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신천지가 어느정도는 이단일 줄 알고 있었을텐데, 그만 거기에 빠져버리는 것인가?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신천지에 들어가 한 6개월쯤에서 1년정도 공부하면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버리는가? 그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하나의 성경해석 방법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용하는 성경해석 방법은 사실 초기교부 때부터 있었던 놀라운 성경해석법이었다. 그것으로 헬라철학자들마저 굴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이단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아보고자 한다. 그래서 신천지에 빠진 자들은 속히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며, 우리 성도들은 그 위험성을 알고 잘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들어가며
지난해 12월 30일 중국우한에서 발행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올 해 2월 들어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31번 확진자의 발생 이후 대구와 경북에서 급속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코로나 감염확진자가 3,500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천지의 위험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31번 확진자가 지난 2월 둘째주일과 셋째주일에 대구 신천지 다대오지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 동선이 확인되었는데, 신천지는 사실 3주이상 결석하면 제명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144,000명만 살아서 영생할 수 있다는 신천지의 가르침에 따라 그 반열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 무리한 예배를 감행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딘가 모르게 수상하게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천지 신도의 감염이 이제는 대구와 경북을 넘서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루만 해도 5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더 큰 문제는 이 일로 말미암아 매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 기독교성도들에게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명의 확진자가 나오면 밀접접촉자까지 포함하여 함께 2주일간을 자가격리 및 차단조치를 해야 하는데, 교회는 여러 성도들이 운집하는고로 가장 위험한 감염루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 예배를 드리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있는 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주에도 전 성도들 중에서 약 57%가 인터넷예배를 드렸으며, 또한 약 38%는 아예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쩌면 가라지 하나를 뽑으려다가 많은 곡식까지 뽑히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개신교(기독교)에서는 이번 사태를 천재일우의 기회로 알고, 신천지의 정체를 확실히 드러내어 그들의 위험성을 알리고, 성도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신천지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하고 알리는 특별기간이 되었으면 한다. 특별히 최근 들어와 신천지는 그 숫자가 매우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교회까지 신천지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는 담대함을 보이고 있다. 놀라운 따름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왜 사람들이 신천지에 왜 빠지는지 그리고 한 번 빠지면 왜 거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은지를 그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어떤 집단인가?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1987년 9월 14일에 창립된 유사 기독교 신흥종교집단을 가리킨다. 이 단체의 교주는 1931년생으로 올 해 나이 70세된 할아버지 이만희다. 그런데 그가 여러 이단교주들을 두루두루 다니다가 신천지를 창립하게 되는데, 그때는 54세였으니, 신천지가 생긴지도 무려 33년이 흘러간 것이다. 그런데 신천지의 기원과 뿌리를 잘 모르는 자는 오늘도 이만희가 이 말세에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재림예수의 영을 받은 "참된 종, 약속의 목자"라고 신봉하고 따르고 있다. 특히 2010년이후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한 신천지의 신도수는 올 해 들어 현재 24만5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신천지의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 어떻게 되었길래 이 집단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인륜을 저버리고, 가정도 내팽개치고, 학업도 중단한 채 맹신하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지난 한 주간동안 이만희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니,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것을 나누고자 한다. 그것은 신천지의 성경해석방법에 관한 것이다.
3. 신천지에서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누구에 의해 꽃을 피우게 되었는가?
신천지에서는 성경을 공부할 때에 "비유풀이와 짝풀이"의 방법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그렇다면 이 방법은 신천지의 이만희가 만들어낸 성경공부방법일까? 전혀 아니다. 신천지의 뿌리와 역사를 공부해보면 알겠지만, 이만희는 자기가 이전에 몸담았던 사이비 이단의 교주로부터 배운 것을 아주 잘 짜깁기하여 마치 자신의 것인량 포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비유풀이와 짝풀이"라는 성경공부 방법도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원류를 찾아보면, 박태선의 전도관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그것의 꽃을 피운 사람은 실로등대중앙교회의 김풍일씨다. 김풍일씨는 전도관 박태선의 제자다. 박태선이 사망하자 따로 나와서 만든 것이 실로등대중앙교회다. 그런데 김풍일씨가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살펴보면, 이만희씨와 얼마나 닮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만희씨가 김풍일씨로부터 그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박태선의 제자였던 김풍일씨는 "모든 성경은 다 비유로 기록되어 있어 감추어져 있기에 비유는 풀어서 설명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와 문장은 다 짝이 있다. 그래서 신구약성경에서 그 짝을 찾아서 해석할 때에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천지 이만희도 김풍일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비유풀이와 짝풀이"가 사실은 오늘날의 신천지가 탄생하게 한 가장 중요한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4. 성경해석방법으로서 신천지에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어떤 성경해석방법인가?
