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G6mhFBmstm0 [혹은 https://tv.naver.com/v/24913681 ]
날짜 2022-01-30
본문말씀 사무엘하 17:1~29(구약 490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압살롬,아히도벨,후새,사독과아비아달,아히마아스와요나단,어떤여인,다윗의모사들,마하나님,피난처,나하스의아들소비,암미엘의아들마길,길르앗사람바르실래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은 매우 탁월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처음 모셨던 다윗에게나 그리고 뒤에 섬겼던 압살롬에게나 마찬지였다(삼하16:23). 그런데 모반자 압살롬은 탁월한 아히도벨의 제안을 버리고 후새의 제안을 선택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아히도벨도 조금은 이상하다.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자살에는 어떤 것들이 작용한 것인가? 오늘 우리는 한 나라의 지도자와 더불어 그 지도자를 돕는 이들이 어떻게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압살롬의 예루살렘의 무혈입성으로 인해 그는 매우 들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각료를 갖춘 후에 국무회의를 주재한다. 그리고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두 모사(자문관, 척사)에게 자문을 주문한다. 그러자 아히도벨과 후새가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각각 제시한다. 그런데 이때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버리고 후새의 전략을 선택한다. 왜 그랬을까? 왜 압살롬은 처음부터 자기 편에 가담했던 충성된 헌신자 아히도벨의 모략을 버리고 후새의 모략을 선택한 것인가?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났던 일도 참으로 이상하다. 아히도벨은 자기의 조언을 압살롬이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의 고향에 내려가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왜 아히도벨은 다음 기회를 노리지 않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지도자 과연 누구의 의견을 수용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며, 또한 우리가 지도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아히도벨의 죽음을 통하여 주군을 바꾼 자의 최후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제안했던 2차 조언은 무엇이었는가? 

  아히도벨이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하여 제일 처음 조언한 것은 선왕 다윗왕의 결별이었다. 그것을 백성들로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윗은 지는 별이고 압살롬은 떠오르는 별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양단간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안한 것은 왕의 아버지가 남겨둔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을 하라는 것이었다(삼하16:21). 그러자 아히도벨의 제안은 주효하였고 아히도벨에게 사람들의 쏠리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이제는 다윗을 제거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국무회의가 열렸다. 그때였다. 아히도벨이 먼저 압살롬에게 제안을 하였다. 그것은 자기에게 군사 12,000명을 붙혀주면 그날 밤에 가서 다윗을 뒤를 추척하고 급습하여 그와 함께 한 백성들을 도망치게 놔두고 다윗만을 제거하고 돌아오겠다는 것이었다(삼하17:1~3). 왜냐하면 다윗은 지금 지쳐서 맥이 풀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아히도벨의 계략은 매우 핵심을 파고도는 것이었고 그것이 만약 실행되었다면 다윗은 많은 손실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압살롬은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른다. 그리고 아히도벨이 제안한 모략을 그에게 들려주고는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본다. 아마도 다윗의 절친이자 모사였던 후새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다윗의 절친이었던 후새는 압살롬에게 아히도벨과는 다른 모략을 제시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조언을 채택하지 않고 후새의 조언을 채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때 후새는 대체 어떤 조언을 왕에게 했던 것인가? 그것은 아히도벨이 지금 다윗을 잘 모르는 정세분석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다윗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 그의 추종세력은 다 용사들이어서 그들은 지금 들에 있는 곰이 자기 새끼를 빼앗긴 것 같아 격분하고 있는 상태이며, 또한 다윗은 전략가이기 때문에 결코 백성들과 함께 잠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어느 굴속에 매복해 있다가 압살롬의 군사가 오면 몇을 쓰러뜨려 압살롬을 따르는 자가 재앙을 받았다면서 소문을 내면 아무리 강한 압살롬왕일 지라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제안하기를 왕이 온 이스라엘을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모래처럼 모은 후에 왕이 직접 전쟁에 참가하여 그를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한다면, 새벽에 이슬이 땅에 덮임같이 그를 덮쳐 한 사람도 남기도 않고 죽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다윗이 어느 성에 도피해있으면 아예 밧줄로 그 성을 포박하여 강에다 빠뜨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을 한 것이다. 

