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시기는 말세중의 말세다. 특히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신앙의 사사기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데로 행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거에 철석같이 진리로 믿고 있었던 것들이 사실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기도 하고, 과거에 거짓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진리인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말세의 끝자락에 살고 있다. 그럼 앞으로 우리 앞에 과연 어떤 시대가 펼쳐지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말세가 될수록 우리는 과연 어떤 신앙을 소유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은 말세에 붙들어야 할 우리의 참된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말세에 필요한 신앙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기본으로 돌아가는 신앙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과거에 장로교회에서는 개혁주의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마구 외쳤다. 그런데 그 개혁주의신앙이라는 것은 예수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칼빈주의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왜 칼빈주의로 돌아가야 하는가? 예수님의 말씀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대학시절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칼빈주의 신앙의 잣대로 맞추어서 거기에 맞지 않으면 베어내버리고 거기에 없는 것은 보태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낸 것이 칼빈주의였는데, 그 칼빈주의가 정통인 줄 알았고 그 칼빈주의가 진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는 이 칼빈주의가 참된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버릴 줄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야 비로서 하나씩 둘씩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이중예정론이 틀렸으며, 성도의 견인교리가 비성경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http://dongtanms.kr/xe/index.php?mid=board_HxGt80&document_srl=3933). 칼빈이라는 자가 대체 누구인가? 칼빈이 하나님이라고 되는 것인가? 왜 수많은 사람들이 다 칼빈에게 목을 메고 있는 것인가? 다른 것은 다 틀렸다고 해도 칼빈주의신앙은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칼빈주의 때문에 성도의 구원관이 잘못 정립되기에 이르렀고, 구원관이 잘못 정립되다보니 자기가 죄를 지어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교회가 되어버렸는데 말이다(http://dongtanms.kr/xe/index.php?mid=board_HxGt80&document_srl=11079). 그래서 이제는 목사가 다른 목사를 칼로 찔러도 자신은 예수믿는 사람이니 결국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니다. 이것은 잘못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하였고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너희는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의 의복을 깨끗히 빨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2:14).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도 않는 자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왜 그들은 모를까?
그렇다. 이제는 정말 기본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런데 이 말은 칼빈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 말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서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즉시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고 또 몇 년 아니 몇 십년의 시간이 흘러버린다면 그 벌어진 간격을 또 어떻게 메꿔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 주님께서는 가진 자는 더 갖게 하시고 가지지 못한 자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된다고 말씀하셨다(마25:29, 계22:11). 그러므로 이제는 기본 곧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러분은 기본이 잘 되어 있는 사람과 기본이 안 되어있는 사람과의 차이를 아는가? 그것은 시간이 말해준다. 기본이 제대로 되어있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장하고 더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어느정도까지는 성장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은 기대할 수가 없다. 기본 자세가 잘못 되어 있기에 나중에는 어떤 기술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과거처럼 칼빈주의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혹시 그것이 사도 바울의 신학이 되어서도 아니될 것이다. 칼빈이나 사도바울은 다 흠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전능자도 아니요 신적 존재가 아니다. 오직 사람이지만 전능하신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알라. 그러므로 그분이 말씀하신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바르게 가닦을 잡을 수가 있다. 그래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장할 수 있다.
오늘의 말씀인 요한계시록 22장 13절을 보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야말로 바로 전능자이시며,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에 여호와로 오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는 말씀은 과연 누구의 말인가? 16절에 보면, 그것은 "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곧 예수님이 구약의 여호와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신이 누구신지 말씀하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다(사41:4, 44:6, 48:12). 그렇다. 예수님은 분명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맞다. 하지만 그분이 바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시다. 사9:6을 보라. 그분은 아기이자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분이지만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여호와요 하나님이라는 기초를 제대로 닦아놓아야 한다. 그래야 아들하나님도 계시고 아버지 하나님도 계시니 어머니 하나님도 계시다는 이단의 가르침을 쉽게 분별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때는 성령님은 예수님하고는 다른 어떤 존재라는 주장이 있어왔다. 그래서 예수님도 믿어야 하지만 성령님도 믿고 영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과거에는 성령님이 곧 예수님이신 것을 잘 몰랐으니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해야 하고, 그분이 주시는 것을 따로 성령님께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얻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결국 은사주의에 빠져서 예수님이 없는 은사를 지금까지 쫓아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한편 바울의 칭의론의 잣대를 가지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판단하려고 시도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정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마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를 보라(마25:31~46). 어찌 이 예수님의 말씀을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바울의 칭의론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서 분별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오직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과 염소의 비유는 바울의 칭의론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야고보의 칭의론의 잣대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곧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가르침을 따라서 그 잣대로 양과 염소의 비유의 말씀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원론의 잣대가 오직 믿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것은 회개와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대속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 것을 시인하는 일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대신해주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데 회개하지도 않는 자를 예수믿었으니 구원받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구원의 확신교리라는 것이다. 아니다. 회개없는 구원은 결코 없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가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요14:6). 뿐만 아니라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의 문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요10:8~10). 그런데 베리칩종말론자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베리칩을 받으면 지옥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구원의 결정하는 잣대가 예수 이외에 또 어디에 있다는 것이다. 아니다. 이것은 사탄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것도 어떤 물체(베리칩)가 구원을 결정하는요소라고 말한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인가? 예수 이외에 절대 구원자가 없다. 예수 이외에 구원을 결정하는 요소는 없는 것이다.
또한 종말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만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예수께서 환난전에 오실지 환난후에 오실지 정답이 나온다. 그리고 그 날짜와 그 시간을 알 수 있을지 모를지에 대해서 정답이 나온다. 예수님은 환난후에 오신다고 했으며(마24:29~31), 그리고 그 날짜와 그 시간은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24:36). 그러면 정리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미혹하는 것이다. 천안 박은숙권사나 김여명목사에게 속지 말라. 그들은 작년 수장절에 환난전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불발되자 이제는 10월과 12월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또 불발되니까 이번에는 올 해 부림절에 있을 것이라고 또 속이고 있다. 하나님은 결코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장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탄이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다(요8:44). 그러므로 그들에게 지금 가르쳐주고 있는 그놈이 가짜인 것이다. 그놈이 바로 미혹의 영이요 사탄의 하수인인 것이다. 그놈이 지금 그들에게 예수님과 성령님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믿음의 기초는 오직 주 예수님이요 그분의 가르침이다. 그분의 가르침만이 졸대적인 진리이며 그분의 가르침만이 우리를 혼돈의 세계에 빠지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4복음서와 요한계시록 2~3장과 21~22장을 꾸준히 몇 번이고 읽으라. 여기에 바로 전능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거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6년가 시작되었다. 올 해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모든 기초를 다시 쌓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가자. 그래서 더이상 신앙의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