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9월 특별새벽집회
1.일시 : 2018.9.3(월)~8(토) 새벽5시30분
2.장소 : 동탄명성교회 본당
3.주제 :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Pn1GC5bxDjgdcZluAnO0Jwnxkz7j-Nc7 ]
4.목차
(1) [강추] 노아는 어떻게 자기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나?(창6:9~15,7:1)
“자녀들에게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라!” [ https://youtu.be/Nfd9WXnVVWQ ]
(2) 가족을 살리기 위해 야곱이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나?(창32:9~12)
“고비마다 일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아라!” [ https://youtu.be/g6IrorGIzyk ]
(3) 직업을 통해서 자기가족을 구원한 기생 라합(수2:8~14)
“정보를 파악하여 참 생명의 길을 택하라!” [ https://youtu.be/x71CKG89Jvs ]
(4) 책망하지 못해 멸문지화를 당한 엘리 제사장(삼상2:22~26)
“분명한 잘못이라면 책망하기를 주저 말라!” [ https://youtu.be/F28w3i1B_Fo ]
(5) 유언을 남겨 자식을 구원으로 인도한 다윗 왕(대상28:9~10)
“신앙을 유언으로 물려주라!” [ https://youtu.be/hAkYDKocQ4o ]
(6) 음녀가 된 아내를 끝까지 품어준 호세아(호3:1~5)
“배우자가 방탕으로 길을 갈지라도 끝까지 사랑하고 품어주라” [https://youtu.be/U8amdZrzcRA ]
(7) 자신의 믿음으로 딸을 고친 가나안 여인(마15:21~28)
“자녀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알고 처리하라” [ https://youtu.be/Cuc_EjuiIzY ]
(8)[강추] 가족구원을 위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상숭배(계2:20~23)
“우상숭배라면 어떤 것이든지 끊어버리라!” [ https://youtu.be/ZLwvOGZLlDk ]
(9)[종합편] 믿음과 회개에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약2:25, 계2:21)
“행동으로 믿음을 보이며, 잘못한 것은 즉시 회개하라!” [ https://youtu.be/H09_5mhyJ5U ]
(10)[보너스]가까운 친족과 친구 전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행10:24~33)
“전문가를 초빙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주라!” [ https://youtu.be/c147u8Z5l0c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동탄명성교회
18455 경기도 화성시 동탄반석로 120, 제일프라자 8층
☏(031)613-2001, 37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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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특별새벽집회 설교원고(내가족구원8가지방법).hwp
2018년 9월특별새벽집회 설교원고(내가족구원8가지방법).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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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노아는 어떻게 자기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나?
[찬송] 찬510장 하나님의 진리등대
[말씀] 창세기6:9~10,7:1(구약 8면)
2018.8.26(주일)
1. 들어가며
아담의 10대 후손이었던 노아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아담이후 아브라함 때까지 살았던 족장들 가운데 가장 늦게 자식을 낳았던 사람이요(창5:32,11:10), 가장 적게 자식을 낳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나이 502세 때에 첫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셈이라는 아담의 11대후손이다. 노아 이외에 가장 늦게 자식을 낳은 사람은 노아의 할아버지였던 므두셀라였는데, 그는 187세에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을 낳았다. 또한 노아는 502세 첫아들을 낳았고 그 뒤로 함과 야벳이라는 두 아들을 더 낳았는데, 그후 그의 나이 600세에 홍수를 겪었다. 그리고 350년을 더 살고 950세에 죽었다. 하지만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 이외에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아더러 방주를 지어 홍수심판을 면하라고 명령하시면서, 방주 안에 들어갈 사람으로서 노아 이외에도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들과 세 자부들을 지명하셨다(창6:18). 결국 노아는 자식들과 며느리들까지 홍수심판으로부터 구원해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노아의 8식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는지와 우리도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노아의 홍수는 언제 일어났으며 그때 자식들은 어떤 상황이었는가?
노아의 홍수는 언제 일어났을까? 그것은 노아의 나이가 600세되던 해였다(창7:11). 사람은 흔히들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기간이 120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창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취해 육체만을 추구하자, 하나님은 사람지음을 한탄하셨고 인간의 수명이 120년이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기간이라고 생각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노아는 방주를 120년 혹은 100년간 짓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노아더러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실 때에는 이미 세 아들들이 있었고 또한 세 아들들이 결혼하여 세 자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창6:18). 그런데 성경은 노아가 첫아들인 셈을 낳았을 때의 나이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때는 바로 노아가 502세가 되던 해였다(창5:32, 6:9~10, 11:10). 다시 말해, 노아가 혼자 있을 때에 방주건조명령이 내려진 것이 아니라, 셈과 함과 야벳이 태어나고 나서 또한 그들이 장가를 간 후에 비로소 방주건조명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은 많아야 70~80년 정도 되며, 늦게 잡으면 50년 정도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아들들이 결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방주건조명령을 내리셨다. 이때 처와 세 아들들과 세 자부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 방주건조명령은 노아에게 내려졌지만 방주 안에 들어가 물의 심판을 면하라고 한 사람은 노아의 전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노아의 전가족은 물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3. 노아는 어떻게 되어서 자신과 자신의 처와 세 아들들과 세 며느리들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
노아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노아가 하나님 앞에 보인 자신의 믿음과 행동 때문이요, 둘째는 자신의 아들들과 자녀들 앞에 보여진 노아의 믿음과 행동 때문이다.
먼저, 노아가 하나님 앞에 보였던 자신의 믿음과 행동부터 살펴보자.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기 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고 온전한 자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다(창6:9). 그것은 그의 모든 행동이 다 의롭고 온전해서라기보다는 제단을 쌓고 희생제물을 드리면서 회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요, 폭력과 살인과 강간으로 가득찬 당시의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을 외쳤기 때문이다(창7:1).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그를 의(義)를 전파했던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벧후2:5). 의(義)라는 것이 무엇인가? 죄(罪)는 심판하고 선행은 상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당시의 상태로서는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고 것을 간파하고 노아는 날마다 제사를 드렸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외쳤던 것이다. 그래서 노아는 먼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죽어서 구원받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도 이같이 말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겠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4:20)". 노아는 노아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속죄의 제사를 드려왔고 회개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둘째, 노아가 자기의 가족들 앞에 보였던 그의 믿음과 행동을 살펴보자. 우리는 노아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미쳤을 놀라운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자기의 가족들이 전부다 방주 짓는 데에 기꺼이 동참해주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심지어 세 아들들은 방주를 완성할 때까지 적어도 50년 많게는 70~80년을 자식을 낳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그대로 따라갔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은 없다. 노아는 방주건조명령을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들은 성격이 다르다. 그러한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도 아니며, 또한 자식을 낳는 것까지 금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따라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기꺼이 아버지를 도와 방주를 지었고, 아버지처럼 자식을 낳지 않고서(동침하지 않고서) 수 십 년을 지냈다는 것은 놀랄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식들의 눈에도 아버지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고, 신앙과 삶에 있어서 아들들을 감동시키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세상 천지에 어느 아버지가 다 자라 성년이 되었고 결혼까지 한 자식들에게 자식까지 낳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식들이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노아의 아들들의 믿음까지 인정해주셨기에, 노아더러 아들들과 자부들까지도 방주에 들어가서 홍수심판을 면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4. 오늘날 왜 우리들은 자식들을 구원해내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자식들을 구원해내지 못하는가? 물론 구원은 일대일이기에 내 자신의 믿음만으로 내 자식을 구원해낼 수는 없다. 다만 내 자식이 구원을 받는 데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노아는 자신의 가족구성원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마도 노아의 아들들은 자발적으로 아버지의 사명에 동참하였고, 심지어 산하제한까지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성도들의 자녀들 중에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특히 교회의 중직자인 목사와 장로, 권사의 자식들 중에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가 왜 이렇게 많은가? 그것은 우리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와 중직자들이 교회에 나와서는 충성된 일꾼이라고 불릴지는 모르나 집안에서는 자녀들에게 전혀 신앙인다운 모범된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다. 교회에서는 충성된 일꾼이라고 불리지만 집에 들어와서는 다른 교회의 성도들을 비난하고, 헐뜯고 목회자를 험담하는 등의 일을 예사로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본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을 참된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오늘 내 자녀들에게 "나는 나의 부모님을 진짜 존경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녀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라. 겉으로는 목사요 장로요 권사이지만 실제로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화내고 분풀이하고, 미워하고 비방하며, 참지 못하고, 윽박지르고 있지 아니한가! 교회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녀를 내팽개쳐버린 채 살고 있지는 아니한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니다. 만약 그러한 부모를 오늘도 보고 있는 자녀라면, 과연 자신의 미래를 노아의 세 아들들처럼 결정할른지 생각해보라.
5. 과거에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지 못한 부모라면 현재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부모로서 과거에는 신앙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삶을 살아,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신앙의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살아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먼저는 자녀들 앞에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때에는 알지 못하여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었노라고. 그렇게 해도 나는 믿음이 있으니까 천국 갈 줄 알고 있었노라고.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얼마나 잘못된 신앙관에 빠져있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노라고. 그래서 이제부터나마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해보겠노라고. 그래서 지난날에 보았던 부모의 언짢은 모습을 용서해 달라고. 앞으로는 제대로 된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할 테까지 상처받은 것 다 용서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진짜로 날마다 회개하며 자신의 잘못된 지난날의 전철을 밟지 말고, 오직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자식을 구원하는 방법은 그냥 내뱉는 말로 가능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통해 구원의 소식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지만 내 자식은 말로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이 그들을 전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을 믿고 맡기는 일도 부모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6. 나오며
지금도 내 자식들은 내가 얼마나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믿음의 말을 하고 있는지도 보고 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내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신앙으로 극복하는지도 보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는지도 보고 있다. 자식을 그것을 통해서 부모의 신앙까지도 따라가며 그것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자식을 직접적으로 구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자식이 구원얻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부모다. 오늘부터라도 내 영혼이 죽어서 천국가기 위해서 그리고 부모로서 내 자식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감당하길 바란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도 부끄럽지 않은 삶, 자식도 인정해주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가족을 살리기 위해 야곱이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나?
