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 되면 늘 부담이 되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나도 이 좋은 부활의 소식을 나의 불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를 않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내가 믿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병에 시달리고 있고 가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내 자녀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전도하면 그들이 말하기를 "너나 병원에 가지 않고 살아 봐! 너나 돈에 치지 않고 살아 봐, 네 자식이나 잘 키워서 내게 한턱 쏴 봐"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놀라운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 들어가며
부활절은 성탄절과 더불어 기독교 최대의 명절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님의 부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활절은 기독교인들만의 축제여야 하는가 아니면 모든 인류를 위한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그것은 모든 인류를 위한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현실은 어떠한가? 예수님의 부활이 불신자들에게도 진정 기쁜 날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불신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가? 대부분 후자가 답일 것이다. 왜 그럴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믿는 이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할 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이 회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것이다. 이 사실을 듣고 깨달아 실천한다면, 우리도 역시 놀라운 영적인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삶의 윤택함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2.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모든 만물 중에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길 그 어떤 존재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물이나 동물 중에 인간만큼 지혜롭고 뛰어난 존재는 지금까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뛰어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성경에 보면, 이길 수 없는 것이 3가지 있다.
첫째로, 인간은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없다(롬7:18~20). 왜냐하면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예수님 없이 인간으로서 스스로 죄된 본성을 이길 사람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함을 한탄하면서 선을 행하기는 원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기 자신을 본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을 행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게 하는 장본인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의 몸속에 들어있는 '죄'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죄[된 본성]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이길 수가 없다(롬5:12, 히9:27).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죄는 결국 인간을 죽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첫 계명으로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죽게 된다고 말씀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사람은 죄값으로 죽었고 지금도 죽는 중에 있다(롬6:23). 셋째로, 인간은 스스로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없다(히2:14~15).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이 그렇게 지혜로운 존재였으나 마귀의 말에 그만 속아서 그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때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것이 영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롬6:16).
3.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런데 두 번째 사람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께서 '죄'와 '죽음'과 '마귀'를 이기셨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 인하여 죄된 본성을 소유하지도 않았으며(고후5:21), 또한 마귀로부터 미혹을 받기는 했으나 마귀의 말에 순종하지 않아 죄를 짓지도 않으셨다(마4:1~11). 그런데 마귀가 자기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사람들을 꼬드겨서 그를 죽이게끔 뒤에서 조종을 하였다. 그리하여 죄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다. 그때 마귀는 쾌재를 불렀으나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른지는 자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망에 의해 삼킨 바 되셨으며, 곧장 음부에 내려가셨다. 하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는 3일 만에 음부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셨다. 아무도 그를 붙들어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죽어야 할 죄를 갖고 있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 사건'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올라오실 때에는 그분의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계셨다. 그것은 2가지 열쇠였다. 그것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들이다(계1:17~18).
4. 아담이 범죄함으로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할 때에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아담의 목숨 뿐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때 아담은 자기의 목숨만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에게 내어준 것이 아니었다. 그때 아담이 가지고 있는 만물의 지배권마저도 함께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므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는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아담에게서 빼앗았음을 언급하였고, 자기에게 절하면 그것을 주겠노라고 제안했던 것이다(눅4:5~6).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니다. 그때 아담이 마귀에게 패배함으로 인하여 아담 자신의 '육체'마저 그에게 내어주어야 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창세기 3:14에 나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꾀였던 뱀에게 먹이로 준 것이 있다. 그것을 원문으로 보면, '네 생명의 모든 날에 티끌(아파르)을 먹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뱀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냥 땅(아다마)의 흙(에렛츠)가 아니라 '먼지'나 '티끌'로 번역된 '아파르'였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여기에 쓰인 '아파르'라는 단어가 사람의 육체를 만들었던 바로 그 재료이기 때문이다(창2:7). 그러니 이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의 지배권을 사탄에게 내어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뱀들은 사람의 육체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공생애 기간에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에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고 말했음을 알려 주셨다(마12:43~45). 다시 말해, 더러운 영인 뱀들이 사람의 몸을 자기의 집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죄를 지은 후에 회개하여 그 죄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 죄로 인하여 사람의 몸속에 뱀들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5.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
우리가 부활하시어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그때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혜택이 주어진다. 그것은 크게 두 방면의 혜택이 있다. 하나는 원초적인 방면이고, 또 하나는 부차적인 방면이다. 부차적인 방면은 원초적인 방면 때문에 뒤따라오는 것이다.
