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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과 귀신의 음성을 분별하는 방법(3;1,6)

[일시] 20190609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67장 영광의 왕께, 182장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찬186장 영화로신 주 성령

PW: 믿음, MIW: 성령음성

T.S: 믿음이란 성령의 음성이 곧 예수님의 음성임을 깨닫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오늘날에도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간혹 신앙상담을 받아보면 성령께서 이렇게 자기에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요? 모든 판단기준은 성경이면 됩니다. 과연 성경에 그러한 사례가 있는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구약시대에 과연 성령께서 어떤 사람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을까요? 있을 것 같지만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한 것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선지자가 말했던 것을 가지고, 성령께서 말씀하셨다고 인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의 직접적인 음성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혹시 구약시대에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음성이었을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음성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직접 그 음성을 들었고, 노아나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도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으로서 그분의 음성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전날에 제자들에게 가면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승천하신 예수께서 50일째 되는 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성전삼고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과연 들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만약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면, 들려오는 그 음성이 성령의 음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만약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이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내가 분별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귀신의 음성을 성령의 음성으로 알고 따라가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안에 내면의 음성이 과연 성령의 음성인지 귀신의 음성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면의 음성을 그것이 귀신의 음성인지 성령의 음성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신 예수께서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으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실제로 말씀은 예수께서 하고 계시는데, 왜 예수께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차라리, “성도들아 내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예수께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면서 자신의 음성을 성령의 음성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대체 누구신 것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성령님입니까? 우리는 누구의 음성을 들어야 하며 또한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2)청중적 접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씩 자신은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묻고 싶은 질문이 있죠? 첫째, 성령의 음성을 어떻게 듣게 되신 것입니까? 둘째, 그것이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구별하고 있습니까? 셋째, 성령의 음성을 매번 듣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95~6년경 사도요한이 약 100세가 되었을 때에,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 때에 종교사범으로 밧모섬에 귀양갔다가 그 섬에서 환상 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께서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중에 5번째교회인 사데교회에게 써보내라고 하신 말씀의 처음과 끝 부분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주님께서는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당신을 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3:1a[직역] 그리고 너는 사데들 안에 있는 교회의 사자에게 [단번에]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들과 일곱별들을 가지고 있는 이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3:6[직역]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단번에] 들어라. 그 영이 교회들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요한계시록 1장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면, 그분은 그분의 오른손에 일곱 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1:16). 그러니 지금 사데들 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는 분명히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경고의 말씀을 던지시는데, 그때에는 내 말을 들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 영 곧 성령이 교회들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들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왜 처음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면서 마지막에 가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왜 교회 가운데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음성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성도들은 예수님의 음성도 들어야 하겠지만 오늘날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신 성령님의 음성도 들어야 하는가보다 하고 잘못 판단하기 쉽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성자 예수님의 음성도 들으라고 하고 성령 하나님의 음성도 들으라고 하니, 두 음성이 충돌되면 누구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렇지만 우리는 믿는 자들은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그 말씀을 그대로 받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누구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까? 사데들 안에 있는 교회에게 처음에 말씀하는 분이 누구였습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들으라고 했으니,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면 됩니까? “, 예수님의 음성이 곧 성령님의 음성이로구나하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음성이 따로 있고 성령님의 음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이 곧 성령님의 음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성령은 누구신가?