 

3. 왜 압살롬은 후새의 조언을 선택한 것인가?

  그러자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은 후새의 계략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하였다(삼하17:14). 그렇다면 당시 실제적으로는 아히도벨이 보다 더 정확한 정세를 파악하고 계략을 왕에게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은 왜 후새의 조언을 선택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왕이 어떤 사람인지가 왕이 선택한 선택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왕의 생각은 왕이 선택한 것에 그대로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왕이 아히도벨의 제안을 버리고 후새의 제안을 선택했다는 것은 왕이 후새의 안을 내심 바랬었고 그것을 기뻐하였으며, 그렇게 되기를 더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모략가 후새는 어떻게 해서 압살롬의 마음을 자기의 의견 안으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그의 사용한 '화술'에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그는 '부사어'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그는 비유적인 표현을 써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즉 그는 왕의 허영과 교만한 마음을 부채질하여 그 마음이 후새의 제안을 선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그가 사용한 부사어를 살펴보자. 그는 "이번에는"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전번에 있었던 아히도벨의 제안은 아주 현명했고 잘한 것이었다고 인정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대문이다. 즉 "이번에는'는 이라는 말을 통하여 과거에 그는 왕에게 참으로 좋은 제안을 펼쳤지만 이번에는 그 제안을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압살롬 왕은 그가 다른 사람의 의견도 잘 듣고 있으며, 잘 한 것은 잘한 것이라고 지지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둘째로, 후사는 적절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 왕의 어영심과 교만함에 더욱더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전부터 이미 압살롬은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문에서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면서 백성의 마음을 4년동안 흠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것을 선언만 하면 모든 백성이 자신에게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욕심과 허영심을 정확히 간파한 후새가 압살롬의 마음을 단어와 비유적인 표현으로 격동시킨 것이다. 이때 후새가 사용한 표현들은 왕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왕이 직접 전쟁에 나가서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덮치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라는 말에 스스로 감격스러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어느 성에 들어가 숨어있더라도 왕이 그 성을 밧줄을 가져다가 묶어서 강에 던져버리면 된다고 비유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압살롬이 전쟁에도 능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안을 들어본 압살롬은 그만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자기가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고 자기의 이름이 높일 수 있는 후새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해버린 것이다. 

 