[찬송] 찬364장 내 기도하는
[말씀] 창세기32:9~12(구약 49면)
2018.9.2(주일)
1. 들어가며
야곱은 쌍둥이였다. 그는 그중에 동생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잔꾀가 많았다. 심지어 형의 장자의 명분까지 팥죽 한 그릇으로 살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일은 그가 16살 때쯤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 일로부터 60년이 지난 후,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서 형이 받을 장자의 축복까지 빼앗았다. 그러자 야곱의 형이었던 에서는 동생을 죽이려고 한다. 그러자 야곱은 하는 수 없이 어머니의 권고로 에서의 노가 풀릴 때까지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 아버지 이삭은 야곱을 보내면서, 한 가지를 부탁했는데, 그것은 야곱이 그곳에 가서 같은 종족(셈종족)인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곱은 정든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20년을 살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형 에서의 분노가 아직도 식지 않아 전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자 그가 선택한 한 가지 행동이 있었다. 그것은 사생결단의 기도를 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대체 그는 어떻게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하나님께서 "네게 이겼다"라는 말할 정도가 되었으며, 자녀들의 안전까지 얻는 복을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야곱은 언제 하나님을 만났을까?
야곱이 하나님을 알게 된 시기는 사실 이른 시기는 아니었다. 그의 신앙의 시작은 76세 되던 해에 벧엘에서였으며, 그의 신앙이 인정받은 것은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지난 96세되던 해, 얍복강에서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곱이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했던 것이 야곱의 젊었을 때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결혼도 못한 채 늙어가고 있는 야곱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의 나이가 76세되던 해였기 때문이다. 그때에 형 몰래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야곱이 얼마나 늦은 나이에 외삼촌집으로 도망쳐야 했는지 우리는 그의 삶을 역추적해 봄으로 알 수 있다. 그가 자기식구 70명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갔을 때, 그의 나이는 130세였다(창47:9). 그리고 그때 요셉은 40세였다. 애굽에서 총리가 된 지 10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곱이 요셉을 낳을 때 그의 나이가 90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야곱은 요셉을 낳고 6년이 지난 후에 밧단아람 곧 하란을 떠나 자기의 고향 브엘세바(헤브론)으로 향한다. 그런데 야곱은 외삼촌집에서 두 딸들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을 종살이해야 했으며, 이후 6년을 더 봉사해야 했다. 그러므로 야곱은 83세에 결혼했고, 그가 76세 때에 외삼촌집으로 길을 떠났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600km가 넘은 길을 가고 있을 때에, 루스지방에서 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닥다리 위에서 그에게 자신의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자손번성과 가나안땅기업 축복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신다. 그리고 그에게 4가지를 더 약속하신다. 그것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네게 어디로 가든지 지켜줄 것이다. 너를 이끌어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해주겠다.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창28:15)."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서 자기가 베고 자던 돌베게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으로 “하나님의 집(벧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벧엘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은 야곱이 하나님을 찾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만나 준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일방적인 찾아오심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그때 홀로 외로이 길을 가고 있는 야곱을 만나주신 것일까? 그것은 야곱이 무엇인가를 잘 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기도덕분이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돌봐주시도록 기도했기 때문이다(창28:3~4). 어찌 되었든 야곱은 아버지의 기도로 꿈속이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에 외로운 마음에 많은 안정을 얻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아비의 기도는 이렇게 아들을 살릴 수 있다.
3. 그가 외삼촌 집에서 경험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외삼촌 라반의 집까지 찾아간 야곱은 그 집에서 아버지가 부탁한 또 한 가지 숙제를 행하는데, 그것은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야곱의 눈에는 외삼촌 라반의 두 딸들 가운데 동생 라헬이 훨씬 더 사랑스러워보였다. 그때 외삼촌은 야곱을 데리고 있으면서 품삯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았고, 그때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달려고 했다. 그러자 외삼촌은 그에게 7년봉사를 제안한다. 결국 7년을 수일처럼 일하고 기다려 결혼을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다. 그러니 라헬을 다시 얻기 위해 야곱은 또다시 7년봉사를 약속했고 일주일 후에 라헬과 두번째 결혼을 한다. 그리하여 야곱은 83세에 결혼하여 레아와 라헬 그리고 두 명의 여종을 아내로 맞이하여, 총 11명의 아들들과 한 명의 딸을 낳는다. 마지막으로 라헬이 11번째 아들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은 이제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삼촌은 그제야 진짜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품삯을 속이고 잘 주지 않는 것을 알았던 야곱은 외삼촌에게 제안하기를 양떼 중에서 아롱지고 점이 있고 검은 색의 양들이 태어나면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얼씨구나 하고 품삯을 정했던 외삼촌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야곱의 양떼는 늘어만 간다. 왜냐하면 야곱이 튼튼한 양을 얻기 위해 양들이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살구나무 신풍나무 버드나무 가지를 그들 앞에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러한 행위가 양떼들로 하여금 아롱지고 점이 있고 검은 색의 양들이 낳게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그 비밀은 나중에 알게 된다. 그것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그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경험했고 할아버지가 경험했던 전능하신 하나님을 양떼를 치면서 비로소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창17:1, 28:3~4). 그러니까 훗날 야곱도 자신이 만난 하나님이 다름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창48:3).
4. 두 떼나 되는 처자식과 소유물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고민이 깊어가는 야곱
라반의 집에서 양떼들을 돌보면서 다시 6년을 봉사하자, 야곱도 어느새 부자가 된다. 양떼와 소떼가 많아졌고, 낙타와 나귀와 노비들도 많아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신다(창31:3,32:9). 그러나 외삼촌이 잘 보내줄 것 같지 않자, 야곱은 야반도주를 선택하고 뒤쫓아와 외삼촌과 잘 화해하고 돌아가는데, 이제는 형 에서의 분노가 과연 풀렸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야곱은 미리 사절단을 보내는데, 돌아온 기별은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들을 데리고 온다는 것이었다. 형의 노가 풀린 줄 알았는데, 형이 자신에게 앙갚음하겠다고 온다는 기별을 듣게 된 야곱은 깊은 시름에 빠지게 된다. 고비고비마다 쉽게 지나오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큰 시험거리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정신없이 왔으며, 지팡이 하나 들고 혈혈단신으로 요단강을 건너왔지만 이제는 4명의 부인들과 12명의 자식들과 두 떼를 이룬 소유물을 과연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벧엘에서 나타나시고 하란에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자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먼저 처자식과 소유물을 건넨 후, 얍복강에 홀로 남아 처절한 기도를 시작한다. 그러자 한 사람 곧 천사가 나타나는데(호12:3~4), 야곱은 그 천사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를 꽉 붙잡는다(씨름했다는 원뜻). 사실 야곱이 처자식과 소유물을 얻기까지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하든지 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자기의 힘으로 지켜낼 수 없다는 자괴감에 그는 정말 괴로웠을 것이다. 처자식이 무슨 죄인가 싶었을 것이다. 이제 큰 아들 르우벤은 13살, 막내 요셉은 6살이 아닌가? 천진난만한 아이들인데, 어찌 이 어린 것들을 하루 아침에 잃어야 하는지 마음이 너무나 아팠을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타난 그 천사를 힘껏 붙들기로 한다. 천사는 이내 돌아가려고 하지만 야곱의 처절한 기도에 꼼짝 못하게 되자, 천사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환도뼈)를 쳐버린다. 그래도 야곱은 천사를 놓아주지 않은 채 필사적으로 매달리면서 말한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당신을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그러자 천사는 “네가 하나님(천사)과 사람들(에서와 400명의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고 하면서 야곱을 축복하고 떠난다. 야곱의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이다.
5. 가족을 살리려고 몸부치는 야곱을 보면서
우리는 여기서 처자식을 살리려고 몸부림치는 야곱을 보게 된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드는 길밖에 없다는 것임을 야곱은 그때 확실히 알았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도는 생사가 달려 있었기에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 사실 야곱은 아버지의 기도덕분에 복받고 살았다.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자신에게 나타난 것도 아버지의 기도 덕분이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부자가 된 것도 사실은 아버지의 기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 처자식과 낙타와 나귀와 노비들이 자신의 손에 달린 것이다. 자신의 몸 하나만 건지자면 도망치면 된다. 하지만 어린 것들을 놔두고 도망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실 모든 사람이 자식 때문에 고생도 사서하는 것이고 자식 때문에 희생도 해 보는 것이다. 자식의 문제만큼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다. 야곱은 지킬 힘이 없었지만, 에서는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자녀를 지킬 힘이 없지만 사탄마귀는 우리의 자녀들을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도 전능자 앞에 무릎 꿇지 아니할 수 없다. 내 힘만으로 사탄마귀로부터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낼 수 없으며,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찾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가 있어야 그들도 벧엘의 체험을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기도가 있어야 내 자식이 하란에서의 초자연적인 체험도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보지 않겠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의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녀는 자녀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그냥 넘어가고 있지는 아니한가? 아니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빚진 자였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얍복강가에서 그 빚을 갚기 시작했다. 처자식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야곱처럼 처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얍복강의 체험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의 하나님에게서 이제는 나의 하나님으로 바꾸어야 되지 않겠는가?
