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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는 여러 편지들의 모음인가?

조광호 (서울장신대학교)

서론

 

             보른캄은 초기 기독교 문서 중에서 교회의 상황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고린도후서를 들고 있다[1]. 바울은 고린도전서 기술이후, 변화된 상황 때문에 재차 고린도를 방문했고 (참고 12:14; 13:1) 또한 디도 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과정 중에 그가 겪었던 여러가지 수고와 노력, 그리고 극복해야 했던 과제들에 대해 생생한 필체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고린도후서이다. 이 서신에는 대적자들로 인해 바울로부터 멀어져가는 고린도인들을 향한 간절한 호소와 질책, 그의 복음에 대한 변호 그리고 적대자들을 관대히 대해줄 것을 바라는 부탁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고린도전서에 앞서 음행하는 자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내용의 서신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적이 있으나 (고전 5:9), 이 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린도후서에도 바울은 이전에 눈물로 편지를 썼다고 말한다 (2:4). 소위 이 ‘눈물의 편지’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고린도전서로, 혹자는 분실된 어떤 편지로 또는 고린도후서의 한 부분[2]이라고도 한다. 또한 고후 7:8 이하에 고린도인을 슬프게 한 편지라는 언급이 있다. 이 편지는 무엇을 뜻하는 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상과 관련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내용이나 문체의 변화로 인해 학자들 중에는 고린도후서를 여러 편지들의 모음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본 소논문의 목적은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고 고린도후서 저술에 즈음한 바울과 고린도교회 간의 관계를 조명함으로써, 고린도후서의 내용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본론 첫 부분에서는 고린도후서가 여러 편지들의 모음이라는 대표적인 주장들을 살펴본다. 둘 째 부분에서는 반대로 하나의 편지로 이루어졌다는 측의 논지를 살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양측의 의견을 염두에 두면서 나름대로 고린도후서를 문학적으로 어떻게 구성된 서신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과 이 서신 저술에 즈음한 때의 바울과 고린도교회와의 관계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본론

 

1. 여러 편지들의 모음설

 

             고린도후서를 읽다 보면, 진술 분위기나 문체가 서로 다르다던가, 설명이나 논지가 갑작스럽게 끊어지다가 한참 후에 다시 연결되는 사실 등을 발견하게 된다. 이로 인해 후서는 여러 편지의 모음이라는 주장이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세믈러(J.S. Semler)는 1776년에 10-13장은 디도가 고린도로 떠난 다음 새로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된 바울이 기술하여 보낸, 1-9장과는 다른 편지(또는 그 다른 편지의 일부분이)라고 보았다[3]. 소위 4장으로 이루어진 편지라는 가설(Vier-Kapitel-Hypothese)은 후에 하이델베르그 출신의 신약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하우스라스(A. Hausrath)에 의해 더욱 설득력 있게 주장되었다[4]. 이처럼 고린도후서가 여러 개의 서신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은 예로부터 있어 왔다. 본 장에서는 그 중의 대표적인 몇몇을 택하여 그들의 주장과 논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의견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할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A. 바이스(J. Weiß)의 주장

 

             고후 2:13은 다음에 나오는 14절과 문맥이 잘 맞지않을 뿐더러, 훨씬 뒤의 7:5에서부터 그 내용이 연결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로 인해 그 사이 부분인 2-7장을 독자적인 부분으로 보는 견해가[5] 예전부터 있었다. 이같은 이론을 최초로 주장한 자는 할멜(A. Halmel)이다. 빈디쉬에 따르면[6] 그는 처음에 2:14-6:10을 독립된 편지라고 보았다가, 나중 연구에서 6:14-7:1을 제외한 7:4까지를 독자적인 단락이라고 주장하였다. 할멜은 1:1-2:13; 7:5-16; 8장이 가장 먼저 쓰여졌고 다음으로 10-13장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2:14-7:4가 작성되었다고 보았다.

             할멜의 분리가설을 더욱 발전시킨 학자는 바이스이다. 그는 고린도후서 저술당시의 정황 설명을 중간방문 문제부터 시작한다. 그는 바울의 고린도 중간방문이 실제 있었다고 본다(12:14; 13:1)[7]. 즉 고전 16장에서 약속한 대로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적자들의 영향으로 교인들로부터 멸시와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12:12; 7:12). 이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돌아와 그들을 질책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고린도인들은 바울에게 다시 순종하게 되었다고 본다 (7:11)[8].

             이상을 전제로 바이스는 고린도후서의 각 부분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4 장의 내용은 바울의 어떤 편지보다도 날카롭고 실랄하다. 따라서 이 부분은 화해를 말하고 있는 7장의 전 단계이다. (2) 그러므로 이 10-13장을 전통적으로 분실되었다고 여겨지는 중간편지로 봐야 한다[9]. 그리고 6:14-7:1을[10] 제외한 2:14-7:4에서도 말씀을 혼잡하게 하거나 (2:17) 자천함으로 (3:1)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이들을 논박하고 있으며,  옛 계약 즉 의문의 직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3:4-4:6), 고린도인을 향해 마음을 열라고 간청하고 있다는 (7:2-4) 점에서, 이 부분도 같은 중간편지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11]. (3) 마지막으로 쓰여진 부분은 1:3-2:13; 7:5-16이다. 이 두 부분은 디도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돌연 중단되었다가 다시 7장에서 계속된다는 점에서 서로 잘 합치되며 따라서 한 편지이다[12]. (4) 12:17f에서 바울은 디도와 형제를 보낸 것을 회고하고 있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8장에 나오고 있다. 따라서 10-13장은 8장과 동시적이거나, 또는 후에 기록되었다고 봐야 한다[13]. (5) 9장 첫 절은 마치 모금에 대해 처음 거론하는 것처럼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9장은 8장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7장과 연결된다. 이에 반해 8장은 독립적인 부분으로서, 7절에서 고린도인들의 여러가지 장점에 대해, 분쟁 기간 중이나 후에는 하기 힘든 칭찬과 인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8장은 고린도교회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기록된 것이다[14].

             바이스의 입장에 동의하는 학자 중에 대표적인 이를 꼽으라면 불트만(R. Bultmann)을 들 수 있다. 그는 두 부분에서의 상황설정이나 테마가 유사하다는 점과 동일한 사고나 서식이 각각 발견된다는 점을[15] 들어, 바이스처럼 2:14-7:4와 (그 중 6:14-7:1 제외) 10-13장은 ‘중간편지’에 해당한다고 본다. 반면 1:1-2:13; 7:5-16은 돌아온 디도로부터 고린도에 보낸 중간편지의 효과가 어떠했는 지를 보고 받은 후 쓴 것이라고 본다[16].

