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곧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11:1~11)

[일시] 20220401(주일) 오전9, 11

[찬송] 32장 만유의 주재,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215장 내 죄 속해 주신 주께

PW: 믿음, MIW:

T.S: 다시 오셔서 우리를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실 주님을 준비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16을 읽어보면, 어느날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로부터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하늘의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 시대(카이로스)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책망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를 어느 정도 분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종교지도자들로서 최소한 모세오경쯤은 거의 다 암송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그들일지라도 이땅에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잘 몰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인류를 구원하신 오신 메시야를 알아볼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이 시대의 역사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계시는지를 어느 정도는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으로서 지금의 시대를 분별한다면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요? 우리는 지난 20202월부터 코로나와 같은 전대미문의 전세계적 전염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도 한 때 흑사병이라는 페스트균이 전 유럽을 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347~1,351년까지 약 4년동안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흑사병 때문에 당시 유럽 인구 가운데 7500만명 ~2억명 정도가 죽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럽 인구의 최소 30%~50%가 죽은 것입니다. 특히 지역에 따라서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남부 등에서 많이 죽었는데, 그 지역은 주민의 70~80% 이상이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대체로 유럽 인구의 1/3에서 절반 정도가 흑사병으로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학이 이토록 발달된 21세기에 이와같은 또다른 전염병의 창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올 해 224일부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벌써 47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 오후찬양예배를 통해 좀 더 깊이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서 38~39장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이요, 요한계시록 20:7~10절에 또 등장하고 있는 곡과 마곡의 전쟁의 서곡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전쟁이 더욱 더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곡과 마곡의 전쟁은 천년왕국 후에 있을 인류 최후의 전쟁이라고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염병이 창궐과 그리고 곡과 마곡의 전쟁을 연상케 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침공은 대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주님 오실 때가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코로나의 사태정부에 의해서 개인의 자유가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고 경제활동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연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성도의 예배가 통제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허가받은 인원만 예배드리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21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코로나 사태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경제를 가지고 인간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에 전조를 보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며, 또한 예배생활을 제대로 감당하게 못하게 국가가 단속하는 사태는 결국 교회의 성도가 목숨 걸고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결국 예배도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누가 진정 알곡이며 누가 진정 쭉정이 신앙을 가진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침공사태는 마지막 시기에 있을 인류 최후의 영적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의 예시라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악의 세력이 연합하여 결국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굳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지금은 넷째 인이 떼어지고 다섯 째인이 떼어지기 직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무저갱에 갇혀 있던 사탄마귀가 잠시 놓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놈이 올라오면 그때부터는 환난의 시대입니다. 그러면 얼마 안 있어 주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오실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염두에 두면서, 다시 오실 주님이 너무나 가까운 이 때에 종려주일을 맞이한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그날을 잘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구속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와서 예수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평행본문을 보면, 이것을 지켜본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말을 건넵니다. 선생님, 당신의 제자들을 좀 엄히 책망해주소서 아마도 너무 군중이 많이 모이게 되면 로마가 반란죄를 예수님을 체포할 것 같은 염려가 있어서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께서 어떻게 대답하신 줄 아십니까?