6. 나오며
여러분은 과연 자녀를 위하여 눈물로 절규하면서 부르짖어 보았는가? 나의 자녀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해보지 않는 자는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자녀사랑은 간절한 기도로 그들의 미래를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요, 그들의 앞길을 인도해달라고 전능자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홀로 길을 가는 야곱에게 벧엘의 하나님은 야곱에게 4가지를 약속했었다. "함께 할 것이다. 지켜줄 줄 것이다. 인도해줄 것이다.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야곱에 나타나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 4가지 축복이 그냥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우리의 처절하고도 간절한 기도가 수반될 때에 가능하다.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지금도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기도가 없는데 그분이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은총을 베풀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간절히 기도하자. 부르짖어 기도하자. 기도하여 우리 자손을 하나님의 손에 위탁하자. 그분이 인도해주시어 그들도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믿어, 회개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천국에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직업을 통해 자기가족을 구원한 기생 라합
[찬송] 찬379장 내 갈 길 멀고
[말씀] 여호수아 2:8~14(구약 321면)
2018.9.3(월)
1. 들어가며
어떤 가정이든지 가족 중에서 먼저 구원받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신이 들어서 알고 있는 정보가 정말 참된 생명 길을 얻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만 믿고 구원받으면 되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구성원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주어 그들도 살려내야 되지 않겠는가? 만약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 자기의 생명만을 보존하길 원했다면 그녀는 혼자 여리고성을 빠져나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투항하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참된 영적인 정보를 알게 된 것을 두고 그녀는 막중한 부담을 느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건 행동을 실천에 옮김으로서 자기와 자기가족 구성원 모두를 구원얻게 한다. 그래서 오늘은 한 사람의 행함있는 믿음의 실천으로 인하여, 한 가족 전부를 구원한 실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2.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은 어떤 여인이었는가?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 매춘행위를 하고 있던 부도덕한 여인이었을까?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그녀를 자기의 생명을 담보로 정탐꾼을 살려 보내 자기가족을 구원한 믿음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생명과 가족을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조상인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게 됨으로, 다윗왕의 증조할머니이자 메시야의 직계조상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마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왜 그녀에게 기생 곧 창녀라는 수식어가 달린 것일까? 그것은 구약성경에서 그녀를 소개하는 문구에 “기생의 집”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어서 후손들에게 그렇게 불려진 말인 듯 싶다(수2:1,6:22) 그런데 당시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녀가 창녀일 수가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나온다. 그것은 첫째로, 여호수아가 보낸 2명의 정탐꾼들이 그 중요한 시점에 매춘행위를 하기 위해 기생의 집에 들어갔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두 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땅과 여리고성을 정탐하라 보낸 특수한 사명자들이다. 그런데 그들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창녀의 집에 매춘하러 들어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둘째, 여리고 왕이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사람들을 보냈는데, 만약 그녀가 창녀와 같은 천한 직업의 종사자였다면 아마 그녀는 포박당하여 끌려갔을 것이다. 셋째, 그녀가 진정 창녀였다면, 여리고성이 멸망하던 날, 그녀의 집 안에 자기의 부모와 자기 아버지의 가족인 자기의 형제들과 자매들 그리고 그들에게 속한 자들과 친척들까지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의 집 안에 모여 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넷째, 만약 그녀가 창녀였다면 그녀는 돈 버는 일만에 혈안이 되어있을 것인데 그녀는 그렇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정보까지 다 꿰뚫어보고 있었다. 다섯째, 그녀가 정말 창녀였다면 출애굽2세대였던 유다지파의 청년이었던 “살몬”이라는 사람이 그녀를 아내로 쉽지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자는 창녀라고 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러므로 어떤 신학자들에 의하면, 그녀는 여관집 주인 내지는 카운터 담당자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여자는 보통 베일을 쓰고 있는데, 여관집을 운영하다보니 베일을 쓰지 않아서, 얼굴을 보이며 사는 여자라는 뜻에서 창녀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에 대한 기사를 종합해보면, 이 여자는 여관집을 운영하던 주인이었을 것이다. 다만 다른 여관집들 중에는 매춘행위를 한 집도 있었기에, 그녀의 집도 기생의 집이라고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3. 여관집을 운영하던 이 여인이 귀기울인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 이 여인은 여관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이었기에 외부의 손님들로부터 여러가지 소식들을 많이 들어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일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그녀가 정탐꾼들에게 자기가 정탐꾼들을 숨겨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수2:9-13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첫째, 그녀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 함으로 이스라엘은 무사히 건너갔지만 당시 세계최고의 군대인 애굽군대가 전멸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요단강동편과 동북편에 위치한 당시 최고의 무적의 왕들이라 일컬어지던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도 여호수아의 군대에 의해 전멸당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둘째,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는 하나님은 히브리인들만이 믿는 부족신 정도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절대 창조주라는 사실과,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조차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직업을 통하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참된 신이 누구며, 그분이 지금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탐꾼이 자기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재빠르게 그들을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삼대 줄기들로 덮어 그들을 숨겨주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살려줌으로 자기와 자기가족을 구원할 방도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4. 정탐꾼을 살려주기 위해 그녀가 행한 거짓말은 과연 죄라고 할 수 있는가?
라합의 집에 두 명의 정탐꾼이 들어왔을 때에, 이미 여리고 왕도 그 소식을 듣고는 정탐꾼들을 붙잡도록 사람들을 보냈다. 하지만 라합은 이미 사태를 주시하고 그들을 몰래 숨겨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과연 그 사람들이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 잡으리라(수2:4~5)” 어찌 보면, 그녀의 거짓말은 매국적인 행위이자 자기민족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반역의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긴 죄인인가? 아니다. 만약 이 여인의 말을 거짓말로 본다면, 히브리산파들이 했던 말들도 거짓 증거한 죄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히브리산파들도 바로왕의 명령을 어겨, 자기가 해산하는 히브리여인들에게 가기전에 해산하더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 여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여서 하는 행동이므로 하나님이 그 여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출1:21). 그렇다. 라합의 행동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하는 일로 인하여 이미 하나님은 가나안을 심판하기로 작정한 상태였으며, 가나안민족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자기와 자기의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위험을 무릎쓰고서라도 정탐꾼을 살려보내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 즉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은 모든 세상 법 위에 존재하는 가장 위의 상위법이기 때문이다.
5. 그녀가 정탐꾼을 살려준 믿음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할 점은 무엇인가?
만약 그녀 혼자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알고 그녀 혼자만 살기를 바랬다면 그녀는 정탐꾼들을 숨기는 위험한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하늘과 땅의 절대주권자인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통해 얻은 정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 정보를 통해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도 살리고, 자기의 형제자매들도 살리며, 자기의 아버지의 가족까지 살리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이야말로 인류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전능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만 그 사실을 알고 끝내버리면 되겠는가?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었던 부모님과 형제자매들 그리고 친척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면 그들에게 꼼꼼하게 들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야 되지 않겠는가? 천국가는 길이 오직 예수님뿐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면, 언젠가는 그 사실을 날잡아서 가족에게는 꼭 들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책망하지 못해 멸문지화를 당한 엘리 제사장
[찬송] 찬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말씀] 사무엘상 2:22~26(구약 411면)
2018.9.4(화)
1. 들어가며
이 세상에는 자신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다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냥 그렇게 두게 되면 자신의 가족이 멸망당하게 될 줄을 알면서도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화를 좌초한 사람들도 있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은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내가 속한 가문을 살리고 우리의 후손들이 복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비의 모범적인 삶이 필요하고(노아의 경우), 사력(死力)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도 있어야 할 것이다(야곱의 경우). 더불어 참된 신앙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으면 그것으로 가장 먼저 가족을 구원하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기생 라합의 경우). 하지만 반대로 잘못된 것을 알면서 지적하지 않고 책망하지 않았을 때에 그 결과로 자신의 가문이 문을 닫는 상황에 치달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책망이 얼마나 중요한 가족구원의 요소인지를 살펴보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2. 엘리 제사장의 가문은 어떤 집안이었나?
엘리 제사장은 아론의 아들들 가운데 엘르아살 가문이 아니라 이다말가문의 제사장이었고, B.C.1100년경에는 실로에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다. 우리가 잘 아는 한나의 서원기도를 인하여 사무엘의 잉태와 출생에 관여했던 인물이 바로 그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좀 늦게 두 명의 자식을 두었으니, 그들의 이름이 홉니(“올챙이”)와 비느하스(“흑인”)였다. 홉니는 상대적으로 키가 작아서 아마도 올챙이라는 이름이 붙혀진 것 같고, 비느하스는 검은 피부를 지닌 것 같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복무시기가 있는데, 30세부터 50세까지다(민4:3,28,33). 그러나 25세부터 인턴쉽 과정을 5년간 마친 후 제사장이 된다(민8:3). 엘리 제사장은 50세가 넘어 복무연한을 마쳤다. 그래서 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제사장직을 물려준 후였다(삼상1:3). 그러니까 이때에 홉니와 비느하스가 적어도 30살 이상은 되었다는 이야기다.
