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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3-09
본문말씀 유다서 1:8~25(신약 39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유다서강해,꿈꾸는사람들,육체더럽힘,권위업신여김,영광훼방,천사장미가엘,모세이시체,가인의길,발람의길,고라의패역,모세승천기,에녹서,사도들의권위,한분하나님,구주,베드로후서

유다서는 독특하다. 바울 서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웅장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리고 이 편지에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제법 많이 등장한다. 유다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다양한 종류의 문학적인 표현들을 통하여 이단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우리는 유다가 왜 자신이 원래 쓰려고 했던 편지를 중단한 채 이 편지를 써야 했었는지를 이 편지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리고 그의 폭넓은 지식에 감탄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것도 위경의 기록들을 과감히 자신의 편지 속에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베짱도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그는 놀랍도록 겸손하기도 하다. 자신의 형이었지만 하나님이었던 예수님에 대한 경외감이 실로 크다고 아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들어가며

  유다서는 친유대적인 성향의 편지다. 그러므로 친헬라적인 서신들인 사도바울의 편지와는 조금 다르다. 그런데 유다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후서나 히브리서, 야고보서도 이와 비슷하다. 왜 그런가? 그 차이는 사도바울이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구원약속을 받지 못했던 이방인들도 구원받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유다서는 다르다. 믿음만 아니라 행함으로 온전케되는 믿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유다서를 비롯한 일반서신들은 행위로 온전케 되는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유다서는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저자 자신이 기록했는데, 그가 골수 유대인인만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매우 이채롭다. 왜냐하면 '홀로' '한 분이신' '주재'라는 칭호를 예수님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영지주의자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구원자'(소테르)라는 칭호를 하나님에게 그대로 쓰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친유대적인 인물이 보았을 때, 이단세력은 대체 어떤 사람들로 느껴졌을까? 유다는 과연 이단세력의 특징을 어떤 것으로 보았으며, 결국 이들이 어떻게 되리라고 말한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유다서의 본론부의 내용과 더불어 유다서의 결론부분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이단자들의 죄악상과 그들의 심판의 확실성을 보게 될 것이고, A.D80년경에 유다가 성도들에 들려준 권면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2. 유다가 유다서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지난 번에서 말씀드렸지만 유다가 유다서라는 이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당시 수신자들이 일반적으로 얻은 구원을 쓰려던 차였다. 하지만 큰 문제가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영지주의자들의 침투였다. 그들은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서는 성도들을 노략하고 있었다. 그러자 유다는 그들이 누군지를 실체를 밝힘과 동시에 그들에게 심판이 예고되어 있음을 구약시대에 있었던 사건과 인물 그리고 천사의 타락과정을 통해서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진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믿음에 굳게 서서 힘써 싸워야 한다고 권면하려고 이 편지를 쓴 것이다. 그래서 급히 주제가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의 주제는 이제 "이단자들에 대하여는 심판을 경고하고 올바른 믿음을 사수를 위해 힘껏 싸우라"는 수정된 것이다. 

 

3. 유다서에 등장하고 있는 '거짓교사' 내지는 '이단세력'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당시 유다서의 수신자들에게 접근해 들어온 거짓교사 내지 이단세력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것은 가만히 들어온 몇명 형제들 때문이었다(유1:4). 이들이 정통교회에 슬그머니 들어오게 된 것은 무슨 목적에서인가? 그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파괴하려 함이다. 그러자 유다는 이들이 누군지를 적나나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유다는 이들 이단세력이 갖고 있는 세 가지 특징이 무엇인지를 먼저 언급한다(유1:4). 첫째, 이들은 경건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이들은 홀로 한 분이신 주재인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그랬다. 이들은 당시 초기 영지주의자들로서,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것을 헬라철학을 수용한 기독교 이단세력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철저히 부인한다. 그리고 영은 육체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방탕하게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다는 바로 이런 세력들과 성도는 반드시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이단세력의 종말은 어떻게 되는가?

  유다는 이단세력의 마지막 종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3가지 구약의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했지만 믿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둘째, 자기 지위(처음)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영원한 결박 가운데 흑암에 가두워놓았다고 말했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와 그 도시들의 이웃 들도 육체를 따라가다가 그만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며, 육체의 쾌락을 따라가는 영지주의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어 있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로 이 이단세력들이 추구하는 바는 꿈인 것이지 결코 실제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유1:8). 이때 유다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하나의 이야기 꺼내 말한다. 그것은 모세의 시체를 차지하기 위해서 미가엘 천사장이 사탄마귀에게 다투었던 장면을 제시한다. 이때 미가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모세의 시체를 처리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가 나타나서 그 시체를 가져가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미가엘은 마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직접 처리하지 않았고, 다만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어주실 것을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가엘이 하늘에서는 위대한 대표적인 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천사장이 갖고 있는 각기 고유의 권한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께서 세우신 사도들의 말을 그냥 업신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그들은 마치 이성이 없는 짐승같다고 말하였다(유1:9~10).