그렇다면, 이제 성령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성령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성령님은 사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성령님은 이미 창조사역에 동참하셨고, 구약의 여러 인물들 머리 위에 내려오셔서, 그들로 하여금 지도력을 발휘하게 한다든지, 능력이 나타나게 한다든지, 예언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선포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고로, 구약시대에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이 땅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1:2) 혹은 여호와의 영”(삼상10:6)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 곧 너희 속에 보내어 그곳에서 활동하실 진리의 영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죽고 부활하신 뒤 40일 있다가 승천하셨으며, 곧이어 10일 후에 보혜사 성령을 진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성령은 이전과는 다른 존재방식을 취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의 영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A.D.95~96년경에 기록된 결론의 책 곧 요한계시록에는 성령에 대해서 좀 다른 표현으로 성령님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의하면, 성령은 4가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첫째,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1:4)”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등불들(4:5)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런데 그분은 다른 곳이 아니라 이 온 땅(지구) 안으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5:6)”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님은 저 멀리에 하늘보좌에 앉아계시는 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안으로 파송되어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넷째, 그분은 어린양의 일곱 눈들(5:6)”이라고도 나옵니다. 그것은 이 눈들은 온 땅 안으로 보내심을 받은 채 있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에 대한 몇 가지 특별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곱이라는 숫자입니다. 일곱 등불, 일곱 영들, 일곱 눈들에 전부 다 “7”이라는 숫자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7”이라는 숫자는 3+4로서 이 땅의 완전수를 가리키며, “12”라는 숫자는 3*4로서, 하늘의 완전수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늘에 계신 성령이 “12영들이라고 불리지 않고, “일곱영들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순전히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를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둘째, 그분의 명칭에 어떤 수식어가 달라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등불, 하나님의 입곱 영들, 어린양의 일곱 눈들”. 이러한 명칭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분은 하나님과 어린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3:1)에 의하면, 하나님의 일곱영들을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눈들도 슥4:10에 의하면, “여호와의 일곱 눈들이라고 나오는 것을 보니, 결국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면서 동시에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있다가 설명하겠지만 성령님의 음성과 귀신의 음성을 구분하는 데에 매주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 성령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시는가?

그렇다면, 승천하신후 적어도 60년이 지난 상태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음성을 성령의 음성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이는 오순절이후에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실 수 있으며, 성령님께서도 말씀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해, 성령이 성도들 속에 들어가셨을 때부터 성령님께서도 말씀하시는 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령님께서 성도들 속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그분이 어떤 음성으로 말씀하셨다는 기록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말씀하시게 된 때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믿는 자들 속에 내주시실 때부터입니다. 그것도 신약성경을 다 찾아보면, 그분이 말씀하시고 있는 곳은 단지 3번 뿐입니다(13:2, 20:23, 21:11). 그것도 사도행전에만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2번을 말씀하신다고 나오지기는 하지만(14:13, 22:16), 원문에 보면, 성령이 아니라 그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기에, 그것이 성령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부터는 성령께서도 얼마든지 성도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떤 방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래서 성령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장면이 기록된 말씀들 3가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13:2에 나와있는 말씀입니다.

13:1-2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나를 위하여]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것은 조금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둘째, 20:23에 나와있는 말씀입니다.

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것은 여러 도시에 있던 누군가가 사도바울에게 그가 앞으로 당할 일에 대해 예언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21:11에 나온 말씀입니다.

21:10-11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이것도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사도바울에게 예언의 말씀을 전달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3:2의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성령님께서 단독적으로 하신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이 말씀도 사실 누가 예언한 내용을 전달하는 상황같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개역성경에서는 생략되었지만 나를 위하여라는 말씀이 원문에는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방언통역이나 예언을 받아보셨습니까? 하도 가짜가 많아 거짓방언통역과 거짓예언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가장 건전하다고 일컬어지는 사역자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요한계시록의 화자용법과 방언통역과 예언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방언통역이라 함은 남이 하는 방언을 알아듣는 은사요, “예언이라 함은 내가 하는 방언을 알아듣는 은사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실 방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20%정도는 정말 자신의 영이 여호와 하나님께 비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약 80%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는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음성도 아니요 성령님의 음성도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곧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화자용법과 동일합니다. 즉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에 기록된 음성은 전부가 다 아버지의 음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이었던 것과 동일합니다.

결국 우리는 13:2에 나와있는 성령의 음성의 정체를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말씀하신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 본문에서 사데들 안에 있는 교회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지만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 성령의 음성과 귀신의 음성을 분별하는 방법

그렇다면, 문제는 내게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인지 귀신의 음성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분별하면 됩니다. 그것의 핵심은 오늘 본문 말씀에 따라, 성령의 음성이 성령자신의 음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16장에서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16:13~14).

16:13-14 그러나 진리의 []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그분은 스스로 말을 지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말하며,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예수님의 것만을 알려주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3:1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눈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온 세상을 감찰하고 있는 일곱 영이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어떤 음성이 성령의 음성인지 귀신의 음성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첫째, 이미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100% 일치하지 않는 음성은 귀신의 음성이라고 보면 됩니다. 성령의 음성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성령으로 그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누가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 천국에 계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상에 있는 교회에서는 그것을 성령의 음성으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3:20).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고로, 들은 음성이 이미 4복음서에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라도 틀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음성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둘째, 혹시 음성을 닫는 자가 예언의 은사나 방언통역의 은사를 제대로 받은 은사자가 아니라면, 그가 듣고 있다는 음성은 귀신의 음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 사실 오순절이후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있는 장면이 몇 번 나옵니다. 성령께서도 얼마든지 말씀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음성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에 의해서 알아듣는 것이지 그냥 성령의 음성이 귀에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약 자기의 내면에서 어떤 음성이 들린다면 틀림없이 귀신의 음성입니다.

