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1(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탕감해주셨다는 말씀의 의미는?(마18:21~3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TYUOawRAayM [혹은 https://tv.naver.com/v/32116415 ]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전에 지었던 모든 죄는 싹 다 없어지는가? 아니면 없는 것처럼 여겨주시는 것인가? 어떤 분은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짓고 있는 죄와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를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죄야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분의 피로 용서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재 짓고 있는 죄를 용서받았다거나 혹은 미래에 지을 죄도 용서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 아닌가 싶다. 아직 짓지도 아니한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실체가 없는데도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하늘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며, 동시에 이 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런데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동시에 죄를 탕감받았다는 말도 종종 쓰게 된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탕감받았다는 말은 과연 같은 말인가 아니면 다른 말인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과거의 죄는 과연 어떻게 처리되며, 또한 현재 짓고 있는 자범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까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2.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게 될 때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육안으로 볼 때에는 아무런 변화를 찾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영의 세계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도 역시 있다.
먼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살펴보자.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될 때에 하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2가지 일이 일어난다. 첫째는 우리가 지었던 과거의 죄들이 예수님의 피로 덮여진다는 것이다. 이때 과거에 내가 지었던 죄들은 다 행위책에 이미 기록된 채 있는데, 그 행위책에 기록된 채 있는 나의 죄들을 예수님의 피가 그대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죄를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죄인은 죄는 있으나 죄가 없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둘째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이다. 누가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느냐 하는 것의 가장 확실한 잣대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느냐이다. 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계21:27). 그런데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이 된다.
둘째,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 땅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게 되면 이 땅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성령께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때 성령은 우리의 존재 중에 영 가운데로 들어오신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타고난 생명에다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듭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덧대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하늘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채 있는 사람이며, 이 땅에서는 자기 안에 성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3. 회개에는 어떤 종류의 회개가 있는가?
우리는 보통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회개를 한다. 그런데 회개의 종류에도 시간적으로 볼 때에 2가지 종류의 회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처음에 한 번 하는 회개로서, 단회적으로 회개하는 회개 곧 '회심으로서의 회개'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날마다 짓는 죄를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반복적인 회개'가 있다. 그럼 이 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첫째, '회심으로서의 회개'는 일생에 한 번 하는 회개로서, 자신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 행하는 회개가 바로 이 회개다. 이전에 하나님이 계신지도 모르고 살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는 회개가 바로 '회심으로서의 회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개는 일평생에 한 번 하는 회개다. 우리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통해 거듭나게 되고 하늘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게 된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성령을 받아 그분와 함께 살게 된다.
둘째, 그런데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자백하는 회개'가 있다. 이것은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한 사람이 다시 죄를 짓게 될 때,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행하는 회개로서, 죽는 날까지 행하는 회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예수님 이외에 죄짓지 않고 살아갈 완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이라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그냥 놔두어서는 아니된다.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통하여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회개치 않은 죄 때문에, 죽을 때에 성령이 떠나가면서 행위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 그리고 성밖으로 쫓겨나거나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죽는 그날까지 회개를 해야 한다.
4. 예수님을 믿을 때에 과거에 지었던 죄들은 어떻게 처리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 과거에 지었던 죄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탕감받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마18:27,32). 그렇다면, '탕감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탕감(蕩減)'이라는 단어는 한자어로서, 흔들 '탕' 자에, 덜 '감' 자다. 이는 빚이나 요금, 세금 따위의 물어야 할 것을 흔들어서 덜어준다는 뜻이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삭쳐준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는 빚을 덜어준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단어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탕감한다'는 단어는 그러한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으로 '탕감하다'는 단어는 '아피에미'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럼, '아피에미'라는 단어는 대체 어떤 뜻인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는 '내버려두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버리다'(고전7:11,12,13), '떠나다'(요4:3, 16:28), '내버려두다'(요14:18), '허락하다'(마3:15), '용서하다(사하다)'(마6:14~15, 약5:15, 롬4:7, 행8:12) 등으로 쓰인다. 그런데 빚이나 죄에 대해서 쓰일 때에는 이 단어의 뜻이 대부분 '사하다', '용서하다'의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탕감받는다'는 말은 '죄를 용서받는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18:21~35에 나오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에서도 이 단어는 두 번은 '용서하다'는 뜻으로 번역되었고(마18:21, 35), 두 번은 '탕감하다'는 뜻으로 번역되고 있다(마18:27,32).