 

B. 빈디쉬(H. Windisch)의 주장

 

             빈디쉬는 자신의 기념비적인 고린도후서 주석에서 후서는 1-9장과[17] 10-13장(C)의 두 편지(AB+C)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편다. 그리고 저술 순서는 현 고린도후서에 실려있는 대로 AB 먼저, 그리고 C가 나중이라고 본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바렛(C.K. Barrett)[18]이나 퍼니쉬(V.P. Furnisch)[19]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빈디쉬는 우선 세믈러 이래 하우스라스[20], 그레베(E.J. Greve), 케네디(J.H. Kennedy)[21] 등에 의해 지지된, C가 4장으로 이루어진 독립적인 편지라는 주장에 대해 다루면서[22] 고린도후서가 하나의 편지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를 한다. 하지만 C가 A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는 견해에는 반대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쓰여졌다고 생각되는 어떤 편지를 찾고 있는 중에 고린도후서의 일부에서 전체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발견된다면, 찾는 편지가 바로 부합되지 않는 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찾고 있는 ‘중간편지’에 대한 기술들이 실제로 해당 편지부분과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며, 또한 찾았다고 생각되는 편지부분은 나중의 부분과 비교할 때 먼저 쓰여졌다는 흔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빈디쉬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요건 모두 고린도후서에서 충족되지 않고 있다[23]. 무엇보다도 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C의 내용이 ‘돌발사건’(Zwischenfall)을 다루고 있는 2장과 7장과 긴밀한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24].

             빈디쉬는 AB와 C의 상황이 유사하다거나 이 둘 간의 차이를 애써 축소함으로써, 혹은 분명히 나타나 있는 행동이나 기분의 차이를 바울이 타인의 도움을 받았다거나 그의 내면 심리상태의 변화로 이해함으로써, 고린도후서가 하나의 편지라고 주장하는 입장에도 반대한다. 아울러 빈디쉬는 두 편지 간의 차이를 강조하는 연구경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즉 C와 A의 수신인이 각각 다르다고 (전자는 외부에서 들어온, 혹은 그들을 지지하는 소수인들, 후자는 다수의 고린도인들) 봄으로써 바울의 문체나 태도 변화를 설명해보려 하지만, C의 어디서도 다수와 소수를 구분하고 있지 않으며, C에서도 고린도교회에 대한 바울의 개인적인 관계가 주로 거론되고 있으며 C도 A에서처럼 정상적인 관계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25].

             고린도후서가 한 편지임을 주장하는 학자들 중 일부는 대적자들이 행했던 바울에 대한 새로운 비방에 대한 심각한 소식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긴장이 고조됨으로써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이 다르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빈디쉬는 만약 그렇다면 편지의 첫 부분들은 (바울 사도권이 인정되고 있으며 따라서 고린도인들과 화해가 이루어짐) 그것들의 객관적 주관적 전제들이 새로운 상황으로 인해 대체로 그 의미를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존재하는 셈이며 따라서 바울이 일구이언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 비난의 내용과 함께) 고린도에 보내진 것이 되는데, 이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본다. 이런 이유로 그는 상황변화에 따른 전반부와 후반부의 차이 설명에 대해 회의적이다[26].

             심한 기분의 변동을 이유로 들거나 C부분을 쓰기 전날 바울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설명도 적절치 않다고 빈디쉬는 본다. 즉, 잠을 못잤다면 기억력의 감퇴로 이어질 뿐이다. C에서 바울의 정신상태는 정상으로서, 활발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혹은 율리허(A. Jülicher) 등에 의해 주장된, 지금까지 도움을 주었던 디도가 가버림으로서 바울의 원망의 감정이 고조되었다는 설명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C에서 디도가 언급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27].

             이처럼 빈디쉬는 C가 A보다 먼저 쓰여진 편지라던가, 고린도후서는 하나의 편지라는 주장에 반대하면서, 무엇보다도 크렌켈(M. Krenkel)의 관찰결과를 적극 수용한다. 그리하여 고린도후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본다: 디도가 고린도를 떠난 후, 그곳에 새로운 유대적 성향을 띈 자들이 들어와 활동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무엇보다도 바울의 모금을 시비거리로 삼았다 (12:16-18). 이에 바울은 A에서와는 달리 C에서 날카로운 어조로 이 문제에 대해 논박하고 있다[28]. 즉 편지 C는 AB저술 이후 새롭게 야기된 갈등에 대한 바울의 반응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빈디쉬의 주된 논지이다[29].

 

C. 보른캄(G. Bornkamm)의 주장

 

             보른캄은 고린도후서 저술과 연관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상정한다: 고린도교회 내에 발생한 분파문제는 바울이 디모데를 보냄으로써 해결이 되었다. 디모데는 고린도후서를 쓸 당시 고린도에서 돌아와 에베소에 있었다 (1:1). 그런데 그때 고린도에 새로운 바울의 대적자가 출현하여 바울은 예정에 없던 잠깐동안의 방문[30](중간방문)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바울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으며, 결과적으로 그곳을 떠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바울은 고후 2:4에서 언급되고 있는, 괴로워하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도를 고린도로 보낸다[31]그리스 땅에서 그와 재회한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편에 다시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감격스러운 어조로 화해에 대해서 말하면서 (7:8ff) 이전의 대적자들에 대해 관용할 것을 그들에게 촉구한다 (2:5ff)[32].

             바울과 고린도교회 간의 갈등, 실패로 끝난 중간방문, 슬픔의 편지, 디도의 선교활동 등은 1-2장 그리고 7장에서만 나온다. 이 부분에서는 대립이 종결되어 바울은 기쁨으로 화해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부분에 이어 두 장으로 된 (1-7장과는 독립적인) 모금권유의 편지가 등장한다[33]. 그리고 투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중간방문이나 디도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평화나 화해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되지 않는 10-13장이 있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수세에 몰려 있다. 임박한 방문을 앞둔 바울은, 그가 갔을 때 엄하게 대적자나 고린도교회를 대하는 일이 없도록 올바르게 생각하고 돌아올 것을 고린도인에게 촉구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이차 방문 때처럼 겸손하지 않을 것이며, 교회의 건덕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전권을 심판을 위해 쓸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1-7장과 10-13장 간의 차이는 명백하기 때문에 나중의 4장으로 이루어진 부분은 앞의 부분과 동시적으로 기록되었거나 보내지지 않았다고 보른캄은 본다. 그는 10-13장을 전반부에 언급된 슬프게 한 편지의 단편으로 본다[34].

             드로아로 가서 고린도에서 돌아오는 디도를 만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편치 않은 마음으로 마게도니아에 갔다는 고후 2:12f 이하의 내용은 2:14-7:4를 건너 뛰어 7:5에서 이어진다[35]. 2:14-7:4에서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의 내용을 다루고 있데, 이는 10-13장[36]의 내용과 너무나 상반된다. 2-7장에서는 대적자의 활약이 전제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의 정당성에 대해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교회가 아직 안전한 상태에 있음을 믿고 있으며, 확고한 신뢰감을 가지고 교회를 설득하고 있다 (참고 6:11f; 7:4). 반면 10-13장에선 그러한 신뢰감을 찾아볼 수 없다. 잘못된 선포와 거짓사도들의 지배가 횡횡하도록 기회를 허락한 교회에 대해 신랄한 어투로 질책하고 있다 (11:19f; 13:5). 이상의 관찰에 근거하여 보른캄은 2:14-7:4(변호의 편지)과 10-13장(눈물의 편지, 또는 슬픔의 편지)은 서로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7].

