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0(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신론(神論)(11)]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은 과연 그분이 누군지를 말해주는가?(계1:8)_한 분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0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GADMXJlcrtE
1. 들어가며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간적으로 본다면 삼위로 활동을 하신다. 구약에는 한 분 하나님으로서 활동하셨던 하나님께서 신약에 들어와서는 아들로 이 땅에 들어오셨으며,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는 다시 보혜사 성령으로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는 분들이 많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통은 초대교회부터 계속해서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다(사43:10~11). 그리고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되 홀로 창조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사44:24, 출20:11). 그러면 나 여호와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아버지와 아들로 활동하시게 된다. 그리고 아들이 승천하신 뒤에는 보혜사 성령께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셔서 일하시고 계신다.
사43:10-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신약성경의 최종계시인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아니면 세 분이 활동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이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은 과연 한 분이신가 아니면 한 분이신데 세 분으로 활동하신 것인가?
2. 요한계시록의 서두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의 최종 계시이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내용을 읽어보면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 약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하늘의 광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자신의 영이 올라가서 보았던 하늘의 광경 가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을까? 그가 하늘에 올라갔을 때에 그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나 자신은 알파요 그리고 오메가이다"라는 음성이었다(계1:8). 그리고 최종적으로 천상의 모든 광경을 보고 음성을 들었던 사도 요한은 주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자 "전능하신 분"이라고 말이다(계1:8).
그렇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첫째로는 '주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둘째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전능하신 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분이 들었던 주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나 자신은 알파요 그리고 오메가이니라"는 음성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의 하나님의 소개에 있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2가지 것을 나누어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으로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설명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3가지 칭호다.
그럼, 이제 우리가 이러한 것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2가지 질문을 먼저 던져본다. 첫째로, 주 하나님이자 전능하신 이께서는 왜 자기자신을 구약에 나오는 표현처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말씀하지 않고,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라고 선언하셨는가? 둘째로, 주 하나님이자 전능하신 이께서는 왜 나는 '항상 계시는 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굳이 '지금도 계시는 이이자 아직도 계시는 이이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헬라어 원문)'라고 말씀하셨는가?
3.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첫째로 그분의 모습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놀랍게도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다만 벽옥과 홍보석 같은 빛으로 보았는데, 그분은 한 개의 보좌 위에 스스로 앉아있는 분으로 보였다. 즉 천상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볼 수가 없었으며, 다만 보좌 위에 앉아있는 이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둘째로 그분에 대한 묘사는 어떠한가? 그것은 주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이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로 묘사되어 있다. 셋째로 그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셨는가? 그분은 "나 자신은 알파요 그리고 오메가이다"라고 선언하셨다(계1:8, 21:6).
4.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동시존재하고 있을까?
먼저 아들 예수님의 모습부터 살펴보자.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 후반부에 나온다. 그분은 흰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있었는데, 요한이 보기에 그분은 인자(사람의 아들)같은 이였다(계1:13~20).
이제는 요한계시록 전체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과 묘사들을 살펴보자. 먼저 요한계시록 1장에서는 예수님이 흰 옷을 입으신 인자같은 이로 나온다. 그리고 2~3장에 가면, 예수님은 인자같은 이로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말씀하시는 이로 나온다. 그리고 4장부터 19장 상반부까지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이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계신 이로 나오지만,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나온다(계5:6). 그런데 어린양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실제의 모습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어린양에게 뿔이 달려있는데 7개가 있고, 눈들이 달려있는데 그 눈들도 역시 7개이기 때문이다. 사실 양에게 뿔이 7개가 있고 눈이 7개가 있다면, 어린양의 모습은 더 이상 양이 아니라 괴물의 수준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머리에 달려있는 7개의 뿔은 '완전한 권세'를 상징하는 것이고, 7개의 눈들은 '완전한 감찰'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뿔과 눈의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가 되시며, 또한 그분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감찰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어린 양의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 곧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씀한다(계5:6). 그러므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아버지께 받아서 이 땅에 보내셨던 보혜사 성령이란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것은 19장 후반부부터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때에 지상에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강림하시는데 이후부터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신 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계19:15). 그리고 그분은 오심으로 천년왕국을 끝내시고 있는데, 그때까지 하늘에서 왕노릇하는 제사장을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어린양)의 제사장'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계20:6).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보좌 위에 앉아계시는 이로 나온다(계20:11).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이기도 하고 아들의 말씀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보좌에 앉아계시는 이가 말하기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아버지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으로서 '이루었도다'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분이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으니, 보좌에 앉으신 이가 천국의 성도들을 생명수 샘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값없이 목마른 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계21:6). 