4. 왜 아히도벨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

  그렇다면 왜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략이 선택되지 않은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정리한 다음 조용히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인가? 아히도벨은 왜 스스로 목을 메 자살한 것인가? 그의 계략이 압살롬에게 채택되지 않고 거부당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을 생각할 때 속이 상하고 풀이 죽어서였을까? 만약 그 정도가 그의 자살의 원인이었다고 한다며는 그는 더 자신의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것보다는 훨씬 더 큰 어떤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전후사정을 살펴보았을 때 그의 자살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그가 매우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 압살롬의 거사가 실패가 돌아갈 것을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첫째로, 그러면 훗날 자신이 압살롬의 편에 가담한 것을 취조당할 때 수치를 보지 않으려고 미리 자살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훗날 자신이 지은 죄가 최소한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내다보고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한 때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부하였으나 반역자의 편에 가담하여 그의 편을 들어주었고 또한 자신이 선택한 압살롬이 지혜롭지 못하여 거사가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살했다고도 할 수 있다. 넷째, 자신의 제안이 압살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제안이 왕을 높이지 않고 자신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높아지려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을 예상해서 자살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다섯째, 자신이 베푼 계략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오히려 최고의 수치로 여기고서 자살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다양한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그것을 두고 자살을 선택한 것은 너무 과한 조치가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자살은 자기가 자신을 살해하는 살인죄를 범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해 용서받을 방법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5. 다윗에게 늘 돕는 자가 붙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 그리고 다윗을 도피를 돕는 손길들로 인하여 다윗은 안전하게 마하나임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 마하나임은 잠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후 사울왕국의 수도로 삼은 곳이기 때문에 요새화되어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시동안 다윗이 도피해 있기에는 매우 적절한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때 세 사람이 다윗과 그의 군대와 백성들을 위하여 식량과 피난시에 사용할 물품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들은 암속족속 나하스왕의 아들 소비(둘째 아들로 추정됨)였고 로데발(로드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동시에 로글림 출신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바실래)가 찾아왔다. 그들은 왜 다윗을 찾아온 것인가? 먼저 나하스의 아들 소비가 그곳에 식량과 피난용물품을 가지고 찾아온 것은 다윗이 전에 그의 아버지의 부친 장례에 조문을 보내온 것에 대한 고마움(삼하10:1~4)과 자신의 형(하눈)이 그때 다윗을 잘못 오해하여 그의 신하들에게 모욕을 준 것에 대한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찾아온 갓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때 다윗이 자신의 형 하눈을 죽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그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온 것 같다. 그리고 로드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찾아온 것은 아마도 긍휼의 은사가 많은 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사울이 죽고 난 후에 자기의 마을에 피신해온 요나단의 아들 절뚝발이 므비보셋도 그가 보살펴 준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다윗이 원수의 손자인 므비보셋을 자신의 아들처럼 맞아준 것에 대해서 깊은 감명을 받고서 위기에 빠진 다윗을 생각하여 그를 돕기 위해 찾아온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르실래는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로서, 그는 길르앗 땅의 거부였는데(19:32), 아마도 그동안 다윗이 주변 이방민족들을 복속시켜서 그들이 자신의 땅에 침범해오지 못하록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었기에 찾아온 것 같다. 그는 후에도 다윗의 인격과 통치력에 감복하여 다윗을 도왔지만 훗날 다윗이 환궁하고 나서 그에게 벼슬을 주려고 했을 때에도 극구 사양한 겸손한 사람이기도 하다.  

 

6. 나오며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로부터 어떤 조언을 들었을 때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하는 것은 사실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 지도자가 평소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그때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압살롬은 아히도벨과 후새의 계략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만 아히도벨의 계략을 버리고 후새의 전략을 취하고 말았다. 그것은 후새가 압살롬을 추켜 세우고 그의 허영심과 교만함을 자극했기 때문인데, 압살롬도 그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압살롬은 자신에게 직언을 한 아히도벨의 제안을 버리고 후새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가 선택한 정책이 어떠한 것이냐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도자의 주변에 누가 자리잡고 있느냐를 보고서도 판단할 수가 있다. 이제 곧 얼마 안 있으면 우리나라도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에 정말 우리들은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정말 훌륭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지도자의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입술에서 무엇을 말하는가를 눈여겨 보라.그리고 그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가를 살펴보라. 그것이 곧 그 지도자의 미래가 되기 때문이요 그를 따르는 자의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압살롬이 어리석게 자신의 허영심과 교만을 부추기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자기의 생각도 한 몫 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때 거기에는 다윗의 기도 곧 "여호와여, 원하옵건데,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삼하15:31)라고 하는 다윗의 기도의 대한 응답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내게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분께 기도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가장 적절한 시기에 우리에게 돕는 사람을 붙혀주실 것이고, 적의 악한 생각이 이기지 못하도록 그 생각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 

 

2022년 01월 30일(주일)

정병진목사

 

