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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LRVzCsB8Sms
날짜 2018-01-05
본문말씀 고린도후서 13:5(신약 300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웨슬리안주의, 구원의 안전성, 구원을 잃어버릴 위험성,구원을 잃어버리는 시기, 끝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구원은 과연 잃어버릴 수가 있는 것인가? 누구든지 한 번 쯤은 생각해 봄직한 주제다. 만약 구원을 잃어버린다면 알미니안주의자들처럼 하루에도 구원이 왔다갔다 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환경에 따라 흔들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죄된 본성을 이겨야 하고, 마귀의 유혹과 핍박도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만약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는 회개치 못한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안전한 것이라고 하는 칼빈주의의 주장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은 안전하며, 한 번 얻은 구원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들은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게 사실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한 번 구원이 과연 영원한 구원인지, 그리고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인지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구원을 잃어버린다면 언제 잃어버리는지까지 살펴볼 것이다. 특히 문맥과 헬라어원문을 들여다 볼 것이다. 옳고 그름의 최후의 판단의 잣대는 어디까지나 성경이니까 말이다.

 

1. 들어가며

  구원은 잃어버릴 수 있는가? 어떤 이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구원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고 안전하다고 말한다. 나름대로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분의 말씀을 들오보면 그 말씀이 맞는 것 같고, 저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느 쪽이 아니라 양쪽 다 맞는 주장인가? 그러나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가 맞는 주장이라면 다른 하나는 틀린 주장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오늘은 사람이 얻은 구원을 과연 잃어버릴 수가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만약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것을 언제 잃어버리는 것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없는지를 구분하면 몇 가지 기준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하여는 두 가지 신학적인 관점이 있다. 하나는 칼빈주의의 관점이고, 또 하나는 알미니안주의 관점이다. 칼빈주의자들은 한 번 얻은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르쳐준다. 그러나 저마다 성경적인 근거를 들어가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누가 옳은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칼빈주의에서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면, 알미니안주의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동참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주장은 서로를 향하여 자신이 옳고 당신이 틀리다면서 거의 평행선을 이루며 반박한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몇 가지 분별기준이 있기는 하다. 첫째, 교리를 먼저 만들어놓고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성경을 있는 그대로 말하려 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둘째, 인용된 성경구절을 살펴보되, 문맥을 무시하는 성경인용인지 문맥과 함께하는 성경인용인지를 보면 어느정도 알 수 있다. 만약 문맥을 떠나서 어떤 성경구절만을 뽑아서 교리적인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주장일 가능성이 크다. 셋째, 무엇보다도 원문성경을 살펴보면 누가 바른 주장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떤 말씀은 한글성경이나 영어성경만으로는 그 뜻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는 원문성경을 찾아보아야 한다. 신약성경이라면 헬라어원문성경을 살펴보되, 보다 더 원문에 가까운 대문자사본을 보아야 한다. 이상의 관점을 통해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칼빈주의 주장도 맞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억지 주장이 많으며, 알미니안주의는 상당히 성경에 부합한 것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틀린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주장을 따라가야 하는가?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칼빈주의를 따라가서도 아니 되며 알미니안주의를 따라가서도 아니 된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성경만을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사도들이 증거했던 성경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특히 성경중에서도 문맥을 따라 해석하 것을 따라가야 하며, 기왕이면 원문성경을 따라가되, 대문자사본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은 무슨 말씀을 근거로 한 번 얻은 구원은 안전하며 구원에서 탈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가? 그러한 말씀은 무수히 많다고 말하며, 그 말씀중에서 대표할 수 있는 구절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말씀으로는 이제 살펴보게될 5가지 말씀들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칼빈주의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구절들을 헬라어원문으로 보았을 때 제대로 된 뜻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적용하고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구원은 언제 잃어버리게 되는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3. 구원의 안정성에 관하여 칼빈주의자들이 언급한 중요말씀들의 진위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구원의 주권은 인간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값없이 거저주시는 구원을 주었다가 빼었다가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한 번 얻은 구원은 안전하고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의 근거로서 다음과 같은 중요성경구절을 언급한다. 요5:24, 요6:37~39, 요10:28~29, 롬8:37~39 그리고 마지막으로 엡1:3~5을 언급한다. 하지만 진짜 그들의 주장을 이 성경구절이 증언해주고 있는 것일까? 이제 이 구절들을 하나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요5:24의 말씀이 과연 한 번 얻은 구원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음을 증언하는 구절로서 합당한지를 살펴보자.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칼빈주의자들은 말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분명 영생을 얻었으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상태에 있으니, 이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며, 한 번 얻은 구원은 잃지 않을 것이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데, 그것은 영원히 주신 것이지, 그가 믿고 있을 때에는 그에게 영생을 주시지만, 믿고 있지 않을 때에는 영생을 빼앗아가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헬라어원문에 따른 주장이 아니며, 정말 억지주장이다. 