 

5. 이단세력의 실상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이단세력의 실상은 어떠한가? 이들의 모습에 대해 유다는 구약의 세 인물들을 또 인용하여 그들을 폭로한다(유1:11).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다가 죽인 가인의 사례, 삯 때문에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라고 음행의 방법을 조언했던 발람 선지자의 사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권위자가 되려했다가 음부에 떨어지고 말았던 고라의 패역을 소개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모습이 영락없이 그때의 영지주의자들의 모습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는 이들의 실체를 정확히 비유적인 표현을 들어서 6가지로 정리하여 말한다(유1:12~14). 그들은 첫째, 애찬식에 암초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 자기의 몸만 기르는 삯군 목자요, 셋째,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며, 넷째, 두 번 죽은 후에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나무요, 다섯째, 부끄러움의 거품을 뿝고 있는 바다의 거친 파도들이요, 여섯째, 흑암이 영원히 예비된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이들은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요, 실상이 빈 껍데기뿐인 존재들이며, 심판의 날에는 허무하게 사라질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 아담의 칠대손 에녹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경건하지 않는 자들의 행위들과 말들을 심판하여 그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유1:14~15). 그러므로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은 불평불만이 가득한 자요, 자기의 욕망대로 행하는 자이며, 자기의 입으로 자랑하는 말과 아첨하는 말을 하는 자라는 것이다(유1:16).

 

6. 유다는 왜 위경의 기록을 인용하여 이단세력의 실상을 폭로한 것인가?

  유다서가 남다르다는 것의 하나는 그가 외경을 인용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천사들의 심판에 대해서 구약의 위경인 "에녹서"를 인용한다(유1:6). 그리고 모세의 시체의 논쟁에 관하여는 구약의 위경인 "모세의 승천기"를 인용한다(유1:9) 그리고 에녹이 예언했던 주님의 재림과 심판에 관하여는 구약의 위경인 "에녹서"를 인용한다(유1:14~15). 유다는 왜 구약의 정경도 아니고 외경도 아닌, 위경의 책들을 인용한 것인가? 여기서 '정경'이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의 성경책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책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구약성경이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7권의 책이 그곳에 삽입이 되는데, 그 책들을 가리켜 '외경'이라고 부른다. 천주교에서는 《토비트》 《유딧》 《마카베오상(上)》 《마카베오하(下)》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의 7권의 책이 바로 외경으로 그들은 그 책들을 "제2경전"이라고 부른다. 외경은 이 책들 외에도 더 있다. 그리고 정경과 외경에 둘다 속하지 않았지만  B.C.200년과 A.D.200년 사이에 기록된 또 다른 책들도 있다. 이 책들은 저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책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저자들은 성경의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책을 내놓았다. 이런 것들을 '위경'이라고 부른다. 위경에는 구약 위경이 있고 신약위경도 있다. 그런데 유다는 위경들 중에서 구약의 위경들 책 2권을 인용하였다.

  그렇다면, 구약의이 위경들은 어떻게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사실 오늘날에 성경 66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외경과 위경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책들은 왜 정경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인가? 그것은 교회공동체가 더이상 그러한 책들을 성령이 영감된 책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책들이 사도들의 저작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성경의 구원관에서도 빗나갔고, 성령의 영감성이 확연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다는 구약 위경들 중에서 "모세의 승천기"와 "에녹서"를 그대로 인용하여 영지주의자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다서 안에 인용된 구절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유다서가 신약 정경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대체 무엇을 말해주는가? 비록 "모세의 승천기"나 "에녹서"의 전부가 성령의 영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실제 사실과 일치한 것도 있기에 그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경의 내용에는 그 책의 기록자들이 직접 환상이나 영으로 본 것을 그 책에 기록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타락과 쫓겨남, 그리고 미가엘 천사장과 마귀와의 다툼 그리고 에녹의 예언 중 주님의 심팜과 재림의 예언은 사도들의 말씀들과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그것을 정경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7. 유다는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무엇을 권면하였는가?

