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무수한 산들 중에서 왜 모리아라는 땅의 산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던 것일까? 그리고 아브라함이 번제시험을 통과하고 났을 때에, 왜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지었던 것일까? 과연 '모리아산'과 '여호와이레'는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무수한 타작마당 중에서 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그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리라고 했던 것일까? 이 모든 비밀이 한꺼번에 풀리는 단서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 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1:1)'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구원의 두 개의 관문이 왜 '믿음과 회개'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1. 들어가며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것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 그리고 장차 하나님께서 행하실 미래의 계획까지도 알려주실 사건들이 있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은 바로 그러한 비밀스러운 일들 가운데 하나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던 장소인 모리아산에는 어떤 하나님의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오늘은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을 통해서, 여호와 이레의 참뜻을 살펴보며, 그것이 어떻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예루살렘 골고다언덕으로 연결되는지 그 하나님의 구속사적 비밀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독교인들 사이에 잘 알려진 단어 '여호와 이레'는 무슨 뜻인가?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이라고 창22:14의 각주에 적혀 있다(창22:14). 그런데 이 뜻은 의역에 해당하며, 원래의 뜻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성경을 원문으로 본 자는 이 단어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단어를 직역해보면, 성경에 의역되어있는 뜻과는 약간 다른 뜻인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 이레"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라고만 이해했던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번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까지의 계시에 의하면 그 정도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주님 오실 때가 다 되다보니, 원래의 뜻이 거의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오늘은 '여호와 이레'의 원래의 뜻을 찾아보고, 그것이 유래된 모리아산에서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비밀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여호와 이레"의 본 뜻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여호와 이레"의 본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라기보다는 "여호와께서 그 자신을 보이실 것이다"는 뜻이다. '이레'라는 단어가 '보다'라는 히브리어 '라아'에서 왔기 때문이요, 동사 니팔형(중간태, 단순형) 미완료구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이레"의 본 뜻은 "여호와께서 (번제에 쓸 어린 양을) 준비하신다"라기보다는 "여호와께서 자기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 양으로) 보여주실 것이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으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결코 틀린 진술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더 엄밀히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나타내 보이실 것이라는 뜻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다는 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의 정확한 뜻인 것이다.
3. 아브라함이 알게 된, 구원에 관한 놀라운 비밀
그렇다면, 이와같은 사실 곧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실 것임을 과연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을까? 그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아브라함이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그가 그의 아들을 바칠 장소로 지정해준 곳이 '모리아'의 한 산이었기 때문이다(창22:2). 그리고 또하나는 "불과 나무는 있지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아들 이삭의 질문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창22:8).
4.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한 장소,모리아산의 비밀은 무엇인가?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더러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던 장소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그곳은 창22:2에 나온 것처럼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이다. 이름하여 '모리아산'이다. 그렇다면, '모리아'란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놀랍게도 '여호와 이레'는 뜻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모리아'는 히브리어로 '보다'는 뜻의 '라아'라는 단어에다가, 하나님을 뜻하는 '야흐'라 합쳐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모리아'는 '라아야흐'인 것이다. "하나님이 보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나타내 보이신다는 뜻일까? 그것은 아들 이삭의 질문에 대한 아브라함의 답변속에 나와 있다. 그때 아들 이삭이 물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지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창22:7)" 그러자 아버지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준비하시리라'는 단어도 히브리어로 '라아'라는 단어다. 그러므로 창22:8의 말씀을 원문에 좀 더 가깝게 직역해 보면(한글KJV),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보이실) 것이다."이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당신의 아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아들의 신분으로 오시어 그것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직접 번제할 어린양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그 일이 일어나기 약 2,000년전에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할례언약 이후에 변화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뭔가를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창17장의 할례언약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되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약속도 믿지만 자기자신의 생각도 믿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만 자신의 생각을 따르다가 하나님을 13년동안이나 잃어버렸던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자신의 나이가 99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할례의 언약을 제정하시자, 할례를 받은 후,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즉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달라지자,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대하는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친구처럼 아브라함을 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듣고 조카 롯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출해주려 직접 사람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그런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사람 앞에 나타나신 것은 이 일 빼고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혹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기록된 데를 찾아보면, 천사가 대신 왔고 천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경우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창18장을 보면 다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게 그날 그곳에 찾아가셨음을 언급하심으로 확증된다(요8:40,56,58). 그날 어떻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까? 그날 여호와께서는 천사 두 명을 대동하고 나타나셨다. 그때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려는 것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그렇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이후부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속내를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부께서 성자를 십자가에서 번제물로 받으실 것을 아브라함은 일찍이 알고 있었고, 사실 성자로서 하나님 자신이 오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요8:40, 56~58).
5. 숫양이 아니라 사람 제물로서만이 인류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을 알았던 또다른 인물이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숫양과 같은 번제물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번제물로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다. 다윗은 아브라함의 10대후손으로 약 천년 뒤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도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말씀을 들었다. 그것을 시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시40:6~7)" 여기서 '나'는 일차적으로는 다윗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메시야'를 의미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4-10)"라고 기록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숫양도 예표일 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다는 뜻이다.
6.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깨달았던 다윗
또한 다윗은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바치려했던 장소,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당신자신을 제물로 바치실 장소와 아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산을 여부스족속 오르난으로부터 사서 하나님께 봉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요, 거기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속죄제사를 드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대하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대하3:1)" 그렇다. 다윗도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치려했던 바로 그 장소를 오르난(혹은 아라우나)으로부터 금600세겔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으며, 거기에서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림으로서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았던 사람이다. 당시 다윗은 인구조사를 행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백성을 전염병으로 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기 위해 제사를 드렸으니, 그 제사로 인하여 전염병이 그쳐질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다윗은 제사와 회개 사이의 놀라운 영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이때 다윗은 제사보다도 진정한 회개와 통회하는 마음이 있어야 죄를 사함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시편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시51:16-19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7. 모리아산은 두 가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모리아산은 '여호와 이레'와 같은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보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자신을 번제할 어린양으로 보이신다는 뜻이다. 일차적으로는 번제할 어린양은 이삭이자 수풀에 걸린 숫양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요1:29).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속죄제사가 베풀어짐으로 사람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려진다. 그렇다. 앞의 공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뒤의 공은 다윗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둘 다 같은 장소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얻어, 속죄할 어린 양의 비밀을 알았고 회개의 비밀도 알았던 것이다.
8. 나오며
사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믿는 것이며, 또 하나는 자신의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앞의 일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계시되었고(창22:1~19), 뒤의 일은 다윗을 통해 계시되었다(대상21:1~30).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제대로 알았던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고, 다윗은 사람이 죄를 지었어도 회개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회개의 장본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첫째는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어야 하며, 둘째는 다윗에게 체험했던 회개를 통해서만이 심판이 멈추게 된다는 것을 알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맨 첫장 첫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