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0(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은사와 사명(8)] 은사로 사명을 감당할 때 정말 놓쳐버리기 쉬운 것은 무엇인가?(고전12:31~13: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lX23YprhHcg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 중에 거짓선지자를 분별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그들의 열매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 그들의 열매가 곧 그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알게 해준다고 하셨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말씀에 이어 사람들이 마지막 심판의 때에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했다고 고백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모르시겠다고 하면서 그들을 내어쫓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불법을 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체 그 불법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은사를 받아 사역하는 자들이 마지막 날에 버림받지 아니하고 칭찬과 상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심판의 날에 주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사람이 되는 '불법'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과연 심판의 날에 주님이 모른다고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주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불법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불법이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을 마태복음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단지 열매를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과연 어떤 열매가 주님께 인정을 받는 열매가 되는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불법을 다음과 같은 2가지를 가정해볼 수 있다. 

  첫째,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행했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실은 그들이 성령이 아니라 귀신이 주는 것을 가지고 일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는 있어도 그들의 행한 일들이 하나도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령을 힘입어 사역했다고 말은 하고 있어서 귀신이 주는 것을 힘입어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 정도의 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귀신도 보통 귀신이 아니라 상당히 높은 수준의 귀신들을 힘입었을 것이다. 둘째, 그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받아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점차 하나님의 뜻과 길에서 벗어나 타락한 자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왠만하게 기도해서는 예언의 은사와 귀신쫓음의 은사와 기적의 은사를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다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은 적어도 후자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은사를 받아 주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3.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어떤 기준으로 은사 사역자들의 행위들을 심판하시는가?

  우리 모두에게는 언젠가 심판의 날이 찾아올 것이다. 주님 재림 전에 죽는다면 우리가 죽는 날이 그날이 될 것이며, 주님 재림 때까지 살아있다면 그날이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날 우리가 행한 모든 행적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날 우리의 행위들이 주님께 인정을 받고 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런데 놀라지 말라. 주님께서는 그날에 내가 과연 얼마나 많은 귀신을 쫓아냈는가를 따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며, 그날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쳤는지를 가지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않는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날에 이를 때에 우리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사역을 진행했다고 할지라도 심판의 기준은 그 은사의 숫자나 크기 그리고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따라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해다는 것이다(고전13:1~3).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과연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했느냐를 보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혹시 은사를 받아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며,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사역하고 기적을 일구는 믿음을 갖고 있으며, 구제하고 순교를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심판의 때에 자신에게 그 어떤 유익도 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4.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의 기준을 사도 바울은 또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마지막 날에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을 주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하지만 산상수훈에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가 쓰여있지 않다. 그런데 그것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의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엄청난 은사를 받아서 사역을 진행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면, 그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자신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골로새서의 말씀에 따라, 심판의 기준이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외에도 다른 심판의 기준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에는 긍휼과 자비(친절함),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인내)과 용서(은혜베품)이 있다고 했다(골3:12~13). 그렇다. 우리가 사역을 할 때에 내가 능력을 받아서 귀신을 천 번을 쫓아낸 것이 심판이 기준이 아니며, 우리가 병든 사람 천 명을 고친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역을 했어도 과연 사랑으로 했다. 긍휼함과 친절함으로 했느냐, 겸손과 온유함으로 했느냐, 오래참고 기다려주었으며, 은혜를 베풀어주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보면, 심판의 기준을 총 9가지로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 오래참음(인내)과 자비(친절함)과 양선(선함), 충성(신실함)과 온유와 절제다. 고로 우리가 과연 얼마나 많은 은사를 받았느냐, 얼마나 은사를 가지고 사람들을 고치고 사람들에게 능력을 행했느냐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역을 진행함에 있어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마음 자세로 행했느냐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다면 다 쓸모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5. 우리가 맺어야 할 진정한 사역의 열매는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맺어야 할 진정한 사역의 열매는 주님의 기준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와있는 여러가지 기준들을 종합해볼 때, 그날 우리는 어떤 기준을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5가지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얼마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역했느냐? 왜냐하면 영혼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얼마나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했느냐? 그렇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얼마나 신실함으로 감당했느냐를 주님이 보시는 것이다. 게으르고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에게 주께서 귀한 일을 맡기셨으니 충성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얼마나 주님께 '감사'하며 행했느냐?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이 부족한 사람을 주님의 사람으로, 주님의 사역자로 불러주시고 일을 맡겨주셨으니 우리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 얼마나 '선한 뜻'을 가지고 사역했느냐? 사역을 할 때에 사역을 하다보면 우리는 돈 욕심이 생기고, 자신이 높이기 위한 이기적인 욕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특히 주님의 능력과 권세가 더 나타날수록 그렇게 우리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 그날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엄한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다섯째, 얼마나 '겸손'히 사역했느냐? 그렇다. 마지막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으로 행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명예와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될 때에 사역을 외면해버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책망들을 일이 되는 것이다. 

