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과 에스겔은 둘 다 바벨론에게 포로로 붙들려간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직업은 서로 달랐다. 그중에서 다니엘은 일반성도들을 예표하고, 에스겔은 주의 종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 성도는 어떻게 할 때, 세상제국의 왕으로부터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감탄사를 발하게 하고, 하나님만이 모든 신들 중의 신이라고 고백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비밀이 오늘 본문에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자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신에 대한 찬가를 여기서 맛보게 될 것이다.
1. 들어가며
다니엘은 어떤 인물인가? 다니엘은 에스겔과 동시대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인물이다. 지금까지는 다니엘은 바벨론에 제1차포로 때(B.C.605)에 잡혀간 인물이었고, 에스겔은 2차포로(B.C.597)로 잡혀간 인물로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은 둘 다 남유다19대왕이었던 여호야김 제11년(여호야김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3년간 섬기다가 배반한 직후)(B.C.599)에 잡혀갔다(김명현교수의 "다니엘의연대기" 참조). 그런데 둘은 가는 길이 달랐다. 다니엘은 이방제국의 왕 밑에서 일하는 관료로서 쓰임을 받았고, 에스겔은 그곳에서 선지자로서 쓰임을 받았다. 오늘은 다니엘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아들 벨사살이 살해된 직후 바벨론제국이 잠시 메대제국의 다리오왕에게 넘겨졌을 때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이때 다니엘은 다른 대신료들의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지만 살아나옴으로 인하여 메대왕 다리오마저 다니엘이 섬기는 신이야말로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메대왕 다리오는 대체 누구이며, 왜 그는 다니엘은 총리대신의 우두머리로 세우려했고, 다니엘은 어떻게 되어 모함을 받게 되었고 사자굴에 던져졌으며, 어떻게 되어서 거기서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메대왕 다리오는 어떤 인물인가?
메대왕 다리오(다리우스)는 누구인가? 다니엘서에 의하면 그에 대한 정보는 딱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5:30~31에 나온 바대로,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한 후에 [누군가로부터] 갈대아 나라를 [넘겨]받은 자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62세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단9:1~2에 나오는데, 그는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키악사레스)의 아들(아스티게아스)로서, 갈대아 나라 위에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왜 다니엘서 기자였던 다니엘은 다리오가 벨사살을 죽이고 바벨론(갈대아 나라)를 빼앗았다(정복했다)고 기록하지 않고, 갈대아 나라를 넘겨받았다고 기록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학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보통 학계에서는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다리오가 나라를 차지한 때를 B.C.539년으로 잡고 있는데, 실은 그때가 아니다. 그때는 그때로부터 약 35년전인 B.C.574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된 것인가?
첫째, 메대왕 다리오가 넘겨 받았던 갈대아 나라는 나보니두스의 아들 벨사살이 다스리던 나라가 아니라,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은 벨사살의 나라를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주에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이 누군지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제2대왕이었던 느부갓네살(B.C.605~562)의 아들로 나온다(단5:11,13,18,22). 그것이 진실이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왕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 아니라, 나보니두스의 아들(B.C.556~539)이라고 주장한다. 나보니두스(나부나이드)는 바벨론제국의 제6대왕으로 등극한 자인데, 그는 시리아출신의 사람으로서 바벨론을 차지한 자였다. 그런데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벨사살이었다. 그러니까 벨사살은 동명이인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학계에서는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을 나보니두스의 아들이라고 설정해버리고, 단5장에 나오는 "벨사살의 부친"이라는 표현을 "왕의 조상"이라는 말로 바꾸어 해석하고 있다. 한 마디로, 다니엘 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35년 뒤의 일로 변개시켜버린 것이다. 아니다. 석회벽에 쓰인 글씨를 보고 죽임당한 벨사살왕은 나보니두스의 아들이 아니라 느부갓네살왕의 실제 아들이었다. 그가 다니엘로부터 석회벽에 쓰인 글자를 해독하던 날 그는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둘째, 메대왕 다리오는 벨사살왕의 외삼촌이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벨사살왕은 메대왕 다리오의 외조카다). 누군가로부터 벨사살이 죽임당한 후 메대왕 다리오는 바벨론을 넘겨받았는데 어떻게 해서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인가? 그것은 그의 가족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고대근동지역은 메대와 바사와 바벨론의 각축장이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강력한 권세를 가진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앗수르(앗시리아)였다. 그런데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군이 앗수르를 멸망시킨다. 그때 메대왕은 메대제국의 제3대왕이었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리오왕의 아버지 "키악사레스"였다(B.C.615~575). 그리고 바벨론의 왕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버지 "나보폴랏사르(B.C.625~605)"였다. 두 사람은 두 나라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사돈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키악사레스(아하수에로, 단9:1)"는 자기의 딸(아미티스)을 나보폴랏사르의 아들(느부갓네살)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다. 