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창세기강해(78)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아브라함(창13:1~13) [일시] 2021년 04월 25일(주일) 오전9시, 11시 [찬송] 찬 70장 피난처 있으니, 찬83장 나의 맘에 근심구름, 복음성가 하늘에 곡조 울리니 PW: 믿음, MIW: 실패 T.S: 실패할 때에 첫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하나님만이 복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치고 예수님 이외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600년동안 주님과 동행했던 노아도 실수를 저질렀으며, 모세도 다윗도 실수했으며, 신약에 들어와서 12사도의 대표였던 베드로도 실수를 저질렀고,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던 바울마저도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실수한 바로 그 다음입니다. 실수를 한 이후에 어떻게 반응을 하였느냐에 따라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일로 인해 더 못한 사람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코 영적인 진보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사람은 더 이상 쓰지 않으십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스라엘 민족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입니다.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왕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을 이어 왕이 되었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으며, 앞으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 번 다시 동일한 실수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무엇이 왕위마저도 빼앗아가게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게 될 말씀에 등장하는 인물도 실수를 저지렀던 구약의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너무나 쓰라린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참으로 남자로서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 하나님의 절대적인 개입이 없었다면 그는 다시 자기가 살던 땅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권력이란 매우 무서운 힘으로 작용했기에 말 한 마디면 감쪽같이 사람이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깊이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실수한 후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은 대체 무엇부터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그가 진정 실수로부터 배웠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아브라함이 실수한 후에 처음에 그가 하나님을 만났던 제단으로 나아가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롯과 마찰이 일어나자 즉시 앞서 배운 공과대로 실천하여 문제를 잘 처리하고 복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후, 왜 애굽 근처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그는 머나먼 저 북쪽의 벧엘까지 약 400km 가량을 올라갔던 것일까요? 그리고 벧엘에서 조카 롯과 마찰이 생겼을 때에 왜 아브라함은 먼저 조카 롯에게 자신이 거주할 땅을 선택하라고 제시했던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B.C.2088년경 아브라함이 나이 78세 정도 되었을 때에 애굽땅에서 돌아온 그가 벧엘로 올라갔을 때의 일입니다. 이때 조카 롯의 나이는 57세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애굽에서 나온 후에 곧장 네게브를 지나 벧엘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그곳에는 그가 가나안 땅에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에 만들어 두었던 제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고난 후 곧이어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목자들과 자신의 조카 롯의 목자들이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아마도 목초지를 선점하는 일과 양떼들에게 물을 먹일 때에 먼저 먹이겠다고 싸운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다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13: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갈라져서 따로 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연장자라고 자기가 결정한 사항을 그냥 강요하려고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나이 어린 조카라도 경쟁관계에 있을 때에는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먼저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먼저 정한 뒤에 조카로 하여금 다른 곳으로 가게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먼저 목초지가 있고 양떼에 물을 풍성히 먹일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명령하지 결코 상의를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아 가진 우선권을 먼저 사용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양보와 희생의 순간에 자기를 희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조카라지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에게 명령할 권한이 있을 때에는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자기가 결정해놓고 통보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조카 롯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양보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어서 이러한 넉넉하고 후한 양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인가요? 이전에 애굽 땅에 들어갔을 때에는 자기 목숨 부지하려고 자기 마누라를 빼앗아길 때에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아브라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제 아브라함이 달라졌습니다. 실수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실수하면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아브라함이 실수 후에 맨 처음 한 일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이번 일이 있기 직전, 차마 입으로 꺼내어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기근을 피해 애굽 땅으로 들어가서 경험한 일이었는데, 아브라함은 거기서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자기의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아내를 바로왕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아브라함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바로왕이 그에게 보내준 결혼답례품 곧 양떼와 소떼, 남종들과 여종들, 암수나귀들과 낙타들만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것을 받고 있는 아브라함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사랑하는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내를 잃어버렸는데, 소떼와 양떼가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남종들과 여종들이 천 명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말 자신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들어간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에 이미 온 상태이고 아내마저 빼앗겨버린 마당에 아브라함은 정말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손대는 자는 가만 두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바로가 아직 사래를 정식으로 자기 부인으로 맞이하기 직전, 바로의 집에 재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깜짝 놀란 바로는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이유는 단 하나 사래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려고한 것뿐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사래를 자기 부인으로 맞이하는 일은 결코 신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닏. 그리 즉시 아브라함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실은 사래가 아브라함의 부인이라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바로는 아브라함을 꾸짖으면서 빨리 그 아내를 데려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 빨리 애굽땅을 떠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되찾았을 수 있었고, 이미 바로가 주었던 양떼와 소떼, 나귀들과 낙타들 그리고 노비들까지 데리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니다.