19: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이이들이) 침묵하면(잠잠한다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고 기대하는 당시 군중들의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왜 말리지 않으셨던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이제 공생애를 다 마치시고 마지막 한 주간을 예루살렘에 보내시고 거기에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지나 감람산의 동쪽에 있는 베다니를 지나 거의 정상부분 조금 너머에 위치한 벳바게를 지나가실 때였습니다. 이때 제자들 두 명을 시켜서 건너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 곧 어린 나귀를 풀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가서 그 나귀를 풀어왔고 제자들이 그 나귀 위에 자신들의 겉옷들을 깔고 예수님을 타시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군중들과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러 왔다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약 3km를 달려온 무리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 앞에 자기들의 겉옷을 깔아드렸습니다. 그리고 밭으로 가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며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하고, 감람산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가실 때 즈음에는 큰 소리로 예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11:9-10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얼마후 감람산을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의 황금문을 통과하여 성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당시 예수님을 환영한 이들을 꾸짖지 아니하신 그분의 뜻을 모르면,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당시 예수님을 환영한 이들을 꾸짖지 아니하신 그분의 뜻을 모르면, 다시 오실 주님을 어떻게 준비하는지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당시 예수님을 환영한 이들을 꾸짖지 아니하신 그분의 뜻을 모르면, 그날 어떻게 해야 주님께 칭찬듣고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당시 예수님을 환영한 이들을 꾸짖지 아니하신 그분의 뜻을 모르면, 당시 누가 예수님과 더불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알려주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당시 예수님을 환영한 이들을 꾸짖지 아니하신 그분의 뜻을 모르면, 예루살렘 성 안으로 함께 들어가는 자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진정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당시 예수님을 환영한 이들을 꾸짖지 아니하신 그분의 뜻을 모르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아무런 준비없이 그분을 맞이했다가 그만 주님의 면전에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당시 예수님을 환영한 이들을 꾸짖지 아니하신 그분의 뜻을 모르면, 결국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안에 들어가는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인 오늘 이 시간, 누가 과연 예수님과 더불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는지를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과 함께 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초림의 예수께서는 종려 주일에 어떻게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셨는가?

이제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려고 감람산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펴내시고는 곧장 베다니를 떠나 벳바게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께서는 벳바게(‘무화과의 집’)에서 두 명의 제자들에게 어린 나귀를 준비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준비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두 무리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첫째 한 무리는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나귀를 가져온 두 명의 제자들이 자기의 겉옷을 나귀 위에 얹어 예수님을 타게 한 것입니다.

둘째, 한 무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온 무리들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온다는 말을 들었던 유대인들의 반응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왔거나 마중을 나온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2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예수님이 가시려는 길 위에 깔았습니다. 자기들의 겉옷을 펴서 일종의 까페트를 만들어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밭에 들어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면서 환영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노래가 온 감람산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호산나하면서 다윗의 자손이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입니다.

 

. 초림의 예루살렘 입성과 재림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을까?

그렇다면, 초림의 예루살렘의 입성과 재림하실 예수님의 새 예루살렘의 입성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요?

먼저, 똑같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한 사람들과 그를 환영했던 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림의 예수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둘째,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초림의 예루살렘 입성은 죄를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죽음에 넘기려고들어가신 것이었지만, 재림의 예루살렘 입성은 사람들을 심판하여 구별된 성도들을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살게 하려고데리고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후에, 당신을 대적하는 악의 무리들을 먼저 처단하신 후에, 신부들을 고를 것입니다. 즉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신부들과 함께 천국에 혼인잔치 하러 들어가실 것입니다.

또한 초림의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기에 겸손하게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지만, 재림의 예수님은 심판의 주님으로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백마를 타고 오실 것입니다. 그때는 또한 심판주로 오시는 것이기에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누군지를 심판하시어,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를 데리고 천국으로 들어가실 것입니다.

 

. 재림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오늘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특별히 제자들에게는 어린 나귀를 준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때 그를 따르는 나머지 제자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군중들이 자신을 환영하며 노래부르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첫째, 이것은 다시 오실 주님께서도 미리 그것을 준비하도록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떤 일을 지시하실 것임을 암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는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그냥 이 세상을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날을 특별히 준비하도록 당신의 종들을 파송하고 준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2명의 제자들을 어디로 보내셨으며, 무엇을 준비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건너편 마을 주님이 이미 지정해 둔 곳, 예비하신 곳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준비되어 있는 어린 나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끌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나귀는 어떤 나귀입니까? 헬라어원문으로 보시겠습니다.

(01)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 안으로 가까이 가고 있을 때에, 감람산을 향하여, 벳바게와 베다니 안으로. 그가 그의 제자들 중의 둘을 보내신다.

(02)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의 맞은 편의 그 마을로 가고 있어라. 그리고 곧 그것(마을) 안으로 들어가고 있으면서. 너희는 사람들 중의 아무도 타지 않았던 바, 매여진 채 있는 어린 나귀[장차] 발견할 것이다. 너희는 그것을 풀어라. 그리고 너희를 데려오고 있어라.