고로 다니엘서 4장에 나오는 바벨론의 공중정원은 느부갓네살이 고향 메대를 그리워하는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지어준 정원이었던 것이다(이 정원과 그리고 바벨론 도시를 건설하는데 남유다의 포로민들이 잡혀와서 참여하였다). 그러니까 아미티스 공주는 다리오(아스티게아스)의 친 누나인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그만 교만을 떨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광인이 되고 만다(B.C.577년). 그러자 그는 낭광증이라는 정신착란증을 앓게 되는데, 미친 나머지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동물처럼 살게 된다. 무려 7년동안이나 말이다. 그러자 왕권은 이제 느부갓네살의 아들인 벨사살에게 넘어가게 된다(B.C.577~575). 그래서 벨사살은 자기의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섭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그의 통치 3년째 되던 해에, 벨사살은 귀인 1,000명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이게 되는데, 자기 부친이 남유다의 성전에서 빼앗아온 성전기명을 술그릇으로 사용하다가 그만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석회벽 글자의 경고조치였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세어보고 세어보고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뵈었다"는 뜻이다. 결국 그날 벨사살은 자신의 신복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그러자 아미티스 왕비는 자기의 남동생인 메대나라 다리오왕에게 잠시 바벨론을 맡긴 것이다. 그래서 메대왕 다리오가 갈대아나라를 얻게 된 것이다. 다리오는 바벨론지역까지를 4년간 통치하다가, 느부갓네살왕이 정신이 돌아보자(B.C.571년) 바벨론 나라를 다시 자신의 매형인 느부갓네살에게 돌려주게 된다.
3. 메대의 두 총리는 왜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계획했을까?
이처럼 메대왕 다리오(아스티게아스)의 손에 어느날 갑자기 바벨론(갈대아) 땅이 주어진 것이다(단5:31). 그러자 넓은 땅덩어리를 다스리기 위해 메대왕 다리오는 그 땅을 120개 도로 나누어 각기 고관들(태수들)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고, 그들 위에 3명을 총리를 두어서 자신의 직무를 보게 하였다(단6:1~2). 그런데 그중에 다니엘이 바벨론지역의 총리로서 발탁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출중함을 메대왕 다리오가 금방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리오왕이 세 명의 총리들 가운데 한 명을 그들 위에 두어서 전국을 다스리게 하려 하자, 나머지 두 명의 메대나라의 총리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모략을 꾸미게 된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총리를 메대의 두 총리 위에 둔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용납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다니엘로부터 고발한 근거를 찾고자 모든 것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업무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어디에서도 그를 책잡을 만한 데가 없었다. 왜냐하면 다니엘처럼 깨끗하고 성실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뇌물을 받지 않고 자신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충성된 관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니엘이 믿고 있는 신앙을 빌미로 고발거리를 만들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그때부터 30일동안 왕 이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구하는 자를 사자굴 속에 던져넣기로 하자는 제안이었다(단6:6). 그리고는 왕께는 이미 모든 신하들이 그것을 동의했다고 거짓말을 둘러대면서 말이다. 왕은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두 총리들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고치지 못할 메대와 바사의 규례로 삼기 위해 도장까지 찍게 된다. 이처럼 어디에서 시기질투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이처럼 거짓말의 아비 마귀로부터 쓰임받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4. 성도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잠깐만 성도가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가야하는지에 관해 고민해보도록 하자. 다니엘은 어떻게 살았는가? 아직도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믿음 좋고 성실한 자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주의 종의 길을 가라고 권면한다. 하지만 그것은 좀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진짜 믿음좋고 성실한 일꾼이 있다면 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다니엘처럼 살아서는 아니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니엘처럼 신앙으로 똘똘 뭉쳐쳤지만 믿지 않는 상전과 상대하여 그들에게 삶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항상 맞는 답은 아지미나 이 땅에는 에스겔선지자 몇 사람이면 족하다. 이 땅에는 수많은 다니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다니엘이 필요한가? 그것은 첫째, 불신 상전이 보아도 인정할 만큼의 성실함과 충성된 성도가 되어야 한다(단6:4). 자기분야에서 최고업무수행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신앙이 돈독한 자가 필요한 것이다. 다니엘은 메대왕 다리오가 바벨론 나를 얻음과 동시에 탐을 냈던 바벨론의 고위관리였다. 아니 자신이 그동안 데리고 있었던 두 명의 총리보다 더 탐을 냈던 인물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고자 했던 두 총리의 입술에서 나온 말을 들어보자.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과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6:4)" 둘째, 우리가 가진 신앙상의 이유 외에 다른 고발거리가 없는 성도라야 한다(단6:5).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신앙상의 이유로 억울함을 당할 수도 있고, 고난과 환난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기뻐하라. 그러한 일은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서 다른 고발거리가 없는 자는 진정 복있는 자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적으로는 일에 대한 성실함이 요청되며, 내부적으로는 돈독한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이런 자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이다.