셋째, 지금 내 안에서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하라고 뭔가를 명령하거나 지시하고 있다면 그것은 100% 귀신의 음성입니다. 성령은 결코 무당의 영처럼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까지 다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매우 인격적인 영이므로 우리가 선택한 몫까지 다 선택해서 미리 알려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해 성령께서 명령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를 찾아가 물어봐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들려주시는 것이지, 내가 물어보아서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것이 아닙ㅁ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음성을 들었다면 그것은 100% 귀신의 음성입니다. 방언통역이나 예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성령께서는 우리가 장차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여 줄 뿐, 지금 집을 사야하는지, 지금 선교사로 떠나야 하는 것까지 지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음성은 곧 예수님의 음성이요, 점쟁이의 음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고로, 우리가 내면에서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면 99%가 가짜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성령께서도 얼마든지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령의 음성은 성령께서 스스로 말씀하시는 음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영적 법칙

고로, 믿음이란 성령의 음성이 곧 예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무당처럼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것을 강제로 시키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기존에 말씀하셨던 구약의 율법말씀과 신약의 사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들려주신 말씀을 다시 깨닫게 해주시고 그 말씀들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최선의 길을 선택하도록 깨우쳐 주실 뿐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그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들려주신 음성이라고 알아들으면 됩니다. 가끔씩 내 영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 방언통역을 확인해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것도 회개하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고자 애쓰고 있다면, 굳이 방언통역을 해보지 않아도 지금 자신이 드리고 있는 기도가 곧 영의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방언통역을 해보아도 지금 당장 내 문제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절대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사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령의 음성은 예언의 은사로 알아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언의 은사를 받지도 않았는데, 내면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온다면 그것은 귀신의 음성입니다.

사실 방언통역을 해보면, 20~30%만이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이고, 70~80%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위로나 칭찬하는 말씀이요 또 하나는 책망이나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성령께서 기도하는 자에게 방언통역과 예언을 은사를 주시는 것은 맞지만, 직접적으로 영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고로,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고 있지 않는 자가 방언통역이나 예언을 하게 되면 거의 귀신에게 속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음성을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이미 기록된 성경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삶의 원리들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책망하실 때에 즉시즉시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도하면서 나가면 성령의 음성을 직접 듣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고로, 굳이 무슨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만약 어느날 내 안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온다면 즉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꾸짖어 그 존재를 쫓아버리기 바랍니다. 그 존재는 틀림없이 귀신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성령을 가장하여 다소곳이 내게 말을 붙이나 나중에는 나에게 명령을 하고, 령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게 됩니다. 그것이 성령이 아니라 귀신이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축복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도 얼마든지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음성은 곧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고로, 예수님의 성품과 가르침에 맞지 않는 말이 있거나, 100% 일치하지 않는 예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귀신의 음성이라고 판단해도 좋습니다. 그때에는 그것을 거부하십시오. 그것을 내게 주입하려는 귀신을 단호하게 꾸짖으십시. 그러면 하늘의 평강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무엇이 성령의 음성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령의 음성이 곧 예수님의 음성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령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100% 일치하지 않는 음성은 귀신의 음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는 자가 은사받은 자가 아니라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내 안에서 시시콜콜 명령하고 지시하는 자가 있다면 그 놈은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어떤 음성이든 분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기록된 말씀에 집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만 듣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속이는 귀신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만 따라가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성령을 가장하여 속이려하는 악한 영들은 묶임을 받고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속이는 귀신아! 너의 정체가 드러났으니 묶임을 받고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일지어다. 예수님만 따라갈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구약시대나 예수님 시대에는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었구나.

2. 지상에서의 성령의 음성은 천상에서의 예수님의 음성이로구나.

3. 성령님은 여호와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로구나.

4. 성령의 음성은 예언은사자를 통해서 들려지는구나.

5.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음성은 귀신의 음성이로구나.

6. 내 안에서 시시콜콜 통제하고 내게 명령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귀신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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