그런데 요한계시록 7:17의 말씀을 보니,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는 목자는 바로 어린양이라고 나온다(계7: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하나님의 보좌 위에는 이제 예수께서 앉아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자기가 누군지를 말씀하시는데 그분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표현들 중에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는 선언은 계1:8에 보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의 자기선언과 같다. 그런데 이어지는 또다른 표현으로 '나는 시작이요 마침이다'는 표현이 있다. 이 자기선언은 계22:13에서 보면, 어린양이신 아들 예수께서 자기를 선언하시는 말씀이다(계22:13). 그러니 이제 보좌에 앉아계시는 이는 아버지이며 동시에 아들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성전도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의 성전이라고 표현되며(계21:22), 또한 천국에 한 개밖에 없는 하나님의 보좌도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나온다(계22:1,3). 왜냐하면 이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보좌 위에 앉아계신 이가 계속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신다(계22:13). 이는 곧 아들이신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께서는 사실 자기자신을 '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예수께서도 '나 예수'라고 말씀하신다(계22:16). 그리고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똑같이 자기자신을 가리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고 자기를 소개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구약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수'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또다른 표현인 것이다.
5. 신구약성경에서 여호와와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두 분이 자기자신을 선언할 때,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던 홀로 한 분이신 여호와께서 알파이시라면, 우주 역사를 마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어 심판하시는 예수님이 오메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서 우리는 여호와도 한 분 하나님시이요, 예수님도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에 대한 존재를 선언하셨던 대목에서 또다시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이셨던 '여호와'께서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이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사41:4, 44:6, 43:12)"고 말씀하셨는데, 이와 동일한 표현을 아들이신 예수께서도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먼저 예수께서도 역시 자기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요8:24.28,58). 그러나 우리말 한글성경에서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곧 살아있는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1:17~18).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전체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분이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예수라고 계시하셨음을 알 수 있다.
6. 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그분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말했는가?
그렇다면 주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그분을 '항상 계시는 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지금도 계시고 아직도 계시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헬라어원문)"(계1:4,8, 4:8)라고 3번이나 소개한 것일까? 그런데 우리말에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다. 의미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는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실 것이라는 의미로 번역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며 지금도 오고계시는 이"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현재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은 시간 밖에서 항상 형재로 계신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은 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를 '이제도 계시고 아직도 계시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라고 표현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신데, 그분이 어떻게 세 위격으로 활동하고 계시는지를 말해주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계시는 이'는 오순절이후 계속해서 일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가리키고, '아직도 계시는 이'는 구약시대에 활동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는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 위격을 각각 다른 하나님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며, 한 분 하나님의 세 가지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의 창조 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활동하고 계신다. 보혜사 성령님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오셔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는 이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으나 다시 오실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세 위격으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7. 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셔서 활동해야 하셨고 성령님으로 활동하셔야 했는가?
그렇다면 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으로 활동하시지 않고, 왜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일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 때문이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득이하게 세 위격으로 나타나셔서 일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차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였으나, 첫 사람 아담이 그만 범죄하여 죄값으로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영으로서 죽으실 수가 없으니 범죄한 우리 인간들을 대신하여 흠없는 제물로 죽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야 했던 이유는 순전히 죽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분 하나님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게 하려면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속에 있는 생명을 사람들 속에 분배해 주기 위해 예수께서는 죽으신 뒤에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분배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리하여 그순간 예수께서는 맏아들로 승격하시고 우리 인간들은 그분의 동생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한 분으로만 계시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시게 된 것은 순전히 우리 인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속죄하기 위하여 아들이 되신 것이고, 생명을 분배해주기 위하여 영이 되신 것이다.
8.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시고 죄를 지었으나 그 죄값을 처리하기 위해 대신 죽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분배해주신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이 되셨고 보혜사 성령이 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마땅한 본분인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곁을 스스로 떠나가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죽어주셔야 할 이유가 없었다. 범죄한 아담을 버리시고 다른 종족 하나를 만드시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우리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껴 안으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끝내지 않았다.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이상 사람이 아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셨으나 우리를 위해 아버지와 아들이 되시고,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 우리 주 한 분 하나님께 영원히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린다.