5. 다니엘은 어떻게 되어서 사자굴 속에서 살아서 걸어나오게 되었는가?
다니엘을 없애고자 만든 금령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다리오왕에게 곧이어 다니엘이 끌려 나오자, 다리오왕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금령을 어긴 현장범으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그때부터 30일동안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도, 자기집에 있는 2층다락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그것도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단6:10). 어떤 사람은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80대중반이므로 그가 이제 죽을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냥 포기한 채 기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39세~45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바벨론에 붙잡혀오던 때가 14~20세정도였고(B.C.599년), 두 명의 총리로부터 다니엘이 고발조치를 당한 때가 다리오왕 원년(B.C.574년)이었기에, 이제 다니엘의 나이는 중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던 것이다. 그렇다. 다니엘은 앞으로 창창히 일할 나이인데도, 그렇게 하면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각오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전에 하던 대로 말이다. 날마다 기도하는 습관은 참 좋은 것이다.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계시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내 자초지종을 들은 왕은 아연실색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자기가 만든 법으로 인하여 자신이 가장 총애하던 충신이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왕은 다니엘을 살려보기 위해 오후내내 방법을 모색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신하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진다. 그러자 다리오는 사자굴 속에 다니엘을 쳐넣도록 허용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니엘의 뒤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 것이다(단6:16)"
다리오가 얼마나 다니엘을 잘 보았으면 그리고 얼마나 다니엘의 신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확신했더라면 이러한 고백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는 다니엘이 굴속에 떨어진 뒤, 한 숨의 잠도 자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는 곧장 사자굴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슬퍼하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단6:20)" 그때 굴 속에서 다니엘의 음성이 들려온다. "왕이시여, 만수무강하옵소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닫으셨음으로 사자들이 나를 해치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가 죄가 없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왕에게도 어떤 해를 끼친 일도 없습니다(단6:212~22)" 그렇다. 대제국의 왕이라도 결코 다니엘을 지켜낼 수 없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지켜주셨던 것이다. 그러자 왕은 심히 기뻐하면서, 그를 굴에서 끌어올리게 한 후, 오히려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과 그의 처자들까지 그 굴속에 집어넣게 한다. 거짓모함죄를 그들에게 물은 것이다. 그리고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조서를 전국각지에 내려보낸다. "누구든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 떨며 두려워할지어다.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요, 그의 왕국은 멸망하지 아니하며, 그의 권세는 영원할 것이다. 그는 구원도 하시고 건져내기도 하시며, 그는 하늘과 땅에서 이적들과 기사들을 행하시는 이시로다(단6:26~27)". 어찌 이방제국의 왕의 입에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신앙고백이 그냥 튀어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다니엘은 왕에게 신임을 얻고 있었고, 그가 가진 신앙도 진짜라는 것을 왕이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6. 나오며
언제 어디서든 꼭 두어명의 악인은 있기 마련이다. 거짓말의 아비 사탄마귀가 사람을 들어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마귀의 포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서는 세상의 상전에게 충성해야 하겠지만,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만큼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야 한다. 대적자들은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서 핍박하거나 죽이려고 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조를 지키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위험한 곳에서 지켜주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 주님에 대한 절대신앙고백이야말로 우리에게 절대기적을 가져오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고로 내가 죽음 앞에 선다고 할지라도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죽고 사는 것이 다 주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마10:28). 그러므로 언제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을 택하라. 그것이 복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일반은총으로 주어진 세상의 권력자(상전)에게도 우리가 복종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 둘의 명령이 겹치게 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의 법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면 당장에는 위험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최종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형통의 축복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동일하게 우리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이다.
2020년 04월 22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