왜냐하면 첫째, 헬라어원문에 의하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자는 한 번만 들었던 자가 아니라 계속해서 듣고 있는(현재 분사 능동태 구문) 자를 가리키며, 믿는 것도 한 번으로 단번에 믿은 것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고 있어야 한다(현재 분사 능동태 구문)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번 믿은 것이 그의 구원을 영원히 지속시켜주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한 번에 오는 것 같지는 않다(믈론 그러한 자들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순간까지는 계속해서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것이 믿어지는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그 사람은 거듭태어나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순간에 그에게 없던 하나님의 영생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거듭남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거듭남이란 물과 성령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다시 태어나는가? 거듭남이라는 것은 영적인 새로운 출생을 가리키는 것인데, 요한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분배될 때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의 뱃속으로부터 태어날 때 그 사람은 부모의 생명을 분배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거듭 태어났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생명을 그가 분배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때 그가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고 그분을 자신의 마음 속에 모셔들일 때이 영생이 주어지며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물론 회개도 동반된다. 다시 말해,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또한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해 행하신 속죄의 사건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구원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지난날의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그분을 자신의 마음 속에 모셔들일 때에 거듭남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을 성결교에서는 "회심"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이처럼 회심은 믿은 즉시 일어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주님을 모셔들이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 거듭남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 무소부재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그 사람 속으로 들어오신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분배되는 것이다. 그때 그는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듣다가 그분을 믿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순간에 거듭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주의자들이 잘못 설명한 지금부터다. 그에게 주어진 영생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그에게 영원히 주신 생명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거듭날 때 사람은 분명 영원한 생명(영생)을 분배받는다. 그러나 그 영생에 영원이 그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받은 생명은 아버지의 생명이요,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이요, 죽을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영생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그 영생을 영원히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거듭 태어나서 영생을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그 영생이 영원히 그 사람에게 있을른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어떤 사람이 듣고 믿어서 영생을 소유했지만 잘못하가는 그 영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믿음과 회개로 얻은 영생을 사람이라도 그는 언제 영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그 사람이 죽을 때다. 죽고 나서 주님 앞에서 서서 심판받을 때에 영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비록 그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누군가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어서 자기 안에 영생을 소유하고 있던 자라도, 결국 이 세상에서 주님을 등지고 주님을 부인한다든지, 아니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국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영생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날에는 주님께서 당신을 부인했던 자에게는 분명히 주님도 그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마10:32~33). 또한 그날에 지는 자는 이미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5). 그러므로 한 번 믿음을 고백하여 영생을 소유했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그는 어 떠한 위기상황이나 핍박과 환난에 직면한다고 하더라고 절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서는 아니 된다. 더욱이 죄를 지었는데도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다가 회개하지 못한 죄 때문에 영생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은 맞다. 그래서 거듭나는 것이다. 하지만 영생이 영원히 그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심판의 날에 그 사람의 믿음생활여부에 따라 그도 주님으로부터 부인되어질 수 있고, 그 사람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렇다. 이미 믿음과 회개로 얻은 구원이라 할지라도 그가 만약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심판의 때에 주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그를 모른다고 하시면서, 비록 그가 영생을 소유했전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마7:21~23).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둘째, 요6:37~39절의 말씀을 통해서 칼빈주의자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고 극구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이 그러할까?

요6:37-3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칼빈주의자들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는 자는 다 예수님께로 가서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때 수님은 자기에게 오는 자를 결코 하나도 쫓지 아니하고 잃어버리지도 아니할 것이며,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시킬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구원은 안전하며 구원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는 주체로서, 자기의 아들을 보내어 죽이기까지 하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손을 절대 놔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6:37과 39의 말씀은 그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말씀이 아니다. 헬라어원문에 그렇게 안 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을 번역하던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 번역해 놓은 것이다. 즉 헬라어 성경에서 영어로 번역하거나 한글로 번역할 때 원문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칼빈주의자들이 믿고 따르는 교리처럼 번역해놓은 것이다. 37절이나 39절에 나오는 사람들 곧 "내게 오는 자"와 "내게 주신 자"는 다 사람이 아니다. 중성명사이면서 단수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럼, 헬라어원문에 따라 요6:37절과 39절을 직접 번역해보자.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것(중성단수)이 나를 향하여 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나아오고 있는 이(남성단수)를 나는 결코 내쫓지 않을 것이다.

