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은 지금도 일하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한다. 에전에는 기적들 그리고 환상과 꿈과 예언으로 사람을 미혹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말씀 자체를 가지고 미혹한다.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세에 우리가 바른 종말론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성경에 대한 어떤 해석기준과 잣대를 가져야 하는가? 여기 그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
1. 들어가며
말세가 될수록 사탄은 어떻게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고 말씀하셨다(마24:24). 그런데 여기에 보면, "택하신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도 미혹받을 수가 있는가? 사실 오늘날 사탄의 미혹의 패턴을 살펴보면, 사탄의 미혹은 이제 꿈이나 환상이나 예언을 통해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속인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말세에 나타나는 사탄은 어떻게 미혹하고 있으며, 그들의 미혹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탄의 미혹의 2가지 패턴은 무엇인가?
오늘날 사탄은 어떻게 사람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리고 있는가? 사탄의 미혹의 패턴에는 2가지가 있다. 첫째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속인다. 이를 테면,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나 예언을 통해서 속이는 것이다. 즉 무엇을 보여주거나 들려주어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사실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자기가 받은 정보를 비교검토해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이제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그러한 방법을 써왔지만 말이다. 그것은 둘째로, 말씀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하지만 말세가 될수록 이러한 현상을 더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탄은 오늘날 어떻게 말씀으로 사람을 속이는가? 그것은 성경의 해석을 달리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께서는 언제 재림하시는가? 성경에 그 근거가 없지만 환상을 본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환난전휴거설의 주장은 이제 이런 식으로 사람을 속인다. 예수께서는 도둑같이 오신다고 했다고 성경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둑이 언제 집에 도적질하러 말하고 가는 것을 보았는가 하면서, 아무도 몰래 은밀하게 훔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찮은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보물만을 훔쳐 가지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도둑같이 온다는 말은 은밀하게 오셔서 휴거받을 자만을 골라서 은밀하게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환난에 남겨진 자들이 비로소 자신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해왔구나를 깨닫게 되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될 것인데, 이때 목숨걸고 순교하여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휴거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것이 사탄의 거짓된 미혹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단 한 번도 은밀하게 오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도둑같이 온다는 말은 갑자기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온다는 뜻이지 은밀하게 온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는 재림의 돌발성을 말씀하신 것이지 은밀성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성경의 해석의 2가지 기준은 무엇인가?
사탄이 사용하는 방법은 너무나 교묘해서 잠깐만 잘못 해찰하면 혹하고 넘어가곤 한다. 사실 예수께서 공생애 초기에도 사탄은 예수님을 미혹하러 찾아왔다. 예수께서 40일금식하시자, 사탄이 찾아 와서 예수님을 속이는데, 그는 무엇으로 예수님을 속이려고 했는가? 그것은 말씀을 들려주고 환상을 보여주면서 속이려고 하였다. 사탄도 이미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서 예수님을 속이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환상을 통해서 자기를 따르는 길이 얼마나 멋있고 화려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씀했지만 이제는 능력, 환상이나 꿈이나 예언으로 사람을 속이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말씀으로 속이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이단들을 보라. 그들은 능력도 없다. 기적을 못 일으킨다. 그저 말씀으로 사람을 속일 뿐이다. 그러면 사탄마귀는 어떻게 사람을 속이는가? 그것은 말씀을 교묘하게 잘못 해석하여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그럼,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사탄의 미혹에 따른 해석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예수께서 성경을 해석하신 방식과 사도들이 해석했던 방법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곧 사탄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이때 사탄은 아주 교묘한 해석방법을 동원하여 사람을 미혹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을 가리켜 구약성경 말라기서에 예언되었던 사람 곧 "오리라고 한 바로 그 엘리야"라고 말씀하셨다(말3:1, 4:5~6)(마11:14, 17:11~12). 