3. 엘리 제사장 가문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그런데 늦게 낳았던 두 아들들이 얼마나 기특했던지 엘리 제사장은 그들이 제사장이 된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 점차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커졌고 엘리 제사장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는데, 첫째, 자기의 두 아들들이 전장에서 죽는다. 둘째, 자기도 그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다. 셋째, 남편과 시아버지의 미명횡사소식을 들은 둘째 며느리가 둘째아들을 낳다가 난산하다 죽는다. 넷째, 사울왕 때에는 비느하스의 첫째아들인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이 에돔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다섯째, 다윗시대에는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파면을 당함으로 엘리가문이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엘리가문이 이렇게 몰락하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요약하면 3가지였다. 첫째, 엘리제사장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자신의 두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기 때문이다(삼상1:3,2:11,17). 당시 제사장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는 세습제사장들이었다. 그런데 제사장이란 최일선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기에 제사장은 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특히 제사장들은 제사만 드리는 행위를 함에 있어서 율법 규정에 따라 엄숙하게 그것을 감당할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있었다. 아비인 엘리가 어릴 적부터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늦게 자식을 보았다고 어우르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만 그들의 나이가 30세가 되어버렸고 그러자 그들을 제사장으로 세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여전히 홉니와 비느하스는 무가치한 불량자들이었다(삼상2:11).
둘째, 엘리는 자신의 아들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여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고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들을 약간 나무랄 정도로 그쳐버렸기 때문이다(삼상2:23~24). 아니었다. 아들들의 범죄는 심각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는 그들을 엄하게 책망하고 그들을 징계했어야 했다. 그래도 만약 그들이 듣지 않았을 때에는 자기자식일지라도 제사장직에서 파면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유연하게 대처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도 자식들을 더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자식이 우상이 되어서 자식이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면서도 자식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량하게 살아가는데도 가만히 놔두는 부모가 있다.
그렇다면 엘리의 아들들은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었는가? 첫째로는, 그들은 제사장이라는 월등한 지위를 악용하여, 제사 드리려 나오는 백성들에게 잘못을 범했으니,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율법규정은 깨뜨리면서 자기의 배만 채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백성들이 와서 화목제사를 드릴 때에는, 먼저 희생제물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잡아야했다. 그리고 고기의 기름 부분을 잘라내어 먼저 불태워야했다. 그리고 삶은 고기 중에서 가슴과 오른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고 나머지는 제사를 드린 사람이 가져가서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먼저, 그들은 백성들이 기름을 갈라내어 하나님께 불태워 드리기도 전에 기름섞인 고기를 빼앗아갔다. 자기 아버지 엘리제사장이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않고 날 것을 원하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삶은 고기 중에 자기 분깃을 가져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살 고리를 가지고 와서는 가마솥에 찔러 넣어 걸려나오는 고기는 다 제사장 몫이라면서 가져가버렸다.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어떻게 했을까? 조금 기다려서 기름이라도 태워드린 후에 가져가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둘째로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은 상태였지만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도 동침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범했던 것이다(삼상2:22).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하나님으로 섬겼고, 하나님의 이름은 내팽개쳐버렸으며, 제7계명까지도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앞에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할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경멸한 채, 제1계명과 2계명과 3계명 그리고 제7계명을 범하고 있는 그들을 죽이기로 결정하신다.
셋째, 자식을 계속 그렇게 놔두어서는 가문을 멸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두 번씩이나 받고도 자식을 책망하지 않은 채 그것을 대수롭게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즉시 회개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식을 엄하게 책망해서라도 바르게 인도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자식이 우상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이렇게 경고하셨다.
삼상2:29-34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너는]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게 속한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자, 이제는 둘째로 아이 사무엘을 보내 또다시 경고하셨다.
삼상3:12-13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리고 전쟁이 터졌고, 그때부터 그 집안에 심판의 바람이 불어닥쳤으며 결국 멸문가문이 되고 만다.
4. 오늘날 우리 부모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모두가 다 예수믿고 천국 들어오기를 바라신다. 하지만 지은 죄를 회개하지도 않고 그 죄를 떨쳐버리지 않는 자까지 천국에 데려가시지는 않는다. 지은 죄는 회개해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잠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그렇다. 자식은 어려서부터 말씀과 기도로 잘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길을 갈 때에는 반드시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 자랐는데도 계속 그 길을 걸어갈 때에는 자식에게 회개할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날을 잡아서 자식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오늘날에 자식이 삐뚫어진 길로 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래서 지옥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냥 놔두는 것이다. 아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경우를 보라. 주님의 책망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자식을 살리는 길이 책망이다. 믿음없이 방탕의 길로 가는 자식을 책망하고 훈계하는 일이야말로 자식을 천국으로 안내하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유언을 남겨 자식을 구원으로 인도한 다윗왕
[찬송] 찬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말씀] 역대상 28:9~10(구약 653면)
2018.9.5(수)
1. 들어가며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다. 좀 더 일찍 죽고 좀 늦게 죽는 것일 뿐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다 찾아온다. 그러므로 죽음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부끄러움 없는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그런 자는 복된 자라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 자식을 앞에 놓고 자식들에게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유훈(遺訓)을 남길 수 있다면 그 인생은 값진 인생이요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원에서 미끄러질 뻔하였으나 아비의 유언으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하여 천국에 들어간 한 아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는 바로 이스라엘의 통일왕국 2대왕이었던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다.
2. 다윗은 누구였고 어떤 사람이었는가?
구약의 인물가운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두 사람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우리는 야곱과 다윗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곱은 130세 되던 해에 애굽의 바로왕 앞에 섰을 때에 자신의 나그네 길의 인생이 조상들에 비해서는 적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술회했기 때문이다(창47:9). 그리고 또 한 사람을 고른다면 그는 다윗 왕(B.C.1040~970)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소년시절 양을 치던 목동에 불과했으나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도 그를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이라고 칭할 정도였으며, 예수님께서도 그의 혈통으로 태어나시게 되었던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의 출발은 사실 초라했다. 그의 처음은 평범한 양치기 목동이었지만 15세 때에 사무엘선지자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B.C.1025). 그러다가 물매돌로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린 일로 인해 유명해졌고, 사울의 병을 치료하러 왕궁에 들어갔다가 군대장관까지 되고 왕의 사위까지 된다. 하지만 백성들이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는 다윗을 사울왕보다도 드높이는 바람에, 그때부터 사울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리하여 20세부터 30세까지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시절을 사울왕에게 쫓겨다니며 광야와 굴과 타국과 산을 전전하는 도망자로 살게 된다. 그러니 그의 힘겨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3천명의 군사를 거느린 채 쫓아오는 사울왕을 해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끝까지 왕을 해치지 않는 숭고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윽고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사울왕이 죽게 되자, 그는 30세에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으며(B.C.1010), 그후 7년 6개월이 지나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의 왕이 된다(B.C.1003). 하지만 인생의 전성기인 40세 초반에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장수 우리야의 아내(밧세바)를 범하고 또한 우리야 장수마저 죽게하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밧세와의 간음죄와 우리야장수를 고의로 죽인 살인죄로 인하여 다윗은, 자식들의 간음행각과 칼부림을 지켜봐야 했으며, 셋째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왕의 자리까지 내놓고 도망쳐야하는 곤역을 치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기뻐하였으니, 왕권이 안정되자마자 아비나답의 집에 20년간 머물러 있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온다. 그리고 자신은 향기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지만 하나님의 법궤를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두는 것이 마음 아파서, 하나님께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드리려고 하지만, 전쟁을 통해 피를 많이 흘린 이유로 성전건축은 허락받지 못한다. 하지만 나이가 늙어 죽을 무렵이 되었을 때, 전쟁에 나갈만한 군인수를 조사시켰다가 전염병으로 3일에 7만명의 백성을 잃게 된다. 그러자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데, 그곳이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산인 것을 알게 되고 그곳을 성전터로 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솔로몬을 불러놓고 유언을 남긴다.
3. 다윗은 죽을 때 무슨 유언을 남겼는가?
왕이 된지 40년이 되어 이제는 70세의 노구가 된 다윗은 자신의 10번째 아들이었던 20살된 솔로몬을 불러서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는데, 그것은 자신의 아들 솔로몬을 구원얻게 하고 그의 후손을 살리는 고귀한 당부가 된다. 그렇다면 이때 다윗은 솔로몬에게 어떤 유언을 남겼을까?
다윗은 솔로몬에게 크게 3가지 유언을 남기는데, 그것은 아들의 일생을 움직이게 하는 영적인 나침반이 되고, 솔로몬의 왕권강화를 위한 초석이 된다.
첫째, 다윗은 가장 먼저 솔로몬이 가져야할 가장 신앙이 무엇인지를 유언으로 남긴다(대상28:9,왕상2:2~4).
대상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이때 다윗은 아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또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알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왕상2:3~4). 그것이 솔로몬의 영혼이 결국 살 길이며, 나라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가장 최선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둘째, 자신과 솔로몬이 맡아서 꼭 처리해야 할 사명을 유언으로 남긴다(대상28:10).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봉안할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피를 많이 흘려서 안 되고,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하신다고 했으니 꼭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아주 세부적인 항목까지 철저히 다 준비하는데, 성전건축에 필요한 금은보석들과 목재와 석재 등 모든 자재들까지 넘치게 준비해 두었으며, 개인이 사유한 재산까지 아낌없이 준비해 놓았고, 일꾼까지도 섭외해 놓았던 것이다. 결국 솔로몬은 왕권이 안정되자마자 4년차에 성전공사에 착수했으니 위대하고도 화려한 성전을 7년만에 건축하게 된다.
셋째,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유언을 부가하는데, 그 골자는 하나님의 신정왕국건설에 목숨을 걸고 충성했던 사람들의 잊지 말고 예우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나님의 왕국건설에 어려움을 끼치거나 반역을 일삼은 자들에 대해서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처리하라고 언급한다(왕상2:5~9). 다윗의 이러한 주문은 결국 솔로몬왕국이 든든히 세워주는 기초가 된다.