  이어서 유다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첫째는 이단의 공격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자기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유1:21). 그러기 위해서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해야 하며,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였다(유1:20). 그래야 그들이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유1:21). 그리고 이단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있거나 의심하는 형제들이 있다손치더라도 그들을 그냥 내치지 말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유1:22). 심지어 어떤 자들은 이미 불가운데 있어도 그를 구원해 내야 한다고 했다(유1:23). 그리고 이미 육체가 더럽혀진 채 있는 자라도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그같은 행위 자체는 미워해야 한다고 하였다(유1:22~23). 그렇다면 왜 이단세력이 이렇게 교회를 공격하고 흔들게 된 것인가? 유다는 그 이유를, 이미 사도들이 말했던 바의 성취라고 했다(유1:17). 왜냐하면 마지막 때가 되면 경건하지 않는 자들이 자신의 정욕대로 행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을 기롱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유1:17~18). 왜냐하면 처음무터 이들은 분열(당)을 일으키는 자이며, 육체에 속한 자들이며, 성령은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유1:19)

 

8. 이 편지의 송영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유다는 참으로 독특하다. 그것은 그가 찬양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편지를 마감하면서 하나님께 송영의 찬송을 올려드리는데, 이때 그는 하나님에게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돌린다. 만세전부터 영원까지. 그것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영광을 올려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을 소개하는데, 그는 두 가지로 소개한다(유1:25). 하나는 그분이 "구주(구원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홀로 하나" 곧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유다서 강해 두번째 시간을 통하여, 유다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신 이가 여호와가 아니라 예수라고 기록했다는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유1:5). 헬라어 원문에는 예수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유1:6). 그렇다면 유다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토박이 유대인이다. 토박이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은 결코 두 분이 될 수 없다. 오직 하나인 여호와 한 분 하나님만 있을 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 신이요 우상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도 하나님 한 분 외이는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유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은 두 분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그도 처음에는 예수를 자신의 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그들에게 나타나시자, 그는 비로소 예수님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눈에 구약의 여호와는 한 분 하나님의 활동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는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했던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예수님을 구약의 여호와라고 소개하였던 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거로서 유다는 오직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칭호 곧 "주재(데스포테스)"라는 단어를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유1:4).

  그런데 유다는 이 편지의 마지막에 와서도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분이 "구원자"인 것을 증거한다. 그런데 왜 유다는 끝에 와서 구원자요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을까? 왜 하나님이라고 증언한 것인가? 그것은 당시 이단세력인 영지주의자들 때문인 것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예수님을 둘로 나누었다. 그래서 신적 존재인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을 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당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인간인 예수의 몸을 빌려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물질계를 창조한 구약의 여호와는 저급의 신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신앙이었다. 그러므로 유다는 구약의 여호와가 곧 예수님이시며, 그분이 인류의 구원자로 오셨다는 것을 그들에게도 알려주고자 하여, 이 편지의 마지막에 와서 '구원자'라는 칭호를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혀 사용한 것이다. 또한 그 증거가 다른 성경책에도 있다. 사실 유다서의 말씀은 25절 가운데 19절와 베드로후서 2~3장과 일치하는데,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단 한 번도 "구원자'의 칭호를 하나님에게 사용한 일이 없는 사실 때문이다.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그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벧후1:1, 11, 2:20, 3:2, 18).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말이다. 그러므로 유다가 "구주(구원자)"라는 칭호를 하나님에게 붙힌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이 그때부터 생겨내싿. 그것은 하나님께서 두 분으로 동시에 존재하시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자이자 한 분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우리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할렐루야!

 

9. 나오며

  사실 우리는 유다서의 첫 강해 시간부터 감탄을 마지 아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편지의 저자인 유다 자신이 자신의 형인 예수님을 '형'이라고 곧장 밝히지 않고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라고 썼으며, 또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칭했기 때문이다(유1:1). 그는 겸손하게도 자신의 육신의 형이었던 예수님을 감히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분은 육신을 입고오신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유1:4, 5, 25). 그러므로 우리는 이 편지가 내용적으로 볼 때에는 수신자드에게 이단 세력에 맞서도록 신앙사수를 위한 권면의 편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맞다. 그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유다는 영적인 세계의 실체를 많이 드러내주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중에서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 그리고 천사들의 타락과 심판 그리고 미가엘 천사장과 마귀의 다툼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리를 하늘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이 한 분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이단의 세력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사실 교회내의 이단도 알고보면 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영들의 세력으로서, 이단의 사상을 뿌리는 영들이 활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는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잘 건축해야 한다. 그래서 이단의 세력을 맞서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그분의 죽음을 무효화하고 있는 이단세력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진리의 말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그래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마지막 권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2022년 03월 0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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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2.03.10 22:05