5. '탕감받는다' 혹은 '죄를 용서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죄를 '탕감받는다' 혹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의 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그 죄를 일시적이지만 없는 것으로 여겨준다는 말인가? 우리는 '아피에미'라는 이 단어를 예수님께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셨는지를 알 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에서 그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갚아야 할 날짜가 되었을 때에 주인이 그를 불러내었다. 그런데도 그 종은 갚을 것이 없었다. 그러자 주인이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종으로 팔아서 그리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애원하면서 말했다. "주인이여, 내게 오래 참아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장차 갚을 것입니다."(마18:26). 그러자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놓아(풀어) 보내면서 그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의 아주 작은 빚을 진 자신의 동료 종을 만났다. 그리고는 그의 목을 조르면서 그 빚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동료 종이 엎드린 채 말했다. "나에게 오래 참아 주십시오. 그러면 장차 갚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가 빚을 갚도록 그를 옥에 가둬버렸다. 그러자 그의 동료 종들이 그것을 보면서 매우 마음 아파하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을 소상하게 주인에게 알렸다. 그러자 주인이 노하였다. 주인은 일만 달란트 빚졌던 종을 다시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악한 종이여, 네가 간청하니 내가 네게 모든 빚을 탕감하여 주었는데, 너는 왜 네게 빚진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너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느냐?"라고 하면서, 그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옥졸들에게 넘겨주라고 하였다. 여기서 '옥졸들'이란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고문을 주는 사람, 형벌을 주는 사람'이란 뜻을 가졌다. 그렇다. 만약 그가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었더라면 그도 역시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채 계속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행하지 아니함으로 그는 오히려 형벌주는 자에게 끌려가서 형벌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탕감받는다'는 뜻이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지은 죄들을 아주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빚문서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을 죄에 적용하면, 우리가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기록된 행위책에서 찢어서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빚갚는 것을 일시적으로 유예해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빚문서를 없애버릴지에 대해서는 빚을 탕감받은 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처리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용서를 받은 것은 일시적인 용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서 과거에 지은 죄를 모조리 다 용서받기는 했어도, 우리가 그 뒤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다시 그 죄를 소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탕감받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6. 탕감받은 죄가 완전히 없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탕감받은 것'이다. 용서를 받기는 받았지만 일시적으로 유예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죄 용서받은 자답게 살지 않고, 죄 용서를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살지 않는다면 우리가 용서받았던 과거의 죄는 일시에 다시 부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자신에게 아주 작은 양의 빚을 진 자를 불쌍히 여겼더라면, 그는 계속해서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상태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는 날에는 그 빚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주인이 자신을 불쌍히 여김같이 자신도 자신에게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겼어야 했는데,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우리가 지었던 과거의 죄가 탕감받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고로 천국에 있는 행위책에서 내가 지은 죄의 목록들이 완전히 찢겨져 없어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피에 덮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탕감받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용서받은 자처럼 남들의 죄들도 용서해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용서받은 자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은혜받은 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날, 우리의 죄를 덮고 있는 예수님의 피가 걷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죄사함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께서도 우리 속에서부터 떠나가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말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탕감받는 것'이다. 죄가 있지만 없는 것처럼 여겨준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하나 모든 죄를 다 고백해야만이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받을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지은 죄들이 얼마나 많으며, 또한 생각나지도 않은 죄들도 많이 있을텐데, 그 죄를 어찌다 하나도 빠짐없이 회개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낱낱의 죄를 다 회개해야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최초로 행하는 회개 곧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할 때, 그가 지었던 과거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다 예수님의 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들을 다 용서받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구원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이후에 방종을 하여 "나는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니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어"라고 하면서 죄짓고 살아간다면 그는 틀림없이 구원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때에 예수님의 피를 그 행위책으로부터 거둬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되셔서 피흘려 죽으셔야 했는가? 그것은 우리 죄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또 다시 죄를 밥먹듯이 짓고, 죄를 지어 놓고도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실 죄사함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결국에 구원이 취소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과거의 죄를 용서받은 것은 일시적인 조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죄들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죄를 다시 소환하지 않도록 이후에 죄를 용서받은 자답게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삶을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된다. 내게서 과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늘 살펴보아야 한다. 내게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거나, 열매가 없는데도 자신이 받은 죄사함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이후의 삶이 우리의 영원한 용서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래도 실수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 죄를 회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최종 관문은 '회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믿고 회개하자. 그리고 순종하고 충성하자. 그러한 자들만이 일시적으로 받은 용서가 영원한 용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01월 01일(주일)
정병진목사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전에 지었던 모든 죄는 싹 다 없어지는가? 아니면 없는 것처럼 여겨주시는 것인가? 어떤 분은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짓고 있는 죄와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를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죄야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분의 피로 용서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재 짓고 있는 죄를 용서받았다거나 혹은 미래에 지을 죄도 용서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 아닌가 싶다. 아직 짓지도 아니한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실체가 없는데도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하늘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며, 동시에 이 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런데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동시에 죄를 탕감받았다는 말도 종종 쓰게 된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탕감받았다는 말은 과연 같은 말인가 아니면 다른 말인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과거의 죄는 과연 어떻게 처리되며, 또한 현재 짓고 있는 자범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까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2.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게 될 때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육안으로 볼 때에는 아무런 변화를 찾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영의 세계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도 역시 있다.