  • ?
    동탄명성교회 2022.02.04 11:55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은 매우 탁월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처음 모셨던 다윗에게나 그리고 뒤에 섬겼던 압살롬에게나 마찬지였다(삼하16:23). 그런데 모반자 압살롬은 탁월한 아히도벨의 제안을 버리고 후새의 제안을 선택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아히도벨도 조금은 이상하다.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자살에는 어떤 것들이 작용한 것인가? 오늘 우리는 한 나라의 지도자와 더불어 그 지도자를 돕는 이들이 어떻게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압살롬의 예루살렘의 무혈입성으로 인해 그는 매우 들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각료를 갖춘 후에 국무 회의를 주재한다. 그리고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두 모사(자문관, 척사)에게 자문을 주문한다. 그러자 아히도벨과 후새가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각각 제시한다. 그런데 이때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버리고 후새의 전략을 선택한다. 왜 그랬을까? 왜 압살롬은 처음부터 자기 편에 가담했던 충성된 헌신자 아히도벨의 모략을 버리고 후새의 모략을 선택한 것인가?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났던 일도 참으로 이상하다. 아히도벨은 자기의 조언을 압살롬이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의 고향에 내려가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왜 아히도벨은 다음 기회를 노리지 않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지도자 과연 누구의 의견을 수용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며, 또한 우리가 지도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아히도벨의 죽음을 통하여 주군을 바꾼 자의 최후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제안했던 2차 조언은 무엇이었는가? 

      아히도벨이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하여 제일 처음 조언한 것은 선왕 다윗왕의 결별이었다. 그것을 백성들로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윗은 지는 별이고 압살롬은 떠오르는 별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양단간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안한 것은 왕의 아버지가 남겨둔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을 하라는 것이었다(삼하16:21). 그러자 아히도벨의 제안은 주효하였고 아히도벨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이제는 다윗을 제거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국무 회의가 열렸다. 그때였다. 아히도벨이 먼저 압살롬에게 제안을 하였다. 그것은 자기에게 군사 12,000명을 붙여 주면 그날 밤에 가서 다윗의 뒤를 추하고 급습하여 그와 함께 한 백성들을 도망치게 놔두고 다윗만을 제거하고 돌아오겠다는 것이었다(삼하17:1~3). 왜냐하면 다윗은 지금 지쳐서 맥이 풀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아히도벨의 계략은 매우 핵심을 파고는 것이었고 그것이 만약 실행되었다면 다윗은 많은 손실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압살롬은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른다. 그리고 아히도벨이 제안한 모략을 그에게 들려주고는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본다. 아마도 다윗의 절친이자 모사였던 후새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다윗의 절친이었던 후새는 압살롬에게 아히도벨과는 다른 모략을 제시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조언을 채택하지 않고 후새의 조언을 채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때 후새는 대체 어떤 조언을 왕에게 했던 것인가? 그것은 아히도벨이 지금 다윗을 잘 모르는 정세 분석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다윗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 그의 추종 세력은 다 용사들이어서 그들은 지금 들에 있는 곰이 자기 새끼를 빼앗긴 것 같 격분하고 있는 상태이며, 또한 다윗은 전략가이기 때문에 결코 백성들과 함께 잠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어느 굴속에 매복해 있다가 압살롬의 군사가 오면 몇을 쓰러뜨려 압살롬을 따르는 자가 재앙을 받았다면서 소문을 내면 아무리 강한 압살롬왕일 지라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제안하기를 왕이 온 이스라엘을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모래처럼 모은 후에 왕이 직접 전쟁에 참가하여 그를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한다면, 새벽에 이슬이 땅에 덮임같이 그를 덮쳐 한 사람도 남기도 않고 죽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다윗이 어느 성에 도피해 있으면 아예 밧줄로 그 성을 포박하여 강에다 빠뜨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을 한 것이다. 

     

    3. 왜 압살롬은 후새의 조언을 선택한 것인가?

