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람미여인이 솔로몬왕의 부인이 된 것은 본인이 잘 해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영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지금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나 혹은 지금 형통함을 누리고 있는 문제가 다 나의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디모데가 사도 바울의 후계자로 선택된 것도 역시 그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가 디모데에게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 주의 하나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 이 시간에는 술람미 여인이 누구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메시지를 통해 영적인 세계에 새로운 눈이 뜨여지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짧지만 아주 심오한 책이다. 얼핏 보기에는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써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으로 읽는 독자들은 아가서 첫 장부터 왕이 그녀를 침상으로 이끌어 들이신다고 하는 표현이나(아1:3), 개역성경의 경우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라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이 책, 대체 뭐야?'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아1:12). 그리고 그녀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다고 말한다거나(아3;1), 사랑하는 자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고 하거나 거기에서 자기의 사랑을 주겠다고 하는 등(아7:10~11)의 표현을 보면서 이 책이 과연 성경책인가 하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가서 8:1~2에 가 보면, 이 책의 저자 솔로몬이 밝히는 솔로몬 자신과 술람미 여인의 모친의 정체가 나오는데,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아가서를 잘못 보았었는지를 금방 알게 해 준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솔로몬의 정체와 아울러 술람미 여인이 누군지를 알려 주는 그녀의 어머니가 누군지를 살펴봄으로서 아가서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기를 원하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후손들을 위해서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가서 8:1~5에서 솔로몬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아가서는 일명 '신부 교과서'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과연 누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떻게 되는지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신부에게는 어떠한 성숙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으며, 결국에 '주의 동산'이라 일컬어지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 신부는 어떤 신분을 갖게 되는지를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부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이 한 사람 나온다. 그는 바로 그녀의 남편인 '솔로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솔로몬이 누군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신부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동안에 솔로몬은 시골 처녀 술람미 여인을 신부로 취했던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의 왕으로서, 장차 그리스도인들의 신랑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를 알려 주는 단서는 대체 어디에 나오는가? 그것은 바로 아가서 8:1~5에 나온다. 여기에 보면 첫째, 솔로몬은 자기의 아내였던 술람미 여인도 함부로 입을 맞출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아8:1). 그리고 둘째, 술람미 여인과 그녀의 어머니도 솔로몬으로부터 무엇인가 교훈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아8:2). 그리고 셋째, 술람미 여인의 어머니가 산고의 고통을 겪었던 그 장소에서 솔로몬이 그녀를 깨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아8:5). 이 말들은 대체 무슨 뜻인가?
3. 아가서 8:1~5에 나오는 솔로몬을 우리는 왜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가?
사실 아가서 8:1~5의 말씀에 오기 전까지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왕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가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의 셋째 왕이었던 솔로몬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것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 이상의 뜻이 있다. 왜냐햐면 구약성경을 아무리 뒤져봐도 솔로몬의 부인의 이름들 중에서 '술람미 여인'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분명 실재했던 인물이나, 술람미 여인은 실재한 인물이었는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1천 명이나 되었던 솔로몬의 부인들이지만 그중에서 이름이 나오는 여인은 단 한 명 뿐이다. 그녀는 바로 르호보암을 낳았던 바, 암몬 사람 '나아마'였다(왕상14:21). 그렇지만 나아마는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성령의 어떤 영감을 받아서 이 책을 썼으며 또한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그 의도를 먼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우선 성경의 모든 기록은 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 보자(요5:39). 그러므로 아가서도 역시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소개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아가서에서 그리스도의 예표로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솔로몬'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남편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하고는 출생 자체가 다른 분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아가서 8:1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 보면, 신부에게 있어서 신랑은 자신의 어머니의 젖을 먹었던 오빠같은 그러한 분이 아니다. 만약 그랬었더라면 자기도 어디서든지 그에게 입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왜냐하면 신랑은 결코 신부와 같이 인간의 모태에서 출생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분이 겉으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있으셨지만 이 세상의 죄인된 여인의 젖을 빤 사람이 아님을 말해 준다. 그분은 죄의 고된 노역에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사9:6). 이사야 9:6의 말씀을 보라. 비록 그분이 아기이자 아들로서 이 땅에 태어나실 분이기는 하지만 그분 자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며, 평강의 왕 곧 솔로몬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술람미 여인에게는 어떤 가족들이 있었는가?