요6:39 그런데 나를 보내셨던 이의 뜻은 이것이다. 그분이 [이미] 나에게 주신채 있는 모든 것을 그것으로부터 내가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마지막 날에 그것을 일으켜세우는 것이다.

  그렇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는 특별한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이미 주셨거나 그때도 주시고 있는 것(중성단수)이 있었다. 그것은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것(중성단수)으로서,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서는 구원얻기 위해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를 받아들이고 보호하고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중성단수)으로는 지혜나 성경지식, 능력이나 권세, 성령의 기름부음 등이 예수님게서 다다르고 있었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구원받으러 나아오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이 본 뜻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요6:37과 39절에 나오는 단어인 중성단수명사를 그만 남성단수명사로 번역해버린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이제는 요한복음 10:28~29의 말씀을 보자.

요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칼빈주의자들은 말한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시는 자들 곧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자들에게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는데, 한 번 주신 영생을 결코 파괴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또한 영생을 얻은 자들을 그 누구도 예수님의 손으로부터 빼앗아갈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을 예수님께 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빼앗아 갈 수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2가지 측면에서 치명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대상에 대해 문맥을 무시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주의자들은 28절에 나오는 "그들"을 "만세전에 영생을 얻기로 예정된 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라고 말한다. 그럼, "그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문맥에서 찾아야 한다. 27절에 보니, 그들은 바로 양들이다. 어떤 양들인가? 계속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면서(현재분사능동태구문),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 이들(현재분사능동태구문)이 그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세전에 예정된 자로서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보내주시고 있는 자들을 결코 뜻하지 않는다. 문맥에 따르면,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서 구원받기 위해 주님께로 나아와 말씀을 듣고 있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런 자가 선택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둘째로, 요10:29의 말씀에 대한 칼빈주의자들의 성경인용은 잘못된 성경번역문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29절에 나오는 "그들"은 헬라어원문에서 사람들(남성복수)가 아니라 "~것"이라는 중성단수명사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도 마찬가지로 요6:37과39절처럼 번역상의 오류가 있는 대표적인 문장이다. 더욱이 헬라어소문자사본에서는 여기에 나오는 "그들(사람들)"이 아니라 "~는 자" 곧 사람(남성,단수)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헬라어대문자사본에서는 "~것(중성단수)"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사본학을 공부해보면 알 수 있지만, 소문자사본은 한참 후대에 속한 사본이다. 적어도 11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문자사본은 4세기부터 나온 것으로, 보다 더 오래되고 원본에 가까운 사본들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단연코 대문자사본에 따라서 번역해야 옳다. 그런데도 이 문장을 소문자사본(사람)을 뛰어넘어 번역자들 맘대로 남성복수명사(사람들) 번역하는 성경책이 대부분(개역개정,표준새번역,킹제임스,킹제임스흠정역,킹제임스완역판,우리말성경,쉬운성경,한글흠정역,현대인의성경,가톨릭,고영민저 원문번역주석성경, KJV,NIV,ASV,ESV,Darby, Web, 등등)이다. 심지어 헬라어원문에서 직역했다는 헬라어원문직역성경도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번역하고 있다. 단지 영어성경에는 ISV성경과 한글성경에서는 공동번역이 그리고 원문번역성경으로는 허성갑역 직역성경이 그나마 원문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 요10:29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ISV] John10:29 What my Father has given me is more impertant than anything, and no one can snatch it from the Father's hand

[허성갑역 직역성경] 요10:29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은 어떤 것보다 더 크니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잡아챌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큰 왜곡이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헬라어대문자사본에 의하면, 요10:29의 중성단수명사(~것)가 갑자기 남성복수명사(그들, 사람들 혹은 양들)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주시고 그 사람만 예수님께서 받아서 구원할 것이라는 칼빈주의의 교리와 성경이 맞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요10:29의 말씀을 헬라어대문자사본으로 번역해보자.