첫째,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원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좀 전에도 언급했지만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히2:14~15). 우선 첫째로,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영 속에 들어오시게 되는데, 그 성령께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게 되면 우리도 역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롬8:1~2).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며, 영원한 사망 곧 둘째 사망의 해도 역시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라도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다 성령께 내어 드리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예수믿는 자라 할지라도 죄를 짓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사탄 마귀'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른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때 믿는 자들은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으며 뱀들을 집어 올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막16:17~18).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면 저가 우리를 피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약4:7). 그러나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고 마귀를 물리치며 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귀가 던져 주는 미끼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유혹에 자꾸 넘어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원초적인 혜택으로서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는 것 같다.
둘째,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부차적인 혜택도 동시에 누릴 수가 있다. 그것은 '질병'과 '가난'과 '저주'로부터 해방받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질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우리의 질병을 대신하여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이다(벧전2:24).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하나도 아픈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병원에 가 보라. 아픈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입원해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가난'에서 놓임받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을 가난(궁핍함)을 대신하여 받으셨기 때문이다(고후8:9). 그렇지만 우리 믿는 이들 중에 가난한 자가 없이 부자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자가 많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형통함을 앗아가는 '저주'로부터도 해방받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율법의 모든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기 때문이다(갈3:13).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예수님을 믿어도 형통하지 못한 채 사업은 망하기 일쑤고 자녀의 길은 막히는 등 온갖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가 많다. 인생의 고속도로를 경험하면서 사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6. 왜 성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다. 이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예수믿는 사람들이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소개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히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그 예수님을 믿어서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그 혜택을 누리며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첫째, 예수께서는 분명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기셨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셨지만 실제적으로 성도들은 대부분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기지 못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너도 예수믿고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기며 살아라"고 말을 못하는 것이다. 성도라 할지라도 자기의 성질 하나 이기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차마 자기 불신 가족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의 문제는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소개해 줘도 그것을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신자가 진짜로 죄사함을 받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으며, 죽음을 이기는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탄 마귀와 귀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증언할 수가 있겠는가?
둘째, 예수께서는 분명, 질병과 가난과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우리가 질병과 가난과 저주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받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기에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성도들은 여전히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며, 물질에 허덕이고 있고, 자신의 사업이나 자기 자녀의 앞길이 꽉 막혀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감히 자신있게 자기의 불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원초적인 혜택은 우리가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고 성령께 내 자신을 위탁하며 산다면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불신자들에게 예수믿는 혜택을 자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초적인 혜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신자들을 전도할 때에는 부차적인 혜택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먼저 병에서 고침받고, 가난에서 벗어나 살며, 형통함의 축복을 받는 일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므로 불신 가족의 눈에는 매우 놀랍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신 가족이나 친구들을 전도하려 할 때에는 부차적인 혜택을 누리고 살면 그것이 곧 전도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산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된다.
7.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부차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성경이 말씀했다면 그것은 실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성경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아담의 범죄 후에 인간이 받게 되는 징계를 창세기 2장으로만 해석해 온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범죄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죄가 들어오고 죄가 들어오면 사망이 들어온다는 것까지만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상이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내린 징계가 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뱀에게 허락한 징계가 있다. 그것은 뱀들이 죄지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창3:14). 그런데 아무도 그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이 드디어 공개되는 때가 오고야 말했다. 그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법에 그것에 관한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 1~2계명을 어긴 자들에게 그 죄값을 묻되(벌하되) 아버지들로부터 아들들에게까지 3~4대까지 벌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영안을 열어서 보니, 실제로 아버지가 우상 숭배할 때에 들어온 뱀들이 아버지가 죽으면 고스란히 그의 후손 3~4대까지 내려가서 그의 후손 3~4대의 몸속에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저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것이 들어가면 '질병'이 생기고, 그것들이 물질을 막아 손해보게 하고 '가난'하게 살게 만들며, 그것들이 나와 내 자녀들의 앞길을 막아서 형통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후에 우리는 내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그 죄를 회개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상은 이미 죽어서 우리 곁에 없지만, 조상이 죽을 때에 그의 몸속에 있던 영들을 그의 후손에게 넘겨주고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은 현재 우리들 곁에 없을지라도 그 영들이 우리의 몸속에 들어와 있기에 이것을 처리했어야 했던 것이다. 