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교황권이 진짜로 마지막 적그리스도일까? 우리는 다니엘7장과 요한계시록13장의 말씀을 통해서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가 누군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재림의 때에 누가 과연 심판의 보좌에 앉이 심판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주님과 함께 심판에 동참하는 24장로들은 누구인가? 신구약시대 선지자들과 성도들이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는 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성도들은 누구를 심판하는가? 오늘은 적그리스도와 심판의 비밀에 대해 살펴보자.
1. 들어가며
오늘은 다니엘서 7장 강해의 마지막인 세번째 시간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B.C.577년(연대기기준) 바벨론의 벨사살왕 원년에 다니엘이 보았던 네 짐승들 중에서 넷째 짐승에 관한 환상과 관련된 2가지 것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하나는 넷째 짐승의 머리에서 올라온 열 뿔들 중에서 3개의 뿔을 뿌리채 뽑고 올라온 '작은 '뿔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관한 간략한 정리와 아울러, 그 시기가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지 요한계시록 13장과 견주어 살펴볼 것이다. 그리 이어서 또 하나 살펴 볼 것은 다니엘이 B.C.577년경에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와 여러 보좌들 그리고 그 보좌에 앉아계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과 그분에게로 인도된 "인자같은 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극히 높으신 이"이 누군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 모습들을 통하여, 장차 우리 성도들이 장차 들어가서 살게될 천국의 모습을 미리 내다보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키워나가기를 바라며, 우리도 어떻게 하면 천국에 있는 심판의 보좌에 나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넷째 짐승에서 올라온 작은 뿔의 정체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니엘이 보았던 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매우 강포한 짐승이었다(단7:7~8). 그 녀석이 쇠 이빨을 지녔고 놋 발톱을 지니고 있었기에 닥치는대로 먹어치웠고 부서뜨렸으며 짓밟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셋째 짐승(표범=헬라제국) 뒤에 올라우는 이 짐승을 "로마 제국"이라고 해석한다. 로마 제국은 그 이전에 있었던 어떤 제국보다도 잔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 제국을 무러뜨리고 올라온 열 뿔을 열 나라로 해석한다. 이 중에서 세 뿔로 해석되는 '헤룰리'와 '반달'과 '동고트족'을 뿌리채 뽑아버리고 올라온 한 '작은 뿔'은 "로마카톨릭" 곧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으로 본다. 다시 말해, 로마카톨릭(천주교)의 교황들을 작은 뿔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왜냐하면 작은 뿔의 정체가 영락 없이 로마제국 후에 올라온 로마카톨릭의 세력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한 작은 뿔은 지극히 높이신 이(한 분 하나님)을 말로 [거슬러] 대적할 것이라고 했는데, 로마 교황이 그렇게 함부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말하라고 하였고, 자신의 말은 성경보다 우위에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 작은 뿔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했는데, 역대의 로마 교황들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을 잡아다가 종교재판소를 열어서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이다. 로마 교황들에 의해 죽어간 성도들이 무려 1천년동안 6천만 명이라고 한다. 셋째, 그가 때들과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라고 했는데, 역대 교황들에 의해 율법의 절기들이 사라졌고, 마니교에서 들어온 태양신 종교의 제도와 방식을 로마카톨릭에 들여왔으며, 성인숭배를 자행했으며, 율법의 근간 십계명을 임의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은 뿔이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대체 어느 정도 되는 기간인가? 한 몇 년 참으면 되는 기간인가? 아니면 오래도록 지속되는 긴 기간인가? 우리는 다니엘에서 등장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개념을 우선 상징적인 기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와 똑같은 표현이 똑같이 등장하는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따라, 그 기간은 어던이 정해진 기간으로 보며, 그 기간은 산술적으로 계산되어지는 기간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기간을 산술적으로 "3년반(42달=1,260일)"이라고 해석할 만한 역사적인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고, 또한 이 기간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만 나올 뿐, 그 기간을 산술적으로 기간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요한계시록의 해석법에 따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으로서, 성도들에게는 이 땅에서 고난받는 기간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산술적으로 "3년반(42달, 1260일)"으로 해석하지 아니하며, 1,260일을 햇수로 환산한 1,260년으로도 보지 아니한다(A.D.538년-1,260년=1,798년). 왜나하면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성도들은 지금도 여전히 핍박받고 죽임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대"를 성도들이 핍박받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해석한다. 물론 마지막 시기에 대환난의 기간으로 42달이 있을 것으로 예견하지만 이것도 주님께서 줄여주실 것이다(마24:22)
3.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끝은 언제인가?
