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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4) 사명자의 길 곧 결박과 환난 그리고 하나님의 지키심(행21:27~36)_2023-01-05(목)

https://youtu.be/41UKahTn9eM  [혹은 https://tv.naver.com/v/32156100 ]

 

1.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부딪혔던 두 가지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면서 부딛혔던 문제는 2가지였다. 하나는 예루살렘교회의 구성원들인 믿는 유대인들과의 충돌이었다. 이들은 당시 수만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고 불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고 할례를 폐지하며 관습들을 지키는 일에 반대하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행21:21). 그러나 실은 바울이 이것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이것들은 실체이신 예수님에 대한 예표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의식법들이 말하고 있는 실체를 붙들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의 제안을 따라, 정결의식을 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때 바울이 정결의식을 행했던 것은 바울이 그것을 통해 의롭다함을 얻거나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유대인들에게 유대인과 같이 되어 그들 중의 얼마를 구원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오리지널 유대인들과의 충돌이었다. 

 

2. 바울과 유대교인들과의 충돌은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유대교인들과의 충돌이었다. 야고보의 중재로 믿는 유대인들과 충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유대교인들과의 충돌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 누가 과연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없애버리려고 시도했던 것일까? 그들은 다름 아닌, 바울이 가장 왕성하게 사역했던 에베소에 있던 바로 그 유대교인들이었다. 이들 역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는데, 그때 자신들이 에베소에서 보았던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 옆에는 에베소 사람이자 헬라인인 드로비모가 같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의 바울에 대한 적개심은 하늘로 치솟았다. 그래서 그들은 2가지로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교인들을 선동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는 바울이 이방 지역에서 유대인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전했다는 것이었다. 즉 바울이 이방인들이 사는 각처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무시하라는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것이다(행21:28). 그리고 또 하나는 바울이 거룩한 성전에 이방인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바울은 성전 안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간 적이 없었다. 다만 예루살렘에 헬라인인 드로비모와 함께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베소 거주 유대인들이 잘못 추측하여 바울을 가만 두지 않으려고 거짓 선동을 한 것이다. 그러자 온 성이 소동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군중들은 성전에서 바울을 붙잡았고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 

 

3.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소동은 어떻게 진정될 수 있었는가?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간 유대인들은 바울을 성전 밖에서 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를 죽이려고 시도하였다. 그때였다.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로마 군대의 천부장 루시아가 즉시 개입을 하였다. 적어도 2명의 백부장과 200명 이상의 군인들을 끌고 항오를 짜고 대열에 맞춰 성전쪽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러자 성난 군중들이 바울 치기를 그쳤다. 그러자 천부장은 즉시 바울을 쇠사슬로 결박하게 한 다음 성난 군중들에게 바울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 때문에 이런 소란을 일으켰느냐고 질문을 했다. 하지만 저마다 대답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은 결코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실체도 없이 바울에 대한 적개심만으로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그들의 계획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성난 군중들은 루시아 천부장에게 계속해서 그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고 따라갔다. 이때 바울을 죽지 않게 건져낸 사람은 누구였는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수만 명이나 되는 믿는 유대인들이었는가? 아니었다. 단 한 명도 바울의 일에 나서는 자가 없었다. 다만, 로마의 천부장이 그 일에 개입하여 바울을 죽지 않도록 살려낸 것이다. 

 

4. 사명자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대부분의 사명자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평탄하고 안전한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아니면 환난과 핍박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지금까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사명자치고 평탄한 길을 걸어간 사람은 거의 없다. 다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왜 사명자는 그러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사명자란 본래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도록 실행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들을 건져내어서 하늘나라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종류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자 사탄 마귀가 하나님이 보낸 사명자들을 그냥 가만 둘 리가 없는 것이다. 고로 사명자에게는 반드시 고난이 뒤따른다고 봐야 한다. 만약 자신이 사명자라고 주장하는데도 자신에게 아직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그는 진짜 사명자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은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였다. 그래서 이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러자 바울은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자 아니나다를까 유대인들은 벌떼처럼 바울에게 달려들어 바울을 없이 하려고 모의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5. 사명자는 과연 누가 지켜 주는가?

  그렇다면 위험에 처한 사명자를 누가 건져내고 누가 지켜 주는가? 그들은 수만 명이나 되는 믿는 유대인들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이방인이었다. 그랬다. 그때 바울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갔고 큰 고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에베소 거주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는 바울을 발견한 후에 그를 거짓 고소하여 죽이려고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즉시 로마 군대의 천부장인 루시아를 보내어, 그로 하여금 바울을 보호하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유대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로마인들이 와서 결국 위기에 처한 바울을 건져낸 것이다. 그렇다. 사명자가 죽는 것은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즉 사명이 끝나서 죽을 때가 되었기 때문에 사명자는 죽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사명자는 결코 함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을 때가 되어야 죽게 되는 것이지, 여전히 이루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면 그는 절대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아플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명자의 길이다. 사명자는 그를 꼭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이 있어 그가 사명자를 지켜 주는 것이 아니다. 사명자는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사람 곧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에 의해 보호되고 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은 위험한 일을 만나도 겁먹지 말아야 한다. 그때 죽으면 자신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니 할렐루야하고 찬송하면서 천국가면 되는 것이요,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된다면, 아직도 자기 자신이 부여받은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담대히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2023년 01월 05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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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3.01.05 11:49