      그러자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은 후새의 계략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하였다(삼하17:14). 그렇다면 당시 실제적으로는 아히도벨이 보다 더 정확한 정세를 파악하고 계략을 왕에게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은 왜 후새의 조언을 선택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왕이 어떤 사람인지가 왕이 선택한 선택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왕의 생각은 왕이 선택한 것에 그대로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왕이 아히도벨의 제안을 버리고 후새의 제안을 선택했다는 것은 왕이 후새의 안을 내심 바랬었고 그것을 기뻐하였으며, 그렇게 되기를 더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모략가 후새는 어떻게 해서 압살롬의 마음을 자기의 의견 안으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그의 사용한 '화술'에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그는 '부사어'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그는 비유적인 표현을 써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즉 그는 왕의 허영과 교만한 마음을 부채질하여 그 마음이 후새의 제안을 선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그가 사용한 부사어를 살펴보자. 그는 '이번에는'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전번에 있었던 아히도벨의 제안은 아주 현명했고 잘한 것이었다고 인정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대문이다. 즉 '이번에는'이라는 말을 통하여 과거에 그는 왕에게 참으로 좋은 제안을 펼쳤지만 이번에는 그 제안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압살롬왕은 그가 다른 사람의 의견도 잘 듣고 있으며, 잘한 것은 잘한 것이라고 지지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둘째로, 후사는 적절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 왕의 영심과 교만함에 더욱더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전부터 이미 압살롬은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문에서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면서 백성의 마음을 4년 동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것을 선언만 하면 모든 백성이 자신에게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욕심과 허영심을 정확히 간파한 후새가 압살롬의 마음을 단어와 비유적인 표현으로 격동시킨 것이다. 이때 후새가 사용한 표현들은 왕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왕이 직접 전쟁에 나가서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덮치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라는 말에 스스로 감격스러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어느 성에 들어가 숨어 있더라도 왕이 그 성을 밧줄을 가져다가 묶어서 강에 던져버리면 된다고 비유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압살롬이 전쟁에도 능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안을 들어본 압살롬은 그만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자기가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고 자기의 이름 높일 수 있는 후새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해버린 것이다. 

     

    4. 왜 아히도벨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

      그렇다면 왜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략이 선택되지 않은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정리한 다음 조용히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인가? 아히도벨은 왜 스스로 목을  자살한 것인가? 그의 계략이 압살롬에게 채택되지 않고 거부당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을 생각할 때 속이 상하고 풀이 죽어서였을까? 만약 그 정도가 그의 자살의 원인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더 자신의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것보다는 훨씬 더 큰 어떤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전후 사정을 살펴보았을 때 그의 자살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그가 매우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 압살롬의 거사가 실패 돌아갈 것을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첫째로, 그러면 훗날 자신이 압살롬의 편에 가담한 것을 취조당할 때 수치를 보지 않으려고 미리 자살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훗날 자신이 지은 죄가 최소한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내다보고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한 때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부하였으나 반역자의 편에 가담하여 그의 편을 들어주었고 또한 자신이 선택한 압살롬이 지혜롭지 못하여 거사가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살했다고도 할 수 있다. 넷째, 자신의 제안이 압살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제안이 왕을 높이지 않고 자신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높아지려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을 예상해서 자살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다섯째, 자신이 베푼 계략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오히려 최고의 수치로 여기고서 자살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다양한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그것을 두고 자살을 선택한 것은 너무 과한 행위가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자살은 자기가 자신을 살해하는 살인죄를 범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해 용서받을 방법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5. 다윗에게 늘 돕는 자가 붙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 그리고 다윗 도피를 돕는 손길들로 인하여 다윗은 안전하게 마하나임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 마하나임은 잠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후 사울왕국의 수도로 삼은 곳이기 때문에 요새화되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시 동안 다윗이 도피해 있기에는 매우 적절한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때 세 사람이 다윗과 그의 군대와 백성들을 위하여 식량과 피난시에 사용할 물품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들은 암몬 족속 나하스왕의 아들 소비(둘째 아들로 추정됨)였고 로데발(로드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동시에 로글림 출신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바실래)가 찾아왔다. 그들은 왜 다윗을 찾아온 것인가? 먼저 나하스의 아들 소비가 그곳에 식량과 피난용 물품을 가지고 찾아온 것은 다윗이 전에 그의 아버지의 부친 장례에 조문을 보내온 것에 대한 고마움(삼하10:1~4)과 자신의 형(하눈)이 그때 다윗을 잘못 오해하여 그의 신하들에게 모욕을 준 것에 대한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찾아온 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때 다윗이 자신의 형 하눈을 죽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그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온 것 같다. 그리고 로드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찾아온 것은 아마도 긍휼의 은사가 많은 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사울이 죽고 난 후에 자기의 마을에 피신해 온 요나단의 아들 절뚝발이 므비보셋도 그가 보살펴 준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다윗이 원수의 손자인 므비보셋을 자신의 아들처럼 맞아준 것에 대해서 깊은 감명을 받고서 위기에 빠진 다윗을 생각하여 그를 돕기 위해 찾아온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르실래는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로서, 그는 길르앗 땅의 거부였는데(19:32), 아마도 그동안 다윗이 주변 이방 민족들을 복속시켜서 그들이 자신의 땅에 침범해 오지 못하록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었기에 찾아온 것 같다. 그는 후에도 다윗의 인격과 통치력에 감복하여 다윗을 도왔지만 훗날 다윗이 환궁하고 나서 그에게 벼슬을 주려고 했을 때에도 극구 사양한 겸손한 사람이기도 하다.  