그런데 그때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이 했던 행동을 보십시오. 애굽 국경에 머물러 서성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기근이 시작되어 풀을 얻기 힘든 상태였어도, 자기의 양떼들을 이끌도 북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네게브’사막을 지나 ‘헤브론’과 ‘예루살렘’을 지나서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나안으로 들어와 제단을 쌓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리로 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거기에서 첫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아내에게 몹쓸 일을 시켰다는 자책감에서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소홀히 했던 것을 회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에 머물지 않고 그 땅을 떠나 함의 자손으로 땅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후손은 자신의 아내 사래가 낳아줄 것인데, 그만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사래를 팔아넘긴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빌리 위해서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벧엘로 가서 하나님께서 회개하려고 그리로 간 것입니다. 사실 구약시대에 있어서 “회개”라는 개념은 ‘슈브’라는 것인데, 이는 “돌이키다. 돌아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애굽으로 갔던 방향을 돌이켜 다시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이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도 올렸을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감으로 인하여, 부인도 빼앗기고, 있던 양떼도 빼앗기고, 목숨까지도 빼앗길 수 있는 상태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들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손실을 입지 않은 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애굽으로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소떼와 양떼와 은금패물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눈에서는 회한과 감사의 마음 때문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때 아브라함은 진정 회개를 했던 것일까요? 누구나 죄는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후에 회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만약 자기가 지은 죄들을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그 뒤에 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회개하고 난 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때마침 어떤 일이 터졌습니다. 나이가 약 21년도 차이나는 그래서 형님동생처럼 지냈으며,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냈던 조카 롯과 마찰이 생긴 것입니다. 왜냐하면 롯의 목자들과 자신의 목자들끼리 싸움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나. 조카 롯과 분쟁이 일어나자 아브라함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 이유는 조카의 양떼와 자신의 양떼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순번을 기다리다가 그만 싸움이 붙은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그 땅에 기근이 든 상태이므로, 양떼들에게 뜯어먹일 풀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로 간에 장막을 칠 공간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창13:5). 그래서 참고 참고 참다가 드디어 폭발했던 것입니다. 성경원문을 살펴보니, 그 땅은 그들이 함께 살아가기에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13:6[직역] 그 땅이 그들이 함께 살기에 견디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재산이 많아서 함께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 뿐이 아니었습니다. 조카와 자신이 사는 곳에 원주민들도 살고 있었는데 그들도 자기들이 거기에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벧엘 근처에는 본토백이인 “가나안 사람들”도 있었고 “브리스 사람들”까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창13:7).
그러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창13:8-9[직역]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하였다. “자, 우리는 한 형제들의 사람들이다. 나나 너나, 내 목자들이나 네 목자들이나 서로 다툼이 있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자, 너는 나에게서 갈라서 따로 나가려무나. 만일 네가 왼쪽이면 나는 오른쪽을 선택할 것이다. 만일 네가 오른쪽이면 나는 왼쪽을 선택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자신이 거주할 장소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브라함에게는 연장자로서 거주지 선택에 관한 우선권이 있었으며, 더욱이 가문의 가장으로서의 지위도 있었기에 얼마든지 자신의 결정을 그가 따르도록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조카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실수로부터 배운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붙여준 사람은 결코 힘들게 해서는 아니 되고 그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자신의 아내를 바로왕에게 빼앗기면서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주마등처럼 쓰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조카는 물도 많고 목초지도 푸르르게 보이는 요단의 온 땅을 선택하여 남쪽 즉 아래쪽을 향하여 떠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러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그에게 땅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말씀하시고 이루실 하나님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전에 그는 땅이 더 중요했습니다.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 땅보다는 사시사철 물이 흘러 늘 푸르렀던 애굽땅 소안들판이 더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로 들어가 보았지만 결국 그는 약속의 자손을 낳아줄 자신의 아내를 잃을 뻔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지 않았다면 그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리 메마른 광야라 할지라도 거기에 소낙비가 내려 풀이 돋아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섣부른 판단으로 인하여 더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곳이 목초지가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공과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다. 롯과의 분쟁 해결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축복의 말씀을 하셨는가?
