는 먼저 자신이 지혜와 총명을 가졌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어떤 지혜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한다(13절). 그것이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먼저 선한 지혜는 그것의 특성이 총 8가지라고 말했다(17절). 그것은 성결하고(순결하고), 화평하고(평화롭고), 온화하며(관대하며), 양순하고(순종을 잘 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들이 가득하고, 편견(치우침)이 없고, 거짓이 없다고 했다(17절). 그러므로 선한 지혜를 사용하면 반드시 선하고 온유한 행위로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고 했다(13절). 그런데 이러한 8가지 지혜의 특성은 곧 산상수훈의 8복과 매우 흡사하게 보인다(마5:1~12). 그것은 아마도 선한 지혜가 예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므로 누군든지 의의 열매를 거두기를 원한다면 그는 화평을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이다(18절).

  둘째, 야고보는 악한 지혜의 특성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야고보는 지혜에도 악한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마귀로부터 나오는 이 악한 지혜가 결국 첫 사람 아담을 죄로 무너뜨린 것처럼 악한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지혜가 과연 악한 지혜라고 할 수 있는가? 즉 악한 지혜의 특성은 대체 무엇인가? 야고보는 악한 지혜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성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땅 위에 속한 것이요, 정욕적이며, 귀신적이라고 했다(15절). 그렇다. 악한 지혜는 하늘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하거나 거룩하지 않다. 그리고 악한 지혜는 정욕적(혼적)인지라 그것은 늘 자신의 정욕을 채우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늘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기에 '귀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악한 지혜를 사용한다면 그에게서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에는 2가지 증상이 있다. 하나는 독한 시기심으로 지혜로 사용한다는 것이다(14절,16절). 그리고 또 하나는 다툼(이기적인 야심이나 당파심)으로 지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14절,16절). 그러므로 이러한 악한 지혜는 2자기 결과를 낳게 되는데, 그것은 '혼란(소요)'와 모든 악한 일들(실전행위)이다(16절). 그렇다. 우리가 악한 지혜를 따라가면 화평하지도 않으며 혼란만 가중시키며, 악한 일들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6. 나오며

  야고보가 이 편지를 쓰던 시기는 여러 가지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A.D.45~49년경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놀랍게도 야고보는 어디서 들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보았는지,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던 산상수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낮춘 뒤에 자신의 형이었던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는 예수님을 선재하신 그리스도 혹은 신성한 주님으로서 고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야고보서는 제3장에서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말'과 '지혜'에 대해서 언급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 성도들은 이제 그분이 사용하던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그분이 사용하신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옛습관을 쫓아서 지옥불에서부터 나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탄마귀에게 속한 악한 지혜를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예수믿기 전에 이미 조상으로부터 악한 뱀들을 물려받은 이들은 자신이 원치 않지만, 자기도 모르게 악한 말과 악한 지혜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지혜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있다면, 우리가 말과 지혜를 점검해서 내가 과연 진정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는 날마다 회개하여, 자신이 쓰는 언어는 예수님의 언어로 만들어야 할 것이며, 자신이 사용하는 지혜는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 

 

2022년 04월 20일(수)

정병진목사

 

[다운로드] 야고보서 3장 헬라어 직역

1. 2022-04-20 야고보서강해(04) 3장 강해.pptx

2. 2022-04-20 야고보서강해(04) 3장 강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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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2.04.22 09:50

    언 기자는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잠18:21).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이 야고보서에도 등장한다. 그는 어느 누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는 자신의 말과 지혜를 통하여 자기가 올바른 믿음 안에 서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야고보는 많고 많은 주제들 가운데 왜 '말'과 '지혜'를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믿음의 예로 거론한 것인가? 그리고 그가 말하는 참된 '말'과 '지혜'는 대체 어떤 것인가?

     

    1. 들어가며

      모든 믿음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비로소 참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첫 장에서 시련을 통해 입증되는 믿음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2장에 와서는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였다. 그리고 이제 오늘 제3장을 통하여 야고보는 '말의 올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약3:1~12)'과 더불어 '지혜의 올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약3:13~18)'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왜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을 언급한 후에 다른 주제가 아니라, '말'과 '지혜'의 올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야고보는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말'을 해야 하며, 또한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혜'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권면하였는가? 오늘은 말과 지혜를 통해 입증되는 참된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2. 야고보서 3장은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가?