영안을 열어서 보니, 사람이 불치병으로 고생한다든지, 물질로 고생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의 윗대 1~3대가 지었던 우상 숭배의 죄들 때문이었다. 그 악한 영들이 들어와서 역사해서 그랬던 것이었다. 사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는 과거의 죄는 거저 용서를 받게 된다. 마치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것처럼, 이미 목욕을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요13:10). 하지만 그 후에 자범죄를 짓게 된다. 그러면 더러워진 발은 꼭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자범죄는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요일1: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자기가 예수믿을 때에 과거의 죄는 어느 정도 처리가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또한 짓고 있는 죄는 자백함으로 계속해서 회개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지은 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상들이 남겨두고 간 악한 영들 곧 뱀들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야 하며 뱀들을 몸속에서 집어 올려야 하는 것을 말씀하셨다(막16:17~18). 그런데 믿는 자라 할지라도 귀신을 쫓아내거나 뱀들을 집어 올리는 일을 등한히 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남겨두고 간 귀신들과 뱀들 때문에 우리의 육신과 삶에 매우 어려움이 계속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면 즉시 우리도 부차적인 혜택을 누리고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그렇다고 가르쳐 준 일이 있었는가?(아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이단적인 사상이라고만 들어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도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2가지 혜택이 주어진다고 했다. 하나는 죄용서를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하늘에서 일어날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깨끗해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은 더러워지는가? 그것은 죄를 범할 때에 육체가 더러워지고 또한 영도 같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고후7:1). 왜냐하면 죄를 범하면 더러운 귀신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기 때문이다(마12:43~45). 그러므로 회개하면 더러운 영들을 우리 몸속에서 내보냄으로 우리가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회개하지 않음으로 악한 영들이 대부분 자기의 후손에게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육체의 생명을 이어받은 핏줄에게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지었던 죄는 오직 그의 후손만이 회개할 수 있으며, 회개하면 조상들의 죄사함의 영역은 아니지만(이미 조상들은 대부분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에 역사하고 있는 더러운 영들을 우리의 몸으로부터 밖으로 제거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8. 나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도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질병과 가난과 저주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그것들에게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해결할 수 있는 열쇠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죄'와 '죽음'은 생명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질병'과 '가난'과 '저주'를 일으키는 '귀신들'과 '뱀들'은 우리가 나와 내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귀신들(큰 영들)은 쫓아내고 뱀들(작은 실같은 것들)은 들어올려 뽑아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런데 과연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자기 몸속에 뱀들이 치고 들어온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자기가 죽게 될 때에 그 뱀들이 자기의 몸속에서 나와 자기의 후손에게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또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런데 아직도 어떤 사람은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안 미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렇다면 자기는 죽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왜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는가? 나의 조상이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는 오롯이 받아들이면서 왜 조상들이 지은 죄들에 의한 징계가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것은 죄의 법이 아니라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이루어진다는 십계명법에 나온다(출20:5). 그러나 조상들이 지었던 죄 때문에 예수믿는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죄사함을 받지 못한 자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한 자가 지옥에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영문도 모른 채 나와 내 후손들이 당할 고통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 믿는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뱀들이 나의 자식과 내 사랑스런 손자 손녀에게 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더욱이 내가 회개하여 그것들을 떠나보내면 예수님을 믿는 부차적인 혜택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질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가난에 허덕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형통함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회개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겠지만, 이것을 한 5년 10년을 지속했다고 가정해 보라. 얼마나 위대한 일이 우리에게서 나타날 것인가? 그러면 우리의 불신 가족과 친구들이 "그 좋은 예수를 왜 너만 믿고 내게는 소개해 주지 않느냐?"고 오히려 야단을 칠 것이다. 왜 그런가? 나의 삶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던 불신 가족과 친구들이 나의 달라진 삶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에도 회개가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것을 알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린 것인가? 오 주여! 날마다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소서!!!
2022년 04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보충)
4. 아담이 범죄함으로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할 때에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아담의 목숨 뿐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때 아담은 자기의 목숨만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에게 내어준 것이 아니었다. 그때 아담이 가지고 있는 만물의 지배권마저도 함께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므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는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아담에게서 빼앗았음을 언급하였고, 자기에게 절하면 그것을 주겠노라고 제안했던 것이다(눅4:5~6).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니다. 그때 아담이 마귀에게 패배함으로 인하여 아담 자신의 '육체'마저 그에게 내어주어야 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창세기 3:14에 나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꾀였던 뱀에게 먹이로 준 것이 있다. 그것을 원문으로 보면, '네 생명의 모든 날에 티끌(아파르)을 먹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뱀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냥 땅(아다마)의 흙(에렛츠)이 아니라 '먼지'나 '티끌'로 번역된 '아파르'였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여기에 쓰인 '아파르'라는 단어가 사람의 육체를 만들었던 바로 그 재료이기 때문이다(창2:7). 그러니 이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의 지배권을 사탄에게 내어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뱀들은 사람의 육체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공생애 기간에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에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고 말했음을 알려 주셨다(마12:43~45). 다시 말해, 더러운 영인 뱀들이 사람의 몸을 자기의 집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죄를 지은 후에 회개하여 그 죄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 죄로 인하여 사람의 몸속에 뱀들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