             ‘변호의 편지’에서 바울은 대적자들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그들의 승리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고후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는 대적자들이 변호의 편지을 읽은 후에 중간 방문을 한 바울을 대면하고 한 말이라는 것이 보른캄의 생각이다. 이러한 일련의 숙고를 거쳐 그는 변호의 편지가 제일 먼저 작성되었다고 본다. 이 편지를 발송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바울이 잠시 고린도를 방문해야 했지만 (중간방문), 이 또한 별로 효과가 없었다. 따라서 슬픔의 편지(10-13장)가 쓰여지게 된다. 이와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디도가 고린도에 파견되는데, 이 방문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마게도니아에서 화해의 편지(1:1-2:13; 7:5-16)가[38], 그리고 이어 각기 다른 두 편의 모금 권유의 편지가 쓰여 졌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39].

 

2. 단일편지설

 

             고린도후서를 여러 편지들의 모음으로 보는 의견 뿐 만 아니라, 그 반대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아래에서는 그 같은 단일편지설을 지지하는 몇몇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본다.

 

A. 힐달(N. Hyldahl)의 주장

 

             힐달은 ‘중간편지’를 고린도전서로 파악함으로써 고린도후서가 여러 개가 아닌, 한 편지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고린도후서 중, 1:15-2:13에 집중하면서 두 개의 대립되는 여행계획(고전 16:5-9; 고후 1:15-16)과 중간방문 그리고 눈물의 편지 부분에 관심을 갖는다[40]. 바울의 여러 편지를 통한 예와 함께, 고후 1:23-2:2와 2:3-11의 관련성을 통해 힐달은 바울이 공동체를 방문해서 그곳 교인들을 엄하게 다루어야 할 경우에, 그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직접 방문 대신 편지는 쓰는 경우가 발견되는데, 눈물의 편지나 고후 10-13장은 이 같은 경우의 대표적인 예라고 본다[41].

             1:15-16에 따르면 고린도인들은 바울의 방문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불만의 상태였다. 하지만 그 구절에서 언급된 여행계획 중의 하나가 중간방문이며,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 졌다면 고린도인들이 바울에 대해 그렇게 불평하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1:23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1:15f를 생각할 때, 바울은 계획했던 고린도방문에 대한 모든 것을 취소했다고 봐야 한다고 힐달은 주장한다. 그러므로 눈물의 편지는 중간방문의 결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중간방문 대신 쓴 것이라는 것의 그의 생각이다. 이에 따르면 두 여행계획 간의 관련성은 다음과 같다: 고후 1:15f의 내용이 원래 바울의 계획이였는데 이를 수정한 계획을 고린도여행을 앞두고 고전 16:5-9에서 밝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후서는 이 후자의 방문 대신 눈물로 써서 보낸 (에베소에서 발송) 편지라는 것이다[42].

             고후 12:14와 13:1a는 이제 세 번째로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 번째로 (방문은 비록 성사되지 못했지만 갈 준비를 했던 이전 두 번[고후 1:15f; 고전 16:5-9]에서 처럼) 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43]. 또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중간방문의 논증으로 사용되는 13:2의 구절(w`j parw.n to. deu,teron kai. avpw.n nu/n) 역시 편지 작성에 앞서 방문이 있었다는 관점으로 이해되어서는 않된다고 힐달은 주장한다[44]. 그 이유는 parw.n to. deu,teron는 avpw.n nu/n과 비교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려면 빈디쉬의 지적처럼[45] w`j에 상응하는 ou[twj가 뒤의 kai,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w`j는 고린도전서와 임박한 두 번째의 방문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윗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힐달의 생각이다: “마치 (이미) 두 번째로 옆에 있는 것 처럼 그리고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 곁에 없이”[46].

             이상을 고려한 결론으로 힐달은 눈물의 편지는 다름아닌 고린도전서라고 본다. 이에 따라 하우스라스의 이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분리가설은 그 근거를 잃게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중간편지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고후 10-13이 고린도후서에서의 현재 위치 외에 다른 곳에서는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10-13장을 1-9장 다음에 쓰여진 편지라는 세믈러나 빈디쉬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47].

             고린도후서는 힐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정황 하에 기록된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전도상황과 고린도로부터 온 소식 등에 의거하여 바울은 이 차에 걸쳐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고린도전서(눈물의 편지)를 보낸다. 이에 대한 교회의 반응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그리고 모금을 촉구하기 위해 바울은 디도를 비롯한 다른 사람을 고린도에 보냈다. 얼마후 마게도니아에서 고린도로부터 귀환하는 디도를 만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엄한 질책과 훈계에 따라 불의를 행한 자를 징벌하고 (고후 2:7) 다시 바울에게 순종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후 2:9; 7:2)[48]. 바울은 이에 자신이 이전에 너무 엄하게 고린도인들을 질책하지 않았나 후회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악행을 행한 자에 대해 선처를 베풀도록 고린도인에게 부탁한다. 한편 고린도인들은 악행을 저지른 자를 모든 사람들의 잘못을 대신하는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그들 또한 바울이 갔을 때, 같은 벌을 받아야 할 입장에 놓여 있었다 (12:21; 13:2,5,10). 그리고 무엇보다 디도의 보고에 따르면 고린도에는 그곳에서 활동함으로서 바울의 복음전도의 노력을 무위로 만드는 거짓 사도들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바울이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편지를 쓰는 것이였다. 힐달에 따르면 이 편지에서 바울은 열심이 있는 자들과 고린도교회의 순종을 인정할 뿐 만 아니라 (7:5-16), 더 나아가 모금의 완결을 촉구하고 있으며 (8-9장) 동시에 그리스도교가 무엇이며 선포가 무엇인지 (2:14-7:4), 그리고 바울 자신이 이 거짓사도들 보다 무엇이 낳은 지에 대해 강조하며 (11:1-12:10), 고린도인에게 자신들의 교회가 참으로 교회인지를 늘 생각하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다[49].

 

B. 큄멜(W.G. Kümmel)의 주장

 

             큄멜은 고린도후서의 각 부분이 서로 상이하다는 점을 이유로[50], 이전부터 이 서신은 여러 편지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있어왔음을 인정한다[51]. 하지만 이 분리가설이 타당하다고 여겨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즉, 전승된 본문인 고린도후서에서 이차적인 결합이라는 가정을 확실히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또한 왜 이렇게 결합되었는 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이유를 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52].