       야고보서 1:2~18에서 야고보는 참된 믿음이란 시험(시련)에 의하여 검증되는 믿음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1:19~2:26에서 야고보는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바른 믿음이란 반드시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오늘 3장의 말을 하였다. 그럼, 야고보는 3장에서 어떤 말씀을 하였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먼저 3:1~12에서는 '말의 올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을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야고보는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비록 신체 중 크기는 작지만 인생의 수레바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혀'의 바른 사용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13~18에서 야고보는 지혜의 바른 사용으로 입증되는 믿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야고보는 이 부분에서 자신의 삶에 선한 열매가 맺혀야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삶에서 시기와 다툼(이기적인 야심)등의 악한 열매가 맺힐 때에는 그 지혜가 이 땅에 속한 것이며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지혜라 언급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악한 지혜를 사용하지 말고 하늘로부터 오는 선한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3. 야고보는 '말'과 '지혜'를 왜 삶 속에서 입증되어야 할 믿음의 두 방면의 예로 선택했는가?

      야고보서를 읽을 때에 처음 느끼는 느낌은 무엇인가? 그것은 야고보서의 전체 말씀이 예수께서 들려주신 산상수훈의 말씀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고보서의 말씀 중에서 적어도 21개의 말씀이 산상수훈의 말씀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산상수훈의 말씀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야고보서의 말씀과 산상수훈 설교의 인용 비교표는 다음과 같다. 

     

     

    야고보서

    산상설교(마태)

     

    야고보서

    산상설교(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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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4~16

    7:21~23

     

     

     

     

      그렇다면, 이어지는 3장의 본문에서 야고보는 왜 삶 속에서 '말'과 '지혜'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일까? 이것은 야고보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로고스)' '지혜(소피아)'는 예수님의 선재성과 그분의 신성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스승 내지는 선지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적어도 베드로가 그분을 '당신은 그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베드로의 고백도 그 고백이 무색할 만큼 금 잊어버린 뒤에, 자신에게 일신상의 위험이 찾아오자 금 주님의 곁을 떠나 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이러한 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친동생들의 신앙과 삶을 완전히 뒤바꿔 버리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죽었던 예수께서 3일 만에 살아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난 사건 때문이다. 그것도 자기들이 있던 곳의 문이 닫혔는데 그분이 불쑥 나타나신 것이다. 그것은 그분은 죄없는 분이셨다는 사실과 그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만들었다. 그러자 성령을 받은 제자들과 동생들은 급격히 달라지게 된다. 그분의 실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스승이나 형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고백하기 시작한다. 그때에 그들이 맨 처음으로 고백한 그분에 대한 신성한 칭호는 "주님"이라 고백이었다. 또한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 역시 야고보서의 편지를 통하여 적어도 9번 이상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칭했다(약1:1, 1:12, 2:1, 4:10, 4:15, 5:7, 5:8, 5:14, 5:15). 그런데 이러한 칭호는 구약 시대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 붙던 칭호였다. 그런데 이 칭호를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야고보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말씀'과 '지혜'로 선재하고 계셨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선재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성도들이라면 그들은 이 땅에서 말할 때에는 당연히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말해야 하며, 지혜를 사용할 때에는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 말한 것이다. 이것이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의 핵심이다. 

     

    4. 야고보는 바른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서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라고 하였는가?

      야고보는 제3장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실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약3:1~2). 그러면서 선생이 되려고 많이 애쓰지 말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선생된 자는 장차 더 큰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1). 즉 선생된 자로서 약한 지체를 실족하게 하면 그가 받을 심판이 너무나 막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마디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라면 말할 때에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말하는 자는 말하는 것을 조심해서 말해야 하는가? 야고보는 2가지로 그 이유를 말한다. 첫째, 말하는 혀는 온 몸의 지체 중에서 작은 것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를 만큼 엄청난 영향력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야고보는 혀가 비록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3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 첫째로,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도 역시 작은 것이지만 쏜살같이 달리는 말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둘째로, 거친 바람들에 의해 밀려가는 큰 배들도 지극히 작은 '키'에 의하여 사공의 뜻대로 운행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큰 숲일지라도 작은 불이 나무에 붙어 버리면 얼마나 큰 파괴력으로 숲을 불태워 버리는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둘째,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은 다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진 채 있지만 오직 사람의 혀는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부터 쉬지 아니하는 악이 나오고 있고 죽이는 독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절). 그러므로 혀는 불이며, 불의의 세상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6절). 또한 그 불은 마치 지옥불에서 올라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6절). 