(03) 그리고 만일 누가 너희에게 너희가 왜 이것을 행하느냐?’라고 말한다면, 너희는 이것(어린 나귀)의 주가 필요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즉시 여기로 다시 보내십니다라고 말하라.”

(04) 그리고 그들이 떠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사거리 위의 바깥 쪽에 문 앞으로 매여진(묶여진) 채 있는 어린 나귀를 발견하였다. 이에 그들이 그것(어린 나귀)를 푼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제자들 2명은 증인의 숫자라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공생애기간에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도 둘씩 둘씩 묶어서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기에 활동할 두 증인도 두 명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의하면, 두 증인은 이 땅의 주 앞에 이미 서 있는 채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였습니다(11:2). 그리고 이들은 두 선지자라고도 하셨습니다(1:10). 그리고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11:5~6). 이들은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로서,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성령이 충만하여,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회개를 외치는 사역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두 촛대두 교회이니, 아마도 서머나 교회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처럼, 그것은 핍박을 견디며 죽기까지 충성하는 종이요 또 하나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형제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종입니다. 즉 한 마디로 이들은 두 명의 사람들은 주님이 특별히 보내신 사명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럼, 이 두 사람은 무엇을 준비해야 했습니까? 주님의 명령에 따라 아직 한 번도 사람들이 타지 않았던 나귀 새끼를 풀어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한 번도 타보지 아니한 어린 나귀입니다. 때묻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순결한 영혼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영혼을 오직 한 분 예수님에게만 바치기 위해 준비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흠이 없이 자신을 준비시켜 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나귀가 매여진 채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 자리에 매어 둔 것입니다. 그것은 그날 주님께 쓰임받도록 누군가가 키워서 거기에 매 둔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으로부터 꿈 속이나 환상속에서 이미 지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 쓰임받도록 대기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 순간만을 위해 기다려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이끄는 한 편의 무리들로서 주님께서 특별히 쓰시는 종들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종들 그룹입니다.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아직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찾아내어서 예수님이 타게 하시는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어린 나귀와 같이 흠없이 순결한 성도들을 찾아내어 그들로 하여금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분을 기다리고 환영하는 무리들의 준비입니다. 이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그 자리에 온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그동안 스스로 자기들의 눈과 귀로 주님을 보고 들어서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라는 것을 보고 믿었던 자들입니다. 이들이 준비한 것은 자기들의 겉옷들종려나무 가지들입니다.

첫째, 이들의 한 무리는 주님께서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길에 편 자들입니다. 여기서 겉옷이란 영적으로 보면, 자신의 거룩한 행실을 뜻합니다. 이 옷은 걸쳐 입는 옷으로서 의로운 행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의로운) 행실(행위들)이로다 하더라

그렇습니다. 의로운 행실로 자신을 단장해온 자들이 그날 주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주여 주여라고 입으로만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자신을 스스로 단장한 자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가진 것이 없어 드릴 것은 없지만 밭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며 노래했던 이들입니다.