    유다서는 독특하다. 바울 서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웅장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리고 이 편지에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제법 많이 등장한다. 유다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다양한 종류의 문학적인 표현들을 통하여 이단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우리는 유다가 왜 자신이 원래 쓰려고 했던 편지를 중단한 채 이 편지를 써야 했었는지를 이 편지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리고 그의 폭넓은 지식에 감탄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것도 위경의 기록들을 과감히 자신의 편지 속에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짱도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그는 놀랍도록 겸손하기도 하다. 자신의 형이었지만 하나님이었던 예수님에 대한 경외감이 실로 크다고 아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들어가며

      유다서는 친유대적인 성향의 편지다. 그러므로 친헬라적인 서신들인 사도 바울의 편지와는 조금 다르다. 그런데 유다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후서나 히브리서, 야고보서도 이와 비슷하다. 왜 그런가? 그 차이는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구원 약속을 받지 못했던 이방인들도 구원받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유다서는 다르다. 믿음만 아니라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유다서를 비롯한 일반 서신들은 행위로 온전케 되는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유다서는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저자 자신이 기록했는데, 그가 골수 유대인인만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매우 이채롭다. 왜냐하면 '홀로' '한 분이신' '주재'라는 칭호를 예수님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영지주의자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구원자'(소테르)라는 칭호를 하나님에게 그대로 쓰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친유대적인 인물이 보았을 때, 이단 세력은 대체 어떤 사람들로 느껴졌을까? 유다는 과연 이단 세력의 특징을 어떤 것으로 보았으며, 결국 이들이 어떻게 되리라고 말한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유다서의 본론부의 내용과 더불어 유다서의 결론 부분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이단자들의 죄악상과 그들의 심판의 확실성을 보게 될 것이고, A.D80년경에 유다가 성도들에 들려준 권면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2. 유다가 유다서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지난 번에 말씀드렸지만 유다가 유다서라는 이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당시 수신자들 일반적으로 얻은 구원을 쓰려던 차였다. 하지만 큰 문제가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영지주의자들의 침투였다. 그들은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서는 성도들을 노략하고 있었다. 그러자 유다는 그들이 누군지를 실체를 밝힘과 동시에 그들에게 심판이 예고되어 있음을 구약시대에 있었던 사건과 인물 그리고 천사의 타락과정을 통해서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진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믿음에 굳게 서서 힘써 싸워야 한다고 권면하려고 이 편지를 쓴 것이다. 그래서 급히 주제가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의 주제는 이제 '이단자들에 대하여는 심판을 경고하고 올바른 믿음 사수를 위해 힘껏 싸우라'로 수정된 것이다. 

     

    3. 유다서에 등장하고 있는 '거짓 교사' 내지는 '이단 세력'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당시 유다서의 수신자들에게 접근해 들어온 거짓 교사 내지 이단 세력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것은 가만히 들어온 몇 명 형제들 때문이었다(유1:4). 이들이 정통 교회에 슬그머니 들어오게 된 것은 무슨 목적에서인가? 그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파괴하려 함이다. 그러자 유다는 이들이 누군지를 적나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유다는 이들 이단 세력이 갖고 있는 세 가지 특징이 무엇인지를 먼저 언급한다(유1:4). 첫째, 이들은 경건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이들은 홀로 한 분 주재이신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그랬다. 이들은 당시 초기 영지주의자들로서,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헬라 철학을 수용한 기독교 이단 세력이다. 그러므로 이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철저히 부인한다. 그리고 영은 육체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방탕하게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다는 바로 이런 세력들과 성도는 반드시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이단 세력의 종말은 어떻게 되는가?

      유다는 이단 세력의 마지막 종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3가지 구약의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했지만 믿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둘째, 자기 지위(처음)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영원한 결박 가운데 흑암에 가두어 놓았다고 말했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와 그 도시들의 이웃들도 육체를 따라가다가 그만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며, 육체의 쾌락을 따라가는 영지주의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어 있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로 이 이단 세력들이 추구하는 바는 꿈인 것이지 결코 실제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유1:8). 이때 유다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하나의 이야기 들어 말한다. 그것은 모세의 시체를 차지하기 위해서 미가엘 천사장이 사탄 마 다투었던 장면을 제시한다. 이때 미가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모세의 시체를 처리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가 나타나서 그 시체를 가져가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미가엘은 마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직접 처리하지 않았고, 다만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어 주실 것을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미가엘이 하늘에서는 위대한 대표적인 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천사장이 갖고 있는 각기 고유의 권한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께서 세우신 사도들의 말을 그냥 업신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그들은 마치 이성이 없는 짐승같다고 말하였다(유1:9~10).