우리는 아가서에서 술람미 여인의 가족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는데, 적어도 2가지 정보가 있다. 첫째, 그녀에게 의붓오빠들이 있다는 것이다(아1:6). 왜냐하면 술람미 여인은 그녀의 모친에게 있어서 '외동딸'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요(아6:9), 그녀에게도 자신의 어머니의 아들들이 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아1:6). 그런데 오빠들이 자신을 미워한 나머지 자신을 바알하몬에 있는 커다란 포도원지기로 삼아서 고된 노역을 시켰다고 말한다(아1:6). 그러니까 아가서에 등장하는 그녀의 오빠들은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배다른 오빠들이었던 것이다. 둘째, 술람미 여인에게 어머니가 있는데 그녀에게 자신은 외동딸이라는 것이다(아6:9).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자신이 태어난, 어머니의 집 내지는 어머니의 방으로 가자고 제안한다(아3:4). 또한 신랑은 그녀의 어머니가 산고의 고통을 겪었던 장소에서 그녀를 불렀다고 말한다(아8:5).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자신은 그 장소에 신랑을 데리고 가서 거기에서 무엇인가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아8:2). 고로 우리는 아가서에 등장하는 술람미 여인의 모친의 정체가 누군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술람미 여인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그래야만이 누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5. 술람미 여인의 모친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러므로 아가서에는 술람미 여인의 모친이 다양한 의미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정리하면, 적어도 3가지 이상의 의미로 등장한다. 첫째, 사람을 존재케 하는 조물주로서 그녀를 본다면 그녀는 창조주 하나님을 대변하는 존재다(아3:4). 왜냐하면 술람미 여인이 그녀의 모친에게서 나왔는데, 그 장소가 사과나무 아래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아8:5). 사실 아가서에 나오는 '사과나무'는 '탑부아흐'라는 말로서, '숨 쉼, 호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 사과나무는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를 가리킨다. 둘째, 죄를 지어 고된 노동 안으로 떨어지게 한 것으로 보아서 술람미 여인의 모친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었던 최초의 여자 '하와'를 가리킨다. 이때 솔로몬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술람미 여인을 깨웠다고 말한다. 이는 죄를 지음으로 인하여 잠자는 상태에 있던 그녀를 깨워서 다시 그녀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그녀로 하여금 고된 노동으로부터 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아8:5). 즉 그녀의 선조 모친으로서 하와는 자신의 남편인 아담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고, 뱀의 말을 들어 죄에 빠지고 말았었다. 그러므로 죄악 가운데 출생했던 술람미 여인은 의붓오빠들로 지칭되는 타락한 천사들에 의해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첫 시작은 술람미 여인이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얼굴이 검게 그을린 채 등장했던 것이다. 셋째, 보다 더 전진된 개념이지만 술람미 여인의 모친은 이기는 자를 산출하는 모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모친이 결국 솔로몬의 신부가 될 술람미 여인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솔로몬왕의 신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포도원을 개척함으로써 장차 하늘에서 기업으로 땅을 준비하는 여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모친이 낳았던 술람미 여인은 이기는 자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모친은 지금도 이기는 자들을 산출하는 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 술람미 여인의 모친은 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사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징계를 내리셨다. 그것은 그녀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창3:16).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 부부가 맏아들 가인을 낳게 된 때부터 모든 여자들은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자의 해산의 고통을 '저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해산의 고통을 겪다 보면 어느 날에는 뱀(사탄 마귀)의 머리를 박살낼 수 있는 여자의 후손(씨)을 산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창3:15).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어떤 여인이 사내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이 아이는 곧장 이기는 자가 되어 부활승천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최초의 부활체를 입고 승천하신 것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와 이후에 모든 인류는 지금까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자식을 낳고 있으며, 그중에는 지금도 이기는 자가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해산의 수고는 해 볼 만한 수고인 것이지 결코 필요 없는 수고는 아니다. 그랬다. 술람미 여인의 모친도 해산의 수고를 하면서 자식을 낳았던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 전에는 그녀의 어머니도 또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술람미 여인의 모친이 비로소 이기는 술람미 여인을 낳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3:15에 나오는 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위하여 그녀의 윗대의 모친들이 계속해서 자녀를 낳고 낳은 결과 결국 술람미 여인이 나오게 된 것이다.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세울 수 있는 이기는 신부가 나오게 된 것이다.
7.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의 신비를 당신은 아는가?