             (1) 화해를 전제로 한다는 1-9장에서 고린도교회가 모든 면에서 정상화되었다고는 말하고 있지 않으며, 바울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 대한 변론과 (1:13ff,23ff; 4:2ff 등) 다른 전도자들에 대한 논증이 나오고 있는 점과 (2:17f; 3:1) (2) 격렬하게 논증하고 있는 10-13장에서도 모두가 아닌 일부 특정 사람들 만이 바울을 공격했다는 점 (10:2,7,11f; 11:5,12f,18,20 등)[53]을 들어 이 두 부분의 내용이 그리 다른 것이 아님을 큄멜은 주장한다. 그리고. 10-13장이 소위 ‘중간편지’라는 주장에 대해 큄멜은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1) 12:18은 명백히 8:6,16-18에서 언급된 디도와 한 형제의 파송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2) 2:3-5:9(변호의 편지 일부)에 따라 중간편지에서 다루어진 것이 10-13장에서 다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3) 오히려 역으로 2:3ff과 7:8ff에서는 10-13장이 중간편지라고 할 때 생략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즉 어떻게 교회는 10장 이하에 나오는 바울의 거짓사도에 대한 논증에 반응했는지에 대해,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54]. 큄멜은 또한 10-13장이 1-9장 보다 나중에 쓰여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10장 이하 어느 곳에서도 바울이 1-9장을 저술한 이후 고린도교회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인식한 징후가 발견되지 않는 다는 점을[55]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이상의 논증을 통해 큄멜은 고린도후서를 원래부터 하나로 통일된 편지로 보는 견해를 지지한다. 2:13 이하에서 지금까지의 논지가 달라지는 것은 바울이 디도를 만난 사건을 말하면서 영광송을 도입시켰기 때문이고 이어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에 대해 논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6:11-7:4을 통해 점차 원래의 테마로 돌아간다고 본다[56]. 8-9장에 대해서도 9:1은 완전히 새로운 문장이 아니며, 3,5절에서는 단순히 형제를 보냈다고 설명함으로서 전 장의 18절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새 장(9장)에서 예루살렘을 도와야 필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이 없는 점등을 고려할 때, 이 장은 독립된 편지(또는 편지의 일부분)가 아니라고 큄멜은 본다[57].

             큄멜은 두 개 또는 세 개의 편지가 합하여 현재의 고린도후서가 되었다는 소위 분리가설에 대하여, 그렇게 편집된 어떤 동기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지 반문하면서, 고대에는 한 저자의 편지들이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각기 단편으로 분해되어 한 편지로 재구성되는 그런 예가 없음을 상기시킨다[58]. 보른캄은 본문의 맨 마지막에 거짓교사들에 대한 경고가 흔히 나오며 1-8장에 2:-14-7:4을 삽입한 것은 바울의 행위가 실패(2:12f)에서도 신적인 승리의 행진(2:14ff)으로 해석되도록 하려는 편집자의 의도라고 하지만, 본문에서는 이러한 기미를 발견해 낼 수 없다고 단언한다. 편지들이 조각으로 분해되었다가 임의의 순서에 따라 하나로 다시 만들어졌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우선 어째서 상이한 여러 편지들을 초두와 말미를 제거하여 하나의 몸체를 만들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9].

 

C. 프라이스(J.L. Price)의 주장

 

             프라이스는 자신의 논문[60]에서 고린도후서의 핵심 사상을 그 편지의 문학적인 구조와 연관시켜 생각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화해가 이루어 진 것을 기쁨으로 인정하는 내용과 격렬하게 대립하는 내용이 왜 같은 편지 내에 존재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프라이스는 고린도후서가 쓰여지기 직전 고린도에서 심각한 위기가 극복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바울을 안도케 하고 위로했던 근본적인 원인은 디도가 고린도에서 가져온 기쁜 소식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음 (1:3-7)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1:3-7을 고린도후서의 근간으로 보았으며, 이 구절을 통해 전체 고린도후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고난을 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즉 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로 규정함으로서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이해한다[61]. 고난은 영광스러우며 영속하는 성령의 직무라는 사고를 바울은 유대-묵시적 사상으로부터 채용하였다. 그것에 따르면 고난은 이스라엘의 구원사의 종말론적 대단원에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복음과 고난은 불가분의 관계이다[62]. 바울은 자신의 직무를 통해 그가 책임지고 있는 교회들과 한 운명공동체로 산다는 것을 깊이 확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추구하는 주요 목적은 교회가 불의한 일을 저지른 자들을 벌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고린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바울과 그들의 미래가 얼마나 운명적으로 긴밀히 연관되어있는지를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고린도인들은 바울에 대한 관계의 이 같은 깊은 차원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1:13-14), 바울은 이에 따라 그들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1-7장에서, 특별히 5:11-7:4(5:20; 6:1,11; 7:2)에서 바울의 그러한 확신은 흔들리고 있다. 주석가들은 바울의 화해의 진술에서 고린도에 평화가 다시 찾아 왔으며 바울의 권위가 재확립되었다고 보았을 뿐, 그가 했던 진지한 촉구와 권유에 대해서는 간과했다는 것이다. 프라이스에 따르면 바울은 오히려 자신과 고린도인들 간의 관계들을 위한 화해의 복음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화해 이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역설, 즉 긴장과 갈등은 심지어 이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계속적으로 극복되는 동안에도 남아 있음을 확언하고 있다[63].

             이상과 같은 사고는 8-9장에서도 발견된다고 프라이스는 본다: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기부의 기독교적인 방식이다 (8:3,9; 9:7). 기독교인들이 곤궁함에도 불구하고 관대함을 보일 때,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선포된다 (8:2; 9:12-15)[64]. 그리고 임박한 방문을 앞두고 대적자들에 의해 그의 사도적 권위가 위협당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대응하고 있는 10-13장에서도[65] 바울과 고린도교회 간의 운명적인 동역자 관계라는 동일한 기본 주제가 다루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여기서도 1-7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권세는 곤궁과 고통의 때에 드러난다는 사고가 발견된다고 한다.