4. 솔로몬은 타락했는데 어떻게 해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자신의 사명을 붙잡고 성전건축에 매진할 때만 해도 솔로몬은 매우 경건한 삶을 살았다. 성전건축과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앞두고 먼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며 제단을 쌓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는 지혜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부귀영화와 장수의 축복까지 덤으로 허락해주셨다. 그러니 그의 지혜와 지은 성전과 왕국을 보려고 천하각국에서 왕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고, 그러다보니 주변국가의 딸들과 정략결혼도 행하게 된다. 하지만 모압과 암몬과 에돔의 여인들, 시돈과 헷의 여인들 그리고 애굽왕 바로의 딸들이 시집오면서 온갖 이방신들을 가지고 온 것이 그에게 화근이 된다. 그러자 왕은 점차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이방신들을 예루살렘에 머물게 하는 결정적인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죽기 전에 자신의 지난날의 삶을 반성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좇는 삶을 정리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들었고, 자신이 15살 때에 인구조사를 시켰던 아버지께서 어떻게 과오를 용서받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따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죽기 전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회개복음서인 전도서라는 인생지침서를 남긴다. 전도서를 통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느니라
전12:1-2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전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5. 자식을 살리는 유언, 우리도 남겨 놓자.
무엇이 자식을 살릴 수 있을까? 모범도 필요하고 기도도 필요하며, 생명얻는 정보를 알려주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엄한 책망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에다가 불효자였던 청개구리 아들이라도 꼭 들어줄 수밖에 없는 값진 유언을 자식에게 남기는 방법도 있다. 거기에다가 덤으로 아비로부터 아들 대에 이르기까지 꼭 성취해야할 사명까지 남길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자식구원의 훌륭한 동반자도 될 수 있다. 유언은 죽어가면서 아비가 남기는 마지막 소원이 아닌가? 자식이 아직도 먼 길을 가고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자식에게 남길 소원을 써서, 어느 기회 좋은 날에 아들의 손에 꼬옥 쥐어주자. 이것이 아비의 소원이라고...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자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음녀가 된 아내를 끝까지 품어준 호세아
[찬송] 찬299장 하나님 사랑은
[말씀] 호세아 3:1~5(구약 1259면)
2018.9.6(목)
1. 들어가며
사람이 너무 잘 생기거나 예쁘게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볼 때에 그것은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와 미모로 인하여 음란의 죄에 빠질 소지가 다분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믿는 아내 때문에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벧전3:1). 하지만 거꾸로 남편으로 인하여 불신 아내가 구원받은 사례가 성경에 나온다. 그것은 바람나 집을 나간 아내임에 불구하고 그녀를 끝까지 사랑하여 그를 품어 회개에 이르게 하여 구원얻게 한 놀라운 사례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북이스라엘의 호세아 선지자다. 그리고 그의 음탕한 아내는 고멜(Gomer)이라는 여인이다. 그렇다면 호세아는 어떻게 되어서 바람나서 집을 나가버린 아내를 다시 회개케 하여 구원얻도록 인도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오늘은 남편이 그 배우자를 혹은 아내가 그 배우자를 어떻게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호세아 선지자와 고멜은 누구인가?
호세아 선지자는 잇사갈의 21대손이자 브에리의 아들로서(호1:1), 남왕국의 왕들 중에서 제10대 웃시야, 11대 요담, 12대 아하스, 13대 히스기야 때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다(B.C.755~722). 그는 이사야, 아모스, 미가와 같은 선지자들과 동시에 활동했던 인물로서, 북이스라엘의 13대왕이었던 여로보암 2세(B.C.793~753) 때에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여, B.C.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하기까지 활동했던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선지자다.
“호세아”라는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혹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배은망덕하고 자격없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어 구원하시는지를 보여준 놀라운 일을 직접으로 행동으로 보였던 사랑과 인내의 선지자다. 사실 호세아는 처음부터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호1:2).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집나간 아내를 용서해야 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지를 호세아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범죄하고 있는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며 그들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호세아의 부인이었던 고멜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가정도 내평개친 채 자기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당시에 매우 미모가 뛰어났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그녀에게 있어서 미모는 그녀에게 커다란 흠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것으로 인하여 음행을 저질렀으며, 그것을 추구하며 살다가 창녀까지 되어버렸으니, 남편 호세아에게 커다란 근심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3.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명한 2가지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B.C.755년경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를 불러내어 다음과 같은 2가지 임무를 맡겼다.
첫째, 가서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이었다(호1:2). 하나님께서는 장차 당신의 종으로 쓸 호세아를 불러내실 때, 맨 처음에 그에게 준 사명은 정숙한 여인이 아니라 음란한 여인이었던 고멜을 아내로 취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자신이 함께 살 배우자까지 하나님께서 관여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기로 결정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삼상15:22). 그러나 그의 가정의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과 동시에 시작된 결혼 곧 정숙한 여인이 아닌 음란한 여자 고멜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함으로 그 가정에 큰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늘 아내가 다른 남자들에게 마음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호세아는 그녀를 통하여 3남1녀의 자녀를 낳는다(호1:3~9). 그녀는 자신의 정직하고 성실한 남편 호세아로부터 두 명의 아들들(이스르엘, 로암미)과 한 명의 딸(로루하마)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면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 교육에 전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욕정을 끝내 이기지 못한다. 그러자 그녀는 세 자녀들을 내버려둔 채 그만 정을 통하는 남자의 곁으로 떠나버리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이런 여자를 계속해서 사랑하라고 했을까?(호3:1)
둘째, 또 가서 타인과 연애하여 음녀가 되어버린 고멜을 되사오라는 것이었다(호3:1~2). 하나님께서는 이제 호세아 선지자에게 두 번째의 명령을 내리신다. 그것은 또다시 가서, 이미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살다가 버림받고 창녀가 되어버린 아내 고멜을 돈을 주고 사오라는 것이었다. 그 일은 음란을 쫓아 가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난 아내의 과거를 다 용서해주고 다시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어주라는 것이었다. 보통 남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까? 율법말씀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버림당하거나 죽임당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결혼한 여자가 남의 남자와 통간을 하게 되면 이혼증서를 써주고 내버리거나(신24:1), 아니면 간음죄를 물어 돌로 쳐죽이는 형벌을 받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레20;10). 하지만 호세아는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녀를 사방으로 찾아다녀 찾아내었고, 그녀를 기용하고 있는 소유주에게서 은(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되사서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다. 그런데 이때 호세아가 지불한 몸값으로 사용한 은 15개는 15세겔의 값어치였고, 보리 한 호멜 반은 15세겔의 값어치였으니, 30세겔를 주고 아내를 사온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여종 한 사람에 대한 몸값이 30세겔(출21:32, 레27:4)이었으니, 호세아는 여종을 되사기 위해 속전(贖錢)을 지불하고 되사온 것이다. 그리고 아내를 데리고 돌아올 때에 호세아는 이렇게 말했다.
호3:33[직역] “당신은 [이제]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냅시다. 더 이상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라가지도 말았으면 좋겠소. 나도 당신에게 그렇게 하리이다”
얼마나 남편을 볼 면목이 없었을까? 자신의 육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편도 버리고 자식들도 버린 채 떠났던 자신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이제는 애인에게도 버림받아 남의 수하 밑에 들어가 몸이나 팔고 있는 신세인데도, 어느 날 남편이 찾아와 몸값을 지불하고 자신을 거기에서 끌어내준 것이다.
4. 하나님은 왜 호세아에게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을까?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실 말씀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첫째, 이미 바알숭배에 빠져있는 북이스라엘 백성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북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되어주셨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으셨던 것이다. 둘째, 북이스라엘의 당시 상태는 이미 도를 넘어 바알신을 따라 아예 가출한 여자가 되어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때부터 오직 이스라엘 백성만을 아끼고 사랑했던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채,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마저 바알신이 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고(실은 하나님께서 주셨는데도), 종교행사 후에는 음란문화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포기할 수 없으셔서, 속전을 주고서라도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자기백성을 구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의 정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우상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되찾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호세아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져 있는 온 인류를 건져내기 위해 직접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속전(贖錢)으로 내놓으셨다. 그 사건이 바로 우리 주 예수께서 죽으신 십자가사건이다.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를 잊어버린 채 있었다. 만약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준다면, 그들은 지옥형벌을 면치 못하겠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줄로서 그들을 죄로부터 이끌어내고 싶으셨던 것이다(호11:1,4).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그래서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촉구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호세아를 선택했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도록 그에게 고멜을 붙여준 것이다.
5. 누가 그리고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게 할 수 있을까?