그렇다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끝은 대체 언제인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안식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황권이 몰락했다고 보는 1,798년(538년 + 1260년)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말세의 어느 특정한 산술적인 시기인 "후3년반"의 기간인가?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딱 정의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끝에 인자같은 이가 와서 왕국을 접수한다고 다니엘서와 나와 있는데(단7:13~14), 그때가 1,798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그 기간이 끝나는 때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되어 있는데(단7:9~10, 25~27), 1,798년은 역시 그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안식교에서는 자기들이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그들이 예상했던 시기에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자, 그때에 주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셨고 그때부터 조사심판이 시작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셋째, 그 기간은 성도들이 박해를 받는 기간이라고 나와 있는데, 성도들이 박해를 받는 기간은 미래에 있을 어느 특정한 시기인 "후3년반"의 기간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짐승에 의해 성도들이 핍박받는 기간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계12~13장). 고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하나의 상징적인 기간이면서, 동시에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결박받고 무저갱에 갇혀지내고 있는 용(짐승)이 지상 위로 다시 올라와서 첫째 짐승(적그리스도)과 거짓선지자(둘째 짐승)와 합세하여, 세상의 왕들과 기독교 세력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아마겟돈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 때까지라고 본다. 그것은 제가 이전에 강해했던 요한계시록 강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4. 말세에 심판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이는 누구신가?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심판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이는 누구신가? 그분은 "인자같은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바로 구름을 타고 오실 터인에, 그분은 승천하시면서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고 다시 오실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행1:9~11, 마24:30~31).
그럼, 이분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분은 마지막 심판 때에 구름을 타고 나아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인도되시는 이이시다(단7:13). 그런데 신약의 공관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 보면 스스로를 "인자"로 부르셨던 이는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자신을 "인자" 혹은 "아들"이라고 표현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사람의 아들"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기를 기뻐하셨던 것이다. 그분은 33년반의 생애를 사시고 인류의 속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다. 지금 그분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일곱 금촛대를 사이를 거닐고 계신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분을 다니엘처럼 "인자같은 이"라고 표현했다(계1:13). 그분은 발에 끌리는 흰 옷을 입고 계셨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셨고, 그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 같았고 흰 눈 같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불꽃 같았으며, 그의 얼굴에서는 해가 힘있게 비치듯 빛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그분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계1:17~18). 고로 촛대 사이에 거닐고 계셨던 인자같은 이는 바로 죽었다가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을 또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도 소개하신다. 그리고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도 소개한다.
그렇다면,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는 누구신가? 우선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라는 표현은 요한계시록에만 3번 등장하는데, 그분은 자신을 주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고(계1:17,2:8,22:13), 또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계19:4). 즉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라고 소개하신 이는 첫번째로는 요한계시록1:17에서 자신을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셨고, 두번째로는 서머나교회에 사자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에 자신을 "처음으로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계2:8)"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분이 예수 자신이심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리고 세번째로는 그분은 곧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로서, 그분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한계시록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소개하시는 이는 바로 "보좌에 앉아계신 이"이시다(계21:5~6).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계21:5~6)"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계19:4에 의하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곧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또한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소개하시는 이는 요한계시록 1:8에 의하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는 예수님이시며 그분이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으며, 그분이 바로 보좌에 앉아계신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니엘이 보았던 "보좌에 앉아계신 이"는 아직 인자이신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보좌에 앉아계신 이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이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요한계시록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그분은 "전부터 계셨던 이(계1:8)"이시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보좌에 앉아계신 이" 곧 "전부터 계셨던 이"는 대체 누구신가? 그분은 한 마디로 "여호와"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이에 대하여 환상을 보았던 미가야선지자(왕상22:19), 그리고 이사야선지자(사6:1~3)는 그분이 "여호와"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출애굽기 3:14~15에 보면, 여호와는 자신을 "스스로 계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라고 소개하신다(사41:4,44:6,48:12). 고로, 구약시대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바로 "스스로 계신 이"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로서 그분은 곧 "여호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께서 "스스로 계신 이"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3번씩이나 연거푸 말씀하신다(요8:24,28,58).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도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신다.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에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던 그분이 곧 신약시대에 예수님으로 오신 것을 알 수 있다. 즉 다니엘서에 나오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신약시대에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자같은 이로 이 땅에 오셨다가 비로소 다시 하늘에 올라가신 그분은 그후로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아계신 이"는 구약시대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로서 여호와이심을 알 수 있고, 그분이 육신이 입고 구속사역을 완성한 후에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는그분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으며,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인자,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계시하셨신 것이다. 그분이 마지막 때에 재림주로 오셔서 심판을 행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시는 이는 아버지 하나님(구약에는 '여호와'라고 칭하셨던 이)이시나, 예수께서 아들되심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모든 일을 다 아들에게 맡겨주셨기 때문이다(요5:27). 그러므로 천국에 있는 한 개뿐인 하나님의 보좌에는 지금은 예수께서 앉아계신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뿐인 그분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부르고 있다(계22:1,3)