12:12-13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왔던)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들의] 가지[]를 가지고(취하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그렇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그 용도가 이기고 개선행진 하는 자들을 환영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환영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일종의 즉위식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온 인류의 속죄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먼저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다윗의 아들 솔로몬왕의 노새를 타고 왕으로 등극한 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왕상1:44). 장차 다시 오실 주님께서는 완전한 즉위식을 할 텐데, 그분을 대적하지 않고 그분을 진정으로 기쁨으로 환영하면서 찬송하는 자들 역시 그날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은 그분의 오심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오심을 거절했습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른다면서 예수님을 죽일 방도만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환영하는 무리들은 달랐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처럼 오시어,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을 환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오심을 사모하고 기뻐하고 소망하는 자들을 주님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자기들의 의로운 행실이 없는 자들이라고 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맞이할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께 드릴 것이 부족해도 예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환영하고 자신의 입술을 벌려 그분을 높여 찬양하면 주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 믿음이란 다시 오셔서 나를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실 주님을 위해, 순결을 지켜온 신부들을 찾아내어 주님을 환영하게 하는 것이요 내가 가진 것을 주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요,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그분을 마음으로 진정 환영하면서 그분을 자신의 입술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러자 주님은 그들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이들이 기뻐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순결한 자들을 준비하여 주님께 드린 제자들과 자기들의 의로운 행실을 주님께 드린 자들, 그리고 드릴 것은 없지만 주님이 만왕의 왕인 것을 인정하고 그분께 찬양했던 무리들도 역시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은 장차 오실 주님을 환영하는 무리들이 대체 누군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누가 주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알려주는 예표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첫째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귀를 가져다가 주님께 드렸던 제자들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의 예표인 것 같고, 둘째, 그때 자기들의 겉옷을 깔아서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여 드린 자들천국에서 144,000명 중에서 그래도 섬김을 받는 주인으로 참여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으며, 마지막으로 주님께 드릴 것은 없지만 주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노래했던 이들천국에서 평민이나, 섬기는 이들로 천국에 들어갈 자들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지금은 예수님의 영원한 왕으로 다시오실 예수님의 즉위식을 준비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 지구상의 징조천기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깨우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순종함으로, 순결함으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로운 행위의 열매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드릴 것은 없을지라도 주님이 만왕의 왕되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입술의 찬양으로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초림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따라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사람들의 예표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다시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는 주님의 종들로서 순결한 신부들을 찾아내서 주님께 붙이는 사명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스스로 그날을 준비하는 자들 중에는 자기의 의로운 행실로 깨끗하고 빛나는 겉옷을 준비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드릴 것이 없는 자들은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고 마음과 입술을 다해 찬양함으로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순종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순결한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의로운 행실로 준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을 높여드리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의 오심을 준비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하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게금 미혹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징조를 통해 깨우시는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가로막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초림의 예수님을 통해 다시 오실 주님을 제대로 준비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코로나와 러시아 전쟁소식은 우리를 깨우는 하늘의 징조였구나.

2.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자들 중에는 사명자들이 있고 스스로 자신을 준비하는 자들도 있구나.

3. 이 시대의 사명자들은 순결하고 깨끗한 영혼을 찾아내어 주님께 붙이는 자들이로구나.

4. 스스로 보고 들어서 깨우침을 받아 자신을 깨끗하고 흠없는 겉옷으로 단장하는 이들도 있구나.

5. 주님께 드릴 것이 부족해도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입술과 마음으로 그분을 높여드리는 자들도 천국에 들어가는구나.

6. 그날이 정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이제는 정말 깨어나서 준비할 때가 되었구나.

 

 

  1.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올바른 기도방법은 어떠한 것인가(마6:9~10)_2022-08-2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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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기도의 향기를 다 주님께 올려드리려면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출30:7~10)_2022-08-0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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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막의 분향단이 들려주는 3,500년 전의 기도의 비밀(출30:1~6)_2022-07-3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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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날 혼인잔치에서 입을 예복은 어떻게 준비하는가?(마22:11~14)_2022-07-2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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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 시대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마22:1~10)_2022-07-1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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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제목] 오늘날 구원을 위해 교회들이 목숨처럼 지켜내야 할 것은(막6:10~13)_2022-07-1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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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주님의 뜰에서 살게 될 하늘에서 복 있는 자(시65:1~4)_2022-06-2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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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슬픈 가족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우리 주님이 행하신 일(삼하21:10~14)_2022-06-1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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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2)(행1:12~14)_2022-06-1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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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계3:1~6)_2022-06-0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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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지금 이 시대에 진정 복있는 자는 누구인가?(마13:9~17)_2022-05-2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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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나는 과연 어떤 복음전파사역자로 길이 길이 남을 것인가(딤후4:9~16)_2022-05-2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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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주님께서는 왜 바울을 부르셨는가?(행9:3~9)_2022-05-1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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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천국복음 전파자들이 각오해야 할 일과 비교할 수 없는 상급(마10:16~23)_2022-05-0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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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주의 사역을 이어받을 자들이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마9:35~10:8)_2022-05-0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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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마4:17~23)_2022-04-2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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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부활의 이 아침, 우리는 어떻게 산 증인이 될 수 있는가?(고전15:3~4)_2022-04-1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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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천국의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면?(계3:1~6)_2022-04-0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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