성경을 해석할 때 신천지에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한다. 여기서 "비유풀이"라는 것은 성경은 비유로 기록된 것으로 그 의미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성경에 나온 말씀으로 짝을 찾아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신도에게 포섭당해 성경을 공부할 때 제일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 성경말씀은 다 비유라고 배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예로 든다. 마13:34~35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것들을 무리에게 가르치실 때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78:2의 말씀에 따라 그것은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말씀은 감추어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13장에 나오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13:3~9)"를 예로 든다. 씨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렸는데, 길가와 돌짝밭과 가시떨기와 옥토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옥토에 떨어진 씨가 자라서 결실할 때에는 30배와 60배와 100배의 소출을 거둬들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씨"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씨"에 대한 짝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34:16에 여호와의 책에는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사기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에 짝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짐승에 짝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눅8:11을 읽게 한다. 거기에 보면,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씨가 뿌려진 밭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나온다. 그러면서 이제는 슬며시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마13:24~30)로 들어간다. 거기에 보면, "좋은 씨"가 있고, "가라지"가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한 짝을 찾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렘31:27의 말씀을 가져온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에 뿌릴 날이 올 것이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좋은 씨"는 "사람의 씨"요, "가라지"는 "짐승의 씨"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에 대한 짝을 찾아보면,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사람의 아들)(37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라지"는 짐승의 씨인데, 짐승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또 짝을 찾아준다. 그래서 잠30:2~3과 사546:9~11의 말씀을 읽게 하면서, 여기서 "짐승"이란 벙어리 개(dog)로서 이스라엘의 파숫군 곧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수님 당시에도 두 종류의 씨가 뿌려졌다는 것이다. 하나는 예수님의 씨가 뿌려졌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므로, 예수께서 뿌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하지만 또 하나는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뿌린 씨앗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라지는 결국 거두어서 불에 살라버리듯, 오늘날 일반 교회의 목자들은 거짓목자들이어서 이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자는 결국 풀무불에 던져져 살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 큰일났다. 나는 이 사실도 모른 채 거짓목자에게 가르침을 받아왔는데, 여기서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통하여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큰 일 나겠는걸"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냥군의 올무에 새가 걸린 것처럼 딱 걸려드는 것이다.
5. 원래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어떤 성경해석방법인가?
그런데 김풍일씨와 이만희씨가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꼴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성경말씀을 짝으로 풀면 그 의미가 풀린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해석방법을 익히 공부한 적이 없는 일반성도는 그만 신천지의 성경공부방법에 홀딱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방법이 헬라철학이 지배적이었던 초기교회 시대에 성경말씀으로 헬라철학자들을 누르고 그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데 사용했던 방법이었다는 점이다. 이름하여 "알레고리성경해석방법"이 그것이다. 이 방법은 초기교부였던 오리겐(A.D.185~254)이 꽃을 피웠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오리겐이라는 교부도 이 방법을 자신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그의 스승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150~215)에서 배운 것이다. 클레멘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성경말씀의 참된 의미는 비유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아무나 그것을 찾아낼 수 없다.", "그것은 고차적원인 사람들만이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 이상의 추가적인 영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성경 다른 부분의 단어와 문장을 가져와 도출해 낼 때에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잘 살펴보라. 영락없이 김풍일씨와 이만희씨가 하던 이야기 그대로가 아닌가? 그렇다고 김풍일씨가 오리겐을 연구하여 그 방법을 가져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 토종 성경해석법에도 알레고리성경해석법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 헬라철학자들마저 KO시켰다고 하니 대단한 방법이었던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제는 초기교부였던 오리겐이 사용하던 알레고리성경해석법에 대해서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오리겐과 같은 방법으로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석하면 이렇다. 이 말씀의 스토리는 이렇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다. 그런데 그 옆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본체 만체 지나가는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름과 포도주를 싸매주고 그를 주막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주막주인에게 그 사람을 돌보아주게 한다.