요10:29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이미] 주신 채 있는 것(중성단수)는 모든 것들(중성복수)보다 더 크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도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계속해서 잡아챌 수 없다(잡아챌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 요10:29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님에게 주시려고 했던 예정된 자가 따로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예수께서 주신 것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구원사역을 완성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주신 어떤 것이었다. 이 말씀도 요6:37과 39절의 말씀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은 억지 왜곡인 것이 드러난다. 잘못 번역된 성경을 자기들의 교리나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보다 더 원문에 가까운 헬라어대문자사본에는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헬라어를 모르는 자는 과연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넷째, 또한 칼빈주의자들은 롬8:37~39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아무것도 하나님의 사랑에게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했으니, 한 번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러니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롬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것은 억지주장일 뿐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롬8:37~39의 말씀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언급한 것이지 우리의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뜻을 단절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것은 바울의 확신이고 믿음인 것이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은 아니다. "내가 확신하노니"라고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셋째로, 어떤 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지지 않는지는 문맥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바로 앞구절에 의하면,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대 놓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도 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롬8:37~39절의 말씀도 구원의 안정성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바울의 바램이요, 어떤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바울의 권면인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엡1:3~5의 말씀을 보자. 칼빈주의자들은 이 말씀에 의거하여 하나님께서 거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만세전에 우리의 구원을 예정해놓았으니 우리가 얻은 구원은 안전하며 잃어버릴 수 없다고 한다.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지만 그것도 절반은 잘못된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만세전에 세워놓은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을 믿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인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어떤 개인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했다는 말씀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구원에 관한 예정이 있는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혹시 나온다면 어떤 개인에 대한 쓰임예정일 뿐이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를 어떻게 쓰시겠다고 하는 사역예정일 뿐, 구원예정은 단 한 건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을 거저 선물로 주신다는 말은 맞다. 우리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구원을 위한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 아니 이미 해놓은 상태다. 그래서 그 사실을 오늘 우리들에게 들려주시어, 그 사실을 듣고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하여 2천년전에 행하신 일들을 믿도록, 은혜로 부르시고 초청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시대 이후에는 누구든지 구원의 초청대상이 되고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인류구원을 위해 행하신 일을 믿고 회개하기만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만세전에 예정하신 일은 없다. 칼빈주의의 만세전예정은 틀린 것이다.

 

4. 나오며

  그렇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고 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우리들을 그 구원을 받도록 지금도 초청하고 계신다.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의 기도 덕분에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통해서 혹은 사람의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구원받을 자를 초청하고 계신다. 그러나 초청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고서, 나는 장가갔으니 안 되겠다고 하고, 나는 소를 샀으니 소에게 가보아야겠다고 하고, 나는 밭을 샀으니 밭에 가보아야겠다고 하면서 주님께로 나오기를 거절하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와 주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진실로 회개하고 믿었다면 그는 분명 영생을 자기 안에 가지게 될 것이다. 사실 믿을 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사람 안에 인격적으로 들어오신다. 그때에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가지고 들어오신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영생을 갖게 된다. 그런 자를 거듭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만약 거듭난 자가 그날 죽는다면 그는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살아가야 한다. 그 기나긴 인생 여정의 때에, 만약 무슨 일이 생겨서 주님을 부인하게 되고 그것을 지속하고 있다면 그는 결국 심판받는 주님으로부터 부인당하고 말 것이다(마10:32~33). 그리고 만약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그 죄 때문에 결국 그날 버림받게 될 것이다(마7:21~23).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이다(계3:5).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는 그날까지 한 번 주신 영생을 주었다 빼앗았다 하지는 않으신다. 하지만 그 생명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수록, 죄를 지을수록 그 생명이 쇠약해지고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는 날 그의 생명은 결국 그를 떠나고 말 것이다. 성령께서는 결코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과연 하나님의 생명이 생생하게 타오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후13;5).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시험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내 안에 믿을 때에 들어온 하나님의 생명이 활활 타올라 활동하고 있는 것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가 결국 죽을 때에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순간순간마다 구원 안으로 초청을 받지만 정말 택함을 입고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다(마22:14).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회개와 믿음으로 이미 얻은 자신의 구원을 이제는 두렵고 떨림으로 슬기롭게 완성해가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지은 죄가 생각나거든 즉시 회개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가 이미 얻은 영생을 지켜낼 수가 있고, 죽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1월 5일(금)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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