2024년 11월 10일(주일)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간적으로 본다면 삼위로 활동을 하신다. 구약에는 한 분 하나님으로서 활동하셨던 하나님께서 신약에 들어와서는 아들로 이 땅에 들어오셨으며,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는 다시 보혜사 성령으로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는 분들이 많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통은 초대교회부터 계속해서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다(사43:10~11). 그리고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되 홀로 창조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사44:24, 출20:11). 나 여호와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아버지와 아들로 활동하시게 된다. 그리고 아들이 승천하신 뒤에는 보혜사 성령께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셔서 일하시고 계신다.
사43:10~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신약성경의 최종 계시인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 분이 활동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이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은 과연 한 분이신가 아니면 한 분이신데 세 분으로 활동하신 것인가?
2. 요한계시록의 서두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의 최종 계시이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내용을 읽어 보면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 약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하늘의 광경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자신의 영이 올라가서 보았던 하늘의 광경 가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을까? 그가 하늘에 올라갔을 때에 그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나 자신은 알파요 그리고 오메가이다"라는 음성이었다(계1:8). 그리고 최종적으로 천상의 모든 광경을 보고 음성을 들었던 사도 요한은 주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자 "전능하신 분"이라고 말이다(계1:8).
그렇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첫째로는 '주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둘째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전능하신 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분이 들었던 주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나 자신은 알파요 그리고 오메가이니라"는 음성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의 하나님의 소개에 있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2가지 것을 나누어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기 선언으로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라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설명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3가지 칭호다.
그럼, 이제 우리가 이러한 것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2가지 질문을 먼저 던져 본다. 첫째로, 주 하나님이자 전능하신 이께서는 왜 자기 자신을 구약에 나오는 표현처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라고 선언하셨는가? 둘째로, 주 하나님이자 전능하신 이께서는 왜 "나는 항상 계시는 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굳이 "지금도 계시는 이이자 아직도 계시는 이이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헬라어 원문)"라고 말씀하셨는가?
3.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첫째로 그분의 모습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놀랍게도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다만 벽옥과 홍보석 같은 빛으로 보았는데, 그분은 한 개의 보좌 위에 스스로 앉아 있는 분으로 보였다. 즉 천상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볼 수가 없었으며, 다만 보좌 위에 앉아 있는 이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둘째로 그분에 대한 묘사는 어떠한가? 그것은 주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이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로 묘사되어 있다. 셋째로 그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셨는가? 그분은 "나 자신은 알파요 그리고 오메가이다"라고 선언하셨다(계1:8, 21:6).
4.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동시 존재하고 있을까?
먼저 아들 예수님의 모습부터 살펴보자.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 후반부에 나온다. 그분은 흰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있었는데, 요한이 보기에 그분은 인자(사람의 아들) 같은 이였다(계1:13~20).
이제는 요한계시록 전체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과 묘사들을 살펴보자. 먼저 요한계시록 1장에서는 예수님이 흰옷을 입으신 인자 같은 이로 나온다. 그리고 2~3장에 가면, 예수님은 인자 같은 이로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말씀하시는 이로 나온다. 그리고 4장부터 19장 상반부까지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이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신 이로 나오지만,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나온다(계5:6). 그런데 어린양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실제의 모습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어린양에게 뿔이 달려 있는데 7개가 있고, 눈들이 달려 있는데 그 눈들도 역시 7개이기 때문이다. 사실 양에게 뿔이 7개가 있고 눈이 7개가 있다면, 어린양의 모습은 더 이상 양이 아니라 괴물의 수준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머리에 달려 있는 7개의 뿔은 '완전한 권세'를 상징하는 것이고, 7개의 눈들은 '완전한 감찰'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뿔과 눈의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가 되시며, 또한 그분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감찰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어린양의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 곧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씀한다(계5:6). 그러므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아버지께 받아서 이 땅에 보내셨던 보혜사 성령이란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것은 19장 후반부부터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때에 지상에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강림하시는데 이후부터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신 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계19:15). 그리고 그분의 오심으로 천년왕국을 끝내시고 있는데, 그때까지 하늘에서 왕 노릇하는 제사장을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어린양)의 제사장'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계20:6).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보좌 위에 앉아 계시는 이로 나온다(계20:11).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이기도 하고 아들의 말씀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보좌에 앉아 계시는 이가 말하기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아버지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으로서 '이루었도다'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분이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으니, 보좌에 앉으신 이가 천국의 성도들을 생명수 샘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값없이 목마른 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계21:6). 