5.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위의 보좌들에 대한 환상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다니엘이 본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환상에는 놀라운 계시의 발전이 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여러 개의 보좌들을 다니엘이 처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단7:9). 물론 다니엘이 본 환상은 그때 당시의 하늘에 있는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종말의 때의 있어질 모습을 환상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보좌 좌우에 있는 24개의 보좌들을 다니엘이 그때 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누가 앉아있는지는 그는 보지 못했다. 거기에 앉을 사람들은 분명이 있겠으나 그들이 누가 될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서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본 자들은 대체 누구누구며 어떤 것을 보았는가? 그들은 대략 6명 정도 된다. 처음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본 사람은, B.C.853년경 북이스라엘의 7대 아합왕 때의 미가야선지자다(왕상22:19). 그때 그는 단 한 개의 보좌만을 보았고 그 위에 여호와께서 좌정해 계시며, 그 좌우편에 하늘의 만군(군대)가 모셔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번째는 B.C.740년경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그는 높이 들린 한 개의 보좌에 여호와께서 좌정해 계신 것을 보았고, 그 옆에는 여섯개의 날개를 달고 있는 스랍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사6:1~5). 그리고 세번째는 B.C.593년경 다니엘과 동시대에 살았던 에스겔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겔1장과 10장). 그는 불이 이글거리는 보좌 위에 사람같은 분이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겔1:26). 그리고 그 주변에는 네 생물들이 있었다. 그 생물들의 모습은 각기 사면에 따라, 사람과 사자와 소와 독수리의 얼굴을 가졌고, 네 날개가 있었다(겔1:5~11). 그 생물들은 "그룹"이라고 불리었다(겔10:20~21,14). 그리고 그러한 그룹 중에는 루시엘(사탄마귀)도 들어 있었다(겔28:14). 네번째는 B.C.577년경 에스겔과 동시대에 살았던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보좌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앉아계신 것을 보았고,그 주변에 보좌들이 있는 것까지 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모셔 서 있는 것을 보았다(단7:9). 그러니 다니엘은 그때 당시의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광경을 본 것이 아니라, 말세의 때 곧 주님의 재림의 때에 있을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변의 광경을 본 것이다.
이제 신약에 들어와서 두 명의 인물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첫번째는 A.D.33년경 예루살렘교회의 일곱집사(?)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이다. 그가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의 우편에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행7:55~56).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내려와서 그 옆에 서 계신 것을 본 것이다. 두번째는 A.D.95년경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사도요한이다. 그는 자신의 영이 하늘에 올라가 직접 하나님의 보좌와 그 좌우둘레에 있는 24보좌들을 보았고, 그 보좌에 앉아있는 24장로들을 보았다.
그렇다면 하늘에 한 개밖에 없던 하나님의 보좌 외에 또 다른 24개의 보좌들이 생긴 것인가? 그것은 성도들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주어진 것들이다. 사실 구약시대만 해도 다니엘을 제외하고는 아직 그 보좌들이 계시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이제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옆에 12명의 제자들이 앉을 보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히셨다(마19:28). 그리고 12제자들이 앉게 될 그 보좌들은 예수님처럼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할 보좌라고 말씀해주셨다(눅22:28~30). 그런데 그 보좌들이 12명의 제자들에게 영구적으로 주어질지는 모른다. 그리고 나머지 구약의 성도들로 채워질 보좌에 누가 앉게 될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24보좌에 앉은 자들은 대체 무엇을 심판하는가? 그것은 눅22:30, 계20:4~5의 말씀과 아울러, 고린도전서6:2~3의 말씀에 따르면, 그때 24보좌에 앉은 자들은 첫째는 세상을 심판할 것이며, 둘째는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 때 "세상"은 아마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던 자들이거나,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그러한 외침을 외면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자들이 아닐까 추측해본다(고전6:2). 정확한 것은 그때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에 성도들이 천사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사실이다(고전6:3). 아마도 타락한 천사들을 무저갱에 보내는 심판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에 있게 될 심판은 사람이나 천사나 불못에 보내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오늘 우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될 넷째짐승의 작은 뿔에 대한 성도들의 핍박과 그 시기와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작은 뿔에 의한 성도들의 핍박의 시기는 언제인가? 그것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다(단7:25). 그런데 결론적으로 볼 때 그것은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예수승천이후 재림때까지의 기간으로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에 의해 핍박하고 죽임을 당하는 시기이다. 물론 반대로 이 시기에 성도들의 대부분은 광야의 피난처에서 보호받고 양육을 받을 것이다(계12장). 그리고 이 일이 끝나는 지점 곧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끝 지점에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곧바로 인류 앞에 심판대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때 재림주로 오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좌정하실 것이며, 그 주변에 있는 24장로들에 의해 세상과 타락한 천사들도 함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다니엘은 비록 B.C.577년경에 산 자였지만, 마지막 날에 있을 재판대가 하나님의 보좌 말고 더 많은 보좌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던 구약의 최초의 인물이자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그럼, 누가 과연 이러한 놀라운 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가? 그것은 다니엘처럼 오직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자가 아니겠나 싶다. 그리고 이러한 계시를 말씀으로 살펴보는 우리는 이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날 우리는 과연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자로 설 것인가 아니면 심판하는 자로 앉아있을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5월 20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