그러자 고멜은 남편의 끝없는 사랑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리고 지난 날의 삶을 눈물로 용서를 빌고 또 빈다. 과거 다윗이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고 나서 눈물로 회개했던 것처럼, 그녀도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빈 것이다(시51:17).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가? “네가 바람피니 나도 바람피겠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끝까지 참아주고 기다려주며, 나를 희생해서라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돌아올 수 있도록 품어주는 끝없는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남편과 아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말뿐인 사랑을 설교하지 않으셨다.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는 쪽을 선택하셨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보자. 그래서 믿지 않는 배우자를 주께 인도해보자.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자신의 믿음으로 딸을 고친 가나안 여인
[찬송]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말씀] 마태복음 15:21~28(신약 15면)
2018.9.7(금)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족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가족에 속한 한 사람으로 인하여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다 구원받도록 이끄시는 목적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러므로 가족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그 가족 모두의 구원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자기를 살려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빌립보 간수에게 구원의 기본구성원이 누군지를 이렇게 말했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기본구성원은 가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온 가족이 구원을 받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첫째, 노아처럼 가장이 보여주는 믿음의 모범이 필요하다. 둘째, 야곱처럼 간절한 사생결단의 기도가 필요하며, 셋째, 여관집 주인(主人)이었던 기생 라합처럼 자신의 접한 최고의 정보를 통해서 가장 먼저 자기 집부터 구원하겠다는 결단도 필요하다. 그리고 넷째, 엘리제사장의 사례를 통해서 부모는 자녀를 어려서부터 말씀과 기도로 양육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녀가 분명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경우에는 엄중한 책망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다섯째, 다윗처럼 유언을 신앙의 유산으로 남겨주는 일과 여섯째, 호세아 선지자의 경우처럼 배우자가 아무리 죄악된 길로 간다고 하더라도 그를 끝까지 용서하며 품어줄 수 있는 커다란 사랑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다가 오늘은 가족구원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믿음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내 자식이나 가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자녀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믿음과도 상당히 결부되어있다는 것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2. 두로지방의 가나안 여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자신의 귀신들린 딸을 고친 사건은 마태복음 15장과 마가복음 7장에 같이 나온다. 그런데 이 두 본문은 거의 같은 사건을 소개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정보를 알려준다. 우선, 마태복음에 의하면 첫째, 이 여인은 가나안 사람이라고 나온다(마15:22). 다시 말해 이 여인은 유대혈통이 아닌 이미 여호수아의 정복시절 때에 사라지고 없어야 할 사람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살아남은 이방 사람이었다는 점이 부각되어 있다. 둘째, 이 여인은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두고 있었는데 그 병을 고칠 사람이 없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마15:21~22). 그런데 셋째, 이 여인은 예수님께 자기 딸의 치유를 부탁할 때에는 이미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께 소리치며 말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마15:22)” 넷째, 예수님의 험악한 냉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을 낮추어 딸의 병을 고쳤는데, 그 이유가 그녀가 가진 큰 믿음이었다는 것이다(마15:24~28). 하지만 마가복음은 다른 사실도 함께 들려준다. 첫째, 이 여인은 페니키아의 귀족이면서 많이 배운 사람이자 부자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가요한은 이 여인을 수로보니게(Syrian Phoenicia)여인으로 그리고 헬라인(a Greek)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막7:26). 당시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항구도시로서 무역을 통해 많은 부요를 축적하고 있는 도시였고, 그녀는 딸을 침대에 눕힐 만큼 부자였던 것이다. 둘째, 이 여인은 상당히 젊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딸이 어렸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막7:25). 셋째, 이 딸이 귀신으로부터 치유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대한 이 여인의 아주 지혜로운 대답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막7:29). 넷째,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지역에 가신 이유는 잠시 쉬기 위해 가셨다는 것이다(막7:24).
3. 이 여인의 딸에게서 어떻게 귀신이 떠나가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쉬기 위하여 두로와 시돈지역에 가셨던 상황이었는데 어찌하여 그 여인의 딸을 치료해 주신 것일까?
첫째,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그녀의 행동과 태도 속에서 그녀의 철저한 낮아짐과 겸손함을 보았기 때문이다(막7:25, 마15:25).
막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의] 발[들] 아래에(향하여) 엎드리니
마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연신] 절하며(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녀는 젊은 여자로서 두로와 시돈지역에서는 알아주는 귀족이었으며, 배운 것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땅바닦에 있는 주님의 발을 향하여 엎드렸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향해 연거푸 절을 하였다. 이것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면서 주님의 긍휼을 바라고 간구했음을 여실히 말해준다.
둘째, 이방인인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조차 배척하고 있는 예수님을 자신의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존귀한 자로 믿었기 때문이다(마15:22).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는 유대인들만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유대인들로부터 불쏘시개 취급받는 이방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게 깊은 존경심과 신앙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셋째, 예수께서는 구원의 혜택을 베푸는 대상이 아직까지는 이방인에게까지 도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의 은혜만이라도 베풀어주기를 간곡히 원했기 때문이다. 이 여인은 처음 주님 앞에 나올 때부터 주님을 향해 자기가 예수님을 만나러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말했다. 큰 소리로 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에 반응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관심을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 큰 소리로 외치니, 제자들마저 주님께 여인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보내실 것을 간절히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집안에 있는]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여인은 도리어 “[집안에 있는] 개들도 제 주인들의 식탁으로부터 떨어지고 있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고 답변한다. 이것은 자신의 딸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자신은 어떤 미친 사람 취급을 하여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굳은 각오와 결심이 서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그러자 주님은 그 여인의 말을 들어보고는 즉시 자신에게는 황금같은 휴식의 순간이었지만 그 여인의 딸로부터 귀신을 쫓아주셨다.
4. 이 사건이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첫째, 믿음의 문제는 곧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내가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있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태도로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이 여인을 보라.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모든 위치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철저히 자신을 낮추어버렸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을 그 순간 식탁에서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먹는 작은 개들과 같이 취급당해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철저히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여인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어떤 말씀을 하셔도 자신에 대한 주님의 처우는 당연한 것이며,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 곧 예수께서 메시야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붙잡았을 때에 구원이 주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이것이 매우 중요한데, 자녀의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라는 깨달을 수 있다. 이 여인의 딸이 행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딸이 예수님을 믿은 것도 아니며, 회개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녀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믿음을 표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때 딸이 치료를 받았다. 딸에게서 그 시간에 귀신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자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유전자 및 품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분신이기 때문이다. 내게서 엉뚱한 자녀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의지가 발달하여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순간, 그때부터 자녀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린 딸이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은 곧 그녀에게 커다란 잘못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그녀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절대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금이나 은같은 맘몬신을 숭배하며, 거기에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투자해 왔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분이 죄인을 구원하러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그녀가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분 앞에 곧바로 달려 나왔으며, 그분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을 어떤 말씀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분이 자신의 구원자로 고백함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은 것이다.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가족구원을 위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상숭배
[찬송] 찬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말씀] 요한계시록 2:20~23(신약 401면)
2018.9.8(토)
1. 들어가며
내 가족을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가만히 있으면 자동적으로 가족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시기를 원하신다(딤전2:4), 하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해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모든 준비를 이미 다 마치셨다. 구원을 위해 남아있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가족에 관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렇게 말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그렇다. 사도바울은 이 말씀 외에도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가족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행16:31).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가족구원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7번에 걸쳐 살펴보았다. 첫째로, 노아를 통해서는 부모의 모범적인 삶의 실천이 구원의 요소인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둘째, 야곱처럼 처자식을 위해서 드리는 사생결단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과 셋째, 여리고성의 기생라합의 경우처럼 구원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었으면 자신의 목숨을 담보해서라도 가족구원을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넷째로, 엘리제사장을 통해서는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귀한 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하나님을 능멸하고 하나님을 말씀을 버젓이 어길 때에는 반드시 그를 책망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또한 다섯째로, 다윗처럼 부모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식이 하나님을 잘 섬겨 구원얻는 것임을 유언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과 여섯째로, 호세아 선지자의 경우처럼 아무리 배우자가 가정을 등지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떠나버린다고 하더라도 그를 끝까지 품어줄 수 있는 끝없는 사랑이 요청된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일곱째로, 자식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임을 인식하여, 자식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라면 주께서 내리는 어떠한 냉혹한 처분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흔들리지 말고 자녀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한다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예도 배웠다. 하지만 이러한 7가지 구원요소 외에도 가족구원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곧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는 내 육체와 영혼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와 손자에게까지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우상숭배의 위험성이 무엇인지를 한 번 살펴보고 우상숭배의 죄가 있다면 회개하고 우상숭배행위를 멀리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 두아디라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오늘 본문 말씀은 부활승천하시어 천상에 계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두아디라교회를 향하여 우상숭배행위를 강하게 책망했다는 말씀이다. 교회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개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문제였으며,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여자 이세벨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자기 자녀에게까지 치명타를 가하는 매우 중대한 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어떤 유형 무형의 대상을 향해 절을 하거나 거기에 음식을 바치거나 향을 피우는 등의 예의를 갖추는 숭배행위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두아디라 사람들은 태양신(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신(티림노스)을 자신의 수호신으로 섬기며, 황제 흉상에 절을 하며, 그 앞에 음식을 바치고 바친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의식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후에는 신전창기와 더불어 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 도시에서는 이러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로마 황제를 숭배함으로, 로마로부터 상업과 무역활동을 위한 권리를 확보할 뿐더러, 자기들의 수호신을 경배한다는 이유로 자기들의 상업조직을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도시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살려면, 황제숭배와 수호신숭배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문제는 두아디라교회의 성도들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하여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들을 절대 두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셨고, 그런 것들을 경배하거나 그것에 바친 음식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20:3~5a, 민25:2~3).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의 창조주는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분 외에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므로, 그것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절을 하게 되면,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귀신들)이 그 경배를 받고, 자기들이 하늘에서 쫓겨나면서 받았던 저주를 고스란히 그 경배하는 사람에게 퍼붓는다는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절대 금지를 명령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숭배하면 어떻게 되는 가? 성경에는 7가지의 저주들이 경고한다.
첫째,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듦으로 우상숭배자에게 재앙이 임하게 된다(시106:28~29).
시106:28-29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29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둘째, 저주 곧 화(禍)를 받는다(신11:28).
셋째,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임한다(엡5:5~6).