 

6. 사역을 5가지 기준으로 살펴볼 때 마지막 날에 버림받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취해야 하고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그러므로 위의 5가지 기준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그날 버림받지 않고 인정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취해야 하고 무엇을 버러야 하는가?

  첫째,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취하고, '미움과 다툼', '시기와 질투심'을 버려야 한다. 

  둘째, 우리는 모든 일에 '충성'됨과 '신실함'을 취하고, '게으름과 나태', 사역을 하다가 세상도 즐기면서 일한다거나, 한 눈 파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우리는 나에게 사역을 맡겨주신 것에 감사를 취하고, 나에게는 은사를 적게 주었다고, 큰 은사를 안 주었다고 원망과 불평하는 것을 버리고, 짜증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은사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나 은사의 크기와 양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우리는 선한 마음을 취하고, 악하고 불의하고, 이기적인 욕심을 내버려야 한다. 

  다섯째, 우리는 언제나 겸손한 태도를 취하고, 교만한 마음을 내버려야 한다. 괜히 으시대거나 자기자랑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높아지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7.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하려 할 때 과연 은사 없이 행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 일을 감당하려 할 때에 아예 은사없이 행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것이 일반은사가 되었든지, 특별은사가 되었든지, 은사가 없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특별은사로서 신령한 은사가 없이는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는 사람에게 은사는 필수적인 장비와 장치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자신의 영적인 아들이었던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의 목회자로 세울 때에 한 일이 있다. 그것은 장로의 회에서 안수할 때 자신이 직접 그에게 안수하여, 하나님의 은사를 전이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속에 있는 은사를 불 붙여주었다는 것이다(딤후1:5~6). 왜냐하면 은사 없이는 목회사역을 잘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의 인물로서 모세도 역시, 자신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사들을 전이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속에 있던 은사도 활성화시켜주었던 것이다(민27:18, 신34:9). 그렇다. 주의 일을 은사 없이 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사역의 결과물도 도출해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은 반드시 은사를 받거나 또는 은사를 활성화시켜서 사역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은사를 받은 자들이 끝까지 겸손하게, 감사하면서 충성되이 자신의 맡겨진 일을 선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은사를 잘못 사용하면 결국 귀신에게 사로잡혀 귀신이 쓰는 자가 되거나, 심판의 때에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사역자들에게 영혼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평생 간직해야 할 사역의 핵심인 것이다. 

 

8. 성령의 사람으로서 끝까지 겸손하게 충성되게 사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은사를 받아 사역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귀신이 주는 은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들에게 우리 자신을 넘겨주거나, 그들이 주는 것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마지막에 가서 변질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끝까지 변질되지 않고 사역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속에 귀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깊은 회개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이 나에게 역사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고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결단코 회개 없이 귀신을 자신의 몸에서 내 보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잘 믿어도 또한 우리가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여도 귀신은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가지고 사역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회개를 계속해서 지속하되, 날마다 자기 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을 제거하면서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샌가 귀신들이 나를 사로잡아 감으로 어느날에는 사탄이 가진 성품들의 열매들이 나에게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9.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은사가 필요없다는 말씀인가?