그런데 사탄은 어떻게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을 속이는가? 세례요한은 오리라고 한 바로 그 엘리야라고 성경에 나와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환생이라는 것이다. 엘리야가 세례요한의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미 이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너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가 재림예수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을 가지고 해석하는데 이것저것 짜맞추는 것이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성경해석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과연 그가 예수께서 해석하신 방법을 따라가고 있는지 그리고 사도들이 했던 해석방법을 따라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재림에 관한 것은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사도바울이 말했으니 사도바울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언제 오시는지에 관하여 사도바울은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것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나와 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1-3)" 그렇다. 사도바울도 주님이 오시는 것을 "도둑같이" 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말을 어떤 뜻으로 해석했는가? 주님이 은밀히 공중에 오시는 것으로 해석했는가, 갑자기 오는 것으로 해석했는가? 그렇다. "갑자기"라고 해석했다. 주님은 갑작스럽게 오시는 것이지 은밀하게 공중에 오셔서 알곡만을 휴거시켜 공중에서 혼인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국의 어드워드 어빙(A.D.1792~1834)이라는 목사가 마가렛 맥도날드라는 소녀의 환상을 보고 만들어낸 "비밀휴거"의 거짓된 휴거론이다. 주님은 은밀하게 오셔서 알곡만 휴거시켜 데려가지 않는다. 모든 성경의 해석의 기준은 예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4. 주님은 과연 언제 오시는가?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 성도들을 휴거시키신다고 하셨는데 언제 휴거시킨다고 말씀하셨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환난후에 있다. 그러니까 휴거도 환난후에 있을 예수재림의 때에 딱 한 번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해보자.
마24:29-31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렇다. 이 말씀을 요약해보면, 첫째, 우리 주님께서는 환난후에 오신다고 했다(마24:29a). 둘째, 천체의 이상이 있고 난 후에 오신다고 했다(마24;29b).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천사들을 상징함)이 흔들리고 난 후에 오신다. 셋째,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 가운데 오신다고 했다(마24:30). 넷째, 이때 큰 나팔소리가 나며 예수께서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 당신의 택하신 자들을 휴거시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으신다고 했다(마24:31). 그러므로 환난후에 휴거가 있게 되는 것이지, 환난전에 은밀한 휴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된 성경해석이다. 그러므로 환난전휴거론잗르은 환난전에 알곡에 대한 휴거가 한 번 있고 또 예수님의 지상재림 직전에 또 한 번의 휴거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성경해석이다. 휴거는 부활체를 입은 자들이 하늘로 낚아채듯 올라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죽은 자들이나 산 자들이나 부활체가 입혀지는 순간은 예수의 재림의 때인, 전 우주적인 부활의 때에 딱 한 번 있어질 일이다. 고로 휴거가 두 번 혹은 세 번 혹은 여러 번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도 이 말씀이 잘못된 것인지를 믿고 싶다는 사람은 그렇게 놔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못된 성경적 가르침을 따라감으로, 허송세월만 보내고 맨날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지 징조만 살피다가 아까운 시간 다 낭비한 다음에 후회한다고 한들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할 것인가?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다. 어떤 해석을 따라갈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지 남이 강제로 들쑤셔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5. 사탄이 미혹하는 선택받은 대상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런데 "종말장"이라는 일컬어지는 마24장에, 이상한 표현 하나가 있다. 그것은 "택하신 자들"이라는 표현이다. 22절과 24절 그리고 31절에 세 번씩이나 나온다. 만세전 개인구원예정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러한 "택하신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만세전에 이미 선택해놓은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절대 거짓그리스도나 거짓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만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하나님께서 창조전에 미리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사람들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지금도 선택받는 과정에 있는 자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가?