    1.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부딪혔던 두 가지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면서 부딛혔던 문제는 2가지였다. 하나는 예루살렘교회의 구성원들인 믿는 유대인들과의 충돌이었다. 이들은 당시 수만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고 불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고 할례를 폐지하 관습들을 지키는 일에 반대하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행21:21). 그러나 실은 바울이 이것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이것들은 실체이신 예수님에 대한 예표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의식법들이 말하고 있는 실체를 붙들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의 제안을 따라, 정결의식을 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때 바울이 정결의식을 행했던 것은 바울이 그것을 통해 의롭다함을 얻거나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유대인들에게 유대인과 같이 되어 그들 중의 얼마를 구원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오리지널 유대인들과의 충돌이었다. 

     

    2. 바울과 유대교인들과의 충돌은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유대교인들과의 충돌이었다. 야고보의 중재로 믿는 유대인들과 충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유대교인들과의 충돌을 피해갈 수없었던 것이다. 그럼 누가 과연 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없애버리려고 시도했던 것까? 그들은 다름 아닌, 바울이 가장 왕성하게 사역했던 에베소에 있던 바로 그 유대교인들이었다. 이들 역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는데, 그때 자신이 에베소에서 보았던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 옆에는 에베소 사람이자 헬라인 드로비모가 같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의 바울에 대한 적개심은 하늘 치솟았다. 그래서 그들은 2가지로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교인들을 선동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는 바울이 이방 지역에서 유대인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전했다는 것이었다. 즉 바울이 이방인들이 사는 각처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무시하라는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것이다(행21:28). 그리고 또 하나는 바울이 거룩한 성전에 이방인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바울은 성전 안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간 적이 없었다. 다만 예루살렘에 헬라인 드로비모와 함께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베소 거주 유대인들이 잘못 추측하여 바울을 가만 두지 않으려고 거짓 선동을 한 것이다. 그러자 온 성이 소동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군중들은 성전에서 바울을 붙잡았고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 

     

    3.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소동 어떻게 진정될 수 있었는가?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간 유대인들은 바울을 성전 밖에서 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를 죽이려고 시도하였다. 그때였다.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로마 군대의 천부장 루시아가 즉시 개입을 하였다. 적어도 2명의 백부장과 200명 이상의 군인들을 끌고 항오를 짜고 대열에 맞 성전쪽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러자 성난 군중들 바울 치기를 그쳤다. 그러자 천부장은 즉 바울을 쇠사슬로 결박하게 한 다음 성난 군중들에게 바울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 때문에 이런 소란을 일으켰느냐고 질문을 했다. 하지만 저마다 대답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은 결코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실체도 없이 바울에 대한 적개심만으로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그들의 계획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성난 군중들 루시아 천부장에게 계속해서 그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고 따라갔다. 이때 바울을 죽지 않게 건져낸 사람은 누구였는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수만 명이나 되는 믿는 유대인들이었는가? 아니었다. 단 한 명도 바울 일에 나서는 자가 없었다. 다만, 로마의 천부장이 그 일에 개입하여 바울을 죽지 않도록 살려낸 것이다. 

     

    4. 사명자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대부분의 사명자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평탄하고 안전한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아니면 환난과 핍박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지금까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사명자치고 평탄한 길을 걸어간 사람은 거의 없다. 다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왜 사명자는 그러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사명자란 본래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도록 실행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들을 건져내어서 하늘나라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종류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자 사탄 마귀가 하나님이 보낸 사명자들을 그냥 가만 둘 리가 없는 것이다. 고로 사명자에게는 반드시 고난이 뒤따른다고 봐야 한다. 만약 자신이 사명자라고 주장하는데도 자신에게 아직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그는 진짜 사명자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은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였다. 그래서 이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러자 바울은 위험을 무쓰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자 아니나다를까 유대인들은 벌떼처럼 바울에게 달려들어 바울을 없이 하려고 모의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5. 사명자는 과연 누가 지켜 주는가?

      그렇다면 위험에 처한 사명자를 누가 건져내고 누가 지켜 주는가? 그들은 수만 명이나 되는 믿는 유대인들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이방인이었다. 그다. 그때 바울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갔고 큰 고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에베소 거주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는 바울을 발견한 후에 그를 거짓 고소하여 죽이려고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즉시 로마 군대의 천부장인 루시아를 보내어, 그로 하여금 바울을 보호하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유대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로마인들이 와서 결국 위기에 처한 바울을 건져낸 것이다. 그렇다. 사명자가 죽는 것은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즉 사명이 끝나서 죽을 때가 되었기 때문에 사명자는 죽는 것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사명자는 결코 함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을 때가 되어야 죽게 되는 것이지, 여전히 이루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면 그는 절대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아플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명자의 길이다. 사명자는 그를 꼭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이 있어 그가 사명자를 지켜 주는 것이 아니다. 사명자는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사람 곧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에 의해 보호되고 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은 위험한 일을 만나도 겁먹지 말아야 한다. 그때 죽으면 자신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니 할렐루야하고 찬송하면서 천국가면 되는 것이요,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된다면, 아직도 자기 자신이 부여받은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담대히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2023년 01월 05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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