     

    6. 나오며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로부터 어떤 조언을 들었을 때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하는 것은 사실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 지도자가 평소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그때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압살롬은 아히도벨과 후새의 계략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만 아히도벨의 계략을 버리고 후새의 전략을 취하고 말았다. 그것은 후새가 압살롬을 추켜 세우고 그의 허영심과 교만함을 자극했기 때문인데, 압살롬도 그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압살롬은 자신에게 직언을 한 아히도벨의 제안을 버리고 후새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가 선택한 정책이 어떠한 것이냐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도자의 주변에 누가 자리 잡고 있느냐를 보고서도 판단할 수가 있다. 이제 곧 얼마 안 있으면 우리나라도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에 정말 우리들은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정말 훌륭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지도자의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입술에서 무엇을 말하는가를 눈여겨 보라. 그리고 그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가를 살펴보라. 그것이 곧 그 지도자의 미래가 되기 때문이요 그를 따르는 자의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압살롬이 어리석게 자신의 허영심과 교만을 부추기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자기의 생각도 한몫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때 거기에는 다윗의 기도 곧 "여호와여, 원하옵건,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삼하15:31)라고 하는 다윗의 기도 대한 응답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내게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분께 기도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가장 적절한 시기에 우리에게 돕는 사람을 붙여 주실 것이고, 적의 악한 생각이 이기지 못하도록 그 생각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 

     

    2022년 01월 30일(주일)

    정병진목사


  1. 천국복음(38) 천년왕국은 곡과 마곡의 전쟁 전에 있는가 후에 있는가?(계20:7~10)_2022-04-03(주일)

    요한계시록 20장에만 언급되어 있는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을 따라, 종말론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있어 왔다. 그중에서 21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조명된 것은 전천년설이다(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나 역사적 전천년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주장은 진짜로 ...
    Date2022.04.03 By갈렙 Views365
    Read More
  2. 천국복음(32) 천국에서 받을 상급(3-5) 천국에서의 신분에 관한 구약의 4가지 예표는 무엇인가?(1)(겔45:1~8)_(1)야곱의 70명의 가족 (2)제사장 체계_2022-03-27(주일)