  어떤 분들은 은사가 가진 위험성 때문에 은사 자체를 아예 거부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주로 인용하는 말씀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이다. 사랑이 없이 행하는 모든 사역들은 결국에 아무 것도 아니며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하기 때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도, 예언도, 지식의 말씀의 은사도, 은사적 믿음이나 구제의 은사도, 순교의 은사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은 은사가 필요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말씀이 아니다.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어찌 은사 없이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건져낼 수 있겠으며, 귀신들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은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은사를 언급하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부터 14장까지의 말씀에서 더욱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분명하게 권면하였다(고전12:31).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14장에 가면 1절에, 사랑을 계속해서 추구하되,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다시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통역과 예언의 은사를 아주 신령한 은사들라고 언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은사들이야말로 환상의 은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려주는 놀라운 은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은 은사가 필요없으니, 은사를 추구하지 말라고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은사를 사모하여 무장하되, 은사를 사용할 때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서 '사랑'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성령의 9가지 열매들로 사역하라는 말씀이다. 

 

10. 천국에 있는 자기 집의 정원에 심겨지는 나무들은 대체 어떤 나무들인가?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가 살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 세상에 주의 일을 한 것이 없어서 천국 집을 소유하지 못한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에 어떤 이는 판자로 만들어진 집에서 살기도 할 것이고, 텐트 집에서 살기도 할 것이다. 심지어 집이 없어 노숙하는 이들도 아주 많다. 하지만 천국에서의 삶은 이 세상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행복하니 너무 걱정은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정말 주님께 은사를 받아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했던 자들은 자신을 위해 주님이 준비해 놓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 중에는 자기 집에 정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원에는 연못들이 있을 것인데, 한 개에서 심지어는 12개까지 연못이 있는 집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원에는 지금도 빛이 나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나무들에게 이름표가 붙어 있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그 이름이 성령의 9가지 열매들과 똑같다는 것이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집의 정원에는 나무가 한 그루만 있는 집도 하고, 어떤 집은 3그루가 있는 집도 있다. 그런데 어떤 집에는 9그루의 나무들이 있는 집도 있다. 그 집의 하나는 바로 사도 바울의 집이다. 성경에 보니,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갔다가 왔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가 천국집도 방문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래서 자기 집 정원에 있는 나무들을 보고 그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다고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집에 있는 나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대부분 나무들이 크고 열매가 주렁주렁 많이 달려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두께가 얇고 열매가 덜 열려 있는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는 '오래참음(인내)'이라는 이름의 나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젊었을 때 혈기분노가 충천하였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회개하고 다듬어져서 천국에 오래참음의 나무도 역시 크게 자라게 할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그 나무가 다른 나무에 비해서는 작은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사도 바울의 나무들 중에서 가장 큰 나무는 무엇인가? 그 나무는 '충성'이라는 이름의 나무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인생을 복음전파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내어놓았기 때문이다(행20:23~24). 그렇다면 천국에 있는 내 집 정원에는 과연 어떤 나무들이 자라고 있을까? 그리고 나무들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열매들이 지금도 열려있는 것일까?

 

11. 나오며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사람들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 그 육체가 만들어진다. 물론 육체도 사실은 엄마가 만들지는 못한다. 환경만 제공할 뿐이다. 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육체 속에 영혼을 집어넣어주신다. 그런데 이 세상에 들어오는 영혼치고 이 땅에 아무런 의미없이 보내어진 영혼은 하나도 없다. 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의미있는 인생, 가치있는 인생을 살도록 이 땅에 보내어졌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하나님께서 주의 복음을 전하고, 저 천국백성을 만들라고 특별히 보내신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사들인 도구들을 주신다. 그러므로 은사없이 주의 일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은사들이 내게서 나타나는 것을 마냥 좋은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귀신들이 성령의 은사를 가장하여 우리에게 거짓된 사탄의 은사를 줄 수도 있고, 또한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일하는 사람을 미혹하여 그를 죄짓게 만들어 결국에 넘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사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려 할 때에는 항상 사탄이 성령을 가장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사탄이 나를 미혹하여 죄에게로 끌고 가지 않는가를 항상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귀신을 내 몸 속에서 덜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역해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 집에 있는 정원수는 내가 과연 성령의 9가지 성품으로 사역했느냐에 따라서 주어지게 되고 열매도 주렁주렁 맺혀지기 때문이다. 지금 천국에 있는 내 나무는 과연 바울처럼 9개나 되는가 고작 1개뿐인가? 아니면 아예 없는가? 그리고 그 나무들의 두께는 얼마나 되며, 열매 또한 얼마나 많이 맺혀져 있는 것인가? 오, 주여! 오늘부터 우리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아멘. 

 

 

2023년 08월 20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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