             이처럼 프라이스는 역설적인 화해 이해라는 구체적인 주제에 근거하여 고린도후서의 통일성을 주장한다. 긴장과 갈등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극복됨에도 불구하고 항존하며, 이것은 바울에게서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에 대한 관계를 위해서도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1:1-2:13과 7:5-16에서 나타나고 있는 위로는 궁극적인 화해에서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의 일차적인 관심은 고린도에 화해와 평화를 다시 재건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갈등의 상황을 통해 고린도인으로 하여금 고난과 화해 그리고 그에 따른 그들의 공동체적 실존과 바울의 사도적 직무에 대해 신학적으로 깊이 이해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입장이 고린도후서 각각의 부분에서 엿보이며 이것이 고린도후서의 문학적인 통일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3. 고린도후서의 문학적 구조 및 저술상황

 

A. 문학적 구조

 

             고린도후서를 여러 편지들의 모음으로 보는 근거로 무엇보다도 편지 중간에 나타나는 돌발적인 내용의 변화 때문이다 (2:13과 14절, 7:4과 5절, 9:15과 10:1 등). 또한 10-13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격렬한 어조로 쓰여진 논증적이며 자기 변호적인 내용은 친밀한 분위기와 화해가 기조를 이루는 1-7장과 같은 편지에 속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도 분리가설론자들의 주요한 논거이다[66]. 이들의 주장 중에 대표적인 것이 2:13은 7:5이하와 연결된다고 하는 것이다[67]. 그렇다면 그 사이의 부분 즉, 2:14-7:4은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필요하게 된다. 보른캄은 이를 “바울의 모습을 이상화하려는 경향”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68]. 즉, 바울이 디도를 만나러 마게도니아로 가는 부분에서 고린도후서의 편집자는 서술을 중단하고, 찬가로 시작되는 바울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부분을 첨가했다는 것이다. 이 찬가는 그리스도의 개선행렬과 거기에 우리를 참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송영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불리한 상황에서 감행된 바울의 이 여행은 당시로서는 그렇게 볼 수 없지만, 후대 편집자의 입장에서 회고해 볼 때 승리의 행진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바울에 대한 변호의 부분(2:14-7:4)이 삽입되었으며 이는 적절한 것이였다고 본다. 하지만 이 같은 보른캄의 설명은 증명되지 않은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다[69].

             2:13에서는 동사가 1인칭 단수(evxh/lqon)임에 반해 7:5에서는 복수(evlqo,ntwn)라는 점은 2:13이 7:5 이하와 연결된다는 주장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70]. 그리고 2:13과 7:5에서 각각 마게도니아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색하다[71]. 분리설을 옹호하는 이들 중에는 7:5의 앞 부분 kai. ga,r evlqo,ntwn h`mw/n eivj Makedoni,an을 편집에 의한 첨가로 파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분리가설을 변호하기 위해 또 다른 가설을 추가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보다는 현 고린도후서의 텍스트를 바울이 쓴 원래 본문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72].

             화해를 촉구하는 내용(6:11-13; 7:2-4)과 이미 화해가 이루어진 현실을 이야기하는 부분(2:5-11; 7:5-16)은 같은 편지에 있을 수 없다는 주장도 분리가설론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과 관련하여 과연 7:5-16이 완전한 화해를 전제로 쓰여진 것인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 부분이 완전한 화해를 기초로 해서 기록된 것이라면 뒤에 나오는 10-13장의 내용은 다른 편지(의 일부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충분한 화해가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면 같은 편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7:16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로 인해 범사에 담대하게 (qarrw/) 된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이 ‘담대함’과 ‘기쁨’은 분리가설론자들이 (새로 발생한 문제로 인해 자신의 사도직을 옹호하고 있는) 변명의 편지라고 보는 7:4에도 언급되고 있다 (parrhsi,ath/| cara/|). 따라서 이 ‘담대함’과 ‘기쁨’을 근거로 7:5-16에서 바울과 갈라디아교인들 간의 화해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된다. 7:5-16과 같은 화해의 편지에 속한 부분이라고 주장되는 1:1-2:13에서 바울은 근심하게 한 자를 용서하라고 촉구하면서 (2:6f), 이는 사단에 의해 속임을 당하지 않기 (mh. pleonekthqw/men) 위해서라고 한다 (11절). 사단에 대한 언급은 소위 4 장으로 이루어진 편지 부분(10-11장)에서도 등장한다 (11:14f). 여기서 바울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으로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을 사단의 일군으로 단정하고 있다. 거짓 사도들의 영향으로 고린도인들로부터 바울의 복음이 거부당하고 있으며 (11:4), 모금을 착복했다는 의혹 (12:16ff; 참고 11:8f) 그리고 사도권에 대한 불신임 (10:7; 11:5,18ff; 12:11ff) 등의 문제에 직면하여 쓰여졌다고 보는 ‘눈물의 편지’에서 이처럼 사단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는데, 이것이 또한 소위 화해의 편지에서도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두 부분 간의 내용 차이는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1:13f에서 궁극적으로 고린도인들은 온전한 수준의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비록 그들이 현재는 바울 자신을 대강 알지만 장차 완전히 알게 됨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서로의 자랑이 되어야 함을 바울은 역설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비록 바울과 고린도인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 정도가 그의 마음에 들 정도의 완벽한 수준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73]. 그러한 의미에서 동일 서신에서 한편으로 화해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도 (2:5-11; 7:5-16) 또 다른 한편으로 화해를 촉구하는 것은 (6:11-13; 7:2-4) 서로 모순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중간사건으로 인해 슬픔의 편지가 (10-13장) 기록되었다고 한다면 이 4 장으로 된 부분에서 저술의 원인인 중간사건이 언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 또한 소위 화해의 편지에서 대적자들과의 관계단절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74] 등도 분리가설에 대한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의 여러 곳에서 고린도교인들과 자신 간의 관계성을 강조하고 있다[75]. 이는 흔히 바울과 고린도인들 간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는 부분에서도 (예를 들면 10-13장) 마찬가지이다[76].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분리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고린도후서는 내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편지 각 부분 서로 간의 차이 보다는 일치점이 많은 하나의 편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린도후서가 여러 편지들의 모음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모든 고린도후서 사본들이 현재 정경으로 채택된 단일본문으로서의 고린도후서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77]. 또한 큄멜의 지적처럼 바울의 편지들이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일부분이 제거되거나 혹은 그 순서가 바뀜으로 하나의 편지로 다시 만들어 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설득력 있는 이유가 아직까지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78] 고린도후서는 하나의 편지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각 본문 간의 분위기와 어조의 차이는 간과되어서는 않된다[79].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후서가 여러 편지들의 모음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분리가설은 편지 내의 내용차이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과도하게 부각시킨 까닭에 발생된 이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B. 저술상황

 

             고린도후서의 구조를 앞에서와 같이 단일 편지로 규정할 때, 그 서신이 쓰여진 정황은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의 원래 예정은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다가 마케도냐를 거쳐 고린도에 가는 것이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거기서 겨울을 보낼 생각도 있었다 (고전 16:5ff).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고후 1:15ff에서 바울은 고린도로 갔다가 마게도니아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고린도로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참고 고전 16:3f) 갈 작정이였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12:14; 13:1 (“세 번째”) 등을 고려할 때,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저술하기 전에 한 차례 더 고린도를 방문했던 것 같다[80]. 이는 아마도 고린도에서 일어난 돌발적인 어떤 사건 때문이였다고 추정되는데 (참고 2:1ff,5ff; 7:5ff), 이 방문은[81]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난 것 같다 (참고 2:5; 7:12). 이 방문을 통해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베소로 돌아온 그는 이에 소위 ‘눈물의 편지’ 또는 ‘중간편지’를 (2:4, 9; 7:8,12) 통해, 그리고 디도의 파송을 통해 고린도인들과의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고자 했다.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로 보낸 후, 그 결과에 대해 매우 초조하게 기다렸다 (2:12-13; 7:5).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한 디도가 제 때에 당도하지 않자, 마게도니아에 까지 건너가 그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바울은 디도가 가져온 고린도에서 일어난 좋은 소식을 접하고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고린도인들은 뉘우치고 있었고 다시 바울의 입장을 지지하게 되었다 (7:7,9,11; 참고 2:6,9). 이에 바울은 모금에 관한 사안도 포함된 편지를 써서 고린도에 보내는데, 이것이 바로 고린도후서이다.