    천국에서는 다 똑같이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가? 그런데 천국의 실상을 알게 되면, 이러힌한 신분은 천국 성도들 가운데 최고의 신분과 지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듯 천국에서 신분적 차이가 있다는 것은 사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도 말씀...
    Date2022.03.27 By갈렙 Views332
    Read More
  3. 천국복음(26) 천국에서 받을 상급(1) '천국집'은 누가 어떻게 받는가?(고후5:1)_2022-03-20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상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천국 집이요, 둘째는 면류관이다. 그리고 셋째는 보좌 자리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상이라면 그것은 '천국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천국 집은 과연 어느 마을에 지어지게 되며, ...
    Date2022.03.21 By갈렙 Views774
    Read More
  4. 천국복음(20) 천국에 관한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마13:31~33)_2022-03-13(주일)

    천국에 관한 7가지 비유들 가운데, 딱 2가지는 오늘날까지 두 가지 성경해석이 존재한다. 그러한 비유에는 '겨자씨 비유'이며, '누룩'의 비유가 있다. 이 둘은 천국와 확장성과 확장되어가는 능력을 말씀하신 것인데, 어떤 분들은 이것이 가라지를 포함하는 부...
    Date2022.03.13 By갈렙 Views1145
    Read More
  5. 천국복음(14) 슬피 울며 이를 갈 자들은 누구며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마24:45~51)_2022-03-06(주일)

    1. 들어가며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인가? 과거에는 다들 그렇게 알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성경의 기록과 그곳에 갔다가 오신 분들의 간증을 살펴보면, 천국에도 신분의 차이가 있다는...
    Date2022.03.06 By갈렙 Views541
    Read More
  6. 천국복음(07)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3가지 조건은 무엇인가?(마21:31~32)_2022-02-27(주일)

    천국, 예수님 시대 이후부터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된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못 들어가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대표는 '죄'다. 왜 그런가? 그 죄를 없이하려고 하나님께서 ...
    Date2022.02.28 By갈렙 Views362
    Read More
  7. 사무엘하강해플러스(40) 다윗의 유언을 통해 살펴보는 그의 위대한 일생(대상28:9~10)_2022-02-20(주일)

    다윗은 30살에 왕위에 올라 70살에 그의 인생을 마감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매우 귀하게 보셨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자신의 호칭에 붙여 사용하셨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계22:16). 대체 예수께서는 다윗이...
    Date2022.02.20 By갈렙 Views497
    Read More
  8. 사무엘하강해(34) 다윗이 제사드린 것만으로 과연 속죄가 일어나고 재앙이 없어진 것인가?(삼하24:10~25)_2022-02-13(주일)

    다윗시대 말기에 내렸던 전염병 재앙을 다윗은 대체 어떻게 그치게 할 수 있었는가? 그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인가? 아니면 또 다른 요인이 있어서였는가? 이것을 알면 우리는 우리 삶에 내려진 재앙을 피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
    Date2022.02.13 By갈렙 Views382
    Read More
  9. 사무엘하강해(28) 사울왕이 지은 죄값을 왜 다윗시대에 받아야 했는가?(삼하21:1~14)_2022-02-06(주일)

    조상들의 지은 죄값을 과연 후손들이 받게 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왜 한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의 범죄는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는 왜 기브온 거민들의 학살에 대한 속죄를 사람이 갚도록 허락하셨는가? 다윗이 당한 3년기근과 그의 ...
    Date2022.02.06 By갈렙 Views459
    Read More
  10. 사무엘하강해(24) 압살롬은 왜 아히도벨의 조언을 버리고 후새를 선택했을까?(삼하17:1~29)_2022-01-30(주일)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은 매우 탁월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처음 모셨던 다윗에게나 그리고 뒤에 섬겼던 압살롬에게나 마찬지였다(삼하16:23). 그런데 모반자 압살롬은 탁월한 아히도벨의 제안을 버리고 후새의 제안을 선택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아...
    Date2022.01.30 By갈렙 Views443
    Read More
  11. 사무엘하강해(18) 다윗의 회개의 4가지 특징은 무엇인가?(삼하12:1~15)_2022-01-23(주일)