엡5:5-7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넷째, 우상숭배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며, 결국 불과 유황이 타는 못 곧 지옥에 던져진다(계21:8, 22:15, 고전6:9~10, 엡5:5~7)
다섯째, 질병의 침상에 던져진다(계2:22a). 즉 온갖 불치병과 중한 병과 우울증 등의 질병에게 시달린다.
여섯째, 큰 환난에 던져진다(계2:22b). 즉 모든 일이 잘 안 풀리고 어려움과 사건사고에 시달리게 된다.
일곱째, 자신의 자녀가 죽임을 당한다(계2:23a). 자녀 중 정신이상자와 장애인이 나오며, 죽는 일이 발생한다.
5. 우리가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상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우상숭배행위는 육체와 영혼을 둘 다를 망가뜨리는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우상숭배행위는 첫째로, 자신의 육체와 삶에 온갖 저주와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둘째로, 자신의 영혼이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가슴 아픈 일은 우상숭배의 일이 자기 혼자만의 저주와 고통으로 끝날 성질이 아니라, 자기 자식과 손자와 증손자에 이르기까지 저주와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준다는 것이다.
출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그렇다.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도 아무런 이유없이 단지 부모가 우상숭배자였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때부터 온갖 저주의 쇠사슬에 묶여 태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내 자식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만약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여 저주를 끊지 못한다면(갈3:13), 우리의 자식들은 온갖 재앙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한 채 일생을 흑암 속에 살다갈 것이다. 사실, 우리의 자녀들 중에는 지금도 밤마다 귀신들에게 가위눌리고 있고, 귀신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강요당한 채 부모에게도 말도 꺼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부모의 우상숭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일평생 자신의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한탄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못난 부모라 할지라도 우리 자녀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우상숭배로 인한 저주다.
6.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우상숭배행위를 하고 있는가?
성경은 이미 죽은 자에게 머리숙여 경배하고, 거기에 음식을 차려놓거나 향을 피우거나 하여 예의를 갖추는 행위가 바로 우상숭배요, 죽은 자에게 바친 제사음식을 먹는 것도 실은 우상숭배라고 말한다(계2:14,20, 시106:28~29, 고전10:20, 겔24:17). 그러니 오늘날 향을 피우는 대신에 죽은 자에게 국화꽃을 바치는 행위나, 영정 사진 앞에서 고개숙여 기도하는 것, 죽은 자의 기일에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도 다 우상숭배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공회에서는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올 때에 반드시 지켜야할 일들로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했다(행15:28~29). 그렇다. 내 자식과 후손을 살리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이것을 멀리해야 한다(요일5:21). 이것이 자식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믿음과 회개에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찬송] 254장 내 주의 보혈은
[말씀] 약2:25(신약373면), 계2:21(신약 401면)
2018.9.9(일)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한 주간동안 그리고 그 이전의 두 주일을 통하여,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꼭 필요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일곱 가지는 “이렇게 해보라”고 하는 긍정적인 방법이었고, 한 가지는 “이렇게 하면 절대 안 된다”는 부정적인 방법이었다. 우선 가족구원을 위한 성경적인 8가지 방법들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첫째, 모범된 경건한 삶의 실천(족장 노아). 둘째, 사생결단의 끈질긴 기도(족장 야곱). 셋째, 목숨을 담보한 믿음의 실천(기생 라합). 넷째, 엄중한 책망(엘리 제사장). 다섯째, 신앙을 유언으로 남겨줌(다윗 왕). 여섯째, 끝까지 품어주는 끝없는 사랑(호세아 선지자). 일곱째, 겸손한 태도와 절대적인 믿음(수로보니게 여인). 여덟째, 우상숭배 절대 금지(이세벨 선지자) 등이었다.
그런데 이상의 가족구원에 관한 여덟 가지 방법을 살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을 구원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가 바로 “믿음과 회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8명의 사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가족구원의 핵심진리인 “믿음과 회개”가 어떻게 들어있으며, 그것은 어떻게 밖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가족구원에 관한 첫 번째 핵심진리는 무엇인가?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첫째,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진 믿음에 대한 실질적인 표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열거한 8명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간절한 자신의 믿음의 표현을 통해서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가족을 구원하기를 원한다면,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필요하다.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그렇다. 가족을 구원했던 여섯 사람들의 경우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핵심진리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가족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행동하는 믿음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첫째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물의 심판이 반드시 도래한다는 것을 믿었기에 흔들림 없이 방주를 지을 수 있었고, 당시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칠 수가 있었다. 둘째,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잠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라고 믿었기에,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여호와의 천사를 놓아주지 않았다. 셋째, 기생 라합은 자기 여관집에 들어온 정탐꾼들을 살려보내는 것이 혹 매국적인 행위이자 자기민족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일 수도 있었으나, 직업을 통해 얻은 정보에서 상천하지에 참된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정탐꾼을 숨겨주었던 것이다. 넷째, 다윗은 천한 목동이었다. 하지만 그가 일약 통일이스라엘의 왕국의 최고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성으로 옮기고 성전을 지어드리기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기에 아들 솔로몬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절대자인 것을 믿었기에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고, 2남1녀의 자식까지 둔 후에도 다른 남자와 눈이 마주쳐 가정도 버리고 떠나서 창녀가 되어버린 아내를 속전을 주고 다시 사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여섯째, 수로보니게 여인은 비록 자신이 귀족이었고 부자였으며 젊은 사람이었으나 자신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줄 수 있는 분은 오직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뿐임을 믿었기에 주님의 매몰찬 냉대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없이 은혜를 간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3. 가족구원에 관한 두 번째 핵심진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가족구원에 관한 다른 핵심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두 사람의 경우를 통해서 확인되는데, 그것은 죄를 깨달았다면 즉시 돌이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 제사장과 이세벨은 모두 회개의 기회를 놓쳐버림으로 가족구원에 실패하고 말았다. 첫째, 엘리제사장의 경우를 보자. 엘리제사장에게는 늘그막에 얻은 2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제사장직을 이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다. 하지만 그러한 소식을 듣고도 엘리는 자식들에게 엄중한 책망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제사장에게 두 번이나 경고했다. 하지만 엘리는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했으며, 또 어린 사무엘의 들은 환상을 듣고도 두 아들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을 비롯한 두 아들들은 하루 아침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둘째, 두아디라교회의 이세벨선지자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황제숭배와 수호신숭배가 우상숭배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료들과 성도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일 때문에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거나 경제활동을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눅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그러므로 가족의 멸망을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회개를 거부한 엘리 제사장 그리고 우상숭배행위가 얼마나 큰 징계를 가져오는 것이며 자식들에게까지 얼마나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즉시 돌이켜 회개하지 않았던 이세벨 선지자는 결국 회개의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
4. 가족구원에 관한 “믿음과 회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가족구원에 꼭 필요한 두 가지 핵심진리로서 믿음과 회개 안에 꼭 들어 있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하나님께 대한 믿음 안에는 무엇이 꼭 들어 있어야 하는가? 먼저 기생라합의 경우를 살펴보자.
약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26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정탐꾼)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렇다. 자신이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없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노아의 경우를 보자. 패괴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고 죄를 회개치 않는 자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수 십 년 동안 방주도 짓지도 않고, 회개를 외치지도 않았다면 그의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야곱이 하나님을 전능자로 믿었다고 하더라도 얍복강가에 남아 환도뼈가 위골될 때까지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았다면 그의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과연 호세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지 않았으며, 집나가 창녀가 되어있는 고멜을 품어주지 않았다면 그의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예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냉소적인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고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면 과연 그녀의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 이들에게서는 실천적인 믿음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야고보 장로의 언급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순종이 뒷받침되지 않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구원을 위해 살다간 사람들은 저마다 한결같이 행함과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 보였던 것이다.
둘째, 주님의 경고를 들었고 징계를 받았던 자들은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 엘리 제사장의 경우를 보자.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두 번씩이나 주셨다.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셨다. 그러나 엘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식을 책망하지 않았다 엘리는 즉시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주께 드렸어야 했다. 그렇다. 아무리 경고와 징계를 받았어도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회개에 합당하게 돌이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회개는 결코 입술만 딸싹거리거나 마음으로 조금 안타까워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회개해서는 나와 내 자식에게 징계가 떠나지 않다가 죽어서는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는 두아디라교회의 이세벨의 경우를 살펴보자.
계2:21 또 내가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렇다. 주님은 그녀가 갖고 있는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여러 징계를 통해 알려주신다고 하셨다(계2:22~23). 먼저는 그녀 자신을 질병의 침상에 눕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주의 종이 병상에 누워있다는 것 자체가 징계다. 둘째는 그녀의 신앙을 따르는 자들이 큰 환난 가운데 빠진다고 했다. 즉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고 큰 어려움과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셋째는 그의 자녀가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자녀가 아무런 이유없이 죽는 것이다. 만약 이세벨이 진짜 믿음있는 종이었다면 그녀는 즉시 회개했을 것이다. 자기가 교회 안까지 우상숭배를 끌어왔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성도들을 지옥에 보내고 있노라고 말이다.
5. 나오며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은 있다.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육체를 쳐복종시키며 순종할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한 것을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다. 아니, 지금 다름 아닌 내가 이 말씀을 현재 듣고 있기 때문이요, 아직까지 내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옥에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자신과 가족을 구원받게 하려면 반드시 믿음과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가족구원을 위한 믿음이란 실천하는 믿음이요 행동하는 믿음이어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가족구원을 위한 회개는 뒤로 미루지 말고 즉시 실천해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면 구원에서 탈락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식을 우상으로 알거나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자녀의 구원을 도리어 막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즉시즉시 회개치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실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행동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즉시 돌이키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즉시 처리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즉시 회개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머리로만 믿게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악한 귀신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열매없는 신앙인데도 그것이 믿음인 줄 착각하게 만드는 악한 귀신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행동으로 믿음을 표현할지어다. 잘못은 즉시 고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자신의 영혼과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믿음과 죄로부터 돌이키는 회개가 절실히 요청되는구나.