그런데 요한계시록 7:17의 말씀을 보니,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는 목자는 바로 어린양이라고 나온다(계7: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하나님의 보좌 위에는 이제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자기가 누군지를 말씀하시는데 그분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표현들 중에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라는 선언은 계1:8에 보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의 자기 선언과 같다. 그런데 이어지는 또 다른 표현으로 "나는 시작이요 마침이다"는 표현이 있다. 이 자기 선언은 계22:13에서 보면, 어린양이신 아들 예수께서 자기를 선언하시는 말씀이다(계22:13). 그러니 이제 보좌에 앉아 계시는 이는 아버지이며 동시에 아들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성전도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의 성전이라고 표현되며(계21:22), 또한 천국에 한 개밖에 없는 하나님의 보좌도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나온다(계22:1,3). 왜냐하면 이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보좌 위에 앉아 계신 이가 계속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신다(계22:13). 이는 곧 아들이신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께서는 사실 자기 자신을 '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예수께서도 '나 예수'라고 말씀하신다(계22:16). 그리고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똑같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자기를 소개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구약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수'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5. 신구약성경에서 여호와와 예수님의 자기 선언은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두 분이 자기 자신을 선언할 때,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던 홀로 한 분이신 여호와께서 알파이시라면, 우주 역사를 마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어 심판하시는 예수님이 오메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서 우리는 여호와도 한 분 하나님이시요, 예수님도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를 선언하셨던 대목에서 또 다시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이셨던 '여호와'께서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사41:4, 44:6, 43:12)"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와 동일한 표현을 아들이신 예수께서도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먼저 예수께서도 역시 자기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요8:24,28,58). 그러나 우리말 한글성경에서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곧 살아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1:17~18).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분이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예수라고 계시하셨음을 알 수 있다.
6. 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그분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말했는가?
그렇다면 주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그분을 "항상 계시는 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지금도 계시고 아직도 계시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헬라어 원문)"(계1:4,8, 4:8)라고 3번이나 소개한 것일까? 그런데 우리말에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다. 의미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는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실 것이라는 의미로 번역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현재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은 시간 밖에서 항상 현재로 계신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은 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를 "이제도 계시고 아직도 계시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라고 표현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신데, 그분이 어떻게 세 위격으로 활동하고 계시는지를 말해 주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계시는 이'는 오순절 이후 계속해서 일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가리키고, '아직도 계시는 이'는 구약시대에 활동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는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 위격을 각각 다른 하나님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며, 한 분 하나님의 세 가지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의 창조 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활동하고 계신다. 보혜사 성령님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오셔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는 이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으나 다시 오실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세 위격으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7. 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셔서 활동해야 하셨고 성령님으로 활동하셔야 했는가?
그렇다면 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으로 활동하시지 않고, 왜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일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 때문이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득이하게 세 위격으로 나타나셔서 일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차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였으나, 첫 사람 아담이 그만 범죄하여 죄값으로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영으로서 죽으실 수가 없으니 범죄한 우리 인간들을 대신하여 흠없는 제물로 죽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야 했던 이유는 순전히 죽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분 하나님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게 하려면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속에 있는 생명을 사람들 속에 분배해 주기 위해 예수께서는 죽으신 뒤에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분배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리하여 그 순간 예수께서는 맏아들로 승격하시고 우리 인간들은 그분의 동생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한 분으로만 계시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시게 된 것은 순전히 우리 인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속죄하기 위하여 아들이 되신 것이고, 생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영이 되신 것이다.
8.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시고 죄를 지었으나 그 죄값을 처리하기 위해 대신 죽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분배해 주신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이 되셨고 보혜사 성령이 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마땅한 본분인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곁을 스스로 떠나가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죽어주셔야 할 이유가 없었다. 범죄한 아담을 버리시고 다른 종족 하나를 만드시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우리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껴안으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끝내지 않았다.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셨으나 우리를 위해 아버지와 아들이 되시고,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 우리 주 한 분 하나님께 영원히 찬양과 경배를 올려 드린다.
2024년 11월 10일(주일)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