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부비가 더 들면 다시 와서 계산하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알레고리해석법에 따라 짝을 찾아서 해석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은 "죄인"을 상징하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품"을, 그 사람이 내려가던 "여리고"는 "세상"을, 그리고 "강도"는 "사탄"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스라엘종교지도자들"을, "기름과 포도주"는 "성령과 예수님의 피"를, "주막"은 "교회"를, "주막주인"은 "교회의 지도자들 곧 오늘날의 목회자들"을, 그리고 "데나리온 둘"은 "2천년"이라고 푸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죄인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가서 살다가 사탄마귀에게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데, 율법은 그를 살려낼 수 없으나, 어떤 사마리아인와 같은 예수께서 나타나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자기자신의 성령을 주고, 자신의 피를 통해서 살려낸 다음, 그를 돌볼 수 있는 교회에 보내어, 교회의 목회자에게 양육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이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으니, 2천년이 지나면 다시 성도들을 데리어 오신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럴싸한가? 그러니, 성경본문말씀을 알레고리해석법으로 해석하면, 하나의 에피소드에 이런 놀라운 영적인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면서 헬라철학자들도 머리를 숙이며 감탄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은 그러한 뜻이 결코 아니다. 이 말씀은 어떤 율법사가 영생을 얻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수님에게 묻자, 예수께서 도로 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누가 이웃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이 비유를 든 것이다. 다시 말해 강도만나 죽게 된 자를 보게 되었을 때 그냥 지나쳐버리는 자가 이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는 자가 진정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런 자가 영생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런데 알레고리해석은 위에서 보여준 것처럼 영 딴판으로 나간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성경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들어보면 말도 그럴싸하다. 어쩌면 성경의 말씀과 꼭 맞아떨어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알레고리해석의 위험성이요 미혹이다.
6. 성경에서 "비유"말씀과 '알레고리 비유"말씀은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비유와 알레고리는 어떻게 다른가? 한 마디로 "비유"는 하나의 주제나 요점을 어떤 비교대상물을 이용하여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알레고리 비유는 그 비유에 나오는 모든 단어나 문장을 다른 성경말씀을 가져와 대입하여 그 의미를 도출해 풀어가는 성경해석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실 알레고리 비유의 말씀은 그 말씀을 하고 있는 화자의 설명이 없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알레고리는 "수수께끼"라고도 말하고, "암호풀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사기 14장에 보면, 삼손이 결혼식날 축하하러온 들러리 친구들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알아맞추지 못한다. 아니, 그것을 누가 맞추겠는가? 하지만 삼손은 알고 있었다. 그가 전에 사자를 만났는데 그것을 염소새끼처럼 찢어 죽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다 보니 그 사자의 몸에 벌떼가 앉아 있었고 거기에 꿀이 있기에 그 꿀을 떠서 먹은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삼손의 수수께끼를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유는 다르다. 비유는 간단한 주제를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표출해낸다. 그러므로 굳이 화자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듣는 자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바로 비유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님께서 알레고리 비유를 사용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비유도 사용하셨다. 특히 마13장에 나오는 천국비유에도 이 두 가지가 나온다. 그중에 첫번째와 두번째의 비유는 알레고리 비유였으며, 나머지 5개의 비유는 그냥 비유였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알레고리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려다가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설명해주지 않았으면,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추수하는 농부의 비유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천국에 관한 비유였다. 예수께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그것에 빗대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듣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것을 무슨 뜻으로 말씀하셨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설명을 해주신 것이다. 그렇다. 어떤 것이 그냥 비유인지 아니면 알레고리 비유인지는 알려면, 그 비유에 어떤 설명이 들어가 있으면 알레고리 비유이며, 설명이 없으면 그냥 비유라고 알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천국비유 가운데 그냥 비유의 하나인 "밭에 감추인 보화(마13:44)"의 비유를 보자. 이것은 그대로 읽으면 무슨 뜻인지를 그냥 알게 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 자기의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그렇다. 천국은 이처럼 귀중하고 값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살 만큼 귀중하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다면, 신천지에서는 이 말씀을 어떤 식을 해석할까? 그들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일대일 해석방식으로 해석한다. 즉 각 낱말에 대한 성경구절을 다른 곳에서 가져와서 짝이라고 하면서, 여기에 나오는 "천국"이란 "신천지(새하늘과새땅) 증거장막성전"을 가리키고, "밭"은 그것의 소유자인 "이긴 자"를 가리키며, "감추인 보화"는 "감추인 만나와 흰 돌"을 가리키고, "자기의 소유"는 "사람이 가진 돈과 재능과 인생'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고로,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자신이 가진 돈과 재능과 인생을 다 투자해서라도 감추인 만나요 흰 돌을 가진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으로 가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얼마나 그럴싸한가? 이것이야말로 바로 일대일 낱말맞추기를 통한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의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내보여주는 것이다.
