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은 맞긴 맞는데 그분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일체이신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들어왔고 알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의견은 니케아 종교회의와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를 통해 얻은
지식들입니다.
처음으로 ‘삼위일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한 사람은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어진 것은 어거스틴이 참여한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와 콘스탄티노플 회의(381년)를 통해서였습니다. 이들 종교회의를 종합해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란 세 위격(persons) 안에 하나의 실체(substance), 하나의 실체 안에 세 개의 구별된 위격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의는 확실히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삼신론에 가까운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다시 말해, 초기교회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을 한 분 쪽에서 접근하는 교리와 하나님을 세 위격 쪽에서
접급하는 교리가 서로 싸우다가, 결국 하나님을 세 위격 쪽에서 정의하는 교리의 승리로
끝났다고 해서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사에 있어서 하나님을 한 분으로 정의하는 것에 대해서 인색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한 분이라는 이론에 가까운 양태론과 같은 주장은 이단으로 정죄받아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하는 쪽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김양환 목사님의 간증 가운데 나오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주장은 새로운 이슈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초기교회 이후 하나님을 한 분 쪽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고, 교회사 속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문전박대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래서 이 부분을 듣고 많이 숙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하나님을 세 위격 쪽에서 설명하는 것에서 한 분 하나님 쪽으로 설명하려는 것에도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구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조금 더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주는 말씀과 행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기에 성경학자들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지만, 거기에 걸맞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trinitas=trinity)’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이미 과거의 교회의 역사 속에 하도 많이 논하여진 것이고 증거된 것이라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천국에 가게 되면, 예수께서 바로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냐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저도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성경을 보니, 놀라운 사실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는 하는데,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보좌가 있다는 표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는 표현은 성경에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보좌가 있다고 말하는 부분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의 서신과 히브리서(이것도 사도바울의 저작으로 추정됨)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는 표현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8: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히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께서는 분명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뒤에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보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그 말은 예수께서 모든 것들 곧 사망과 및 모든 타락한 천사들로 지칭되는 통지치들과
권세들과 사탄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후 전 우주의 통치자로서 등극하여 다스리게 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앉으셨다’는 말은 통치자가 되시어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게 되셨다는 것 즉 이제는 승리하여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게 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편에 앉으셨다’라는 말 가운데 ‘우편(오른쪽)’이라는 말은 보통 ‘권능’ 혹은 ‘능력’을 얻게 되었음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26:64).
마26: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성만찬 후에도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하는 논쟁을 벌이게 되었을
때에, 보좌에 앉는다는 개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눅22:29-30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 보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 따로 보좌가 없고 천국의 한 중심에 단 한 개의 하나님의 보좌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 가운데도 선지자들이 본 환상 가운데 여러 번 등장하고
있으며, 특히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본 환상 가운데에서는 보다 더 정확하고 아주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몇가지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왕상22: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시47: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단7: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계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그렇습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는 단 한 개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소아시아에 일곱교회들에게 보내라고 했던 편지들 가운데
라오디게아교회에서 보낸 편지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성경에 보면, 예수님에게도 자신의 보좌가 있다는 표현이 단 한 번 나오는데, 요한계시록 3:21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보좌가 있는데 ‘그 보좌는 곧 아버지의 보좌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바로 하나님 자신이며 구약에서 말씀하신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말씀해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주장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주장하는 ‘성부고난설’의 입장과는 약간 다른 것입니다. ‘성부고난설’의 주장은 일부는 맞는 주장이지만 일부는 틀린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 자체는 틀림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하늘의 공석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틀린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시간과 장소와 상관없이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유일한
존재이시기에, 성부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고 해서 하늘에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공석상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성부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해도 하늘에는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전 우주를
통치하고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계실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이심을 표현하는 것을 찾아보면 아주
많습니다. 그렇다고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세 인격을 주로 말씀하는 주장에 서 있다
보면, 천국에 가서 아마 우리는 놀라게 될 것입니다. “어, 이제 보니, 여호와 하나님이 따로 있고 예수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정말 한 분이라는 말씀이 맞네!” 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곧 세상을 종결하실 날이 가까운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성부 하나님이 곧 예수님 자신인 것을 드러내는 표현이 아주 많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라는 표현은 1차적으로는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그것은 곧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계4:10, 1:18). 그리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계1:8, 22:20). 이 표현도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곧 그분이 예수님 자신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를 보십시오.
계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요한계시록 4:10에 의하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세세토록 살아계신 분으로서 주 하나님 다시 말해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사도요한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은 자신을 ‘죽었다가 살아난, 세세토록 살아 있는 이’라고 또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더욱이 요한계시록 1장에서 성부 하나님은 ‘장차 오실 분’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 장에 가서는 장차 오실 분이 곧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한편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는 구약시대 스가랴 선지자는 장차 재림하실 분이 여호와 하나님
자신인 것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곧 재림하실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슥14: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고로 이상의 사실들을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인 것을 표현하는 구절들은 아주
많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증거들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세 위격을 가지신 분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기에 하나님은 각각 독립적인 위격을 가지신 세 분 하나님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것은 전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그렇게 계시해 준
것입니다.
덧붙여 우리가 아직 천국에 올라가지 않은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삼위 하나님의
방식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인간의
구원과 하늘나라의 상속에 관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성부 하나님, 직접 사람의 형상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시어 33년반의 공생애를
사시면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다시 말해 100%신성을 지니셨지만 100%인성을 갖추어
태어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다시 인성을 신성 안으로 가져가시어 보좌 우편에 계신 아들 예수님,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사역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인치시고 능력과 은사를 주시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케 하시는 성령님, 우리가
이 지상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은 바로 삼위의 방식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진리를 좀 더 이해하고 회복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우리들 곁으로 오시어 우리 속에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이 더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정병진(alleteia@empal.com)