먼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살펴보자.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될 때에 하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2가지 일이 일어난다. 첫째는 우리가 지었던 과거의 죄들이 예수님의 피로 덮여진다는 것이다. 이때 과거에 내가 지었던 죄들은 다 행위책에 이미 기록된 채 있는데, 그 행위책에 기록된 채 있는 나의 죄들을 예수님의 피가 그대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죄를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죄인은 죄는 있으나 죄가 없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둘째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이다. 누가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느냐 하는 것의 가장 확실한 잣대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느냐이다. 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계21:27). 그런데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이 된다.
둘째,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 땅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게 되면 이 땅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성령께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때 성령은 우리의 존재 중에 영 가운데로 들어오신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타고난 생명에다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듭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덧대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하늘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채 있는 사람이며, 이 땅에서는 자기 안에 성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3. 회개에는 어떤 종류의 회개가 있는가?
우리는 보통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회개를 한다. 그런데 회개의 종류에도 시간적으로 볼 때에 2가지 종류의 회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처음에 한 번 하는 회개로서, 단회적으로 회개하는 회개 곧 '회심으로서의 회개'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날마다 짓는 죄를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반복적인 회개'가 있다. 그럼 이 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첫째, '회심으로서의 회개'는 일생에 한 번 하는 회개로서, 자신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 행하는 회개가 바로 이 회개다. 이전에 하나님이 계신지도 모르고 살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는 회개가 바로 '회심으로서의 회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개는 일평생에 한 번 하는 회개다. 우리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통해 거듭나게 되고 하늘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게 된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성령을 받아 그분와 함께 살게 된다.
둘째, 그런데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자백하는 회개'가 있다. 이것은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한 사람이 다시 죄를 짓게 될 때,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행하는 회개로서, 죽는 날까지 행하는 회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예수님 이외에 죄짓지 않고 살아갈 완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이라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그냥 놔두어서는 아니된다.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통하여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회개치 않은 죄 때문에, 죽을 때에 성령이 떠나가면서 행위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 그리고 성밖으로 쫓겨나거나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죽는 그날까지 회개를 해야 한다.
4. 예수님을 믿을 때에 과거에 지었던 죄들은 어떻게 처리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 과거에 지었던 죄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탕감받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마18:27,32). 그렇다면, '탕감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탕감(蕩減)'이라는 단어는 한자어로서, 흔들 '탕' 자에, 덜 '감' 자다. 이는 빚이나 요금, 세금 따위의 물어야 할 것을 흔들어서 덜어준다는 뜻이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삭쳐준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는 빚을 덜어준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단어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탕감한다'는 단어는 그러한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으로 '탕감하다'는 단어는 '아피에미'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럼, '아피에미'라는 단어는 대체 어떤 뜻인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는 '내버려두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버리다'(고전7:11,12,13), '떠나다'(요4:3, 16:28), '내버려두다'(요14:18), '허락하다'(마3:15), '용서하다(사하다)'(마6:14~15, 약5:15, 롬4:7, 행8:12) 등으로 쓰인다. 그런데 빚이나 죄에 대해서 쓰일 때에는 이 단어의 뜻이 대부분 '사하다', '용서하다'의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탕감받는다'는 말은 '죄를 용서받는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18:21~35에 나오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에서도 이 단어는 두 번은 '용서하다'는 뜻으로 번역되었고(마18:21, 35), 두 번은 '탕감하다'는 뜻으로 번역되고 있다(마18:27,32).