7. 신천지의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고로 이제는 신천지식의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이들의 잘못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다.
첫째,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비유 말씀이라고 속이고 있다. 아니다. 예수님께서 마13:34~35에 나오는 "이 모든 말씀"은 예수께서 그날 바닷가에 나온 무리들에게 말씀하신 들려주신 그 말씀만을 가리키며, 그것은 다 비유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천국에 대한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관하여서는 대부분 비유로 말씀하셨다. 성경말씀은 신천지에게 가르치듯 다 비유가 아니다. 구약성경에는 실제 이야기도 있고, 역사도 있고, 족보도 있고, 시편과 같은 시와 노래도 있고, 잠언같은 교훈집도 있다. 신약에 들어와서는 예수님의 일대기도 있고, 편지들도 있으며, 예언도 있고 신앙고백도 있다. 성경에서 비유는 사실 얼마 안 되며, 그중에서도 알레고리 비유는 더욱 더 얼마 안 된다.
둘째, 모든 성경말씀은 비유풀이와 짝풀이(알레고리해석)로 풀어야 비로소 풀린다고 속이고 있다. 아니다. 거의 모든 성경말씀은 그냥 읽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기록하였다. 성경을 오직 비밀로만 기록했으면 아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를 것이며, 어떻게 속죄를 받는지를 몰라 구원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다. 그냥 읽으면 대부분 알게 되어있고, 굳이 알레고리 비유로 말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해설을 해 주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해설이 없는 알레고리 비유는 성경에 없는 것이다.
셋째, 모든 성경의 해석은 말세에 하나님이 보낸 약속의 목자 곧 이긴 자와 보혜사요 인치는 자인 이만희에게 찾아가서 비밀한 것을 들을 수 있고 그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속이고 있다. 결국 이만희가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그토록 애지중지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만이 이미 예수의 영이 보혜사로서 이만희에게 내려와 있다는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처음부터 절대 말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로 넉다운을 시켜놓고 조금씩 조금씩 세뇌를 시켜 결국 이만희가 재림예수요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의 말을 듣고 인침을 받아 144,000명에 포함되고 그래야 살아서 육체를 가지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고 속이는 것이다.
8. 나오며
이때까지 신천지와 같이 많은 사람을 매료시킨 이단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이만희 그가 사용하고 있는 알레고리성경해석법은 헬라철학자들마저 넉다운을 시킬 수가 있었던 것과 유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반성도들이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만나게 되면 거의 마약맞은 사람처럼 되어버린다. 그러니 집도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공부도 버리고, 청춘도 버리게 된다. 처음에는 그처럼 기쁘고 즐겁고 감격스러운 경험을 해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으로만 쾌락을 주는 마약과 같아서, 5년에서 10년이 지나면 실체를 알게 된다. 이만희는 온통 거짓말쟁이요, 돈만 아는 사깃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가정을 뛰쳐나왔으니 더이상 갈 곳도 없다. 그래도 이만희가 죽든지 아니 죽든지까지는 정녕 보아야겠다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니다. 어서 속히 거기에서 나오라. 지금이 그때다. 예수님께서도 말세에는 거짓그리스도들과 거짓선지들이 일어나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다(마24:24). 사도바울도 말세에는 사람들이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갈 자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딤전4:1). 아니다. 성경은 오직 한 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언하는 책이다(요5:39, 요20:31, 행4:12), 그리고 오순절에 오신 보혜사 성령께서도 오직 예수님만을 증언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요15:26). 결코 성경은 청도 태생의 늙은 자 이만희가 구원자임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것도 오직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더 이상 가면 다 가짜다. 그가 미혹하는 자요 사이비이단 교주인 것이다.
2020년 03월 01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