 

결론

 

             바울의 어느 공동체 방문이 그곳 교인들을 슬프게 하는 경우가 될 때, 그는 차라리 방문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대신 편지를 보냈다[82]. 소위 눈물의 편지도 이 같은 맥락에서 쓰여진 것이며 (2:4)[83], 고린도후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고린도로 파송한 디도를 마게도니야에서 만난 바울은 그의 활약과 자신의 소위 눈물의 편지로 인해 고린도교회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해결되어 가고 있으며, 교인들이 바울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는 감격한다. 고린도후서 내의 기쁨과 화해의 색조가 강한 7:5-16의 내용은 이러한 맥락에서 기록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 상에서 바울은 모금사업 완결을 종용하는 내용도 기술한다 (8-9장). 하지만 고린도교회 내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였다. 이 문제는 10장부터 본격적으로 다루어 진다[84]. 여기서 그는 고린도의 세 번째 방문을 (12:14; 13:1) 앞두고, 그곳 교인들을 아끼는 마음에서(1:23) 그리고 그들을 슬프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미리 편지를 보낸다는 사실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85]. 아직 해결되지 못한 여러 문제가 (대적자에 관한 것, 그리고 일부 교인들의 윤리 문제) 깨끗이 정리됨으로서 바울 자신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고린도인들이 예전과 달리 (12:20f; 13:2) 다시 온전한 상태가 됨으로서 (13:9,11) 그들을 엄하게 대할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고린도후서가 저술되었다 (13:10). 바울은 이러한 사항을 편지 마지막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10-13장). 다른 편지에서도 여행계획은 보통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다 (고전 16:5ff; 롬 15:22ff). 그러므로 방문 계획을 밝히면서 (12:14; 13:1) 교회 내 미완의 여러 사안들을 해결하라는 바울의 권면이 고린도후서의 결미 부분에 나오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배치라고 할 수 있다.

 

 

Besteht der 2. Korintherbrief aus verschiedenen Briefen ?

 

Cho, Gwang-Ho

Full-time Lecturer

Seoul Jangsi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Seoul, Korea

 

Diese Arbeit handelt vom literarischen Charakter des 2. Korintherbriefes. Anhand der inhaltlichen und emotionalen Verschiedenheiten innerhalb des Briefes und abrupten Übergänge bei der Erzählung wird die ursprügliche Einheit des 2 Kor in Frage gestellt. Im Hinblick auf diese Frage liegt das Ziel dieser Untersuchung darin, daß man durch den Vergleich der verschiedenen Argumente zwischen 2 Forscher-Gruppen (Teilungshypothese-Vertreter vs Plädoyer für die Einheit) literarisch-konstruktive Einsicht von 2 Kor gewinnen kann.

Zuerst sind die Meinungen der 3 Hauptvertreter der Teilungshypothesen vorgestellt, danach die der 3 Behaupter der Einheitlichkeit von 2 Kor. Daraus folgt: Zwar sind die inhaltlichen Verschiedenheiten zwischen den Briefteilen in den Blick zu fassen. Aber das kann nicht automaisch Teilungshypothese unterstützen. Die Unebenheiten bei der Erzählung bzw. die Stimmungswechsel Pauli sind aus Diktat-Pause erklärbar. Vor allem geben die Verteidiger der Teilungshypothesen kein überzeugenden Grund, warum die vermuteten zwei oder drei Briefe zu 2 Kor zusammengefügt sind. Dahar kann man sagen, daß 2 Kor nicht aus einigen Briefen besteht, sondern eine briefliche Einheit bildet.

Paulus bekommt gute Nachricht von Titus in Mazedonien, der zur Lösung des Problems nach Korinth geschickt worden ist. Nach seinem Bericht kommen die Korinther zu Paulus zurück. Mit Freude (besonders in 1,1-2,13 und 7,5ff) schreibt der Apostel den Brief (2. Kor). Alle Konflickte sind doch nicht beigelegt: Diese sind vor allem im Kap. 10-13 behandelt, wo scharfer Ton herrscht. Daher können die verschiedenen Themen, nämlich Erklärung der Versöhnung einerseits und deren Aufforderung andererseits in 2 Kor nebeneinander kommen.

 

 

[1] G. Bornkamm, Die Vorgeschichte des sogenannten zweiten Korintherbriefes, in: ders., Geschichte und Glaube, 2.Teil, Ges. Aufs. Bd IV, BEvTh 53, 1971, 162-194 (= SHAW PH Jg.1961 Abh. 2) 162 (이하 G. Bornkamm, Vorgeschichte)

[2] H. Windisch, Der zweite Korintherbrief, KEK 6, 91924, 12 (이하 Windisch, KEK 6)의 지적에 의하면 10-13장을 눈물의 편지로 본 최초의 학자는 Chr.E. Weiße (1855)이다

[3] Paraphrasis II. Epistulae ad Corinth. 참고 W.G. Kümmel,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Heidelberg 211983, 251 (이하 W.G. Kümmel, Einleitung). G. Bornkamm, Vorgeschichte, 172 주 68의 지적에 따르면 후에 셈믈러는 이 부분을 화해의 편지로 보았다.