     

    5. 이단 세력의 실상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이단 세력의 실상은 어떠한가? 이들의 모습에 대해 유다는 구약의 세 인물들을 또 인용하여 그들을 폭로한다(유1:11).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다가 죽인 가인의 사례, 삯 때문에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라고 음행의 방법을 조언했던 발람 선지자의 사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권위자가 되려했다가 음부에 떨어지고 말았던 고라의 패역을 소개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모습이 영락없이 그때의 영지주의자들의 모습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는 이들의 실체를 정확히 비유적인 표현을 들어서 6가지로 정리하여 말한다(유1:12~14). 그들은 첫째, 애찬식에 암초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 자기의 몸만 기르는 삯군 목자요, 셋째,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며, 넷째, 두 번 죽은 후에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나무요, 다섯째, 부끄러움의 거품을 고 있는 바다의 거친 파도들이요, 여섯째, 흑암이 영원히 예비된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이들은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요, 실상이 빈 껍데기뿐인 존재들이며, 심판의 날에는 허무하게 사라질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 아담의 칠대손 에녹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경건하지 않는 자들의 행위들과 말들을 심판하여 그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유1:14~15). 그러므로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은 불평 불만이 가득한 자요, 자기의 욕망대로 행하는 자이며, 자기의 입으로 자랑하는 말과 아첨하는 말을 하는 자라는 것이다(유1:16).

     

    6. 유다는 왜 위경의 기록을 인용하여 이단 세력의 실상을 폭로한 것인가?

      유다서가 남다르다는 것의 하나는 그가 외경을 인용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천사들의 심판에 대해서 구약의 위경인 '에서'를 인용한다(유1:6). 그리고 모세의 시체의 논쟁에 관하여는 구약의 위경인 '모세의 승천기'를 인용한다(유1:9) 그리고 에녹이 예언했던 주님의 재림과 심판에 관하여는 구약의 위경인 '에서'를 인용한다(유1:14~15). 유다는 왜 구약의 정경도 아니고 외경도 아닌, 위경의 책들을 인용한 것인가? 여기서 '정경'이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의 성경책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책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구약성경이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7권의 책이 그곳에 삽입이 되는데, 그 책들을 가리켜 '외경'이라고 부른다. 천주교에서는 《토비트》 《유딧》 《마카베오상(上)》 《마카베오하(下)》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의 7권의 책이 바로 외경으로 그들은 그 책들을 '제2경전'이라고 부른다. 외경은 이 책들 외에도 더 있다. 그리고 정경과 외경에 둘 다 속하지 않았지만 B.C.200년과 A.D.200년 사이에 기록된 또 다른 책들도 있다. 이 책들은 저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책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저자들은 성경의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책을 내놓았다. 이런 것들을 '위경'이라고 부른다. 위경에는 구약 위경이 있고 신약 위경도 있다. 그런데 유다는 위경들 중에서 구약의 위경들 책 2권을 인용하였다.

      그렇다면, 구약의 이 위경들은 어떻게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사실 오늘날에 성경 66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외경과 위경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책들은 왜 정경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인가? 그것은 교회 공동체가 더이상 그러한 책들을 성령 영감된 책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책들이 사도들의 저작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성경의 구원관에서도 빗나갔고, 성령의 영감성이 확연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다는 구약 위경들 중에서 '모세의 승천기' '에서'를 그대로 인용하여 영지주의자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다서 안에 인용된 구절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유다서가 신약 정경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대체 무엇을 말해주는가? 비록 '모세의 승천기' '에서'의 전부가 성령의 영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실제 사실과 일치한 것도 있기에 그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경의 내용에는 그 책의 기록자들이 직접 환상이나 영으로 본 것을 그 책에 기록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타락과 쫓겨남, 그리고 미가엘 천사장과 마귀와의 다툼 그리고 에녹의 예언 중 주님의 심과 재림의 예언은 사도들의 말씀들과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그것을 정경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7. 유다는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무엇을 권면하였는가?