먼저, 이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살펴보자. 그러면, 이 말씀은 "투스 에크레크토스"라는 단어다. '투스'는 정관사(남성,복수)이며, '에크레크토스'는 형용사로서, "선택된, 선택받은, 택하심을 입은(the elected, the chosen)"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전부다 능동태구문처럼 번역해놓았다. '[선]택하신 자들'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택하신 자들"이라는 말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 그것은 마22장에 나오는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의 비유(마22:1~14)"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은 '투스 에크레크토스'라는 문구를 마22장에서는 "택함을 입은"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이 보다 더 정확한 번역이다. 그러므로 능동태구문처럼 번역한 마24장의 한글번역은 조금 부족한 번역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선 그 문구가 등장하는 마22:14의 말씀부터 살펴보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그렇다. 동일한 단어가 여기서는 수동태적으로 번역되었다. 그렇다면, 이 단어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22:1~14의 비유에 나온다. 한 왕이 자기의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풀었다. 그리고 초청한 사람들을 잔치에 오라고 자신의 종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이 오기를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지 말고 모든 것을 다 갖추었으니 오라고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었는데 이번에는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의 밭으로 가버리고, 또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버렸다. 그리고 나머지는 종들을 잡아서 모욕하더니 죽여버리는 것이 아닌가? 왕은 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라버렸다. 하지만 왕의 혼인잔치는 그대로 끝마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은 그의 종을 길로 보내 만나는 사람마다 초청하여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그 잔치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은 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잔치에 들어온 자는 선한 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악한 자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다 왕이 미리 마련해둔 혼인잔치의 예복(겉옷)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많은 이들이 청함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적은 이들이 선택함을 입을 것이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여기에 "선택함을 입은 자들'이란 이미 잔치가 준비되기 전부터 초청하기로 예정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잔치에 올 자로 초청되어 있던 사람일뿐 그 잔치자리에 꼭 그 사람이 참여하게 된다는 뜻도 아니다. 또한 정작 그 잔치자리에 참여하게 된 자는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 초청에 응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한조치를 풀어버리기는 했지만 그 잔치에 정작 자신이 들어가기를 원했던 자만이 그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는 누가 결국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먼저 초청을 받았던 유대인들은 하나도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임이 암시되어 있다. 정작 잔치날이 되자 그들 모두는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다 거절했고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잔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아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그 잔치에 전혀 상관없었던 사람들 곧 "이방인들"은 가리킨다. 하지만 아무나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잔치의 초청에 응했언 자들과 또한 들어올 때 입혀준 혼인잔치의 예복을 끝까지 입고 있는 자라야 했다. 여기서 혼인잔치의 예복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예복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예복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칭의의 의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투스 에크레크토스'라는 문구는 하나님이 미리 예정해놓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잔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응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마22:14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비교적 잘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자가 수동태적으로 "[선]택함을 입은 자들"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24장에 나오는 "택하신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만세전에 선택해놓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구원의 초청에 응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을 자로서 선택을 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24장에 나오는 "택하신 자들"이라는 말은 "구원받을 자로서 선택을 입고 있는 자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에 응하여 예복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또한 그 자리에서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탄의 미혹을 받아 나갈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사탄의 미혹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그러므로 사탄도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의 과정에 들어와 택하심을 입은 채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죽기전까지는 그의 구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이라도 얼마든지 미혹하려 덤벼든다(마24:24). 그리고 만약 주께서 우리에게 불어닥칠 환난의 날들을 감하지 않는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므로 "택하신 자들(구원받은 자로서 선택함을 입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22). 그리고 끝까지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고 있어야 했듯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붙들어야 한다. 곧 어떠한 환난핍박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자들은 죽을 때 부활체를 입고 즉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보게 된다면, 그는 그날에 부활체를 입고 공중으로 휴거되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마24:31).
하지만 그날이 오기전까지는 사탄도 택하심을 입은 채 있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가 죽기전까지는 구원이 종료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언제든지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금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그래서 자신은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라고 자만해서는 아니 된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가 구원에서 제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구원이 정말 안전하다고 쉽게 판단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는 선택을 입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기전까지는 사탄의 미혹에서 안전히 지낼 수 있느 사람은 단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시대 이후 구원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누구든지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을 마음 속에 진실로 영접하는 순간 그의 영이 거듭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거듭났다고 해서,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우리의 자유의지로 구원의 초청에 응했던 것처럼, 자신의 자유의지로 얼마든지 위기상황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도 있을 뿐더러, 사탄의 미혹에 또 넘어가 세상으로 나갈 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들은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사탄의 미혹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미혹을 물리쳐야 한다. 특히 거짓된 성경해석으로 우리를 미혹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이들은 대부분 말씀사역자들이다). 이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성경해석과 사도들의 성경해석의 패턴을 따르지 않는 이상한 성경해석자들을 가르침을 결코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잔치의 맛을 보고 있는 자들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죽는 그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2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