[4] Der Vierkapitelbrief des Paulus an die Korinther, 1870. 이 이론은 20세기 전반부에 영국계 학자들에 의해 선호되었다. 참고 R. Bieringer, Teilungshypothesen zum 2. Korintherbrief. Ein Forschungsüberblick, in; ders./ J. Lambrecht, Studies on 2 Corinthians, BEThL 112, 1994 67-105, 77

[5] 김판임, 고린도후서 (대한기독교서회 창립100주년기념 성서주석 39),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25 (이하 김판임, 기독교서회 주석 39)

[6] Windisch, KEK 6, 19f; A. Halmel, Der Vierkapitelbrief im zweiten Korintherbrief des Apostels Paulus. Ein Beitrag zur Geschichte des Urchristentums, Essen, 1894, 9

[7] J. Weiß, Das Urchristentum, Göttingen, 259, 261 (이하 J. Weiß, Urchristentum)

[8] J. Weiß, Urchristentum, 261, 262f

[9] J. Weiß, Urchristentum, 264

[10] J. Weiß는 (Urchristentum, 246) 이 부분을 음행 등 이방적인 여러 행위들을 금하라고 요구했던 ‘이전 편지’(고전 5:9)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11] J. Weiß, Urchristentum, 264f

[12] J. Weiß, Urchristentum, 265

[13] J. Weiß, Urchristentum, 268

[14] J. Weiß, Urchristentum, 268f; 김판임도 (기독교서회 주석 39, 30) 이렇게 주장한다

[15] 이 동일 사고나 서식은 무엇 보다도 P. Vielhauer, Geschichte der urchristlichen Literatur.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die Apokryphen und die Apostolischen Väter, Berlin u.a. 41985, 150-55가 강조하는 것이다

[16] R. Bultmann, Exegetische Probleme des zweiten Korintherbriefes, in; E. Dinkler (Hg.), Exegetica. Aufsätze zur Erforschung des Neuen Testament, Tübingen 1967 298-322 (= Symlolae Biblicae Upsalienses 9 [1947] 3-31), 307, 주17; R. Bultmann, Der zweite Brief an die Korinther, KEK Sonderbd., 21987, 23, 65 (이하 Bultmann, KEK). 이에 대한 보른캄의 비판은 그의 논문 Vorgeschichte, 177, 주85를 보라

[17] 타 이론과 비교하기 위해 편의상 그는 1-9장을 둘로 나누어 1-7장를 A로, 그리고 8-9장을 B로 칭한다 (Windisch, KEK 6)

[18] C.K. Barrett, A Commentary on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ans, BNTC 1983 (= 1973), 7f

[19] V.P. Furnisch, II Corinthians, AncB 32A, 1985, ix, 37ff

[20] 그는 편지 C에서 앞장과 다른 어조가 지배적이므로, 여기서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음행하는 자들, 모금문제, 방문이 취소된 사유 그리고 유대적 성향을 띈 자들의 성공 등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편지C는 편지AB 이전의 상황과 관계 있다고 본다. 하우스라스에 따르면 편지C는 ‘중간편지’(Zwischenbrief)이다

[21] 그는 C와 A의 유사한 구절들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10:16에 근거하여 AB와 달리 C는 아직 바울이 아시아에 있을 때 기록한 것으로, 그리고 C는 반항적인 소수집단에, 이와달리 A는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다수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지적함으로서 C가 A보다 먼저 기록된 것으로 본다. 이 입장은 Plummer에 의해 계승된다

[22] Windisch, KEK 6, 12f

[23] Windisch, KEK 6, 13

[24] Windisch, KEK 6, 14

[25] Windisch, KEK 6, 14f

[26] Windisch, KEK 6, 15f

[27] Windisch, KEK 6, 16

[28] Windisch, KEK 6, 16f

[29] Windisch, KEK 6, 17f. 405

[30] 이 방문은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첫 방문과 고후 13:1; 12:14에 세 번째 가겠다는 예고를 고려할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31] G. Bornkamm, Vorgeschichte, 164

[32] G. Bornkamm, Vorgeschichte, 165

[33] G. Bornkamm, Vorgeschichte, 172은 8장과 9장을 서로 다른 편지라고 본다

[34] G. Bornkamm, Vorgeschichte, 172. 이에 반해 김판임은 (기독교서회 주석 39, 30) 이 (눈물의) 편지는 분실되었다고 본다

[35] 이 단절은 일찍이 J. Weiß, Urchristentum, 265, 272; Windisch, KEK 6, 19f, 224f 등에 의해 지적되었다

[36] 고후 10-13장이 독립적인 단일편지이거나 그 일부분이라는 소위 ‘4장-이론(Vier-Kapitel-Hypothese)’은 영어권에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그 주장자들 명단은 G. Bornkamm, Vorgeschichte, 173 주69 참조)

[37] G. Bornkamm, Vorgeschichte, 177

[38] G. Bornkamm, Vorgeschichte, 178

[39] G. Bornkamm, Vorgeschichte, 172

[40] N. Hyldahl, Die Frage nach der literarischen Einheit des Zweiten Korintherriefes, ZNW 64 (1973) 289-306, 289ff (이하 N. Hyldahl, Frage)

[41] N. Hyldahl, Frage, 297

[42] N. Hyldahl, Frage, 298f

[43] N. Hyldahl, Frage, 303

[44] N. Hyldahl, Frage, 304

[45] Windisch, KEK 6, 414

[46] N. Hyldahl, Frage, 304

[47] N. Hyldahl, Frage, 300f

[48] N. Hyldahl, Frage, 305f

[49] N. Hyldahl, Frage, 306. 힐달에 대한 비판으로 G. Lüdemann, Paulus, der Heidenapostel  Bd.I: Studien zur Chronologie, FRLANT 123, 1980, 128 주165를 참고

[50] 예를 들면 1-7장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와의 싸움이 끝난 것을 기뻐하며 불의한 자들에 대해 너무 심하게 치리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2:7f) 있는 반면, 10-13장에서는 어떤 특정한 자들 (10:2,11), 기회를 찾는 자들 (11:12), 거짓 사도 (11:13), 사단의 일군(11:15)에 대해 공격하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그들이 바울이 원하는 바 대로가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되어 있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으며 (12:20), 그들을 용서치 아니하리라고 위협하고 있으며 (13:2), 고린도인들과 함께 있을 때 엄하게 대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13:10). 2:13의 내용은 7:5에서 계속된다. 모금문제를 다루는 8장과 9장은 원래 함께 속해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51] W.G. Kümmel, Einleitung, 251

[52] W.G. Kümmel, Einleitung, 252

[53] W.G. Kümmel, Einleitung, 252

[54] W.G. Kümmel, Einleitung, 252

[55] 만약 1-9장보다 10장 이하가 나중에 쓰여졌다면, 이 같은 새로운 상황인식이 필수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1-9장과 10-13장은 동시에 쓰여졌다는 것이다. 큄멜은 또한 10-13장이 중간편지라는 주장이나 10-13장이 나중에 쓰여진 편지라고 할 때, 9장의 마지막 부분이나 새 편지 10장의 초두가 사라진 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 설명이 마땅치 않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도 바울이 처음 부분(1-9장)을 쓴 이후 얼마지나,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날카로운 표현을 사용하여, 무엇보다도 전반부에서 다루지 못했던 미래의 여행계획을 언급하면서, 끝맺는 부분을 더했을 수는 있다고 인정한다 (W.G. Kümmel, Einleitung, 252f).