      이어서 유다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첫째는 이단의 공격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유1:21). 그러기 위해서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해야 하며,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였다(유1:20). 그래야 그들이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유1:21). 그리고 이단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있거나 의심하는 형제들이 있다손치더라도 그들을 그냥 내치지 말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유1:22). 심지어 어떤 자들은 이미 불 가운데 있어도 그를 구원해 내야 한다고 했다(유1:23). 그리고 이미 육체가 더럽혀진 채 있는 자라도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그같은 행위 자체는 미워해야 한다고 하였다(유1:22~23). 그렇다면 왜 이단 세력이 이렇게 교회를 공격하고 흔들게 된 것인가? 유다는 그 이유를, 이미 사도들이 말했던 바의 성취라고 했다(유1:17). 왜냐하면 마지막 때가 되면 경건하지 않는 자들이 자신의 정욕대로 행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을 기롱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유1:17~18). 왜냐하면 처음터 이들은 분열(당)을 일으키는 자이며, 육체에 속한 자들이며, 성령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유1:19)

     

    8. 이 편지의 송영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유다는 참으로 독특하다. 그것은 그가 찬양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편지를 마감하면서 하나님께 송영의 찬송을 올려 드리는데, 이때 그는 하나님에게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돌린다. 만세 전부터 영원까지, 그것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영광을 올려 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을 소개하는데, 그는 두 가지로 소개한다(유1:25). 하나는 그분이 '구주(구원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홀로 하나' 곧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유다서 강해 두 번째 시간을 통하여, 유다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신 이가 여호와가 아니라 예수라고 기록했다는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유1:5). 헬라어 원문에는 예수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유1:6). 그렇다면 유다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토박이 유대인이다. 토박이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은 결코 두 분이 될 수 없다. 오직 하나인 여호와 한 분 하나님만 있을 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 신이요 우상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도 하나님 한 분 외는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유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은 두 분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그도 처음에는 예수를 자신의 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그들에게 나타나시자, 그는 비로소 예수님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눈에 구약의 여호와는 한 분 하나님의 활동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는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했던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예수님을 구약의 여호와라고 소개하였던 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거로서 유다는 오직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칭호 곧 '주재(데스포테스)'라는 단어를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유1:4).

      그런데 유다는 이 편지의 마지막에 와서도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분이 '구자'인 것을 증거한다. 그런데 왜 유다는 끝에 와서 구원자요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을까? 왜 하나님이라고 증언한 것인가? 그것은 당시 이단 세력인 영지주의자들 때문인 것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예수님을 둘로 나누었다. 그래서 신적 존재인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을 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당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인간인 예수의 몸을 빌려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물질계를 창조한 구약의 여호와는 저급의 신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신앙이었다. 그러므로 유다는 구약의 여호와가 곧 예수님이시며, 그분이 인류의 구원자로 오셨다는 것을 그들에게도 알려주고자 하여, 이 편지의 마지막에 와서 '구원자'라는 칭호를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 붙여 사용한 것이다. 또한 그 증거가 다른 성경책에도 있다. 사실 유다서의 말씀은 25절 가운데 19절 베드로후서 2~3장과 일치하는데,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단 한 번도 '구원자'의 칭호를 하나님에게 사용한 일이 없는 사실 때문이다.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그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벧후1:1, 11, 2:20, 3:2, 18).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말이다. 그러므로 유다가 '구주(구원자)'라는 칭호를 하나님에게 붙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이 그때부터 생겨났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두 분으로 동시에 존재하시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자이자 한 분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우리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할렐루야!

     

    9. 나오며

      사실 우리는 유다서의 첫 강해 시간부터 감탄을 마지 아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편지의 저자인 유다 자신이 자신의 형인 예수님을 '형'이라고 곧장 밝히지 않고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라고 썼으며, 또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칭했기 때문이다(유1:1). 그는 겸손하게도 자신의 육신의 형이었던 예수님을 감히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분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유1:4, 5, 25). 그러므로 우리는 이 편지가 내용적으로 볼 때에는 수신자에게 이단 세력에 맞서도록 신앙 사수를 위한 권면의 편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맞다. 그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유다는 영적인 세계의 실체를 많이 드러내 주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중에서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 그리고 천사들의 타락과 심판 그리고 미가엘 천사장과 마귀의 다툼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리를 하늘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이 한 분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이단의 세력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사실 교회내의 이단도 알고 보면 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영들의 세력으로서, 이단의 사상을 뿌리는 영들이 활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는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잘 건축해야 한다. 그래서 이단의 세력을 맞서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그분의 죽음을 무효화하고 있는 이단 세력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진리의 말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그래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마지막 권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2022년 03월 0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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