그러자 그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아브라함이 받을 복이 무엇인지를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가르쳐주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영원히 거할 땅에 관한 말씀이었고, 그 땅을 기업으로 물려받을 자손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들었던 축복의 말씀은 아직 선명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선명해졌습니다.
자, 그동안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말씀과 이번에 주셨던 말씀을 서로 비교해보겠습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씨)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13:14-16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네가 보이는(보고 있는)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씨)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그리고] 내가 네 자손(씨)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있다면) 네 자손도 세리라(셀 수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첫 번째 약속에는 아직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떤 땅에 관한 약속 뿐입니다. 네가 그 땅으로 가면 저주에서 벗어나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약속에는 이제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가리키며, 그 땅을 아직 자식이 없지만 아브라함의 자식에게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자식을 못낳는 아브라함을 그 저주에서 풀어준다는 약속이며, 자신의 후손이 그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또한 그 자식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주신 세 번째 말씀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땅은 보다 더 선명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그 땅을 아브라함 자신에게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되 그와 그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자식이 얼마나 되고 그의 후손도 얼마나 번성하게 될른지를 잘 모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게 주실 것이라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번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로 약속했던 복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바라볼 수 있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을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하신 약속이었고, 현재로서는 자식 하나 낳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의 씨가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해 주시겠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창13:14~16).
나중에 또다시 배우겠지만 아브라함이 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려는 땅의 범위까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창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씨)에게 주노니
그렇습니다. 실수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그때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믿고 따라가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우리에게 주실 복을 구체적으로 또렷하게 가르쳐주십니다. 두리뭉실한 복에서 받을 복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고로 믿음이란 실패하더라도 빨리 돌이켜 처음으로 신앙했던 바로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하나님만이 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말씀만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후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만 잠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그때부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이동하는 곳마다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즉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음 숙영지로 이동할 때에 무엇부터 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때부터 그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더욱이 자기에게 한 번 맡겨진 사람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졌습니다. 오늘 오후에 살펴보겠지만 요단들을 선택한 롯이 북방왕 4개 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훈련받은 318명의 종들을 데리고 쳐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요단강동편 지방에 있는 거인 족속을 다 물리치고 파죽지세로 내려와 남방에 있는 가나안 5대 연합군을 대파했던 북방의 강한 4개의 연합군을 크게 격파하였고, 그들로부터 그의 조카 롯과 모든 것들을 되찾아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로부터 가나안인들에게서까지 아브라함의 이름이 크게 되었습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구약에서 메시야의 조상 두 사람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우리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런데 둘의 아주 비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실패를 통해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장차 오실 약속의 자손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의 인생에도 커다란 두 번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부하의 아내를 빼앗은 일이요, 또 하나는 통일왕국의 군사력을 측량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시킨 일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그 실수로 인해 크게 깨달음을 얻었기에, 늘그막에 신하들이 그의 품에 넣어준 동녀와도 결코 동침하지 않았으며, 인구조사 후에는 철저한 회개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던 바로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으며, 그 자리에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세우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그러니 우리도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복을 더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 복을 받게 해주실 것입니다. 혹 지금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십니까? 그러면 첫 신앙으로 돌이키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셔서 회개함으로 새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최고의 복인 줄 알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현란한 것을 따라가지 말고,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축복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실수를 통해 배운 사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으로 먼저 나아가 회개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실수를 통해 배운 사람은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실수를 통해 배운 사람은 다음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찾아오게 되면 목숨 걸고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믿음이 조상 아브라함도 실수했지만 그는 실수를 통해서 배웠으며 그것을 토대로 더 많이 믿음의 일을 감당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실수를 통해 배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실수했어도 결코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실수했으면 즉시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내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실수를 했으면서도 배우지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회개를 방해하고 책임을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을 잊지 말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이어도 실수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2. 아브라함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후 벧엘로 올라갔고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 드린 뒤 새로운 삶을 시작했구나.
3. 진짜로 회개했는지는 다음에 발생하는 일을 통해 그것이 확인이 되는구나.
4. 회개하고 순종하면 더욱 더 선명하게 복이 임하는구나.
5.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통해 배운 자와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오는 자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시는구나.
6. 하나님만이 복이라는 것을 인간은 비로소 실패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