2. 말이나 머리로만 믿는 믿음만으로는 자신과 가족을 구원할 수 없구나.
3.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회개하여 고치지 않는 자는 구원에서 탈락되고 마는구나.
4.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으로는 자신과 가족을 구원할 수 없구나.
5. 여러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죄로부터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구원에서 탈락되고 마는구나.
6. 자신에게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 때는 즉시 돌이켜 회개해야 하는구나.
2018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내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8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제목] 가까운 친족과 친구 전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찬송] 찬457장 주 예수 넓은 사랑
[말씀] 행 10:24~33(신약 205면)
2018.9.9(주일)
1. 들어가며
가족을 전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가족전도의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성경에 나와있는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대체로 8가지로 압축할 수가 있다. 그것으로는 첫째, 모범된 경건한 삶(노아), 둘째, 사생결단의 기도(야곱), 셋째, 목숨을 담보한 믿음의 실행(기생라합), 넷째, 엄중한 책망(엘리제사장), 다섯째, 신앙을 유언으로 물려줌(다윗), 여섯째, 끝까지 품어주는 희생적인 사랑(호세아선지자), 일곱째, 겸손한 태도와 절대적인 믿음(수로보니게여인), 여덟째, 우상숭배금지(에세벨선지자)가 그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8가지 방법을 종합해보면, 가족전도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을 전도할 때에 사용할 방법과는 양상이 매우 다르다 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사실 모르는 사람을 전도하는 데에는 말만(물론 말만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잘 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가족전도는 내가 말을 잘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우리의 가족은 자기가족 구성원의 모든 모습을 다 지켜보고 살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에게 나는 숨겨진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족에게는 말로 하는 전도가 효력을 미치기는 매우 어렵다. 가족전도는 말이 아니라 생활로 하는 전도요 삶으로 보여주는 전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 끼여있는 전도의 대상이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친척과 친구 전도라는 것 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친척과 친구들을 어떻게 전도할 때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가족전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척과 친구전도를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가족전도에 관해 살펴보면다면, 친척과 친구를 전도하는 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전도는 어떻게 하는가? 가족이란 남편과 아내 즉 부부를 중심으로 한 구성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기본단위는 남편과 아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출생이나 입양을 통해서 얻어지는 식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자식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족에는 위로는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가 더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가족전도의 영역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 것이다. 첫째는 배우자전도, 둘째는 자식(자녀)전도, 셋째는 부모전도 가 그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부모의 형제자매들도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족구성원들은 어떻게 전도하는 것이 좋은가?
성경에서 가족전도에 관한 사례를 살펴보면, 어떻게 가족을 전도할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있는데, 가족전도의 중요한 방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배우자전도부터 살펴보자. 배우자전도의 사례가 구약성경에 나오는데, 그것은 호세아가 자신의 아내 고멜을 전도한 경우다. 이 사례를 보면, 배우자전도는 한 마디로 "인내"와 "사랑"으로 할 수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배우자가 아무리 집안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과 외도를 저지르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주지 않아도 상대방을 전도하려면 끝까지 기다리면서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호세아선지자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둘째, 자식(자녀)전도는 어떤 방법이 유효한가? 그것은 부모의 모범적인 삶의 모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최후의 방법은 유언을 남기는 것이다. 아비의 모범적인 삶을 통해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을 따라온 경우가 성경에 있다. 그것은 노아의 경우다. 노아는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것을 보고 자란 셈과 함과 야벳은 아비의 신앙의 길을 그대로 걸어간다. 특히 자신의 아버지 노아가 방주를 지을동안(약 50~80년?) 동침하지 않자, 자기들도 결혼은 했지만 동침하지 않는다. 홍수 후에 비로소 자녀를 낳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아버지의 경건이 자녀들을 감동시켰으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비의 모습을 따라 자식까지 낳지 아니한 것일까? 한편, 유언을 통해 아비의 신앙을 갖게 한 사람은 다윗이다. 남북이스라엘의 39명의 왕들 중에서 가장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을 살다 간 누구일까? 성경을 그를 다윗이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다윗왕은 자신의 왕좌를 물려줄 자식을 늦게 보았다. 그러니 어린 20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솔로몬에게 바른 신앙을 전수하는 방법으로 유언을 사용한다. 그것은 효과적이었다. 솔로몬이 아비의 유언을 고스란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혹시 자기자식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분이 있다면 꼭 유언으로 신앙을 남겨보라. 왜냐하면 아무리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부모의 유언만큼은 지키기 때문이다. 우화이기는 하지만 청개구리 엄마의 유언도 생각해 봄이 좋을 것이다.
셋째, 부모전도의 경우를 보자. 성경에는 자녀가 먼저 하나님을 믿은 후에 부모님을 전도한 사례가 있다. 그것은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기생라합이다. 그리고 기생라합이 사용한 가족전도방법은 계속된 설득이라는 방법이었다. 여리고성에 살고 있던 기생라합은 여관집을 운영하면서 대외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자기들 곧 가나안사람들이 믿는 신은 참된 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이 믿고 있는 신이 다른 신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분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세계 최고의 제국이었던 애굽의 신들에게 심판을 내렸고,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쳐넣어 없애는 전능자였으며,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강력한 두 왕들인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도 한 번에 끝내버릴 수 있는 분이었다. 당시 기생라합은 아직 미혼인지라 살려야할 배우자나 자식은 없었어도, 자기의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부모의 형제자매가 걸렸다. 그리하여 그녀는 여리고성에 들어온 정탐꾼들을 목숨걸고 숨겨줌으로 자기 집안 사람들을 구원한다. 흔히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들 말한다. 다시말해 자식이 끈질기게 설득하면 안 넘어오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가족전도는 인내와 끝없는 사랑, 모범적인 삶, 유언, 계속된 설득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친척과 친구전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친척과 친구전도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오늘 살펴봐야 할 친척과 친구전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전도하는 데에 있어서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가족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가족전도는 말로 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 이율배반적인 삶을 사는 자는 가족을 전도할 수 없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인 부모의 모습을 자녀들이 계속 지켜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을 전도하려 할 때에 자녀들은 "부모님이나 잘 하세요."라고 무시해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내가 예수믿고 변화된 것이 없는데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지 이나한데, 어느 자녀가 부모의 신앙을 따라가겠다고 결단하겠는가?
그런데 이에 비해 친척은 성격이 약간 다르다. 핏줄로 연결되어 있어 남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가족처럼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친구도 성격이 약간 다르다. 친구는 먼 친척보다는 훨씬 더 가까운 사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가졌던 가족의 유대 만큼은 아니다(그러나 커가면서 가족보다 친구를 더 가까이 하는 자식들도 있다). 그런데 친구는 자신의 친척보다는 훨씬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이다. 친구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쩌면 내 사정을 내 부모나 가족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친구를 전도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의 길을 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친척이나 친구를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그 해법이 바로 사도행전 10장에 나온다 . 고넬료가 자기의 친척들과 친구들을 전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초의 이방인교회가 탄생했으며, 이들에게 베드로가 세례를 베풀어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넬료는 자기의 친척들과 친구들을 전도할 수 있었을까? 고넬료가 사용했던 전도방법은 이렇다. 한 마디로 신뢰할 만한 자신을 통해 친척과 친구들을 불러모아놓고는, 복음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그에게로부터 복음을 듣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 자기가 친척이나 친구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어려우니, 복음에 가장 전문가인 한 사람을 초빙하여 그분으로부터 복음을 듣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주효했다. 고넬료 집안에 모여있던 친척들과 친구들이 다 복음전문가인 사도베드로로부터 말씀을 듣다가 성령이 임하여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날 베드로부터 말씀을 들으려 온 사람들은 이미 고넬료의 인품으로부터 고넬료를 신뢰하고 그 자리에 왔다. 그리고 고넬료가 베드로를 대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들은 베드로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마치 하나님을 대하듯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과 3년반 동안을 동고동락을 해온 것이 아닌가? 그러나 베드로는 겸손했다. 고넬료를 일으켜 세운 후 베드로는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날 그 자리에 온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것은 그가 기도하다가 본 환상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기꺼이 복음을 전하라는 하늘의 사인(sign)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 곧 고넬료의 친척들과 친구들은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을 받아 교회가 되었다. 정말 고넬료의 친척과 친구들이 구원받게 된 것이다.
4. 나오며
그렇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주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나마 쉽다(물론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 다음 복음만을 전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을 전도할 때에는 말로 하는 전도가 거의 불가능하다. 나를 아는 자가 복음을 들을 때에 내가 전하는 복음만을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그들은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하는 말을 믿을 것인지 안 믿을 것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서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친척이나 친구가 나로부터 복음을 귀담아 들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내가 희생해왔던 모습이 없을 때에는 복음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가족일수록 더 그렇다 . 하지만 친척과 친구는 조금은 낫다. 그래도 친척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이기에 그분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가 누군지를 잘 알고 있기에 우리가 전도하려고 해도 나한테 배우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 그러므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복음전문가를 초대하여 그들에게 들려주는 것 이다. 전문가를 어렵게 모셔왔다는데, 예의상 보더라도 복음전도자의 말을 들어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내가 직접 친척과 친구를 전도하기가 어렵다면 고넬료가 사용했던 방법을 사용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아마 놀라운 효과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