[56] 2:13이 직접 7:5과 연결되다는 견해는, 전자에서는 단수와 pneu/ma가, 후자에서는 복수와 sa,rx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W.G. Kümmel, Einleitung, 253)

[57] 큄멜은 고린도후서의 통일성을 주장하는데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6:14-7:1라고 본다. 이 단락 때문에 명백히 6:13에서 7:2으로 이어지는 문맥이 끊기고 있음을 인정한다 (W.G. Kümmel, Einleitung, 253). 그러나 그는 6:14이하가 비바울적인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음을 상기시키면서 (W.G. Kümmel, Einleitung, 249f) 고린도후서가 이곳에서 현재의 텍스트 형태를 취하게 된 이유를 (불충분함을 전제로)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울은 6:3-13에서 주저하면서 원래의 편지 내용으로 되돌아 가고 있다. 반면 6:1장에서 시작한 속죄할 것에 대한 권면을 6:14-7:1에서 계속 이어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바울의 단편이 이차적으로 추가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W.G. Kümmel, Einleitung, 253f)

[58] W.G. Kümmel, Einleitung, 226, 254

[59] W.G. Kümmel, Einleitung, 254

[60] J.L. Price, Aspects of Paul’s Theology and Their Bearing on Literary Problems of Second Corinthians, in; B.L. Daniels/ M.J. Suggs (ed.), Studies in the History and Text of the New Testament (Studies and Documents, 29), Grand Rapids MI, 1967 95-106 (이하 J.L. Price, Aspects)

[61] J.L. Price, Aspects, 96

[62] J.L. Price, Aspects, 97

[63] J.L. Price, Aspects, 99f

[64] J.L. Price, Aspects, 102

[65] J.L. Price, Aspects, 103f

[66] 예를 들면 J. Weiß, Urchristentum, 262f; G. Bornkamm, Vorgeschichte, 173f; V.P. Furnisch, II Corinthians, AncB 32A, 1985 31 (이하 Furnisch, AncB 32A)

[67] J. Weiß, Urchristentum, 265

[68] G. Bornkamm, Vorgeschichte, 184f

[69] R. Bieringer, Plädoyer für die Einheit des 2. Korintherbriefes. Literarkritische und inhaltliche Argumente, in; ders./ J. Lambrecht., Studies on 2 Corinthians, BEThL 112, 1994 131-79 133도 이를 지적한다 (이하 R. Bieringer, Plädoyer)

[70] Furnisch, AncB 32A, 393. 그는 같은 곳에서 7:5이 2:12f과 연결된다고 보기 어려운 그 외의 여러 이유들도 제시한다

[71] 참고 R. Bieringer, Plädoyer, 134. 그는 고후 1:16; 고전 16:5에도 마게도니아라는 말과 동사 e;rcomai가 두 번씩 나오고 있긴 하지만, 두 번째 동사가 gen. abs.로서 앞의 동사를 받고 있으며, 둘 간에 수(數)의 변화(단수 →복수)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72] R. Bieringer, Plädoyer, 134f에 따르면 2:14ff과 그 앞 부분과의 긴밀한 연관성은, 14절의 “각처에서”가 앞(12f절)에서 언급한 장소들을 받는 표현이라는 점으로 증명된다. 7:5에서 “우리가 마게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도”라는 표현은 2:14 이하에서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주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2:14절 이하에서 주어가 복수로 되는 것은 7:5에서 복수로 변하는 경우보다 (물론 7:2-4 내에서도 주어가 복수에서 단수로 바뀌고 있으므로 이 수의 변화가 결정적인 논증은 되지 못하지만)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즉, 전자에서는 개인적인 보고에서 신학적인 성찰로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7:4과 그 이하 본문과의 연관은 여러가지로 증명이 된다: qli/yij 4절 - qli,bw 5절, cara, 4절 – carh/nai 7절, cai,rw 9절 등, para,klhsij 4절, - 6,7절 등

[73] 참고 J. Weiß, Urchristentum, 262; W.G. Kümmel, Einleitung, 255; J.L. Price, Aspects, 100

[74] Windisch, KEK, 91924, 14ff. 보른캄(Vorgeschichte, 174f)은 이에 대해 화해의 편지를 쓸 당시 대적자였던 유랑사도들(Wanderspostel)은 고린도를 떠났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보른캄의 변호는 가설에 가설을 더한, 지나치게 사변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75] 바울과 고린도인들은 종말에 서로가 자랑거리가 된다 (1:14), 이 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1:21),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하기 위해서이다 (1:24). 이러한 관계성에 주목한 이는 누구보다도 R. Bieringer, Plädoyer, 157ff이다

[76] 예를 들면 바울은 고린도인들을 그리스도에게 혼인 시킨 중매인(11:2)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외에도 하나님도 아시는 바울의 그들을 향한 사랑 (11:11), 자신을 인정해 달라는 고린도인을 향한 바울의 호소 (12:11), 바울과 그들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비유로 묘사 (12:14f), 바울은 그들을 파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우려 함 (10:8; 13:10), 그들을 높이기 위해 바울은 자신을 낮춤 (11:7), 바울이 약할 때 그들은 강하다(13:9)는 모티브는 모두 이 관계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77] A.M.G. Stephenson, A Defence of the Integrity of 2 Corinthians, in; K. Aland, The Authouship and Integrity of the New Testament (TCSPK 4), London 1965 82-97, 92; W.H.L. Bates, The Integrity of II Corinthans, NTS 12 (1965-66) 56-69

[78] W.G. Kümmel, Einleitung, 226

[79] 이에 대한 이유로 H. Lietzmann, An die Korinther I.II, HNT 9, 51969, 129은 바울이 서술을 중단했다가 다른 기분으로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W.G. Kümmel, Einleitung, 254도 구술 중 중단을 이유로 든다

[80] 바울의 ‘중간방문’에 대해 찬성하는 몇몇 학자들을 들면 다음과 같다: J. Weiß, Urchristentum, 259, 261; Ch. Wolff, Der zweite Brief des Paulus an die Korinther, ThHK 8, 1989, 3 (이하 Wolff, ThHK 8); F. Lang, Die Briefe an die Korinther, NTD 7, 21994, 7f (이하 Lang, NTD 7); Bultmann, KEK, 22,50; R. Bieringer, Plädoyer, 171

[81]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모금 문제가 아직 완결되지 못해 후서에서 다시 거론된다는 점에서 이 중간 방문은 고전 16:5에서 예고했던 방문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참고 Wolff, ThHK 8,3)

[82] 이점은 특히 N. Hyldahl이 강조한다 (본 논문 2.A 부분 참조)

[83] Lang, NTD 7, 9

[84] 10-13장과 앞 부분과의 언어상의 긴밀한 관련성에 대해서는 R. Bieringer, Plädoyer, 137f을 참고하라. 그에 따르면 10:18의 do,kimoj와 9:13의 dia. th/j dokimh/j th/j diakoni,aj tau,thj 간의 연관성, 10:1의 parakale,w는 5:20; 6:1에서도 사용되며, 10:1-2의 de,omai는 5:20에서도 등장한다. 이 외에도 R. Bieringer는 여러 예를 제시하고 있다

[85] 참고 J. Weiß, Urchristentum, 26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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