지난 2011년에 부산의 가덕도에서 다량의 토기와 유골이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유골은 '골장'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신석기 시대의 서양의 매장 풍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뼈에서 미토콘드리아 DNA가 추출되었는데, 거기에는 현재 유럽 사람만 가지고 있는 H형 미토콘드리아 DNA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남자의 정자에 붙어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정자의 꼬리 부분에 들어 있는데 수정되는 순간 이 꼬리가 잘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를 연구할 때에 미토콘드리아의 종류는 매우 중요한 인류 판별 기준이 된 것이다. 이것은 아주 오랜 고대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가덕도로 이동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들에게는 H형 미토콘드리아 DNA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인가 이 유전자가 사라졌던 것이다. 그런데 연구 조사한 결과 H형 미토콘드리아 DNA는 아프리카에서 한 모친을 통해서 나와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그중에 일부는 유럽으로, 또한 일부는 아시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건너온 여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H형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로 이동한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존재를 다른 우상으로 바꾸었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20세기에 우리나라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예수님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신앙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다시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 복음이 전 세계 나라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이 나라에 정착될 수 있었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예수님을 잘 믿는 국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대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예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물려주는 일이다. 이 책임이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술람미 여인의 모친의 해산의 수고가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어찌 해산의 수고도 없이 신앙의 유전자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겠는가?
8. 솔로몬의 진정한 신부였던 술람미 여인이 나오게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가?
솔로몬에게 술람미 여인은 원래 잃어버렸던 자신의 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녀를 노예 생활에서 건지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정혼한 그녀가 임시로 예루살렘 성에 있을 때에 예비 신랑을 보기 위해 솔로몬을 찾으러 거리로 나간다. 그래서 거리의 순찰자들에게 물어보지만 그들은 알려주지 못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솔로몬이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녀가 쉽게 솔로몬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술람미 여인의 선조 모친들이 장차 언젠가 자신의 태를 통해 나타나게 될 이기는 자를 위한 기도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후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그녀가 결혼한 후에 그만 자신의 실수와 부주의로 인하여 신랑의 임재를 놓쳐 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신랑을 찾으러 밤새도록 헤매이지만, 그때는 쉽게 신랑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성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숫꾼들에게 농락만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찾도록 찾기를 계속하였다. 이것은 그녀가 간절히 그리고 야곱처럼 철야 기도를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고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병이 들었고 신랑을 간절히 찾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 뉘우치고 회개하였음을 뜻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자신의 신랑이 누군지에 대해 10가지로 자랑을 한다. 이것은 그녀에게는 신랑은 오직 솔로몬 뿐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며, 신랑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만인들에게 전파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아침이 되자, 동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있는 남편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자신의 모친의 선조들의 해산의 수고로 인하여 자신이 태어났고 한때는 은혜도 받았지만 이제는 자신만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후손들을 위해서 우리도 이제는 흘릴 기도의 땀이 있는 것이다. 진실한 회개의 눈물도 흘려야 한다. 오직 주 예수님만이 자신의 영원한 하나님인 것을 선포도 해야 한다. 그랬을 때에 술람미 여인은 어떻게 되었는가? 자기만의 포도원을 개척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양 떼들을 낳고 양육하는 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 내가 이제라도 기도하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면, 내게서도 역시 이기는 자들이 산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물려받은 신앙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더 강해질 것이고 그래서 그 유전자가 후손에게 내려갈 것이다. 여러분은 그러한 신앙 유전자를 지금도 생산해 내고 있는가?
9. 나오며
신앙의 유전자는 거저 후손들에게 전달되고 또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해산의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는 후손들도 거저 신앙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자기도 신앙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어도 자신도 여전히 술람미 여인처럼 기도하고 회개하고 주님을 선포할 때에 더 강력한 신앙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선조들의 신앙의 유전자 때문에 자기 자신이 지금 복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앙의 유전자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가덕도의 사람들의 경우처럼, 그들에게서 H형 유전자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처럼, 우리의 후손들에게서도 신앙의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왜 내게는 조상들이 물려준 신앙의 유전자가 없냐면서 불평하지 말라. 내가 지금 새롭게 신앙의 유전자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후손들이 나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하여 기본을 갖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저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알라. 하지만 그들 자신이 해야 할 일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들도 기도와 회개와 주님을 높여 드려서 좋은 신앙의 유전자를 생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결정된 것 가지고 후회하지 말자. 이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최소한 서양의 선교사가 우리에게 예수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전해 주었는데 그것을 놓치거나 약화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우리 후손들에게 좋은 신앙의 유전자를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애쓰는 자들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하늘의 상과 우리에게 주실 기업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2021년 10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