5. '탕감받는다' 혹은 '죄를 용서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죄를 '탕감받는다' 혹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의 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그 죄를 일시적이지만 없는 것으로 여겨준다는 말인가? 우리는 '아피에미'라는 이 단어를 예수님께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셨는지를 알 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에서 그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갚아야 할 날짜가 되었을 때에 주인이 그를 불러내었다. 그런데도 그 종은 갚을 것이 없었다. 그러자 주인이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종으로 팔아서 그리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애원하면서 말했다. "주인이여, 내게 오래 참아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장차 갚을 것입니다."(마18:26). 그러자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놓아(풀어) 보내면서 그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의 아주 작은 빚을 진 자신의 동료 종을 만났다. 그리고는 그의 목을 조르면서 그 빚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동료 종이 엎드린 채 말했다. "나에게 오래 참아 주십시오. 그러면 장차 갚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가 빚을 갚도록 그를 옥에 가둬버렸다. 그러자 그의 동료 종들이 그것을 보면서 매우 마음 아파하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을 소상하게 주인에게 알렸다. 그러자 주인이 노하였다. 주인은 일만 달란트 빚졌던 종을 다시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악한 종이여, 네가 간청하니 내가 네게 모든 빚을 탕감하여 주었는데, 너는 왜 네게 빚진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너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느냐?"라고 하면서, 그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옥졸들에게 넘겨주라고 하였다. 여기서 '옥졸들'이란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고문을 주는 사람, 형벌을 주는 사람'이란 뜻을 가졌다. 그렇다. 만약 그가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었더라면 그도 역시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채 계속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행하지 아니함으로 그는 오히려 형벌주는 자에게 끌려가서 형벌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탕감받는다'는 뜻이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지은 죄들을 아주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빚문서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을 죄에 적용하면, 우리가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기록된 행위책에서 찢어서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빚갚는 것을 일시적으로 유예해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빚문서를 없애버릴지에 대해서는 빚을 탕감받은 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처리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용서를 받은 것은 일시적인 용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서 과거에 지은 죄를 모조리 다 용서받기는 했어도, 우리가 그 뒤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다시 그 죄를 소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탕감받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6. 탕감받은 죄가 완전히 없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탕감받은 것'이다. 용서를 받기는 받았지만 일시적으로 유예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죄 용서받은 자답게 살지 않고, 죄 용서를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살지 않는다면 우리가 용서받았던 과거의 죄는 일시에 다시 부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자신에게 아주 작은 양의 빚을 진 자를 불쌍히 여겼더라면, 그는 계속해서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상태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는 날에는 그 빚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주인이 자신을 불쌍히 여김같이 자신도 자신에게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겼어야 했는데,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우리가 지었던 과거의 죄가 탕감받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고로 천국에 있는 행위책에서 내가 지은 죄의 목록들이 완전히 찢겨져 없어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피에 덮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탕감받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용서받은 자처럼 남들의 죄들도 용서해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용서받은 자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은혜받은 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날, 우리의 죄를 덮고 있는 예수님의 피가 걷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죄사함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께서도 우리 속에서부터 떠나가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말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탕감받는 것'이다. 죄가 있지만 없는 것처럼 여겨준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하나 모든 죄를 다 고백해야만이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받을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지은 죄들이 얼마나 많으며, 또한 생각나지도 않은 죄들도 많이 있을텐데, 그 죄를 어찌다 하나도 빠짐없이 회개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낱낱의 죄를 다 회개해야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최초로 행하는 회개 곧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할 때, 그가 지었던 과거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다 예수님의 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들을 다 용서받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구원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이후에 방종을 하여 "나는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니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어"라고 하면서 죄짓고 살아간다면 그는 틀림없이 구원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때에 예수님의 피를 그 행위책으로부터 거둬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되셔서 피흘려 죽으셔야 했는가? 그것은 우리 죄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또 다시 죄를 밥먹듯이 짓고, 죄를 지어 놓고도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실 죄사함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결국에 구원이 취소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과거의 죄를 용서받은 것은 일시적인 조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죄들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죄를 다시 소환하지 않도록 이후에 죄를 용서받은 자답게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삶을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된다. 내게서 과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늘 살펴보아야 한다. 내게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거나, 열매가 없는데도 자신이 받은 죄사함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이후의 삶이 우리의 영원한 용서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래도 실수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 죄를 회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최종 관문은 '회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믿고 회개하자. 그리고 순종하고 충성하자. 그러한 자들만이 일시적으로 받은 용서가 영원한 용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01월 01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