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교회는 목회자나 평신도 할 것 없이 그리고 큰 교회나 작은교회 할 것이 온갖 죄의 열매들로 가득하다. 이것은 이들이 온갖 불법과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으니 자신은 반드시 구원받았다고 믿는 잘못된 구원론 때문에 기인하고 있음이라 하겠다. 이름하여 잘못된 칼빈의 예정론의 교리가 이들의 생각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의 예정론교리가 정통교리라고 하여 무턱대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 교리를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겠다. 그리고 비록 장로교가 믿고 따르는 칼빈의 교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그 교리가 성경적인 주장이라면 기꺼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성경에 반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면 아파도 기꺼이 그것을 도려낼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라 그것을 주장했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 신학자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지에 관해 칼빈선생이 이렇게 말했으니 그것은 항상 옳은 거겠지 하면서 따라갈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그리고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 마디로 그것에 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것인지에 관해 우리는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이 만들어낸 교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에 따라 그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1)하나님의 구원예정은 오직 단체적인 예정뿐이다.
우리는 지난 주에 칼빈이 그토록 주장했던 이중구원예정이라는 것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특히 개인에 관한 구원예정은 결코 없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성경에는 사실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말씀들이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무런 예정 없이 일을 하시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그 예정에는 누구는 구원하기로 만세전에 예정하고 누구는 버리기로 만세전에 예정하신 일이 없다. 다만 예정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공동체 예정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예정했다고 하면 그것은 전부 "우리" 혹은 "그들"에 대해 예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예정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한 무리의 구원받을 사람들을 예정해 놓은 것이지, 결코 누구는 구원할 것이고 누구는 버릴 것이라고 하는 개인구원과 개인유기를 예정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만약 구원에 관한 예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체적인 예정으로서 2가지 뿐이다. 그것은 천사와 인간, 유대인과 이방인에 관한 예정이다. 먼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던 천사와 사람이지만 이들에 관한 예정이 각각 따로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천사는 범죄한 즉시 심판하여 지옥에 멸하시기로 예정하셨지만, 인간은 혹 범죄를 했다 하더라도 회개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시어 그중에 얼마는 구원하시기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유1:6, 요3:16).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선민인 유대인들만 구원하시려고 예정해놓으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구원에서 멀어지고 오히려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해놓으셨다. 결국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예정해놓으신 것이다(엡3:6, 요10:16). 당신이 비록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지음받았다고 해서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우리 인간은 좀 실수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당신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유대인들처럼 얼마든지 구원하기로 예정되어 있음을 알고 주님이 마련해두신 구원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2)성경에 개인구원예정 사례가 있는가?
그렇다면, 왜 칼빈의 예정론자들은 개인에 관한 구원을 예정해 놓으셨다고 그렇게 침을 튀겨가며 설파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성경의 몇몇 부분이 개인구원예정을 증거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에서와 야곱의 경우라고 말한다. 칼빈의 예정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에서는 처음부터 버리기로 예정하시고, 야곱은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고 굳게 믿는다. 또한 그들은 그것에 대한 근거로서 롬9:11-13을 인용한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고, 둘 중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할 것이고, 에서는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롬9:11-13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2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크게 빗나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에서는 버리고 야곱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을 잉태하고 있는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창25:23). 그중에서 누구는 구원하기로 예정하고, 그 누구는 버리기로 예정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은 그들이 태어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사역적인 예정일 뿐이다. 다시 말해,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로 태어나겠지만 먼저 태어난 에서가 늦게 태어난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을 미리 예지하시고 그것을 말씀해 주신 것뿐이다. 그러므로 섬기는 자가 될 것이라는 말을 구원에서 버림받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 혹시 이것을 예정의 차원에서 확대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사역적 부르심혹은 사역적 예정일 뿐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는 것은 결코 에서를 멸망으로 혹은 지옥에 보낸다는 예정이 아니다. 혹 당신은 예수께서 사복음서에서 섬기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서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마20:26~27, 23:11~12). 이 말씀에 의하면 섬김을 받는 자보다는 섬기는 자가 먼저 천국에 들어갈 확률이 높으며, 둘 다 천국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섬기는 자가 더 높은 사람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에서와 야곱에 관한 것은 사역에 관한 예지요 좀 더 확대해 보면 사역에 관한 예지예정일 뿐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혹 그렇게 말씀하셨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운명적인 예정은 아니며, 그러한 안배가 있음을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신 것 뿐이다.
마20:26-27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23: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또한 말라기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오해해서는 아니 된다(말1:2-3). 이것은 아주 훗날에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미 에서와 야곱이 죽고 난 뒤, 적어도 1,600년이 지난 후에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었음을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것이다. 둘이 그렇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예정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기에 하나님께서 결론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말1:2-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에서는 장자권과 같은 영적인 축복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이며, 야곱은 그것을 매우 귀히 여겼기 때문이다(히12:16-17). 비록 장자의 축복을 얻는 방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매우 사모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그만 그것을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에 에서는 그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고 야곱이 그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16살 때 일어난 팥죽사건이었지만 60년이 흐른 뒤 그들의 나이가 76세가 되었을 때에 그대로 성취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겠다고 미리 정해놓으신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리브가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기에 그러한 결과가 되었음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히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3)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별해 놓았다는 것도 사역적인 예정일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 즉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라고 말씀하신 것도 구원에 관한 예정이 아니다. 예레미야의 직무와 사역에 관한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그가 그러한 직무와 사역을 알고도 불충성하고 훗날에 회개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도 구원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 이 말씀도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예레미야를 구원하기로 예정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개인에 대한 예정이 성경에 등장하기는 하나 그것은 오로지 사역에 관한 예정일 뿐 결코 개인 구원에 관한 예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한다. 나는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고 안심하지 말라. 당신의 구원은 아직도 완성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 구원은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구원은 현재진행형이지 결코 완료형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도 죽는 그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