    1. 들어가며 다윗의 삶은 거의가 다 신본주의적인 삶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둠의 시기가 있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 채 남의 아내와 간음을 행하였고 이것을 은폐하고자 그 여자의 남편을 죽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부...
    Date2022.01.23 By갈렙 Views568
    Read More
  12. 우리는 과연 회개기도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눅11:50~51)_2022-01-16(주일)

    1. 들어가며 회개기도는 과연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기도를 하다보면 처음에는 분량이 많다고 느껴지지만 120번 정도 기도하게 되면 하루에 4번씩도 얼마든지 회개할 수가 있다. 그러면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회개기도문]으로 회...
    Date2022.01.16 By동탄명성교회 Views892
    Read More
  13. 사무엘하강해(05) 다윗의 천도, 예루살렘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드디어 시작되다(삼하5:1~25)_2022-01-09(주일)

    다윗의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때 다윗은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다윗은 국가의 안정을 이룬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이 된다. 예루살렘은 대체 어떤 장소였는가? 하...
    Date2022.01.09 By갈렙 Views436
    Read More
  14. 사무엘상강해(41) 사울 왕의 경우처럼 교만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10가지 특징은?(삼상28:15~25)_2022-01-20(주일)

    1. 들어가며 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비운의 인물을 한 사람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사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40세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국의 초대왕으로 등극하였지만 비참한 생애를 마친 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악한 조짐은 왕이 된지 2년만에 나타나기...
    Date2022.01.02 By갈렙 Views628
    Read More
  15. 성도에게는 3대 영적 스승이 있다(딤후3:14~17)_2021-12-26(주일)

    1. 들어가며 성도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영적인 스승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어린이들도 학교에 가서 열심히 배워야 하는데, 어찌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쳐서 천국에 들어가야할 사람이 그 길을 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들에 대해서 어찌 관...
    Date2021.12.26 By동탄명성교회 Views495
    Read More
  16. 사무엘상강해(29) 다윗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킨 거인 골리앗(삼상17:38~54)_2021-12-19(주일)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은 무모한 싸움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한다. 그런데 다윗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있지 않았다. 골리앗은 블레셋나라의 싸움돋우는 자로서 거인이자 용사로서 정복불능의 전사였다. 그런데 다윗은 소년으로서 전...
    Date2021.12.19 By동탄명성교회 Views564
    Read More
  17. 사무엘상강해(22)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사무엘, 과연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삼상12:1~25)_2021-12-12(주일)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이 땅에 파송된 사무엘 선지자는 꼭 예수님을 이 세상에 소개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세례요한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왕을 세우기 전까지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려왔다. 그가 사실은 선지자였고 나실인으로서 ...
    Date2021.12.12 By동탄명성교회 Views312
    Read More
  18. 사무엘상강해(16) 사무엘이 개최한 미스바 성회, 무엇이 그 중심에 있었나?(삼상7:2~17)_2021-12-05(주일)

    왜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구국집회를 열 때면 그 집회를 "OO구국성회"라고 이름을 내거는 것일까? 그런데 바로 그 이유가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온다는 사실이다. 대체 미스바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대체 누구였으며, 이 집회는...
    Date2021.12.05 By동탄명성교회 Views462
    Read More
  19. 사무엘상강해(10) 사무엘,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삼상3:1~21)_2021-11-28(주일)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한 12살쯤 되었을 때에 그를 불러내시어 그에게 처음으로 일을 맡기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당신의 종으로 쓰시는 신호탄이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
    Date2021.11.28 By동탄명성교회 Views292
    Read More
  20. 이단들이 말하는 유월절과 새언약, 무엇이 문제인가?(눅22:14~23)_2021-11-21(주일)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도 여전히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에 제자들과 체결하신 '새 언약'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오늘날 유월절과 새 언약을 왜곡시켜 사람을 미혹하고 있는 이단들은 이 단어들을...
    Date2021.11.25 By동탄명성교회 Views68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25 Next
/ 25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