      그렇다면, 혀를 어떻게 사용해야 바게 사용하는 것이 되는가? 이것에 대해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이미 자기 안에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따라 올바른 말만을 선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9~12절). 왜냐하면 과거 예수믿기 전의 그리스도인들은 지옥에 있는 사탄 마귀에 속하여 악과 독이 가득한 말을 해 왔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이 된 자들은 자기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을 따라 선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는 하나님께 속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한 입으로 어찌 주님이자 아버지인 하나님(혹은 주님이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을 찬송하면서 동시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채 있는 다른 사람을 저주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었기에 새사람은 그리스도에 속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마치 하나의 샘의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혹은 짠 물)이 같이 나올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11절). 세상에 있는 샘도 두 가지 다른 물을 낼 수 없는데,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악한 말을 하고 있느냐면서 책망한다. 그것은 마치 무화과나무에서 감람나무의 열매를 따는 것과 같고, 포도나무에서 무화과의 열매가 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5. 야고보는 교사가 지혜를 사용함에 있어서 어떤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는가?

      이어서 야고보는 지혜와 명철을 사용하여 남을 가르치는 자가 사용할 지혜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악한 지혜로서 사탄 마귀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선한 지혜로서 예수님의 지혜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혜가 어떻게 '선한 지혜' 있고, '악한 지혜' 있느냐고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는 선한 지혜이기 때문이요, 사탄 마귀로부터 나오는 지혜는 악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선한 지혜의 특성과 그것의 결과를 그리고 악한 지혜의 특성과 그것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첫째, 그는 선한 지혜의 특성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야고보는 먼저 자신이 지혜와 총명을 가졌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어떤 지혜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한다(13절). 그것이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먼저 선한 지혜는 그것의 특성이 총 8가지라고 말했다(17절). 그것은 성결하고(순결하고), 화평하고(평화롭고), 온화하며(관대하며), 양순하고(순종을 잘 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들이 가득하고, 편견(치우침)이 없고, 거짓이 없다고 했다(17절). 그러므로 선한 지혜를 사용하면 반드시 선하고 온유한 행위로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고 했다(13절). 그런데 이러한 8가지 지혜의 특성은 곧 산상수훈의 8복과 매우 흡사하게 보인다(마5:1~12). 그것은 아마도 선한 지혜가 예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므로 누든지 의의 열매를 거두기를 원한다면 그는 화평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이다(18절).

      둘째, 야고보는 악한 지혜의 특성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야고보는 지혜에도 악한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로부터 나오는 이 악한 지혜가 결국 첫 사람 아담을 죄로 무너뜨린 것처럼 악한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지혜가 과연 악한 지혜라고 할 수 있는가? 즉 악한 지혜의 특성은 대체 무엇인가? 야고보는 악한 지혜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성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땅 위에 속한 것이요, 정욕적이며, 귀신적이라고 했다(15절). 그렇다. 악한 지혜는 하늘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하거나 거룩하지 않다. 그리고 악한 지혜는 정욕적(혼적)인지라 그것은 늘 자신의 정욕을 채우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늘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기에 '귀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악한 지혜를 사용한다면 그에게서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에는 2가지 증상이 있다. 하나는 독한 시기심으로 지혜 사용한다는 것이다(14절,16절). 그리고 또 하나는 다툼(이기적인 야심이나 당파심)으로 지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14절,16절). 그러므로 이러한 악한 지혜는 2가지 결과를 낳게 되는데, 그것은 '혼란(소요)' 모든 악한 일들(실전 행위)이다(16절). 그렇다. 우리가 악한 지혜를 따라가면 화평하지도 않으며 혼란만 가중시키며, 악한 일들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6. 나오며

      야고보가 이 편지를 쓰던 시기는 여러 가지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A.D.45~49년경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놀랍게도 야고보는 어디서 들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보았는지,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던 산상수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낮춘 뒤에 자신의 형이었던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는 예수님을 선재하신 그리스도 혹은 신성한 주님으 고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야고보서는 제3장에서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말'과 '지혜'에 대해서 언급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 성도들은 이제 그분이 사용하던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그분이 사용하신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옛 습관을 쫓아서 지옥불에서부터 나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탄 마귀에게 속한 악한 지혜를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예수믿기 전에 이미 조상으로부터 악한 뱀들을 물려받은 이들은 자신이 원치 않지만, 자기도 모르게 악한 말과 악한 지혜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지혜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있다면, 자신 말과 지혜를 점검해서 내가 과연 진정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는 날마다 회개하여, 자신이 쓰는 언어 예수님의 언어로 만들어야 할 것이며, 자신이 사용하는 지혜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 사용해야 한다. 

     

    2022년 04월 2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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